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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89화 (89/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89화

그동안 마차로만 이동했던 지크는 오랜만에 공작가에서 마련한 마동차를 탔다.

확실히 마차보다 승차감이 뛰어나서 편히 갈 수 있었다.

마음만은 편치 않았지만.

‘이게 무슨 상황이람.’

마동차에는 지크와 실리스, 두 사람만 타고 있었다.

호세 공작이 자기는 따로 마동차를 타고 가겠다며 자리를 비킨 탓이다.

‘자리도 넓은데 같이 타지…….’

실리스와 단둘이 한 공간에 있는 게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끝도 없는 질문 공세가 지크를 미치게 했다.

“마나를 흡입하니 자신도 모르게 알아서 오러가 쌓였단 말씀이세요?”

“그렇습니다.”

“신기하네요. 오러와 마법을 동시에 쓰는 사람은 아마 대륙을 통틀어 지크 공자님밖에 없을 거예요. 그럼 현재 오러 마스터 중급에 7서클의 성취를 이루신 거네요?”

“그런 셈이죠.”

“하나만 이루기도 힘든데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시다니. 정말 대단해요! 16살에 7서클은 12인의 선구자나 돼야 이룰 수 있는 경지일 거예요. 그런데 이런 대단한 힘을 여태껏 왜 숨기고 계셨어요?”

“숨기려고 숨긴 건 아닙니다. 딱히 드러낼 기회가 없었을 뿐.”

“그렇구나. 이제 마검사로 이름 떨칠 일만 남았네요.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놀랄지…….”

지크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자신에 대해 뭐 저리 궁금한 게 많은지.

‘출발 전까지만 해도 요조숙녀처럼 가만히 있더니…….’

단둘이 마동차에 타는 게 적응됐는지 말문이 트인 실리스 공녀였다.

“공자님은 저에 대해서 궁금한 거 없으세요?”

“음…….”

기습적인 질문에 순간 당황한 지크가 곰곰이 생각했다.

‘나한텐 저렇게 많이 질문했는데 정작 없다고 하면 실망하겠지?’

딱히 물어볼 만한 건 없었지만 그래도 찾아보니 한 가지가 있었다.

“헤밀톤 백작의 딸인 트레이시와는 친하다고 들었는데, 정말입니까?”

“예. 그렇긴 한데…….”

실리스는 오히려 놀란 토끼 눈으로 반문했다.

“트레이시를 어떻게 아세요?”

“얼마 전 헤밀톤 영주성에 머물고 있었거든요. 트레이시가 데포르테 가문에 갔다가 저희 첫째 형님의 초상화를 봤다고…….”

“아! 그건 제가 요청한 게 아니에요. 아버지가 멋대로 맥러플린의 일공자는 어떻냐며 초상화를 가져다주신 거예요. 절대로 관심 있어서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갑자기 급발진해서 말하는 게 살짝 귀엽게 보이긴 했지만, 어째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는 짐작할 수 없던 지크였다.

“이제 다 왔네요.”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덧 헤밀톤 령에 도착했다.

성문이 열리고 영주성까지 이르자 마동차에서 내렸다.

마침 마중 나와 있던 헤밀톤 영주가 활짝 웃으며 반긴다.

“어서 오십시오, 호세 데포르테 공작 각하.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터라 조금 어수선하지만, 우리 영지에 잘 오셨습니다.”

“허허, 우리 사이에 예를 차리기는. 그대도 잘 있었는가? 버크 헤밀톤 백작?”

“예. 실리스 영애는 여전히 아름다우시군요.”

“감사합니다, 백작님. 어?”

함께 마중 나와 있는 트레이시의 모습에 놀란 실리스가 싱긋 웃었다.

“밖에서 보는 건 오랜만이네? 이제 좀 괜찮아?”

“네, 많이 괜찮아졌어요.”

트레이시의 시선이 지크에게 향했다.

아는 사이라 눈을 마주친 것이었지만 호세 공작은 다르게 받아들였는지 백작에게 소개해 주겠다며 다가갔다.

“헤밀톤 백작. 내가 통신구로 말했었지.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고 말이야. 이 사람이 바로…….”

“이거 놀랍구려. 지크 경을 또 만나게 되다니.”

백작의 아는 척에, 호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둘이 아는 사이인가?”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어린 나이인데도 영지전을 승리로 이끈 용병이 있다고. 그 사람이 여기 있는 지크 경입니다.”

“지크 경이…… 용병?”

호세 공작이 정말이냐는 듯 지크를 바라봤다.

“자네, 용병으로 활동했었나?”

“예. 미리 말씀드리지 않아 죄송합니다.”

“영지전 직후 헤밀톤 백작이 통신구로 극찬하는 걸 들었네만 그게 자네였다니…….”

호세 공작은 좀 더 자세한 내막을 들어보고 싶었지만 헤밀톤 백작 또한 물어볼 것이 많았다.

“지크 경은 여기 어쩐 일로 오셨소? 데포르테 공작님과는 또 어떻게 아는 사이고?”

이에, 지크는 웃으며 답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자세한 이야긴 들어가서 하시죠.”

* * *

“허허, 혼자서 오러 기사 수백을 상대하다니. 확실히 지크 경이 아니었으면 영지전에서 패배할 뻔했군.”

헤밀톤 백작에게서 자세한 사정을 들은 호세 공작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지전의 전쟁 영웅이 여기 있는 지크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작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지크 경이 단순한 용병이 아니라 맥러플린 가문의 사공자였다니. 어쩐지 용병치고는 너무 실력이 뛰어나다 싶더니만…….”

그 역시 지크가 귀족인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그런데 지크 경, 우리 영지엔 무슨 일로 돌아온 거요?”

“영주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지크는 헤밀톤 영주에게 그동안 얻은 정보를 공유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영주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런, 그 무시무시한 환술사가 공작가에도 찾아갔다니…….”

“나도 놀랐네. 윌스턴 후작이 환술사의 모습으로 변할 때는 정말이지 꿈만 같았지.”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공작님?”

“나는 괜찮다만 딸이 환술에 걸렸었네. 다행히도 지크 경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큰일이 벌어질 뻔했어.”

호세가 그리 말하며 지크를 사윗감 보듯 인자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지크를 보는 영주 또한 별다를 것 없는 눈빛이었다.

“저희 역시 지크 경에게 큰 빚을 졌지요. 영지전에서 패배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게다가 첩자까지 찾아줬으니…….”

“첩자?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영주는 공작에게 그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영지전부터가 아즈라힐의 계획이었고 그가 심어놓은 첩자가 모든 걸 관망하고 있었다는 것까지.

이야기를 들은 호세 공작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게 헤밀톤 영지를 차지하기 위한 환술사의 큰 그림이었다는 건가?”

“예. 정확히는 영지에 있는 헤밀톤 광산을 노리고 있는 듯합니다.”

대답을 대신한 지크가 헤밀톤 백작을 바라봤다.

“영주님. 그 광산에는 별다른 재료가 없다고 하셨죠?”

“그렇소. 철광석, 구리 등이 나오는 평범한 광산일 뿐이오.”

“한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환술사가 광산을 노리는 이유가 뭔지 찾아내야 합니다.”

“알았소.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광산으로 가봅시다.”

지크의 눈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광산에 분명 아즈라힐이 원하는 재료가 있을 테니까.

‘뭔지 몰라도 내가 꼭 찾아주겠어.’

* * *

헤밀톤 광산은 오늘도 활기가 넘쳤다.

영지민들이 이곳에서 나오는 광물들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이었다.

따앙! 땅!

“이봐, 제이콥! 좀 쉬면서 하라고!”

“어어! 조금만 더 일하고!”

광부들은 오늘도 늦게까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일한 만큼 벌어가는 구조이기에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응? 저기 좀 봐. 누가 들어오는데?”

“작업반장님이랑 영주님 아니야?”

“트레이시 아가씨도 있어.”

광물을 캐던 광부들이 하나둘 움직임을 멈추며 들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광산을 관리하는 작업반장은 그런 인부들을 볼 때마다 손을 휘저었다.

“다들 하던 일 계속하세요. 그냥 구경하러 온 겁니다. 영주님께서도 방해하고 싶지 않으시다니까-”

광부들은 그럼에도 영주 일행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실리스에게 있었다.

실리스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볼 기회는 흔치 않았으니까.

남자들의 시선이 모였음에도, 실리스는 위축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시선들이야 외모가 아름다운 그녀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문제라면 실리스 곁에 있던 트레이시에게 있었지.

“아…… 아…….”

모여든 시선에 두려움을 느꼈는지 트레이시의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상을 감지한 실리스가 걱정스레 쳐다봤다.

“왜 그래, 트레이시. 괜찮아?”

“사, 사람들이…… 쳐다봐요.”

“아니야, 널 보는 게 아니야.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아…… 으…….”

실리스가 다정히 말했지만, 트레이시는 패닉에 빠져 있었다.

이미 자신의 말은 들리지 않은 모양.

“아버지! 영주님! 트레이시가 이상해요!”

“으음?”

공작과 영주가 고개를 돌리자 바들바들 떨고 있는 트레이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트레이시! 괜찮으냐?”

놀란 헤밀톤 백작이 트레이시를 붙잡았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트라우마가 또 도진 것 같습니다!”

“이런, 얼른 나가야겠군!”

“지크 경. 먼저 구경하고 있으시오!”

영주는 대답도 듣지 않고 트레이시를 데리고 빠르게 광산을 빠져나갔다.

걱정하던 데포르테 부녀까지 따라 나가자, 졸지에 작업반장과 둘이서만 남게 된 지크였다.

“걱정되시면 지크 경도 가보셔도 좋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좀 더 구경하겠습니다.”

“구경해 봤자 별거 없는데…….”

굳이 남아서 광산을 살펴보겠다는 지크를 작업반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에 아즈라힐이 원하는 재료가 있다고 했어. 아마 시중에선 쉽게 구할 수 없는 광물이겠지.’

지크는 분명 단서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작업반장과 함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가는 도중에도 작업반장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지크를 힐끔거렸다.

“보십시오. 보이는 게 전부 흔한 광물들이지 않습니까? 더 들어가 봐야 똑같은 풍경만 볼 뿐입니다.”

반장의 말대로였다.

꽤 깊숙이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도 특이한 광물은 찾을 수 없었다.

그 많던 광부도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광부들도 여기까진 들어오지 않습니다. 더 깊숙이 가봐야 돌아가는 길만 오래 걸리고 광물을 운반하는데도 시간이 몇 배나 걸리니까요. 그러니 이제 그만 둘러보고 돌아가심이…….”

“좀 더 보겠습니다.”

지크의 고집은 완강했다.

분명 광산에 뭔가 숨겨져 있기에 영지전을 일으키면서까지 차지하려 한 거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작업반장으로선 옹고집으로 보일 뿐이었는지 한숨을 쉰다.

“이 이상 가면 위험합니다. 더 파놓은 구멍도 없고요.”

“그러면 반장님 먼저 돌아가십시오. 저는 알아서 둘러본 뒤에 돌아가겠습니다.”

“정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원하는 대로 보시고 오십시오.”

반장은 그 말만 남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 없지. 아즈라힐이 찾고 싶었던 걸 찾아야 해.’

지크는 눈을 빛내며 더욱 깊숙한 굴속으로 들어갔다.

반장의 말대로 굴을 더 파놓지 않았는지 막다른 길이 나왔다.

‘하긴 이 이상 팔 이유가 없긴 하지.’

둘러보던 지크의 눈에도 별다른 게 없었다.

다시 돌아갈까 여기며 벽에 손을 짚던 그때.

[60m 지점에서 마력이 감지되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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