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91화
[환각 마법으로 트레이시 치료하기 완료!]
[돌발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5차 스킬 숙련도 6,000이 증가합니다.]
[8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34,080/100,000]
방으로 돌아온 지크는 퀘스트 보상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은 일도 하고, 보상도 받고, 아주 일석이조네.”
이제 남은 퀘스트는 하나뿐이다.
잭 라인하르트의 초대에 응해 철혈의 군주를 만나는 일 말이다.
‘광산에서 찾을 것도 찾았으니 이제 돌아갈 준비 좀 해볼까?’
날이 늦었으니 오늘은 쉬고 내일 아침에 떠나기로 했다.
영주에게도 그렇게 말해놨다.
이윽고 지크가 잠자리에 누우려던 그때.
‘응?’
품에 지니고 있던 통신구가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아즈라힐에게서 노획한 통신구였다.
‘혹시 몰라서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오다니.’
12인의 선구자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의 연락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 생각에 지크는 서둘러 모습을 변조시켰다.
아즈라힐의 목소리를 흉내 내기 위해.
톡톡톡-
통신구를 두들김으로써 연락을 받은 지크가 조용히 눈치를 봤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상 섣불리 입을 열면 의심받을 수 있다.
‘침묵이 길어지면 그것도 문제겠지만…….’
다행히 상대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아즈라힐 님? 저 에스카 로빈스입니다.
‘에스카 로빈스?’
존댓말을 쓰는 걸로 보아, 아즈라힐보다 계급이 낮은 사람이라는 건 알겠다.
한데 익숙한 기시감이 드는 건 왜일까?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아!’
기억났다.
아즈라힐이 에스카란 이름을 언급했었다.
지크는 우선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래. 무슨 일이지?”
-전에 만들라고 하셨던 물건이 완성되어서요.
‘물건?’
아즈라힐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광산을 차지하려고 했었다.
그 말은 재료를 이용해 뭔가를 만들려고 했다는 뜻.
‘이 녀석에게 물건을 만들라고 의뢰했던 건가?’
뭐가 됐든 에스카를 만나야 실마리가 풀릴 것 같다.
“생각보다 빨리 완성했군.”
-그럼요. 누구의 부탁인데 꾸물거릴 수야 없죠.
“지금 바로 찾으러 가겠다. 어디로 가면 되지?”
-제 실험실로 오시면 됩니다.
지크로선 실험실이 어디인지 알 턱이 없었다.
그렇기에 장소를 변경해야 했다.
“아니, 생각이 바뀌었다. 장소와 시간을 바꾸지. 엘브로드 령과 황천의 계곡 사이의 숲으로 물건을 가지고 와라. 동이 트기 전에는 오도록.”
지크는 그 말만 남긴 채 과감히 통신구를 끊었다.
놈이 뭐라고 반박할 수 없도록.
‘분명히 오겠지. 물건을 전해주기 위해서라도.’
아즈라힐이 뭘 만들라고 했는진 몰라도, 몇 가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에스카라는 녀석은 평범한 부하가 아니다.
개인 실험실이 있는 데다 물건을 만드는 기술까지 보유한 걸 보면.
게다가 12인의 선구자도 아니다.
듣기로는 브라함의 환술사가 선구자 중 말단이라 했으니.
‘말단이 부리는 부하라. 누군지 몰라도 한번 만나보자고.’
지크의 입매가 히죽 올라갔다.
* * *
통신을 끊은 에스카의 미간에 불만스러운 주름이 잡혔다.
“지가 실험실로 오면 될 걸 가지고, 귀찮게 오라 가라야?”
갑자기 장소를 변경한 아즈라힐이 못마땅했던 탓이다.
가뜩이나 요청한 물건을 만드느라 시간을 뺏겼으니 더욱 그랬다.
“젠장. 12인의 선구자라서 무시할 수도 없고…….”
장차 같은 식구가 될 수도 있는 터라 아즈라힐의 말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선구자 중 말단으로 입단하면 가장 많이 마주칠 사람이 바로 아즈라힐이었으니까.
물론 그러려면 발루두크가 시킨 암살 임무부터 완수해야 한다.
‘빨리 지크라는 놈을 죽여야 하는데 행적이 묘연하니 원…….’
텐진 지방에 있는 피터 맥러플린을 찾아갔을 거라는 단서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확실하진 않다.
‘부하의 연락이 오기 전에 연구나 계속해야겠어.’
마나 건을 축소하는 실험에 열중하던 그때.
똑똑-
노크와 함께 부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스카 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들어와.”
문을 열어주자 켈브리지 조합원 배지를 달고 있는 부하가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래. 내가 시킨 건 알아봤어?”
“예. 텐진 지방으로 가 피터 맥러플린의 거처를 추적했습니다.”
“결과는?”
“결론만 말하면 없었습니다. 피터는 물론 타깃도 찾을 수 없었고요.”
“X발.”
에스카가 짜증스레 뱉었지만 부하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래도 어디로 갔는지 단서는 찾았습니다.”
“그래?”
“마을 주민 중에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피터의 집에 타깃이 들어가는 걸 봤다더군요. 어떤 여자 또한.”
“여자?”
“16살 정도로 보이는 소녀였다고 합니다.”
지크와 함께 움직이는 소녀라?
‘내가 찾던 그 여자군.’
에스카의 미소가 짙어졌다.
“둘 다 내가 찾던 연놈들이다. 예상대로 피터를 보러 갔었나 보군.”
“예. 하지만 셋 다 어딘가로 떠났다고 합니다. 여태까지 마을로 돌아오진 않았고요.”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봤나?”
“다행히 족적이 남아 있어서 추적할 수 있었습니다. 인근의 용병단에서 발길이 끊기더군요.”
“용병단?”
“황금독수리 용병단입니다. 안내원을 협박하여 물어보니 한날한시에 세 사람이 마법사단에 입단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름은 지크, 피터, 메리입니다.”
에스카의 눈이 번뜩였다.
‘찾았군!’
드디어 놈들의 행적을 알아냈다.
그토록 궁금했던 소녀의 이름 또한.
“메리라면…… 일전에 검은 달의 수장이 납치했다던 그 브라이언트 가문의 여식인가?”
“그렇습니다. 초상화와 대조해서 전부 확인 작업을 끝냈습니다.”
“그년은 내가 알기로 궁정 마법사단의 첩자였을 텐데…… 이제 보니 우릴 배신하고 지크에게 붙은 게로군.”
“예. 그리고 세 사람이 최근 영지전까지 참여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영지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에스카의 머릿속에 아즈라힐의 푸념이 스쳐 지나갔다.
영지전을 패배해서 계획이 틀어졌다는 푸념이.
“설마 헤밀톤과 아고스의 영지전을 말하는 건가?”
“맞습니다. 헤밀톤 영지가 불리한 형국에도 승리했는데, 여기서 지크라는 타깃이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그가 마검사라는 소문도 돌고 있고요.”
“마검사라니. 어이가 없군.”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9서클인 에스카조차 헛소리로 치부할 정도로.
“지금 타깃의 위치는?”
“헤밀톤 영지를 떠났다고만 들었을 뿐, 이후의 행적은 모르겠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이 정도면 꽤 큰 진전이었다.
“수고했다. 이만 물러가라.”
“예. 또 시킬 일 있으면 불러주십시오.”
방문이 닫히고 잠시 후, 에스카가 중얼거렸다.
“거의 다 잡았어. 선구자의 자리가 눈앞에 있어.”
타깃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전부 파악했다.
그를 따르는 연놈들의 정보 또한.
“지크, 피터, 메리. 용병단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을 죽이는 건 시간문제였다.
용병단에 계속 머무르는 이상.
에스카의 입술이 비죽 올라갔다.
“후후, 이따가 아즈라힐 님을 만나면 영지전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물어봐야겠군.”
* * *
동 트기 전의 새벽.
에스카와 만나기로 한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크는 아직도 헤밀톤 성에 머물고 있었다.
그가 여유를 부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텔레포트 한 번이면 이동할 수 있는데 뭐하러 거기까지 걸어가?’
마법 복제로 습득한 7서클 마법인 텔레포트.
좌표만 알면 아무리 먼 거리도 단숨에 좁혀주는 그 위대한 마법은 세상 모든 마법사를 게으름뱅이로 만들었다.
그건 지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텔레포트를 사용했던 장소라 그런지 좌표는 지정되어 있어. 약속 장소를 거기로 잡은 것도 그래서고.’
자신은 이렇게 여유 부리다가 텔레포트로 한 번에 이동하면 그만이다.
애초에 상급자가 먼저 나가서 기다리는 것도 좋은 그림이 아니었으니.
‘슬슬 이동할 시간이네.’
약속 시간이 다가오는 걸 확인한 지크가 변신 준비를 했다.
딸칵-
아즈라힐의 복장을 떠올리며 벨트의 버클을 누르자.
스르르-
환영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복장이 바뀐다.
‘아니, 환영이 아니야. 현자의 눈으로도 간파당하지 않는 걸 보면.’
이름은 환영의 벨트였지만 [환복] 기능은 거짓으로 옷을 입혀주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새로운 옷을 구현해낸 뒤 실제로 옷을 입혀준다.
현자의 눈이 있었기에 거짓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이러면 에스카를 만나더라도 들킬 염려는 없어. 환각이 아닌 실재니까.’
이후 지크의 얼굴이 꿀렁거리더니 아즈라힐의 모습으로 변했다.
변조 스킬로 얼굴과 목소리를 위장한 것이다.
‘변조 스킬이 들키지 않는다는 건 이미 파악했으니 걱정 말고 가볼까?’
아즈라힐의 모습을 완벽히 흉내 낸 지크가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 * *
파아앗-!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두컴컴한 숲으로 장소가 바뀌었다.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었는지 한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녀석이 에스카 로빈스?’
나무에 기대어 쉬고 있던 남자가 이쪽으로 걸어온다.
‘가슴에 마나 고리가 아홉 개라…… 같은 12인의 선구자인가?’
9서클 마법사임을 단번에 파악했지만 그리 긴장하진 않았다.
상대가 몇 서클이든 간에 자신에게 마법은 통하지 않으니까.
위장도 완벽했고.
지크가 뻔뻔한 얼굴을 가장하며 물었다.
“물건은 가지고 왔나?”
“그럼요. 여깄습니다.”
에스카는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지크에게 물건을 건네줬다.
예상대로 지크의 변장을 눈치 못 챈 모양.
내심 당황한 건 오히려 지크였다.
‘이게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