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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92화 (92/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92화

에스카가 건넨 물건은 버튼이 달린 조그마한 쇳덩이였다.

‘아즈라힐이 이걸 만들어놓으라 지시했다고?’

여기저기 살펴봤지만, 당최 무슨 장치인지 알 수가 없다.

현자의 눈도 그런 건 파악하지 못하는 듯 아무런 메시지도 뜨지 않았고.

‘이게 뭔지는 버튼을 눌러봐야 알겠는데…….’

지크는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에스카의 눈치만 살폈다.

먼저 물건에 관해 설명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지크의 바람을 에스카는 듣지 못한 듯 딴소리나 해댄다.

“왜 그러십니까? 물건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주셨던 설계도대로 만들었는데…….”

“생각한 것보다 크기가 크군.”

“그것보다 작게 만드는 건 어렵습니다. 저니까 그 정도로 만들었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제대로 만들지도 못했습니다.”

“그래, 잘했군.”

지크의 칭찬에 에스카가 살짝 인상을 구겼다.

뭘 잘못 먹었냐는 듯한 표정.

그 반응에 지크는 아즈라힐이 평소에 에스카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평소에 칭찬에 인색하고 좀 갈궜던 모양이군.’

하긴 아즈라힐이라면 그런 성격일 것 같았다.

‘피드백은 즉시 반영해야지.’

지크가 빠르게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왜? 내 농담이 재미없었나?”

“농담이었어요?”

“그럼 내가 칭찬한 줄 알았느냐? 이렇게 크게 만들어놓고? 이래 가지곤 한 손으로 버튼 누르지도 못하겠어.”

“웬일로 칭찬한다 싶더니만…… 좋다 말았네요.”

“됐고, 작동은 잘 되겠지?”

“물론입니다. 누가 만들었는데요. 다만 전에도 말했듯 재료가 필요합니다.”

“이거 말인가?”

지크는 대놓고 아공간을 열어 손을 집어넣었다.

아즈라힐이 아공간을 썼다는 걸 알기에 보인 행동이었다.

“어?”

허공에서 푸른색의 광물을 꺼내자, 에스카의 눈이 동그래졌다.

“기어코 아크니움을 구하셨군요?”

‘아크니움?’

비로소 광물의 이름을 알게 된 지크는 아크니움의 용도까지도 떠올렸다.

‘아크니움이라면…… 구속구나 구속 철창, 족쇄 등을 만들 때 쓰이는 광물이잖아?’

마나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마법사를 제압하는 도구를 만들 때 꼭 필요한 재료라고 알고 있다.

금보다 수백 배의 값어치를 한다는 것 또한.

‘이 귀한 광물이 헤밀톤 광산에 묻혀 있었다니.’

뭐가 됐든, 놈들은 광산에 아크니움이 묻혀 있는 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영지전을 일으켜 광산의 소유권을 가져가려고 했던 거고.

‘아크니움을 재료로 한 물건이라…….’

지크는 손에 든 장치의 용도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이걸로 당장 물건을 완성할 수 있나?”

“물론이죠. 재료만 넣으면 바로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해봐.”

물건을 받은 에스카는 뒷부분을 열며 아크니움을 끼워 넣기 시작했다.

탁-!

“자, 됐습니다. 이제 버튼만 누르면 작동됩니다.”

장치를 다시 받아든 지크가 주저하지 않고 버튼을 눌렀다.

지이이이잉-!

“커억!”

장치에서 순간 알 수 없는 파장이 나왔다.

무릎 꿇은 에스카가 답답한 듯 가슴을 부여잡는다.

지크가 다시 버튼을 누르자.

즈으으-!

파장이 사라졌다.

‘호오, 이런 물건이었어?’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현자의 눈을 가진 지크에겐 보였다.

장치에서 나온 파장이 반경 5m까지 넓게 퍼지는 것을.

그리고 그 파장이 에스카의 서클을 잠시나마 뒤흔들었음을.

‘한순간에 상대의 마력에 간섭해 서클을 뒤흔드는 장치였군. 놀라워.’

9서클 마법사도 예외는 아닌지 저렇게 타격을 줄 수 있었다.

내심 감탄하는 지크였지만 에스카로선 오만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난데없이 봉변을 당했으니까.

“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그걸 그렇게 사용해 버리면……!”

“왜? 잘 작동되나 테스트해 본 건데.”

뻔뻔한 아즈라힐의 인성에, 에스카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말자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미안하군. 괜찮나?”

“마음에도 없는 걱정은 하지도 마십쇼! 뭐, 일시적으로 흔드는 거라 괜찮긴 합니다.”

에스카는 정말로 괜찮다는 듯 몸을 털고 일어섰다.

흔들리던 서클이 어느덧 안정된 게 지크의 눈에도 보였다.

“그나저나 이제 어떡합니까? 또 광물을 구하셔야 할 텐데.”

“왜지?”

“왜긴요. 지금 스위치를 누른 탓에 아크니움이 다 타버렸지 않습니까?”

에스카의 말마따나 물건의 뒷면을 열어보니 푸른색이던 아크니움이 어느새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일회용이었던 모양.

“이제 못쓰게 됐으니 새로운 아크니움을 구하셔야 할 겁니다.”

“그거라면 걱정할 것 없다.”

지크가 아공간에서 또 하나의 아크니움을 꺼냈다.

“재료라면 많이 있으니.”

“어? 또 있으셨습니까?”

“그래. 헤밀톤 광산에 무수히 묻혀 있더군.”

“정말로 광산에 광물이 있었군요! 이거 엄청난 발견인데요? 아즈라힐 님의 말대로 무수하다면 발루두크 님의 물건을 완성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듯싶습니다!”

‘발루두크도 녀석에게 물건을 의뢰했나? 무슨 물건이지?’

물건에 관해 묻고 싶어 입이 간지러웠지만 마땅한 핑계가 없어 입을 닫은 지크였다.

다만, 말하는 걸 보면 물건의 재료로 대량의 아크니움이 들어간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뭐든 간에 발루두크의 뜻대로 되게 둘 순 없지.’

그런 생각을 하며 침묵을 지키는 사이.

에스카는 왠지 게슴츠레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기쁘지 않으십니까?”

“내가 왜 기뻐해야 하지?”

“그야 발루두크 님의 계획에 진전이 생겼으니 기쁜 게 당연…… 설마 발루두크 님에게 밝히지 않을 셈입니까? 광산에서 아크니움을 찾았다고?”

“…….”

지크가 계속해서 입을 닫자 멋대로 오해하기 시작한 에스카였다.

“정말이군요……. 그래서 저한테 설계도를 가져와서 은밀히 이런 장치를 만들라고……. 설마 선구자들에게 대항하려는 겁니까?”

“글쎄.”

무심한 척 말했지만, 지크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녀석의 오해 덕분에 어느 정도 상황은 알겠군. 아즈라힐의 의도 또한.’

12인의 선구자 중 말단이었던 녀석은 선구자에 대항할 힘을 갖추기 위해 에스카에게 지시한 것이었다.

일시적으로라도 마력을 뒤흔드는 장치를 만들도록.

‘내가 잘못 짚었더라도 상관없어. 지금으로선 에스카가 오해하도록 두는 게 좋아. 그래야 다른 선구자와의 연결고리를 더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생각을 마친 지크가 오해에 힘을 실었다.

“내가 뭘 꾸미는지는 다른 선구자에겐 말하지 마라. 아크니움을 찾았다는 것도 너만 알고 있고.”

“그야 당연하죠. 제가 누구 편인지 잊으셨습니까?”

“누구 편인데?”

“아즈라힐 님 편이죠!”

[현재 바라보는 대상이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메시지를 본 지크가 피식 웃었다.

비웃음을 가장한 미소였다.

“직접 그 말을 들으니 믿음직스럽군. 지금처럼 날 믿고 따라라. 기회가 되면 내가 책임지고 선구자 자리에 올려주도록 하지.”

“저,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연신 인사하는 에스카는 어쩐지 들떠 있는 기색이었다.

‘뭐야? 혹시 몰라 찔러본 건데 진짜로 선구자의 자리를 원하고 있었나?’

9서클인데도 불구하고 선구자의 심부름이나 하고 있길래 찔러본 건데,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에스카는 선구자의 자리를 원하고 있다.

“그나저나 아즈라힐 님. 궁금한 게 있는데 말입니다.”

“뭐지?”

“아고스 영지가 헤밀톤 영지에게 어떻게 패배했는지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크는 가만히 에스카를 쳐다보다가 한마디를 뱉었다.

“이유는?”

“아, 제가 노리는 타깃 말입니다. 지크 맥러플린이요. 그 녀석이 영지전에 참여했다는 소문을 들어서요.”

“영지전에?”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지크였지만 속으론 그보다 더 놀라고 있었다.

‘갑자기 내 이름이 왜 나오지? 타깃? 에스카가 날 노리고 있다고?’

뒤늦게 아즈라힐이 스쳐 지나가듯 중얼거렸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도 지크를 보고선 에스카의 타깃이네 어쩌네 했었다.

‘설마 날 암살하라고 위에서 지시가 내려온 건가?’

지크의 예상은 정확했다.

하지만 아즈라힐로 변장한 이상 티를 내선 안 된다.

“네가 암살해야 하는 타깃이 영지전에 참여했다고?”

“예. 피터와 메리라는 동료들과 같이 황금독수리 용병단에 입단했는데, 헤밀톤 편에 서서 싸웠다고 합니다. 그때 지크라는 놈이 엄청난 활약을 했다고…… 부하에게 전달 못 받으셨습니까?”

지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야긴 듣지 못했다.”

“그럼 지크가 마검사라는 소문도 듣지 못하셨겠군요?”

‘그런 것까지 알고 있었어?’

생각보다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자 놀라는 지크였다.

“뭔가 타깃에 대한 정보 좀 얻으려고 했는데…… 알겠습니다.”

“그 표정은 뭐지? 네가 파악해야 할 정보를 내가 모르는 게 잘못이라도 되나?”

“아, 아닙니다. 언짢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꼬리를 마는 에스카를 보며 표정을 구기는 지크였지만 속으론 기뻐하고 있었다.

에스카와의 대화에서 꽤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위에서 날 암살하라고 이놈을 보냈단 말이지?’

당장이라도 에스카를 죽일 수 있었지만, 뒤로 미뤘다.

선구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에스카는 살려두는 게 이득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가까이에 두고 이용해야 한다.

그건 시스템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당장에 에스카를 처리하라는 퀘스트가 뜨지 않는 걸 보면.

‘에스카를 이용해서 다른 선구자들까지 찾아내는 거야.’

결심을 굳힌 지크가 숲 너머를 바라봤다.

어느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만 헤어지지. 물건은 잘 받아 간다.”

“아, 예.”

“통신구 잘 가지고 있어. 다음에 또 부탁할 일 있으면 연락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떨떠름한 기색의 에스카를 뒤로하고 지크가 몸을 돌렸다.

그 탓에 에스카는 보지 못했다.

텔레포트를 쓰기 직전, 한껏 올라가 있는 지크의 입꼬리를.

* * *

12인의 선구자 중 서열 2위, 발루두크 라흐베즈는 뜬금없이 연락을 받았다.

“이른 시각부터 무슨 일이냐? 에스카.”

-발루두크 님. 진지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지?”

통신구 속 음성이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이윽고 뭔가를 결심한 듯, 진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즈라힐 존스턴이…… 반역을 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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