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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93화 (93/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93화

“반역?”

발루두크의 음색에 불편함이 끼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12인의 선구자가 반역을 꾀한다?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그 말이 사실이냐?”

-그럼요. 제가 뭐하러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근거를 말해 보거라.”

발루두크는 일단 침착하게 이야기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철두철미한 성격 탓도 있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구자 자리를 탐내는 에스카 녀석이 헛소리할 리는 없으니.’

기회를 얻은 에스카는 아즈라힐이 자신에게 무엇을 만들라고 시켰는지.

그 이후에 만나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세세히 보고했다.

사실 보고라기보단 고자질에 가까웠지만.

“그러니까, 아즈라힐이 선구자들에게 대항할 장치를 설계했고, 그걸 순순히 만들어줬다? 내게 아무런 보고도 없이?”

-아이고, 오해입니다. 오해!

목소리에 불편함이 끼어 있음을 파악한 에스카가 서둘러 변명했다.

-더 확실한 정보를 수집하려고 일부러 보고를 늦췄던 겁니다! 아즈라힐의 요구를 들어주면서요. 발루두크 님을 배신할 생각은 꿈에서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장비는 잘 작동됐느냐?”

-예. 아즈라힐이 저한테 직접 사용했는데 5초 정도는 꼼짝도 못 하겠더라고요.

“허, 기가 막힌 물건을 만들어냈군.”

에스카는 순간 칭찬인지 비꼼인지 헷갈렸다.

“아즈라힐이 뒤에서 일을 꾸미고 있단 말이지…… 제깟 놈이 움직여봤자지, 끌끌. 알았다. 회의를 거쳐서 놈의 처분을 정하겠다. 그동안 너는 티 내지 말고 아즈라힐과 계속해서 연락하도록. 녀석의 편인 것처럼 굴라는 뜻이다. 알겠느냐?”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청부한 암살 건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아, 그, 그게 최대한 빨리 진행 중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한 달이 넘었는데 더 기다리라고?”

발루두크는 언짢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만 접어라. 암살은 다른 녀석에게 시킬 테니.”

-예에에? 아, 안 됩니다.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제가 꼭 마무리하겠습니다!

행여나 선구자에 올려준다는 약속이 취소될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에스카였다.

“걱정 마라. 아즈라힐의 배신이 확인되면 선구자 자리를 넘겨줄 테니. 그때까진 첩자 노릇을 잘하고 있으란 이야기다. 알겠느냐?”

-아! 그런 거라면 걱정 마십쇼!

첩자 노릇만 하면 선구자 자리를 준다니.

에스카의 목소리에 활기가 묻어나왔다.

오히려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지크를 암살하는 것보다 더 쉬운 임무였다.

이윽고 통신구의 빛이 사그라들자, 발루두크가 생각에 잠겼다.

‘아즈라힐 그놈이 그런 위험한 물건을 설계했다?’

반역의 소지가 다분했다.

정점에 오른 9서클의 마법사가 뭐하러 그런 물건을 만들었겠는가?

에스카의 주장대로 선구자에게 사용할 용도로 만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아즈라힐은 12인의 선구자 중 서열 12위. 놈의 야망과 열등감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은 있지.’

또한 헤밀톤 광산에서 아크니움이 나왔음에도 자신에게 이렇다 할 보고는 하지 않았다.

그 말은 혼자서 아크니움을 독차지하려는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는바.

이대로 좌시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안 되겠군. 얼른 회의를 열어야겠어.”

발루두크가 연락을 돌리기 위해 또 다른 통신구를 집어 들었다.

* * *

같은 시각.

통신을 마친 에스카는 입을 벌리며 환희에 젖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크흐흐! 뭐? 아즈라힐의 반역이 증명되면 곧바로 선구자 자리를 주겠다고?’

솔직히 말해 타깃을 암살하는 것보다 더 쉬운 임무.

에스카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역시 아즈라힐의 뒤통수를 치고 발루두크 님에게 연락하길 잘했어!’

사실 에스카는 처음부터 뒤통수를 칠 생각이 없었다.

선구자가 되면 가장 많이 마주칠 사람이 바로 말단인 아즈라힐이다.

오히려 아즈라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가 만들라던 장치도 선구자 몰래 만들어줬다.

그러나 도를 넘은 녀석의 갑질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정확히는 손익 계산을 하며 상황을 저울질한 거지만.

‘아즈라힐의 반역을 발루두크에게 밀고해서 처리한 뒤, 그 공을 차지해 선구자에 오르는 게 더 나은 그림 아닐까?’

그러한 자신의 판단은 옳았다.

이처럼 선구자의 자리를 약속받을 수 있었으니.

‘타깃의 암살을 누가 이어받을지는 몰라도 나중에 정보를 원하면 빠짐없이 넘겨줘야겠어.’

씨익 웃은 에스카가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에 몰두했다.

올라간 그의 입꼬리는 한동안 내려올 생각을 안 했다.

* * *

아즈라힐 신분으로 챙길 것을 다 챙긴 지크는 영주성으로 돌아와 백작과 이야기를 나눴다.

“지크 경. 또 이렇게 헤어지는구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죠.”

“언젠가 또 볼 기회가 있겠소?”

“그럼요. 다음에 꼭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그 말 잊지 않고 있겠소.”

헤밀톤 백작이 활짝 미소 지었다.

그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빈말이 아니었다.

‘언제 한번 정말로 찾아올 겁니다. 헤밀톤 광산에 숨겨져 있는 보물이 많거든요.’

아크니움이 묻혀 있는 걸 아는 이상, 지크는 헤밀톤 백작과의 관계를 이대로 끊어버릴 생각이 없었다.

“지크 경, 다음에 또 놀러 와요.”

“예. 트레이시 아가씨도 건강하시길.”

지크가 손을 흔들고 마동차에 타자, 데포르테 부녀도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럼 잘 계시오, 헤밀톤 영주.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고!”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살펴 가십시오, 공작 각하.”

“트레이시!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 안녕!”

“살펴 가세요, 실리스 공녀님!”

잠시 후 마동차에 탄 부녀가 헤밀톤 영지를 떠났다.

* * *

부녀가 향한 곳은 본가인 데포르테 공작가.

지크를 공작가에 있는 잭 라인하르트에게 데려다주기 위함이었다.

“이제야 오는군.”

마동차에서 내리는 지크의 모습을 잭이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 유명한 철혈의 군주의 아들인 자신을 목 놓아 기다리게 만들다니!

심기가 불편했지만, 가문으로 데려가기 위해선 참을 수밖에 없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잭 공자.”

“좀 오래 걸리긴 했군.”

“힘드셨다면 먼저 가셔도 됐는데 말입니다.”

“아니오. 가문에 초청해놓고 먼저 갈 수야 있겠는가? 하하!”

호탕하게 웃는 잭이었지만 지크는 알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꼭 데려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지금껏 기다린 걸 보면 어지간히도 데려가고 싶나 보네.’

무슨 의도인지는 지크도 모른다.

그저 좋지 않은 의도라는 것만 알 뿐.

‘뭘 꾸미는지는 몰라도 퀘스트 때문에라도 넘어가 줘야겠지.’

지크는 싱긋 웃으며 잭에게 말했다.

“그럼 바로 가실까요?”

* * *

데칸 왕국 남부 국경에는 ‘텔레포트 게이트’가 있다.

동맹국인 바이소 왕국까지 단숨에 이동하게 해주는 유용한 장치다.

“신분 확인하겠습니다.”

“이분은 잭 라인하르트 일공자이시오. 손님과 함께 본가로 돌아갈 예정이오.”

“이, 이분이……?!”

호위병의 소개에 국경수비대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러 유저치고 5군주로 유명한 라인하르트 가문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에.

반응을 보던 잭이 피식 웃었다.

‘저게 일반적인 반응이란 말이지. 그런데…….’

옆에 있는 지크에게로 시선을 돌리니 무심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 보인다.

‘이 녀석은 왜 나에 대해서 몰랐냔 말이다!’

여기까지 이동하면서 잭은 지크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그 유명한 철혈의 군주인 줄 몰랐다는 말을 듣고 작은 오해가 풀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앙금마저 풀린 것은 아니지.’

지금 생각해 봐도 어처구니가 없다.

데포르테 가문도 아는 라인하르트 가문의 위엄을 이 녀석은 몰랐다니.

그때 수비대원 한 명이 물었다.

“손님이라는 분은 누구십니까?”

“맥러플린의 사공자 지크 맥러플린입니다.”

“아……!”

지크의 소개에 국경수비대가 또다시 반응했다.

맥러플린 가문도 데칸에선 꽤 유명한 축에 속한다.

“확인 끝났습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검문을 무난하게 통과한 잭 일행은 곧이어 거대한 거울 같은 장치를 마주하게 됐다.

대규모로 공간 이동을 시켜준다는 텔레포트 게이트였다.

“가시죠.”

호위병을 앞세운 잭 일행이 물결처럼 일렁거리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지크도 그를 따라 주저 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 * *

후웅! 훙!

대검이 하늘을 가른다.

거창한 표현이었지만 남자의 검격엔 그만한 무게감이 있었다.

허공을 찢는 게 용맹한 사자와도 같았다.

“후우.”

오늘도 어김없이 개인 연무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인기척이 들린 탓이다.

“가주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오늘 올 손님이 둘인데 누구를 말하는 거지?”

“일공자님이 초대하신 손님입니다.”

시종의 말에 남자의 눈빛이 한차례 빛났다.

‘드디어 왔군. 데칸의 마검사.’

마검사에 대한 이야기는 잭에게 미리 연락받아서 알고 있었다.

대련에서 어처구니없이 패배했다는 것 또한.

‘오러 마스터 하급인 내 아들을 단 일 합 만에 이기다니.’

상대가 중급이라는 이야긴 들었지만 그렇다 해도 일 합에 이기긴 쉽지 않다.

오러 수준에 맞지 않는 상당한 실력자란 소리.

‘흥미롭군.’

게다가 마검사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구미가 당겼다.

검과 마법을 동시에 쓸 수 있다니.

직접 보기 전엔 믿기 어려웠기에 가문의 방문을 허락했다.

펄럭-

“가지.”

옷을 걸친 철혈의 군주가 기대어린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여기가 바이소에서 가장 유명한 검술 명가인 라인하르트 가문이오.”

잭의 소개에도 지크의 반응은 덤덤했다.

그저 고개만 주억거리며 관광지에 온 사람처럼 둘러볼 뿐이다.

‘우리 가문보다 좀 더 크네.’

다섯 왕국 중 5위에 속하는 게 데칸 왕국이라면, 바이소는 4위에 속했다.

비교해 봤자 도토리 키재기라는 이야기.

가문의 장자로서 잭의 자부심은 높아 보였지만 지크로선 별 감흥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지크의 관심사는 오로지 퀘스트였으니까.

‘오망성은 어디에 있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와중, 사냥꾼의 감각 스킬 범위에 누군가가 걸렸다.

상당한 기세를 내뿜는 자가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디 계신 거야? 지크 공자. 조금만 기다리시오. 내 아버지를 불러올 테니.”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무슨 말이오?”

“저기.”

지크가 가리키는 곳으로 잭이 시선을 돌렸다.

아무도 없어서 눈살을 찌푸리는 찰나, 누군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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