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94화
“아버지!”
“아들아.”
웅장한 체구의 남자가 잭을 향해 웃으며 걸어왔다.
인자한 미소였으나 눈빛만큼은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이 자구나. 대륙에서 다섯 명만 있다는 그랜드 오러 마스터가.’
오망성, 5군주, 철혈의 군주 등.
수많은 칭호로 불리는 존재가 바로 눈앞에 있다.
개인적으로 카리스마에선 12인의 선구자보다 앞선다고 생각하는 지크였다.
‘이거 좀 긴장되는걸?’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마법사가 아닌 오러 유저의 정점.
마법사에게만 강한 힘을 발휘하는 지크로선 먹이사슬의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철혈의 군주 만나기 완료!]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새로운 기본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상대가 오망성이라는 걸 확인해 주듯, 퀘스트가 완료됐다.
보상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틈은 없었다.
철혈의 군주의 눈빛이 처음부터 줄곧 이쪽을 향해 있었으니.
“이야기는 익히 들었네. 자네가 내 아들을 이긴 마검사라지?”
“데칸 왕국의 지크 맥러플린이라고 합니…….”
“알아, 알아. 소개는 됐네. 내가 알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나는 자네의 실력이 알고 싶다네. 그래서 말인데.”
철혈의 군주가 씩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나와 같이 대련해 보지 않겠나?”
어린아이 같은 미소였다.
대련이라는 말에 속으로 쾌재를 부른 건 일공자인 잭이었다.
‘그렇지! 아버지라면 저 말 할 줄 알았어!’
강한 자와 검을 맞대고 싶어 하는 건 검의 길을 걷는 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습성.
그건 자신의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분명 마검사를 가문으로 데려가면 아버지께서 궁금한 나머지 대련 요청을 하실 거라고.
그렇게 예상했고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다음이야 불 보듯 뻔하지.’
지크의 패배.
아무리 잘나도 그랜드 오러 마스터인 아버지를 대련으로 꺾을 수 있을 리는 없으니까.
‘흐흐, 지크 맥러플린. 넌 이제 죽었어.’
잭이 지크를 가문으로 초청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자신을 이긴 지크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
‘날 이겼다고 우쭐했겠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세상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걸 한번 느껴보라고.’
물론 지크가 대련을 거절하면 다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잭은 안다.
검에 있어서 아버지가 얼마나 집요한지를.
‘거절한다 해도 피할 수 없을 거야. 아버지는 한번 흥미가 꽂힌 상대는 놓아주는 법이 없었으니까. 큭큭.’
속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 잭과 달리, 지크는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그랜드 오러 마스터가…… 나한테 대련 요청을 한다고?’
그저 오망성을 만나서 스킬을 얻을 요량으로 초대에 응했을 뿐인데 난데없이 대련 요청이라니.
‘진심인가?’
어떻게 보면 실례였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 라인하르트 가주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걸 받아들여야 해, 말아야 해?’
득 될 것 없는 대련.
당연히 거절하는 게 옳았지만, 시스템이 자신을 오망성과 주선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랬기에 잠시 시스템의 판단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퀘스트가 뜨지 않으면 거절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스템의 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철혈의 군주의 눈엔 고민하는 걸로 보였나 보다.
참지 못하고 말을 걸어오는 걸 보면.
“갑작스러운 제안이 고민스럽나 보군. 이거 미안하네. 내 소개도 하지 않고 대뜸 대련 요청부터 하다니. 크흠.”
철혈의 군주가 목을 다듬더니 별안간 손을 내밀었다.
“바이소 왕국의 크리오스 라인하르트라고 하네. 오망성, 5군주, 또는 철혈의 군주로 더 잘 알려졌지.”
얼결에 손을 맞잡은 지크를 향해 크리오스가 말을 이었다.
“그랜드 오러 마스터로 알려진 내가 갑자기 대련을 요청하니 당황스럽겠지만, 그래도 한 번 보여줬으면 하네. 내 아들을 일 합에 이긴 자의 검술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거든. 그리고 마검사의 실력 또한.”
“…….”
“물론 자네에게 극히 불리한 대련이라는 건 알고 있네. 그러니 조건을 걸지 않을 수 없지.”
“조건이라 하면……?”
“자네의 검으로 내 몸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대련에서 이긴 거로 쳐주지. 어떤가? 이 정도면 할 만하지 않은가?”
‘털끝이라도 건들면 내 승리라고?’
그 말을 듣자 지크는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12인의 선구자가 마법사들 사이에서 선망적인 존재이듯, 그랜드 오러 마스터도 오러 유저 사이에서 최강으로 일컬어지는 존재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털끝이라니.
‘설마 내가 그 정도도 못 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그랜드 오러 마스터와 오러 마스터 중급의 격차가 그만큼 극심하다는 이야기?’
뭐가 됐든 지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제안이 아닐 수가 없다.
그건 시스템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곧바로 답을 내리는 걸 보면.
【메인 퀘스트 : 철혈의 군주와의 대련에서 승리하기】
└철혈의 군주인 크리오스 라인하르트가 털끝이라도 건들면 이기게 해주겠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조건을 수락하고 대련에서 승리하십시오.
<조건>
└철혈의 군주와의 대련에서 승리하기
<보상>
└스킬 ‘미래 예지’ 획득
‘시스템은 내가 대련을 수락하길 원하는군.’
처음엔 질 것이 분명한 대련이었지만, 철혈의 군주가 먼저 제안했다.
털끝만 건드려도 이긴 거로 쳐주겠다고.
그러자 시스템이 이때라는 듯 퀘스트를 보내왔다.
대련을 수락하라고.
‘시스템도 나처럼 기다린 건가? 오망성이 먼저 제안하기를?’
이렇게 된 이상 수락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보상에 눈길이 간다.
‘미래 예지라니. 이건 꼭 얻어야겠어.’
퀘스트를 수락한 지크가 대련에 응하려는 그때.
“…….”
대답을 기다리는 철혈의 군주를 보니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원한다면 자신도 조건을 걸어 보자고.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하하하핫!”
예상치 못한 말에 크리오스가 대소를 터트렸다.
“그래! 나도 조건을 걸었으니 자네도 걸어야지. 한번 말해 보게. 조건이 뭔가?”
“제가 대련에서 이기면 소원 하나 들어주십시오.”
“소원?”
그 말에 지켜보던 잭이 지크를 미친놈처럼 쳐다봤다.
당사자인 크리오스는 흥미로운 눈초리였지만.
“그거 재미있겠군. 날 이기면 소원을 들어주지.”
“좋습니다. 그러면 대련에 응하겠습니다.”
“하핫! 잘 생각했네. 보기보다 승부욕이 있는 편이군. 그럼 연무장으로 가볼까?”
크리오스가 몸을 돌리자 그 뒤를 지크가 따라나섰다.
잭은 그런 지크의 모습을 황당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대련에 수락하는 걸로 모자라 조건까지 걸 줄은 몰랐기에.
“이보시오, 지크 공자.”
“왜 그러십니까?”
“설마 이길 가능성이 보여서 그런 조건을 건 것은 아니겠지?”
“털끝을 건드는 것 정도라면 쉽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잭은 대놓고 비웃음을 지었다.
“지크 공자가 뭘 모르는군. 그랜드 오러 마스터의 털끝을 건든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 줄 아나?”
“아닙니까?”
“후우, 뭐 직접 겪어보면 알겠지. 건투를 비오.”
피식거리는 비웃음을 뒤로한 채, 지크는 철혈의 군주를 따라 연무장으로 향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이니까.
* * *
판게아 대륙에는 오망성이라 불리는 다섯의 그랜드 오러 마스터가 있었다.
그중 두 명이 바이소 왕국에 있었는데, 한 명은 철혈의 군주라 불리는 크리오스 라인하르트였고, 다른 한 명은…….
저벅저벅-
철혈의 군주의 라이벌이자, 어둠의 군주라 불리는 말리고르 데스본이었다.
“이거 손님이 왔는데 마중 나오지도 않고. 아무리 라이벌이라지만 이렇게 푸대접해서야 되겠는가?”
마동차에서 내려 가문의 문 앞까지 걸어간 말리고르였지만, 그를 맞이해 주는 이는 가문의 경비병이 전부였다.
“이봐. 얼른 라인하르트 녀석을 부르게. 손님이 오면 재깍재깍 뛰어오라고도 전하고.”
“저기… 데스본 공작님. 가주님이 지금 일이 있어 당장 오기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
“뭐라?”
말리고르의 눈빛에 칠흑 같은 어둠이 깃들었다.
원체 음침하게 생긴 데다 오러의 기운이 더해져서 드는 착각이었지만, 직접 겪는 경비병으로선 공포가 아닐 수 없었다.
“무슨 중한 일을 하길래 초대한 손님을 맞이하지 못한단 말이냐?”
“그, 그게 지금 다른 손님과 연무장에서 대련하고 계셔서…….”
“대련?”
말리고르 또한 대련이라면 환장하는 검사.
당연히 상대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철혈의 군주와 대련하는 상대라. 좋은 구경거리를 놓칠 수야 없지.”
중얼거린 말리고르가 어딘가로 성큼성큼 걸었다.
경비병의 안내 따윈 필요 없었다.
몇 번 와본 적이 있던 터라 연무장의 위치는 꿰고 있었으니까.
* * *
“자네는 진검을 쓰게. 난 이걸로 하겠네.”
크리오스는 연무장에 마련된 목검 중 하나를 골라 들었다.
말이 목검이지 길이도 너비도 무지막지한 대검이었다.
“내 주 무기인 대검을 본떠서 특별히 만든 목검이지.”
“목검이 아니라 나무 기둥 아니에요? 맞으면 뼈도 못 추리겠는데요?”
“하핫, 부정하진 않겠네. 뭐, 그렇다고 진검으로 할 순 없지 않은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지크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저 무식한 목검도 위압감이 대단한데 진검을 쓴다면?
‘일 합에 두 동강이 날지도 모르지.’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자네는 뭘 사용할 건가? 진검인가, 아니면 오러 블레이드인가?”
“오러 블레이드를 쓰겠습니다.”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기술로 초장에 승부를 보겠다는 건가? 하긴 그 수밖에 없겠지.’
그리 생각한 크리오스였지만, 오해였다.
지크는 그저 우리엘의 깃털 검을 보여주면 탐낼까 봐 오러 블레이드를 선택한 것뿐이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쉽지 않은 상대야.’
크리오스와 연무장에 마주 선 지크가 오랜만에 긴장했다.
마법사를 상대할 때도 이렇게 떨리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오러 유저 중 정점에 있는 자.
오러 마스터 하급이었던 잭과는 확연히 다른 대련 상대다.
‘털끝만 건드리면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다. 털끝만.’
그 정도야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지크는 생각했다.
최근에 배운 [강인함] 스킬과 [광폭화]를 이용한다면.
‘해보는 거야.’
지크가 마음을 다진 그때.
척-
크리오스가 대검을 겨누며 까딱거렸다.
“선공은 양보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