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96화 (96/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96화

“자네, 언제 온 건가?”

“대련 시작 전부터.”

“……그럼 다 봤겠군.”

“봤지. 네놈이 방심하다 처참하게 깨지는 꼴을.”

뺨을 살짝 긁혔을 뿐인데 처참하게 깨졌다?

말에 어폐가 있었지만 크리오스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졌다는 의미에선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말리고르, 자네라면 당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이 있나? 최대 출력인 줄 알았던 오러 블레이드가 보란 듯이 늘어나는데?”

“나였다면 그마저도 예상해서 피했을 것이야.”

“뚫린 입이라고 말은.”

코웃음 치는 크리오스를 말리고르는 쳐다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줄곧 지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봐. 이름이 뭐지?”

“지크 맥러플린입니다.”

“맥러플린? 설마 데칸 왕국의 맥러플린은 아니겠지?”

“맞습니다, 그 맥러플린입니다.”

놀랐는지 말리고르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 가문은 마법 명가가 아닌가?”

“지크는 데칸의 유일한 마검사라네. 아니, 대륙 유일의 마검사라고 해야 맞겠지.”

크리오스가 대신 설명했지만 말리고르의 놀람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마검사라니…… 그걸 나더러 믿으라고?”

“이보게, 지크. 이왕 이렇게 된 거 마법 좀 보여주는 게 어떤가? 정말로 마법을 쓸 수 있는지 나도 궁금하거든.”

“알겠습니다. 그 정도야 뭐…….”

흔쾌히 수락한 지크가 손을 들고 마법 하나를 사용했다.

촤아아아!

허공에서 떠오른 물결이 금방이라도 연무장을 뒤엎을 듯 소용돌이쳤다.

“워터 웨이브! 저건 6서클 마법이지 않은가?”

“자네 6서클인가?”

“아니요. 7서클입니다.”

서클을 높게 불러서 좋을 건 없지만, 텔레포트를 썼다고 알고 있는 탓에 7서클로 컨셉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엄청나군! 정말로 마법을 쓸 수 있었어!”

마치 서커스 묘기를 보듯, 오망성이라 불리는 자들이 지크 앞에서 연신 놀라워한다.

오러 블레이드에 마법까지 사용하는 존재는 그들로서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그나저나 어떤 소원을 말할까?’

마법을 거두고 쇼를 끝낸 지크가 크리오스에게 말할 소원을 생각하던 때였다.

[메인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떠오른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지크가 의아한 눈빛이 되었다.

‘진짜로 이걸 소원으로 요구하라고?’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보상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더구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특이한 보상이었다.

‘거절하기엔 보상이 너무 좋아 보이는데…?’

수락하기로 한 지크가 크리오스를 바라봤다.

“철혈의 군주님. 저희 약속한 게 있지 않습니까?”

“아, 소원 말이군.”

“소원? 무슨 소원?”

말리고르의 물음에 크리오스가 설명했다.

“대련 전에 날 이기면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네.”

“뭐? 하하! 그 말은 이길 가능성을 봤다는 게 아닌가? 거참 승부사 기질이 있는 녀석일세.”

말리고르의 짙은 눈빛이 지크를 향했다.

솔직히 음침한 탓에 지크로선 부담스러웠지만.

“어디 말해보게. 소원이 뭔가?”

“제 소원은…….”

지크는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저를 제자로 받아달라는 것입니다.”

“뭐라? 제자?”

생각지도 못한 소원에, 크리오스의 눈이 동그래졌다.

옆에 있던 말리고르도, 아들인 잭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놀랄 만도 하지. 뜬금없는 제안이기도 하고.’

하지만 지크는 소원으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니라 퀘스트가 그러기를 바라고 있었으니까.

【메인 퀘스트 : 오망성의 제자 되기】

└오망성과의 대련에서 승리하여 소원을 말할 자격을 얻었습니다.

└소원으로 오망성의 제자로 받아 달라고 요구하십시오.

<조건>

└오망성의 제자 되기

<보상>

└버프 ‘무신의 축복’ 획득

조금 전에 뜬 퀘스트를 보며, 지크는 시스템의 의도를 깨달았다.

‘시스템은 내가 오망성과 엮이길 바라고 있어.’

소원으로 제자가 되라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크리오스의 제자가 되면 다른 오망성과도 엮일 테고, 그러면 자연스레.

‘12인의 선구자와도 엮일지 모르니까.’

아직 오망성과 12인의 선구자 사이에 접점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찌 됐든 그런 의도로 접근하라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고서는 이런 퀘스트를 줄 리가 없다.

“허허, 내 제자가 되길 원한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소원이군.”

크리오스는 황당해하다가도 기분이 좋은지 연신 웃음을 지었다.

제자가 되기를 바라는 건 오히려 자신 쪽이라는 듯.

그때, 말리고르가 옆에서 치고 들어왔다.

“이봐, 지크라고 했지? 내 제자가 되는 건 어떠냐?”

“예?”

“모르는 것 같아 소개하자면 난 오망성이자 어둠의 군주라 불리는 말리고르 데스본이다. 바이소 왕국은 물론이고 대륙에서 내 이름을 모르는 오러 유저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이 사람도 오망성이었다고?’

몰랐다.

어쩐지 둘이 말을 튼다 했더니 동급인 그랜드 오러 마스터였다.

‘하루 사이에 벌써 두 명의 군주를 만나다니.’

확실히 군주의 제자로 들어가면 높은 사람과 엮일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 퀘스트 보상이 탐나니까.’

이번 보상은 전과 달리 스킬이나 아이템, 숙련도 따위가 아니었다.

버프!

무신의 축복이라는, 딱 봐도 좋아 보일 것 같은 버프였는데 효과는 확인할 수 없어서 모르겠다.

‘일단은 제자가 되어라, 이거지?’

애초에 퀘스트를 거절할 생각이 없던 지크였지만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제자가 된다면 누구의 제자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철혈의 군주냐, 어둠의 군주냐.’

지크의 대답을 기다리는지, 두 군주가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누구의 제자가 될 것인지 말해보게. 나인가, 말리고르인가?”

“뭘 고민하고 있어? 어서 말하라고.”

뜸을 들이던 지크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제가 선택할 분은…….”

모두가 지크의 입을 주목했다.

그러나 나온 말은 김빠지게 하는 소리였다.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니?”

“누굴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크는 고민된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대련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이렇다 할 검술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 기술적인 면이나 경험적인 면에선 형편없죠. 오망성의 제자로 들어가고 싶은 게 이 때문입니다. 훌륭한 스승 아래에서 가르침을 받고 더 강해지고 싶어서요. 하지만…….”

고개를 든 지크가 양쪽의 그랜드 오러 마스터를 번갈아 봤다.

“둘 중 누가 더 강한지 모르는 터라…….”

“뭘 그런 걸로 고민하고 있어? 당연히 내가 더 강하지!”

버럭 소리친 사람은 어둠의 군주인 말리고르였다.

하지만 그 한마디만으로도 철혈의 군주의 자존심을 긁기엔 충분했다.

“무슨 소리인가? 나랑 대련하면 몇 번이고 패배하던 주제에.”

“그건 내가 봐준 거라고 몇 번을 말해?”

“그럼, 여기서 증명해 볼 텐가?”

“오냐, 그러자고 그럼!”

갑자기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두 사람의 대련이 성사됐다.

라이벌인 만큼 수시로 만나 대련을 벌이던 그들이지만 이번만큼은 진심으로 할 생각이었다.

제자로 삼고 싶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이기는 놈이 마검사를 차지하는 거다.”

“좋다. 그리하지.”

목검을 집어 드는 군주들을 보며, 지크는 얼떨떨함을 감추기 위해 애써야 했다.

‘이 사람들 뭐야? 갑자기 대련한다고? 원래 군주들은 이렇게 호전적인가?’

딱히 유도한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

“간다, 크리오스.”

“얼마든지.”

두 사람의 목검이 이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 * *

갑자기 성사된 두 거물의 대련.

아니, 말이 대련일 뿐 실상은 제자 쟁탈전이었다.

그만큼 지크가 탐이 난다는 이야기.

대륙 유일의 마검사를 제자로 받아들일 기회인데, 어찌 욕심이 나지 않겠는가?

더구나 지크의 성장 가능성을 눈앞에서 확인한 직후였으니 눈에 불을 켤 수밖에.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치열하게 싸울 건…….’

적색과 흑색의 오러가 수십 개의 선을 긋는다.

‘각자의 성향에 따라 오러의 색이 달라진다는 건 익히 들었지만, 저토록 선명한 색이라니…….’

그만큼 오러에 대한 이해도가 일정 경지를 넘어섰다는 이야기.

콰쾅-! 쾅-!

오러의 충돌로 연신 폭발음이 터지는 가운데, 승부가 났다.

“큭!”

말리고르의 목에 적색의 오러로 물든 목검이 겨눠져 있었다.

“이게 실전이었으면 자넨 죽었어. 알지?”

“칫! 거들먹거리지 말고 치워라!”

말리고르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크리오스의 목검을 쳐버리곤 등을 돌려 그대로 연무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을 크리오스가 피식거리는 미소로 바라봤다.

“43승 23패. 이번에도 내가 이겼군.”

“아버지!”

잭이 기쁜 마음으로 달려들었다.

혹시나 아버지가 질까 봐 전전긍긍했던 모양이다.

“정말 대단했어요! 어둠의 군주를 이기다니!”

“호들갑 떨 것 없다. 이긴 적이 한두 번도 아닌데, 뭘.”

“그래도요. 이번에는 정말 실전처럼 진심으로 싸운 거였잖아요.”

“어떻게 싸웠는지 네 눈엔 보였느냐?”

“어… 그게…….”

보였을 리가 없다.

그저 번쩍번쩍하기만 했지.

“자, 자세히는 못 봤지만, 아무튼 대단했어요!”

“지크 자네는?”

크리오스의 시선에, 지크는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 보이긴 했습니다.”

“보였다고? 그럼 마지막에 어떻게 결판이 났는지 설명할 수 있나?”

“철혈의 군주께서 상단으로 세 번 몰아치자 어둠의 군주가 방어하다가 몸을 꺾어 하단을 노렸죠. 그걸 예상하고 피한 철혈의 군주께서 왼손에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 선택지를 좁힌 뒤 마지막에 목검으로 마무리하신 거고요.”

술술 내뱉는 지크를 보며 잭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한 장면도 읽지 못한 걸 저렇게 세세하게 봤다고?

고작 오러 마스터 중급이?

필시 거짓말이라 생각하며 비웃어주려는데, 아버지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호오…… 제대로 봤군. 오러 마스터 상급도 읽기 힘든 속도였을 텐데…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으음, 글쎄요…… 동체시력이 좋아서가 아닐까요?”

성의 없는 거짓말이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래 예지로 움직임을 읽었다고 솔직하게 말할 순 없었으니까.

‘미래 예지를 켜니까 이게 보이긴 하네. 아니, 정확히는 상황이 머릿속에 입력된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눈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속도였으나, 미래 예지를 켜자 머릿속으로 모든 정보가 들어왔다.

미래는 시각에만 의존해서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3초 뒤의 상황을 미리 알려준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그렇기에 누가 이길지는 승부가 나기 3초 전부터 알고 있던 지크였다.

“내가 오러 마스터 중급일 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보다 대단한 눈을 가진 사람이 여기 있었군. 허허.”

지크를 보는 크리오스의 눈빛은 뜨겁다 못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반드시 제자로 들이겠다는 열망이 그의 눈빛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런데 어둠의 군주는 왜 간 거죠? 뭔가 볼일 있어서 온 줄 알았는데…….”

“그 볼 일이란 게 나와 대련하는 것이었네. 종종 찾아와서 대련을 청하곤 하거든.”

“아…….”

“그건 그렇고 이제 궁금증이 풀렸겠지? 누가 더 강한지.”

“예.”

“이제 어쩔 텐가? 내 제자로 들어오겠는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