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02화
사냥꾼의 감각으로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느껴진다.
‘둘씩 짝지어 있는 걸로 봐서 노예들을 데려간 곳인가?’
혹시나 영주가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지크는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예상대로 수많은 방이 보였고 방마다 단단히 문이 잠겨 있었다.
지크에게 이까짓 건 아무런 의미도 없었지만.
콰직!
문고리를 부수며 열자, 노예를 구타하고 있는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방해받은 남성은 곧장 눈알을 부릅뜬다.
“X발, 어떤 새…….”
“꺼져라. 죽기 싫으면.”
변장한 지크의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음침한 외모 탓인지 말리고르 특유의 어두운 기운도 흘러나왔다.
“죄, 죄송합니다!”
겁먹은 남자 용병이 재빨리 노예를 놔두고 방을 빠져나갔다.
지크가 입고 있는 갑옷만 봐도 지위 높은 귀족이라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벌컥―!
“누구야?”
“꺼져라.”
콰직―!
“넌 뭐…….”
“꺼져.”
방마다 문을 부수며 들어와 꺼지라고 말하자, 용병들이 꼬리를 마는 강아지처럼 헐레벌떡 도망쳤다.
일부는 즐거운 시간을 방해한 것에 눈이 돌아가 마법을 사용하려 들기도 했지만.
“죽고 싶나?”
순간 모아놨던 마력이 촛불처럼 꺼지며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당황하며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렇게 20개의 방문을 모조리 열어젖힌 지크였지만.
‘없네.’
라이더몬드 백작은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어디로 가지? 계속 위로 올라가 볼까?’
지크는 영주성을 오르며 백작을 찾는 데 집중했다.
사냥꾼의 감각으로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은 전부 다 뒤져봤지만, 대부분이 휴식을 취하던 시종이나 호위병이었다.
그마저도 드문드문 느껴지다가 결국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끝까지 올라온 거 같은데 없다면…… 여기뿐인가?’
지크는 마지막 방을 앞두고 걸음을 멈췄다.
백작이 있는 것으로 예상되는 방은 여기가 유일했다.
‘두 명의 인기척이 느껴지는데, 한 명은 백작인가?’
일단 들어가 보기로 한 지크가 문을 열었다.
당연하지만 잠겨 있다.
콰직! 끼이익―
강제로 연 지크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본 탓이다.
‘뭐야? 사람?’
꽤 커다란 홀에 30명의 사람이 반듯하게 일렬로 누워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왜 사냥꾼의 감각에 걸리지 않았지? 아!’
가까이 가본 지크는 깨달았다.
여기 누워 있는 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체였다.
‘사냥꾼의 감각 스킬은 생명체의 움직임만 파악할 수 있어. 그렇기에 여기 있는 시체들은 감지되지 않았던 거야.’
도합 30구의 시신이라니.
누가 여기다 시신을 운반해 놓은 걸까?
아니면 영주성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여기서 죽은 걸까?
이 시신들의 정체는 뭘까?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마주해서인지 파생된 의문들이 여러 갈래로 가지 친다.
‘영주가 꾸민 짓일까? 뭐가 됐든 당황스럽네.’
의문이 꼬리를 무는 그때.
사냥꾼의 감각에 한 사람의 움직임이 걸렸다.
‘저쪽에서 누가 오는데?’
지크의 시선이 벽으로 향했다.
문이 안 보이는 걸 보니 비밀 통로가 숨겨져 있는 모양.
이럴 때 쓰기 좋은 스킬이 있다.
‘미래 예지 사용.’
세상에 수많은 실선이 그어지며 3초 뒤의 미래가 훤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3초 뒤에 벽을 밀고서 나타날 사람이 누구인지도.
‘찾았다. 페트로 라이더몬드 백작.’
그토록 찾던 백작이 저 안에 있었다.
조금 있으면 비밀의 문을 열고서 얼굴을 빼꼼 내밀 것이다.
그런 다음에 도로 문을 닫고 들어갈 테고.
‘아는 척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돌아간다고?’
현재 자신은 어둠의 군주로 위장한 상태.
미래 예지로 본 백작은 같은 편인 어둠의 군주를 알아보지 못했다.
알아봤다면 필시 아는 척이라도 했을 것이다.
‘어둠파에 속해 있을 뿐이지, 실제로 만난 적은 없나 보군.’
미래의 백작은 그저 침입자가 누구인지 확인만 하고 돌아갔다.
누구에게 돌아갈지는 뻔했다.
‘안쪽에 있는 또 다른 누군가. 그에게 보고하러 가는 게 분명해.’
비밀의 방 안엔 두 사람의 기척이 느껴진다.
한 명은 백작이고 다른 한 명은 누군지 모른다.
‘일단 그 녀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볼까?’
찰나의 순간,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지크가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미래 예지로 봤던 대로 비밀의 문이 열리며 라이더몬드 백작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지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체만 유심히 살펴봤다.
문이 닫힌 뒤에야 슬쩍 돌아봤을 뿐.
‘사냥꾼의 감각으로 느껴져. 놈이 안쪽에 있는 녀석에게 돌아가고 있어.’
아마도 자신이 본 침입자의 용모를 알리러 돌아갔으리라.
‘조금 더 기다리면 반응을 알 수 있겠지.’
자신을 환대할지, 아니면 박대할지.
반응은 곧 나타났다.
박대로.
“그어으어으…….”
“그어어으…….”
시체들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생각도 못 한 지크로선 기겁할 만한 상황이었다.
‘뭐야, 이것들? 좀비야?’
죽은 줄 알았던 30구의 시체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일어나 움직인다.
일제히 지크를 쳐다보던 그것들은 먹잇감이라도 발견했다는 듯 입을 찢으며 달려들었다.
“그와아악!”
‘X발.’
흡사 공포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상황에 욕이 절로 나왔지만, 지크는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눈앞에 익숙한 퀘스트창이 떠올랐으니까.
【돌발 퀘스트 : 언데드 처치하기】
└라이더몬드 영주성 꼭대기 층에서 서른의 언데드와 마주쳤습니다.
└지금 바로 언데드를 처치하십시오.
<조건>
└언데드 처치 0/30명
<보상>
└5차 스킬 숙련도 10,000 증가
‘그러니까 이 새끼들 다 죽이라, 이거지?’
퀘스트를 본 지크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달려오는 폼이나 속도를 보니 어려운 퀘스트는 아니었다.
츠츠츠츠―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낸 지크가 침착하게 한 놈을 베었다.
서걱!
목이 잘리며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허물어지자 카운트가 됐다.
[언데드 처치 1/30명]
‘별거 아니네.’
히죽 웃은 지크는 뒤이어 달려오던 언데드의 다리를 베어버린 뒤 머리통을 찍었다.
콰직!
[언데드 처치 2/30명]
‘파악 끝났어.’
이후로는 순조로운 학살의 향연이었다.
언데드들은 의외로 움직임이 빨랐지만, 지크의 속도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검이나 다른 무기를 든 것도 아니었고.
‘개처럼 깨물려고 하지만 어림도 없지.’
순식간에 열 명 넘게 처리한 지크가 공격을 피하며 베어 넘겼다.
서른 명을 처치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영주성 꼭대기에 있는 금단의 방.
후드를 쓴 자카르는 그 안쪽, 비밀의 공간에서 한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허허, 그 유명한 불사의 선구자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행차하시다니. 미천한 소인은 정말이지 감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요.”
“입발림 소리는 됐고, 내가 말한 시신들은 준비해놨느냐?”
남자, 페트로 라이더몬드 백작이 기름진 미소를 지었다.
“물론입니다요. 텔레포트로 오셔서 보진 못하셨겠지만, 바깥 홀에 서른의 시신을 마련해 두었습니다요.”
“잠깐 확인해 보마.”
자카르가 눈을 감고 마력을 흘리며 집중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내가 주문한 대로 상처 없는 깨끗한 시신들이군.”
“평민들을 모아놓고 독극물을 이용해 손상 없이 깔끔하게 죽였습죠. 그런데 나가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신 겁니까?”
“넌 몰라도 된다.”
“하하, 예.”
시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연결 짓는 마법 덕분이라는 걸 굳이 말하고 싶지 않던 자카르였다.
“재료도 준비됐으니 지금 바로 의식을 시작하지.”
“제가 더 도울 일은 없습니까? 말만 해주십시오.”
“내가 할 말은 방해하지 말고 꺼지라는 말뿐이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
그때였다.
콰직!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란 백작이 걸음을 멈췄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문을 잠갔는데…….”
“누가 오기로 한 것이냐?”
“아, 아닙니다. 문도 잠갔는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누구지?”
“혹시 어둠의 군주께서 오신 건…….”
“그럴 리는 없다. 녀석은 내일 오기로 되어 있어.”
그럼 대체 안으로 들어온 자는 누구란 말인가?
비밀의 방인 이곳에선 보이지 않으니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나가서 확인해 보거라.”
“예.”
잠깐 밖을 구경하러 나간 라이더몬드 백작이 잠시 후 놀란 눈으로 뛰어 들어왔다.
“자카르 님! 자카르 님!”
“웬 호들갑이냐.”
“침입자입니다! 웬 갑옷 입은 남자가 시신들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자카르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떠졌다.
“침입자라…… 누군지 몰라도 죽여야겠군.”
이내 눈을 감은 그가 마력을 발산, 조금 전에 접속했던 시신들을 원격으로 일으켜 세웠다.
“Imr Imnaij Diénai Isisir(일어나라, 나의 종이여).”
자카르가 뭐라 중얼거리자 백작이 호기심을 못 참고 물었다.
“바, 방금 뭘 하신 겁니까?”
“서른 구의 시신들을 언데드화 시킨 뒤 침입자를 죽이라고 명령내렸다.”
“예? 시신들은 의식의 재료로 쓸 것 아니었습니까? 그러다 언데드화 된 시신들이 손상이라도 입으면…….”
“그럴 일은 없다. 언데드가 왜 언데드인지 아느냐? 죽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리고 토막 나더라도 내 마력 한 번이면 상처가 회복되지.”
물론 언데드에 한해서 회복시킬 수 있었지만, 백작의 눈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핵심은 불사의 군대를 만들어내는 선구자의 위대함에 있었으니까.
“오오, 정말 대단하십니다. 과연 불사의 선구자…….”
“잠깐.”
자카르의 미간이 돌연 찌푸려졌다.
급기야 후드를 벗으며 정신을 집중하는 듯하더니 이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좀처럼 보기 힘든 선구자의 표정 변화에, 백작이 놀라 물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내 시신들이…… 손상을 입고 있다.”
“예?”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중얼거리던 자카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순식간에 서른의 언데드가 조각나버렸다.
몇 번이고 원격으로 일으켜 세우려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불사의 군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
‘영혼의 부름이…… 먹히지 않는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감을 느낀 선구자가 걸음을 박찼다.
“자카르 님? 자카르 님!”
백작이 선구자를 따라 비밀의 방에서 나왔다.
선구자는 멍하니 조각난 서른 개의 시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처 회복도 먹히지 않는다니?’
마력을 부어봤지만, 회복도, 재활용도 불가능했다.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
자카르가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봤지만 역시나 침입자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 권속들을 부활도 못 할 지경으로 죽여놓고 사라지다니. 대체 어떤…….”
순간 자카르가 무서운 눈빛으로 백작을 돌아봤다.
“아까 본 침입자의 행색을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어, 그, 그게…… 머리는 검은색이고 짙은 눈썹에 눈두덩이가 파인 게 음침한 외모였고요, 갑옷은 자세히 기억 안 나지만 빨간 문양이 그려져 있는 흑색의 갑옷으로…….”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설명하자 자카르의 눈이 경악으로 차올랐다.
“정말이냐? 네가 본 게 정말이냔 말이다!”
“예, 저, 정말입니다. 누구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요.”
믿기지 않는지 자카르는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다름 아니라 자신이 아는 인물과 똑같은 용모였으니까.
‘말리고르 데스본. 녀석이 말도 없이 침입해 내 언데드를 죽이고 튀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