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03화
사람들이 언데드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시체가 걸어 다닌다는 근원적인 공포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에겐 두려움이 없다.
죽여도 죽여도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고 부활하는 불사의 군대.
그것이 언데드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달려오는 언데드의 머리통 하나를 떨어트리며 지크가 남은 놈들을 둘러봤다.
‘쉬워도 너무 쉽잖아?’
홀에 남은 언데드는 열 명 남짓.
나머지 스무 명은 차디찬 바닥에서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원래 언데드는 잘 안 죽지 않나?’
책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는데 이거 한 번 베면 더 이상 부활하지 않고 바르르 떨면서 죽어버린다.
‘설마 영혼 베기 때문인가?’
예전에 얻었던 스킬 중 하나인 [영혼 베기].
무기로 상처입힐 때마다 대상의 영혼까지 베어버리는 패시브 스킬로, 이름만 그럴싸하지 지금까지 좋은 점은 찾지 못한 스킬이었다.
‘그랬는데 지금 막 장점을 찾은 듯하네.’
히죽 웃은 지크가 나머지 언데드도 빠르게 처리했다.
[언데드 처치 30/30명 완료!]
[돌발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5차 스킬 숙련도 10,000이 증가합니다.]
[8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68,120/100,000]
꿀처럼 달달한 보상을 확인하며 웃고 있는 그때.
지크의 감각에 이쪽으로 달려오는 두 사람이 느껴졌다.
‘한 명은 라이더몬드 백작이고, 다른 한 명은 언데드를 부리는 사령술사겠지.’
백작에게 이런 능력은 있을 리가 없다.
처음 봤을 때도 가슴에 서클 하나 없는 평범한 귀족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지크는 아공간에서 그림자의 후드를 꺼냈다.
이거라면 상대가 누구든 들킬 일은 없을 것이다.
스르륵―
모습을 감추고 기다리자 잠시 후.
“자카르 님? 자카르 님!”
벽이 열리며 로브를 입은 남자가 튀어나왔고 그 뒤로 백작이 따라 나왔다.
‘자카르? 저 남자의 이름인가?’
지크는 가만히 상황을 지켜봤다.
예상대로 자카르라는 남자는 지크의 은신을 알아채지 못했다.
가슴에 9서클의 고리가 느껴지는데도.
‘설마 12인의 선구자?’
자카르는 한동안 지크가 조각내버린 서른 개의 시신들을 바라봤다.
“내 권속들을 부활도 못 할 지경으로 죽여놓고 사라지다니. 대체 어떤…….”
중얼거리던 그가 백작을 노려보더니 다그쳤다.
“아까 본 침입자의 행색을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어, 그, 그게…… 머리는 검은색이고…….”
백작이 인상착의를 말할수록 자카르의 동공이 서서히 확장됐다.
마치 아는 사람이라는 듯한 반응.
“말리고르. 그놈이 나를 배신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중얼거리는 걸 보니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군. 어둠의 군주와 자카르는 한 패였어. 둘이 백작과 짜고서 영지전을 꾸민 거야. 모종의 이유로.’
보아하니 자카르는 시체를 일으키는 능력을 지닌 선구자인 듯하다.
‘12인의 선구자와 어둠의 군주가 같은 편이라……. 이거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얻었는걸?’
이렇게 되면 이 상황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카르, 말리고르, 라이더몬드 백작. 세 사람을 동시에 처리해야겠어.’
지크가 후드 아래로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 * *
‘무슨 일인데 그러지?’
말리고르는 하루 일찍 영주성에 도착해야 했다.
자카르가 갑작스럽게 불렀기 때문이다.
‘오늘은 의식을 준비해야 하니 내일 오라고 하지 않았나?’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도 대답 없이 튀어오라고만 한 탓에, 말리고르는 도착 내내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알 수 있는 건 통신구 속 자카르의 목소리가 잔뜩 화나 있었다는 것뿐.
‘무슨 일인지는 가보면 알겠지.’
영주성에 도착한 말리고르는 마동차에서 내려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아직 파티가 한창인지 시끌벅적한 소음이 들렸지만, 그 소음도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잦아들었다.
이윽고 금단의 방까지 도착한 말리고르는 문을 열려다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문고리가… 부서져 있잖아?’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은 마음에 벌컥 문을 열었다.
홀에 익숙한 얼굴의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명은 뒤룩뒤룩 살찐 라이더몬드 백작이었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이 모시는 불사의 선구자였다.
“네가 라이더몬드 백작인가? 만나서 반갑…….”
“저, 저자입니다!”
손을 내밀며 다가가던 말리고르의 미간에 즉시 주름이 잡혔다.
아무리 자신을 지지하는 파벌이라지만 초면에 삿대질하니 기분 좋을 턱이 없었다.
“지금 무례하게 뭐 하는 거냐? 내가 누구인 줄…… 음?”
다가서던 말리고르가 주변을 훑어봤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토막 난 시체가 즐비하다.
“자카르 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보아하니 의식을 위해 준비했던 시체들 같은데 왜 이렇게 훼손됐죠? 무슨 일 있었습니까?”
“뻔뻔한 놈 같으니.”
자카르가 꺼낸 첫마디는 신랄한 비난이었다.
“이미 의식을 방해하러 왔던 주제에 처음 온 행세라니. 네놈의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예?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자카르 님.”
“날 자극하지 마라. 죽여버리는 수가 있어.”
9서클 대마법사의 기운이 자카르의 몸에서 넘실거렸다.
그랜드 오러 마스터인 말리고르조차 대항하기 힘든 기운.
자카르가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노려봤다.
“말해라. 무슨 목적으로 내 의식을 방해한 것이냐?”
“자, 자카르 님. 지금 뭔가 오해가…….”
“날 앞에 두고 시치미 뗀다고?”
완전히 해방된 마력의 기운이 말리고르의 몸을 옥죄었다.
구그그그그―
‘크, 크윽……!’
엄청난 위압감에 오망성인 그조차 버티기 힘들 지경이었지만 정말로 힘든 건 자카르의 태도였다.
“네 속셈이 뭔지 말하라고 했다.”
“소, 속셈이라뇨?”
“아직도 시치미를 떼는 거냐?”
“저, 정말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니까요!”
다짜고짜 위협하면서 자꾸만 속셈을 말하라고 하니 말리고르로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스르륵―
순간 자카르의 어둠의 기운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헉, 헉…….”
하해와 같은 거대한 마력에 한쪽 무릎을 꿇은 말리고르의 얼굴은 어느새 홀쭉해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라.”
주인의 말에 말리고르가 두려운 눈으로 쳐다봤다.
“정말로 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단 말이냐?”
“정말입니다…….”
“정말로 내 의식을 방해한 적이 없단 말이냐?”
“방해라니요. 저는 방금 이곳을 처음 왔습니다. 죽음의 서약까지 맺은 제가 뭐하러 자카르 님을 방해하겠습니까?”
죽음의 서약은 서로 한가지씩 조건을 걸고서 맺는 언약이자 계약.
마나의 서약과 비슷하지만, 차이점이라면 어긴 사람은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저에게 어둠의 힘을 나눠주는 대신 평생 자카르 님의 노예가 되겠다고 맹세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제가 거짓을 말했다면 이 자리에서 죽고도 남았겠죠.”
일리 있는 말에 자카르가 백작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하면, 이 버러지 같은 놈이 내게 거짓을 고했다는 말인가?”
“예?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요! 저같이 미천한 놈이 어찌 감히……!”
갑작스레 겨눠진 화살에 황망해진 백작이 필사적으로 손을 휘저었다.
자카르로선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
이도 저도 아니라면 답은 하나였다.
“그럼 누군가 어둠의 군주 행세를 하고 내 언데드들을 죽였단 말인가?”
“어, 맞아.”
“……!!!”
“……!!!”
제삼자의 목소리에, 좌중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그게 바로 나고.”
지크는 그림자의 후드를 벗으며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힉!”
별안간 허공에서 사람이 튀어나오자 라이더몬드 백작이 놀랐다.
그건 지켜보던 자카르도 마찬가지의 심정이었고.
‘저놈은 뭐지? 어떻게 숨어 있던 거야?’
인비저빌리티로 숨은 상대를 9서클인 자카르가 읽지 못할 리 없었다.
마력의 흐름에는 그 누구보다 민감하기에 이질감이 있었다면 바로 알아챘으리라.
한데 전혀 몰랐다.
누군가 쥐새끼인 양 숨어서 엿듣고 있을 줄은.
하지만 지크의 모습을 보고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어둠의 군주 말리고르였다.
“저, 저 녀석이 여기에 어떻게…!?”
“누구냐. 아는 놈이냐?”
자카르의 물음에 말리고르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이 바로 제가 말한 그 마검사입니다! 지크 맥러플린이요!”
‘지크… 맥러플린?’
이제야 알게 된 마검사의 정체에, 자카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야 자신이 죽여야 할 타깃의 이름도 지크 맥러플린이었으니까.
“허허,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단 말인가?”
“왜 그러십니까? 자카르 님?”
“네가 암살하려다 실패했다던 그 마검사가 바로 내가 죽여야 할 타깃이었다.”
“예에? 저놈이 자카르 님의 타깃이라고요?”
말리고르가 놀란 눈으로 지크를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크는 줄곧 여유로운 표정이었지만.
“너희들. 대체 여기서 뭔 짓거릴 하는 거야? 의식이라는 건 또 뭐고?”
의식 얘기가 나오자 자카르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 봤구나.”
“봤다마다. 언데드들을 죽인 것도 난데?”
이미 죽은 자를 죽였다는 말엔 어폐가 있지만, 사실은 사실.
그건 자카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놀람을 감추지 못했고.
“네놈이…… 그 침입자였다고?”
“처음 등장할 때도 말했잖아. 어둠의 군주 모습으로 침입한 게 바로 나라니까. 몇 번을 말해. 귀먹었어?”
“저런 쳐죽일 놈이!”
버럭 소리 지른 건 충신인 말리고르도 아닌, 라이더몬드 백작이었다.
“이분이 누구인 줄 알고 감히 모욕적인 언사를 하는 것이냐! 목숨이 두렵지도 않은가!”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옆에서 더 지랄이네.”
“뭐, 뭐라? 이놈이!!!”
흥분한 백작이 말리고르의 팔을 잡았다.
“어둠의 군주시여! 얼른 저 간악한 잡배의 혀를 뽑아주시옵소서!”
“건들지 마라. 뒤지기 싫으면.”
“아…… 예.”
불쾌하다는 듯 팔을 뿌리친 말리고르가 앞으로 나섰다.
안 그래도 죽일 생각이었다는 듯.
“자카르 님. 저 애송이는 제가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제게 암살을 만회할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하라.”
“감사합니다.”
떨어진 허락에 입꼬리를 올린 말리고르가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츠츠츠츠―
그랜드 오러 마스터라 그런지 확실히 빛줄기의 크기가 상상 이상이었다.
“저기, 어둠의 군주 씨? 우리 대화로 풀면 안 될까?”
“지랄 말고 덤벼라, 마검사. 크리오스의 무덤 옆에 나란히 묻어주마.”
“자상하네. 묻어줄 생각도 하고.”
한숨을 쉰 지크는 전투를 준비했다.
‘어쩔 수 없네. 말로 해선 안 듣겠어. 뭐, 이렇게 될 줄 예상하고서 모습을 드러낸 거지만.’
사실 지크가 모습을 드러낸 가장 큰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퀘스트.
【메인 퀘스트 : 자카르 패트릭을 죽여라!】
└불사의 선구자인 자카르 패트릭을 라이더몬드 영주성에서 만났습니다.
└그에게 죽은 무고한 원혼들이 성불할 수 있도록 자카르 패트릭을 죽이십시오.
<조건>
└제한 시간 30분 안에 자카르 패트릭 처치
<보상>
└스킬 ‘역추적’ 획득
└아이템 ‘불사의 목걸이’ 획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