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05화
본디 언데드란 그어어 소리만 낼 뿐, 제대로 된 언어는 구사하지 못한다.
자카르가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
그러나 지금은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크가 명령을 내렸으니.
“말리고르. 저 녀석 좀 제압해서 내 앞에 데려와.”
“명을 받들겠습니다, 주인님.”
부복한 말리고르의 눈빛이 자카르에게 닿았다.
충심을 보이던 전과는 달리 서슬 퍼렇기 짝이 없다.
말리고르가 검을 들고 다가오자 자카르가 소리쳤다.
“말리고르! 날 기억하지 못하겠느냐!”
“기억한다. 자카르 패트릭. 불사의 선구자여.”
말을 하길래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건데 정말로 기억하다니.
자카르가 입꼬리를 올리며 반색했다.
“과연 지성이 있는 언데드답구나. 기억한다면 당장 몸을 돌려 저 개자식을 죽여라!”
“그럴 수 없다. 저분은 나의 주인님. 자카르 패트릭은 더 이상 내 주인이 아니다.”
“뭐?”
잘 키우던 강아지가 갑자기 다른 놈을 주인으로 섬기다니.
자카르로선 황당함을 넘어 분노가 치솟았다.
“주인이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와 맺은 죽음의 서약을 잊었느냐?”
“그건…….”
말리고르가 뭐라고 대답하려던 그때.
“말리고르, 혓바닥이 길구나.”
“죄송합니다. 바로 눈앞에 대령하겠습니다.”
지크의 말에 정신을 차렸는지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낸다.
츠츠츠츠-
그리고는.
투쾅-!
폭탄처럼 달려가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팔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
그러나 자카르의 표정은 여유만만했다.
터엉!
오망성으로선 9서클 마법사의 두터운 배리어를 뚫을 방법이란 없었기에.
자카르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지는 것도 잠시.
스스슥-
“어…?”
체면 빠지게 얼빠진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갑자기 시전 중이던 배리어가 사라져버렸기 때문.
황급히 주문을 외웠지만, 자카르는 황당함에 입을 쩍 벌려야 했다.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마력이 모이질 않잖아……?’
주인에게 꼬리치던 강아지가 갑자기 자신을 물어도 이 정도로 놀라진 않을 거다.
‘왜? 어떻게?’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라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 와중에도 연신 마력을 모아보려 애쓰지만 될 리가 없다.
‘설마.’
자카르의 시선이 지크에게 향했다.
웃고 있는 걸 보니 설마가 확신으로 변했다.
“마력이 안 모이지?”
“……네놈 짓이었나?”
“밸런스를 좀 맞춰야 하지 않겠어? 아, 너무 하락시켰나?”
이죽거리는 웃음을 뒤로하고 자카르의 눈앞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스악-!
제압하려는 건지, 죽이려는 건지 모를 위협적인 오러 블레이드가 자카르의 로브 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빌어먹을.”
마력이 전혀 모이질 않다 보니 말리고르를 막을 수단이 없다.
아니,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어쩔 수 없나.’
마력을 이용한 마법은 포기하고 술법을 사용했다.
생명력을 원천으로 하지만 지금으로선 달리 방도가 없다.
“Lett aitsch tizuo cesi(쏟아지는 가시)!”
지팡이 끝에서 수십 개의 검은 가시가 쏟아져 나왔다.
말리고르는 당황하지 않고 여유롭게 피했으나 사실 자카르의 노림수는 따로 있었다.
“Hthed pow effer et et(옥죄는 검은 밧줄).”
말리고르가 피하려던 공간에서 검은 밧줄이 올가미처럼 솟아올랐다.
촤라라락!
순식간에 결박당한 말리고르.
제아무리 오망성이라도 물리적인 힘으로는 밧줄을 끊어낼 수 없다.
그러나.
“헬파이어.”
지옥의 불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화르르르!
검은 밧줄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하자, 말리고르의 몸이 자유로워졌다.
자신을 구해준 지크를 향해 어둠의 군주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됐고, 언제 데려올 거야. 하품 나오잖아.”
지크가 하품하는 시늉을 하자, 말리고르의 눈에 진지함이 더해졌다.
그 모습에 자카르는 이제 경악할 기운도 없었다.
‘헬파이어를 무영창으로 쓰는 괴물이 있다니.’
아무리 9서클 대마법사가 무영창을 쓸 수 있다고 쳐도 어디까지나 보통 수준의 마법에 한해서다.
헬파이어 같은 최고위 마법이라면 조금이라도 캐스팅 시간이 걸리기 마련.
‘그런데 저놈은 대체 뭐냐? 오러를 쓰는 데다 9서클 마법까지 무영창으로 쓰다니.’
문득 12인의 선구자 중 한 명이 취미로 마검사 짓을 한다는 게 떠올랐지만, 더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말리고르가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왔으므로.
“Leperseid schnab sitotni nightier(연기처럼 사라져라).”
연기로 변하며 가까스로 몸을 피했다.
30m가 넘는 지점까지 순간 이동했지만.
파앙!
금세 위치를 찾아낸 말리고르가 그 거리를 한순간에 좁혀버렸다.
뻐억!
“컥!”
복부에 주먹을 얻어맞았다.
내장이 진탕되는 느낌이 든다.
서걱!
이어서 도망 못 가게 하려는 심산인지 발목이 잘렸다.
쿵, 두 무릎이 땅을 찍었다.
고통은 덤이었고.
“크으으윽!”
서걱!
팔까지 잘리자 들고 있던 지팡이가 툭 떨어진다.
나머지 팔도 거침없이 잘라버린 말리고르가 우악스러운 손으로 자카르의 머리채를 잡았다.
사지가 절단된 채로 말리고르의 손에 매달려간 자카르는 고통보다 분노가 앞섰다.
자신이 부리던 부하의 손에 꼴사납게 끌려가는 꼴이라니.
치욕적이었다.
“주인님. 여기 잡아 왔습니다.”
“잘했다, 말리고르. 근데 좀 오래 걸렸네?”
“죄송합니다.”
머리와 몸통만 남기고 피를 뚝뚝 흘리는 자카르의 모습은 기괴하기 그지없었으나 지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 큰 고통을 위해 마법을 사용할 뿐.
“끄허으으으윽!”
“고통 극대화 마법을 걸었어. 아즈라힐의 마법인데 환술은 안 걸려도 이건 먹히더라고?”
통증이 수십 배로 늘어나자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지만, 자카르의 눈빛만은 견고했다.
“고문 따윌 해도 말하지 않을 거다. 차라리 죽여라!”
“아직 죽일 생각은 없다고 친구.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전까진.”
사악한 웃음을 지은 지크가 눈짓하자 말리고르가 자카르의 머리를 내려놨다.
“큭.”
“사지가 절단됐는데도 잘도 버티네. 이제 보니 마력으로 혈액 순환을 늦춰서 과다출혈을 막았구나? 최대한 덜 고통 느끼도록 신경망도 차단해 놨고.”
자카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걸 어떻게…….”
“그냥 내 눈엔 보이거든.”
현자의 눈이 꿰뚫어 본 거지만 놈이 그런 것까진 알 필요 없다.
놈이 알아야 할 건 정보를 불지 않으면 언제든지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공포심뿐.
“필사적으로 버티는 걸 보면 너도 아등바등 살고 싶나 보네? 근데 어떡하지?”
지크의 지팡이가 다시 깃털 검으로 변형됐다.
푹!
“끄아어악!”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푹!
지크는 자카르의 몸을 구석구석 찌르며 고문을 이어갔다.
고통 극대화 마법이 걸려 있어서 더 아픈 것도 있지만, 영혼 베기의 효과로 인한 정신적인 타격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어으으…….”
“말해봐. 여기서 꾸민 짓거리가 뭐야? 의식이라는 게 뭐냐고.”
“그, 그걸 내가…… 말할성…….”
푹!
“허아으으윽!”
팔다리가 끊긴 자카르는 마법도 쓰지 못하고 술법도 쓰지 못하는 볼품없는 쓰레기였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인정할만했다.
정신력.
지크에게 수십 번을 찔리고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입에 지퍼를 달아놨나, 열 생각을 안 하네.”
“주인님. 제가 해볼까요?”
말리고르가 넌지시 말하자 지크는 못 믿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누구 죽일 일 있어? 됐어. 근데 언데드라는 놈이 주인한테 제안도 하네?”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신기해서. 너 지금 언데드인 척하는 거 아니지? 갑자기 내 뒤통수치는 거 아니야?”
“농담이었다면 재미있었습니다.”
싱긋 웃는 말리고르의 모습에 지크는 잠시 벙쪘다.
처음 봤지만 웃는 모습이 공포 영화에 나올 한 장면처럼 무시무시했다.
“넌 앞으로 웃으면 안 되겠다.”
“죄송합니다.”
“근데 진짜로 신기하네. 말하는 언데드가 있다고는 들어본 적 없는데…… 아!”
순간 스치듯 떠오른 생각에 지크가 자신의 머리를 한 대 툭 때렸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얘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자카르와 같은 편이었으니 말리고르도 어느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으리라.
“야. 자카르가 여기서 하려던 의식이 뭔지 알아?”
“물론입니다. 서른의 시체를 데스나이트로 만들어 전쟁에 이용하려던 의식이었습니다.”
“데스나이트?”
“고대에 기사였던 영혼을 불러와 육신에 깃들게 해서 부리는 술법이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서른의 데스나이트를 정예병처럼 부려 영지전을 초토화할 계획이었고요.”
“데스나이트가 그렇게 강해? 서른만 있으면 될 정도로?”
“애초에 서른까지가 한계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강합니다. 죽지도 않는 데다 검술 실력까지 좋으니 한 명 한 명이 오러 마스터 하급 수준에 버금갑니다.”
“그래?”
지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 그래도 전투 직전 자카르에게서 습득한 마법 중 비슷한 이름이 있었기에.
“자카르. 너 입 계속 다물 거지?”
“끄으으…….”
“그럼 어쩔 수 없네. 안 그래도 시간 없으니 차선책을 쓰는 수밖에.”
지크가 검을 들어 올렸다.
푸욱!
“커흐윽!”
목을 꿰뚫린 자카르가 피를 울컥울컥 뿜어냈다.
[제한 시간 30분 안에 자카르 패트릭 처치 완료!]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첫 번째 보상으로 새로운 기본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두 번째 보상으로 아이템이 지급되었습니다. 아이템은 아공간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보상을 얻은 지크의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확인은 나중으로 미뤄야 했다.
‘당장은 이게 되는지부터 확인하고 싶으니까.’
지크의 손이 자카르의 시신에게 향했다.
“Imr Imnaij Diénai Isisir(일어나라, 나의 종이여).”
말리고르를 부활시켰던 마법이, 자카르에게도 먹혀들었다.
죽었던 녀석이 눈을 뜨는 걸 보면.
다만 문제는.
“그어으으…….”
말을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이었다.
실망스러운 결과에 지크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실패인가? 말리고르처럼 지성을 가진 언데드로 부활할 줄 알았는데…… 아!’
순간 지크는 자신의 무지함을 탓했다.
‘이제 보니 목이 꿰뚫려서 말을 못 하는 거였잖아!’
괜찮다.
사소한 실수다.
안 그래도 8성이 되자마자 자카르에게 마법 복제를 써놨었으니까.
‘어디 보자. 녀석에게서 복제한 마법 중에…….’
[‘자카르 패트릭’의 마법 8개를 무작위로 복제합니다.]
[9서클 마법 ‘핑거 오브 데스’를 습득하였습니다!]
[9서클 마법 ‘파워 워드 킬’을 습득하였습니다!]
[9서클 마법 ‘연기처럼 사라져라’를 습득하였습니다!]
[9서클 마법 ‘쏟아지는 가시’를 습득하였습니다!]
[9서클 마법 ‘옥죄는 검은 밧줄’을 습득하였습니다!]
[9서클 마법 ‘일어나라, 나의 종이여’를 습득하였습니다!]
[9서클 마법 ‘상처를 수복하라’를 습득하였습니다!]
[9서클 마법 ‘시체 폭발’을 습득하였습니다!]
‘자카르를 수복시킬 마법은 저거겠지. 아니, 술법이려나?’
그런데 술법을 어떻게 습득한 거지?
목록에도 마법이라 나와 있기에 의아해하던 지크는 의문을 접고 자카르에게 손짓했다.
“Dieux et ripper(상처를 수복하라).”
그 순간 꿰뚫렸던 자카르의 상처가 빠르게 복구됐다.
잘렸던 팔도, 다리도 도마뱀처럼 재생되어 온전한 인간의 형태를 이뤘다.
원래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은 자카르가 몸을 일으킨 뒤 지크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인다.
“미천한 종이 주인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크의 입꼬리가 늘어났다.
지성을 가진 언데드가 또 하나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