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06화
‘이놈한테 물어보면 다 알려주겠네. 주범이니까.’
말리고르처럼 지성을 가진 언데드가 된 자카르에게, 곧장 물어봤다.
“여기서 데스나이트 30명을 깨울 의식을 하고 있었다는 게 사실이야?”
“예. 사실입니다.”
“시체들은 어디서 구했어?”
“페트로 라이더몬드 백작이 마을의 일원들을 독살해서 준비한 걸로 압니다.”
역시 백작은 생긴 것만큼이나 나쁜 새끼였다.
“넌 사람 안 죽여봤냐?”
“죽여봤습니다.”
“왜 죽였어.”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크게는 하나의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그게 뭔데.”
“지성을 가진 언데드를 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 염원이었죠.”
아까 말리고르가 부활할 때 놀란 표정을 짓던 건 그래서였나?
자신의 염원이 뜻밖의 상황에서 이뤄져서?
“어떻게 찾는 건데?”
“간단합니다. 사람을 죽인 뒤 언데드로 부활시킵니다. 그럼 그중에 저처럼 지성을 가진 언데드가 태어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지크가 놀라 물었다.
“너처럼? 너 언데드였어?”
“예. 저는 언데드였습니다. 보기에도 그렇고, 생각하는 것도 사람과 같기에 분간은 가지 않지만, 확실히 저는 한 번 죽었었습니다. 그 후 언데드로 부활한 것이고요. 제가 불사의 선구자라 불린 것도 이 때문입니다. 죽지 않는 존재를 다루기도 하지만, 저 자체가 불사의 존재이기 때문이죠.”
자카르의 정체가 언데드였다니.
사람 같아서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언데드도 죽으면 다시 부활시킬 수 있다고? 내 권속으로 만들어서?’
생각보다 활용도가 높은 술법이었다.
“그동안 무고한 사람을 몇 명이나 죽였냐?”
“세보지 않아서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로 많이 죽였단 말이지…….”
불사의 선구자도 쓰레기.
어떻게 선구자들은 하나 같이 쓰레기들만 모여 있는 걸까?
“선구자 중 서열 몇 위야 넌.”
“10위입니다.”
“아즈라힐 존스턴은?”
“12위입니다.”
“녹스 베노마이어는?”
“7위입니다.”
그동안 죽인 선구자들의 서열을 확인한 지크가 고개를 주억였다.
발루두크는 알비츠 왕국 서열 2위의 암속성 마법사라고 아버지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다른 녀석들은 몰랐었다.
“너희 중 대장은 누구야? 서열 1위 말이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뭐?”
순간 거짓말을 하나 노려본 지크였으나 시스템창의 판독으론 ‘진실’이라고 나왔다.
그게 아니더라도 권속이라 그런지 절대로 배신할 리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내 권속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는데…… 이 경우엔 정말 모르는 거겠지.’
지크의 질문 공세가 다시 이어졌다.
“일인자를 왜 몰라.”
“선구자들은 대부분 정체를 밝히길 꺼립니다. 말만 12인의 선구자라 불릴 뿐, 세간에 정보가 드러난 선구자는 소수일 뿐이죠.”
“비밀스러운 집단이구만. 그럼 서로에 대해서 몰라?”
“개인적으로 연관이 있는 선구자나, 혹은 회의에 참여하는 선구자라면 서로에 대해 알고 있을 겁니다. 저는 회의에 불참한 지 오래되어 아는 정보가 별로 없고요.”
“회의?”
이건 또 처음 들어본다.
“회의라는 걸 자주 갖는 편인가?”
“예. 몇몇 주기적으로 불참하는 선구자가 있고 저도 그중 한 명입니다만, 모종의 이유로 꽤 자주 가진다고 들었습니다.”
“대체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길래?”
“앞서 말했다시피 저는 잘…….”
자카르의 말로는 마지막 회의에 나선 적이 10년 전이라고 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한 사람하고만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여태 발루두크하고만 연락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최근 10년간 연락한 선구자 중엔 그가 유일합니다.”
“무슨 지시를 받았지?”
“지크 맥러플린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았습니다. 원래 에스카 로빈스가 맡았던 임무인데 놈에겐 다른 일을 맡겨놨다며 제가 넘겨받았습니다.”
“음.”
이 정도는 지크도 알던 사실이다.
아즈라힐의 모습으로 에스카에게서 뜯어낸 정보가 꽤 있었으니까.
“에스카는 뭐 하는 녀석이야? 그놈도 선구자는 아니겠지?”
“아닙니다. 녀석은 데칸 소속 9서클 마법사로, 선구자들의 지원을 받고 개발하는 비공식적인 기술자입니다.”
“걔가 데칸 왕국 소속이었어?”
다른 왕국에서 넘어온 불법체류자인 줄 알았는데 데칸 소속이었다니.
‘데칸에 9서클 마법사는 달프레드 비그스란드 공작님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데칸의 숨겨진 재야의 고수가 바로 에스카였다.
“선구자에 대한 다른 정보는?”
자카르는 자신이 아는 선에서 최대한 설명했다.
설명을 듣던 지크가 놀란 부분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로, 선구자 중에 마검사가 있다는 것.
누군지는 모르지만 검을 취미로 쓰는 존재가 있다고 한다.
둘째로, 이곳 바이소 왕국에 또 다른 선구자가 있다는 것.
불사의 선구자인 자신과 쌍벽을 이루는 서열 9위의 선구자인데, 얼굴을 못 본 지가 꽤 된다고 한다.
마지막 셋째로는.
‘풍신의 리타라는 선구자가 데칸 왕국에 올 예정이라고?’
중립을 표방하는 왕국인 ‘베르’에는 풍신의 리타라는 선구자가 유명한데, 언제인진 모르지만, 데칸에 보낼 거라고 발루두크가 스쳐 지나가듯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모든 일에 발루두크가 연관되어 있잖아?’
선구자 중 총책임자로, 그가 모든 사건을 주도하고 계획하는 느낌이다.
“발루두크에 대한 정보는? 아는 거 없어?”
“어떤 정보를 원하십니까?”
“어떤 정보고 나발이고 아는 거 다 털어놔 봐.”
“그는 제 스승이었습니다.”
“…뭐?”
“제게 악마어와 술법 등을 가르쳐준 사람이 발루두크 라흐베즈입니다. 시체를 일으켜 세우는 법도, 선구자로서 자리 잡은 것도 모두 그분의 영향을 받았죠.”
이건 좀 놀라웠다.
두 사람이 사제지간이었다니.
“그럼 발루두크도 악마어를 이용한 술법에 능통한 거야?”
“예. 정점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매우 능통합니다. 제가 배운 술법은 극히 일부일 정도로.”
‘그럼 놈한테는 마력 차단이 먹히지 않겠군.’
악마의 술법엔 마나가 들지 않는다.
그 대신 생명력을 소비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을 뿐.
“술법의 단점이 생명력인데, 발루두크는 그럼 자신의 생명을 깎아서 달인이 된 거란 소리야?”
“예. 그래서 선구자 중 나이가 가장 많습니다.”
“녀석은 악마의 술법을 누구한테 배운 건데?”
“그것까진 저도 모르겠습니다. 워낙 자기 이야기는 안 하시는 분이라…….”
“그럼 목표 같은 것도 몰라? 발루두크가 뭘 꾸미는지 말이야.”
“예. 그건 저도 잘…….”
힘 빠지게 하는 대답에 지크가 발끈했다.
“마탑에서 무슨 실험을 하고 있던 건지, 데칸의 국왕을 왜 독살하려고 한 건지, 에스카에게 만들라고 한 물건은 무엇인지. 이 중에 아는 거 하나라도 있으면 말해봐.”
“…….”
자카르는 침묵을 지켰다.
할 말이 없는 모양이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대체 아는 게 뭐야?”
“죄송합니다.”
“그럼 리치 드래곤에 대해서는? 뭐 아는 거 없어?”
선구자를 찾으면 카르볼이 꼭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었으나…….
“모르겠습니다.”
기대와 달리 자카르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리치 드래곤은 모르나, 드래곤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뭘 들어봤는데?”
“동대륙 웰터가든 끝자락에 드래곤의 영역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전에 선구자들이 회의할 때 스쳐 지나가듯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동대륙?”
판게아의 대륙은 크게 동서남북으로 나뉜다.
신성 제국과 5왕국이 있는 이곳은 남대륙.
그 외에 주술과 점성에 일가견이 있다는 동대륙과, 유목민들이 주를 이룬다는 서대륙, 일 년 내내 겨울이라는 북대륙이 존재한다.
몇 년 전 서고에서 봤던 [판게아 대륙 역사]를 떠올려보면 확실하다.
“누가 그런 말을 꺼냈는진 기억나?”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만 몇 번째냐. 후우, 알겠다.”
자카르에게 꽤 많은 정보를 들었음에도 핵심은 듣지 못한 기분이다.
“나중에 궁금한 게 있으면 또 물어볼게.”
“알겠습니다, 주인님.”
지크는 손을 휘저으며 자카르에게서 습득한 술법을 사용했다.
“Tneibers Im K-Cave Ag(돌아가라, 나의 종이여).”
자카르가 연기로 변해 사라졌고 뒤이어 말리고르도 돌려보냈다.
습득한 스킬 설명을 보면, 권속으로 만든 언데드는 이렇게 다른 차원에 넣어놨다가 나중에 다시 불러낼 수 있었다.
‘자, 그럼 보상 좀 확인해 보실까?’
지크는 뒤늦게 보상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본 스킬 : 역추적]
-효과 : 마력의 흐름을 역추적하여 대상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특이사항 : 움직일 때마다 텔레포트 좌표가 항상 자동으로 기록됩니다.
‘마법사들을 추적하기에 좋은 스킬이 나왔군.’
게다가 어딘가를 이동할 때마다 텔레포트 좌표가 자동으로 기록된다?
이러면 한 번 가봤던 장소는 걸어서 갈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다.
[불사의 목걸이]
-분류 : 장신구
-효과 : 착용 시 모든 암속성 마법에 면역, 날붙이로 인한 받는 대미지 99% 감소
-내구력 : 무한
-사용 제한 : 지크 맥러플린 귀속
-설명 : 불사의 선구자가 사용했던 목걸이. 총 13개의 아이템이 존재하며 세트 효과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선구자의 의복 세트 효과 (3/13)
-4세트 효과 : ?????
-7세트 효과 : ?????
-10세트 효과 : ?????
-13세트 효과 : ?????
‘이것도 좋네. 암속성 마법에 면역이라니.’
발루두크가 암속성 마법사라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날붙이에 한해서 받는 대미지를 99%나 감소해 주다니. 이거 완전 무적 아니야?’
설명만 들어도 불사의 존재가 된 듯한 기분.
이제 하나만 더 모으면 4세트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확인을 끝낸 지크는 난장판이 된 홀을 바라봤다.
이 정도로 난리가 났는데도 아무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없다.
환영 장막으로 감쪽같이 모습과 소리를 감춘 탓이다.
‘상황을 수습하기 전에…… 저 안에 뭐가 있는지 좀 확인해 볼까?’
고개를 돌리니 비밀의 방이 있던 벽면이 완전히 뜯겨 있었다.
아까 자카르와 전투할 때의 여파인 듯하다.
훤히 드러난 방으로 들어가 봤다.
여기저기 뒤져봤지만 별다를 건 없다.
통신구 말고는.
‘무슨 통신구지?’
즉시 자카르를 소환한 뒤 물어봤다.
“이거 누구 통신구야? 여기 비밀의 방에 있었는데.”
“아, 제 거입니다. 발루두크 님과 연결되는 통신구죠.”
“이런 게 있으면 있다고 말을 했어야지!”
“물어보지 않으셔서…… 죄송합니다.”
“알았으니 돌아가!”
괜히 구박받은 자카르가 억울한 표정으로 원래 차원으로 돌아갔다.
“발루두크와 연결되는 통신구라…… 후후, 이거 잘하면 만날 수 있을지도.”
내일이면 영지전이 시작되는데도 지크의 얼굴에 걱정이라곤 없었다.
더 이상 영지전을 주관할 백작이나 어둠의 군주는 없었으니까.
‘이제 내가 할 일은 하나뿐이다.’
영지전 취소.
말리고르의 얼굴로 변신한 뒤 사람들을 모아놓고 선언하기만 하면 된다.
영지전을 무르겠다고.
기껏 먼 길을 달려온 용병들로선 헛걸음한 게 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