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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108화 (108/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08화

영지전이 무효로 돌아간 후.

시간이 나서 라인하르트 가에 머물게 된 지크는 한동안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 하면 발루두크를 끌어낼 수 있을까…….’

그에겐 자카르가 가지고 있던 통신구가 있다.

이걸 세 번 두드리기만 하면 발루두크와 곧바로 통신이 이어질 터.

하지만 쉽사리 만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자카르의 말을 떠올려 보면 그럴 만한 위인이 아니기에.

-스승은 철두철미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계획을 짜고 선구자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총괄하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겁니다.

-야. 그런데 왜 자꾸 스승이라고 하냐? 녀석 밑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럴 리가요. 제가 모시는 분은 주인님뿐입니다. 불편하셨다면 발루두크 영감이라고 호칭을 바꾸겠습니다.

-영감은 빼고.

권속과의 대화를 상기하던 지크는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봤는지 크리오스가 물어온다.

“지크. 무슨 고민 있느냐?”

“아니요.”

“아니긴. 아까부터 땅이 꺼져라 한숨 쉬고 있는데.”

“어둠의 군주가 저를 노리진 않을까 걱정돼서요…….”

그럴 가능성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었지만 말리고르의 죽음을 모르는 크리오스로선 동감한다는 듯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심정을 이해한다. 전쟁을 벌이려던 놈이 왜 갑자기 영지전을 취소했는지는 몰라도 암살 위협을 받은 이상 걱정되지 않을 수 없겠지.”

“…….”

“차라리 시원하게 붙어서 끝장을 냈으면 이렇게 불안에 떨 필요도 없었거늘 왜 취소하고 사라져버린 건지…….”

이미 죽어서 지크의 권속이 됐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크리오스로선 모든 게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는 잡생각은 버리고 수련하는 게 정답이란다. 오랜만에 나와 가볍게 대련 좀 해보자꾸나.”

“예, 스승님.”

목검을 든 지크가 크리오스 앞에 섰다.

대련으로 깨우침을 얻으면 오러도 얻을 수 있을 터.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니 오러라도 얻어야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럼 먼저 갑니다.”

지크의 목검이 맹렬히 휘둘러졌다.

* * *

대련이 끝난 직후.

방으로 돌아온 지크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대련하면 생각이 정리될 거라는 크리오스의 말이 옳았다.

발루두크를 꿰어낼 방법이 떠올랐으니까.

철컥-

방문을 걸어 잠근 뒤 허공에 손을 저었다.

“Tablette de l'Impôt de Navres(나오거라, 나의 종이여).”

곧이어 자카르가 부복한 자세로 연기와 함께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어. 너한테 시킬 일이 있다.”

“말씀만 하십시오. 뭐든 수행하겠습니다.”

“너 연기 좀 해야겠다.”

“연기…… 말입니까?”

자카르는 주인으로부터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다.

곧 언데드의 얼굴에 난처함이 드리웠다.

“가능하지?”

“가능합니다만…… 제가 언데드라 감정을 잘 끌어낼 수 있을지…….”

“표정 봐.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뭘. 사람이랑 다를 게 뭐야?”

“……하겠습니다.”

딱히 변명거리를 찾지 못했는지 마지못해 끄덕이는 자카르였다.

잠시 후 주의사항 등 이것저것 알려준 지크가 확인차 물었다.

“대사는 다 숙지했지?”

“예.”

“그럼 시작한다?”

끄덕이는 걸 본 지크가 아공간에서 통신구 하나를 꺼내 건넸다.

“지금 바로 연락해.”

자카르는 비장한 표정으로 통신구를 세 번 두들겼다.

잠시 후.

-누구냐.

노인의 목소리가 통신구를 통해 들려온다.

“접니다, 발루두크 님.”

-자카르? 정말로 자카르가 맞느냐?

“그럼요. 그새 제 목소리를 잊으신 겁니까?”

-그동안 연락이 안 되니까 그렇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던 게냐!

호통치는 걸로 보아 어지간히도 자카르를 찾았던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습격을 당하는 바람에 몸을 복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습격? 그게 무슨 소리냐? 누구한테 습격을 당해.

“아즈라힐 존스턴…… 그놈이 저를 습격했습니다.”

통신구 속 발루두크는 침묵했다.

모르긴 몰라도 눈을 크게 뜨며 놀라고 있을 게 분명하다.

-역시 그 녀석이 벌인 짓이었나……?

“알고 계셨습니까?”

-너를 공격하진 않았을까 짐작했을 뿐이다.

“그렇습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좀 더 자세히 말해 보거라.

자카르는 침음을 흘리며 자신이 겪은 습격에 관해 설명했다.

물론 대본이었고, 연기였다.

“그놈이 손에 들고 있던 장치의 버튼을 누르자, 몸 안의 마력이 불안정해지며 서클이 흔들렸습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당시 저는 운신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몸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건 아즈라힐의 일격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았지?

“다행히 어둠의 군주가 위기의 순간 희생해 준 덕분에 목숨만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몸을 회복할 때까지 아즈라힐을 피해 숨어 있던 거고요. 통신구도 금단의 방에 있던 터라 이제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뒤늦게 연락한 점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나. 아즈라힐 그 새끼가 찢어 죽일 놈이지.

통신구 속 음성에서 분노가 느껴지는 걸로 보아, 발루두크는 자카르의 변명을 믿는 눈치였다.

1단계 작전 성공이었다.

“아즈라힐 그놈을 당장 찾아서 죽여야 합니다. 놈이 어디 있는지 아는 바 있으십니까?”

-아무리 나라도 선구자들의 위치를 알진 못하지. 더구나 그놈은 통신구도 가지고 있지 않고.

“어디 짚이는 곳은 없습니까? 최근에 녀석과 대화한 사람은요?”

-며칠 전 에스카가 놈과 대화한 적이 있었지. 그때 반역의 낌새가 느껴진다며 내게 보고하기도 했고.

“그렇담 에스카에게 미리 언질을 주십시오. 아즈라힐의 연락이 오거든 어떻게든 붙잡으라고.”

-안 그래도 에스카에게 미리 연락해놨지.

“예? 벌써 말입니까?”

-네가 실종된 원인이 아즈라힐에게 있다고 판단했거든. 아무래도 그 생각은 맞았던 모양이군.

옆에서 듣고 있던 지크가 씩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렇게 되면 에스카와 연결한다는 2단계 작전도 성공이었다.

“다행이군요. 빠르게 조치가 취해져서.”

-아즈라힐을 잡아야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 그물을 쳐도 놈이 걸려들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니.

발루두크의 목소리에서 걱정이 느껴졌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아즈라힐로 변장한 내가 에스카와 연락할 테니까.’

물고기인 척 변장해서 그물에 걸린다.

그 후 본모습을 드러내 모두를 잡아먹는다.

그것이 지크가 생각한 그림이었다.

그 안에는 당연히 발루두크가 자리해야 한다.

모든 건 놈을 끌어들이기 위한 작전이었으니.

‘하지만 대놓고 오라고 하면 눈치챌 수 있어. 그러니 밑밥을 깔아야지.’

지크의 눈짓에, 자카르가 끄덕이더니 흥분한 톤으로 말했다.

“녀석은 위험합니다. 마력을 차단하는 이상한 장치를 쓸 테니 에스카 혼자서는 제압하기 어려울 겁니다. 확실하게 처리하려면 더 많은 선구자가 나서야 합니다.”

-그건 걱정 마라. 다 방법을 생각해뒀으니.

“확실한 방법이어야 할 겁니다.”

-알았으니 걱정 말아라. 내가 어련히 잘하지 않겠느냐?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어둠의 군주가 죽었으면 종속으로 거둬들였겠군?

“그게, 놈의 시체를 회수하지 못한 터라…….”

-그런가? 그럼 철혈의 군주는 다음 기회에 노려야겠군. 알았다. 너는 당분간 쉬고 있어라. 일이 있으면 다시 연락하지.

그 말을 끝으로 통신구의 빛이 사그라들자, 자카르가 숨을 몰아쉬었다.

“후아……. 끝났군요. 긴장돼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미 죽은 놈이 엄살은. 연기 잘하던데, 뭘.”

“감사합니다. 이제 발루두크가 올지 안 올지가 관건이군요.”

“뭔가 아즈라힐을 잡을 계획을 짜놓은 거 같은데…… 모르겠네. 올지 안 올지.”

“일단은 미끼를 던진 뒤 기다려봐야겠습니다.”

“그래야지. 이제부턴 나한테 맡겨.”

“알겠습니다, 주인님.”

자카르를 차원 너머로 돌려보낸 뒤, 지크가 진중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

아즈라힐 존스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자카르와의 통신이 끝난 시각.

발루두크는 즉시 에스카에게 연락을 넣었다.

“에스카. 자카르가 살아 있다.”

-어!? 정말입니까?

“그래. 그동안 부상 때문에 연락을 못 했다더군. 습격자는 아즈라힐이었고.”

-예상대로 범인은 아즈라힐이었군요.

“그렇다. 그러니 이제부턴 너에게 맡기마. 전에 했던 대화는 기억하겠지?”

-아즈라힐의 목을 가져오면 선구자 자리에 올려준다는 말 말입니까? 물론 기억합니다. 제가 먼저 아즈라힐에게 연락해서 유인하도록 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알았다. 아크니움은 부하를 시켜 장치가 있는 곳에 가져다 놓겠다. 그러니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도록.”

-염려 마십시오. 반드시 놈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 * *

통신을 끊은 에스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얼른 장치가 있는 곳으로 가서 준비해야겠어.’

발루두크의 부하가 아크니움을 가져오면 그걸 장치에 연결해야 한다.

그리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뒤, 아즈라힐을 부르는 거다.

장치가 있는 황천의 계곡으로.

당장 실행에 옮기기 위해 에스카가 텔레포트를 사용하려던 그때였다.

품 안의 통신구가 깜빡거린다.

‘아즈라힐이잖아?’

먼저 연락 올 줄 몰랐던 에스카가 놀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연락을 받았다.

“아즈라힐 님?”

-에스카. 너한테 시킬 일이 있는데 말이야.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래? 신기한 우연이군. 그러지 말고 만나서 이야기할까?

“좋죠. 그런데 지금 시간이 모자라서 그러는데 장소는 제가 이따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알았다. 뭐가 됐든 빨리하도록.

“예. 오래 걸리지는 않을…….”

말하는 사이 통신구가 끊어졌다.

에스카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지만, 그것도 잠시.

한 번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흐흐, 제 발로 만나자고 연락할 줄이야. 무슨 일인지 몰라도 내가 직접 황천길로 데려다주마. 그리고 난 오늘.”

에스카의 미소가 짙어졌다.

“12인의 선구자가 된다.”

* * *

방금 막 통신을 끊은 지크는 아즈라힐의 모습을 풀었다.

‘날 꿰어내려고 뭔가를 준비하는 모양이군.’

모르긴 몰라도 환영식은 아니리라.

‘무슨 함정인진 몰라도 쉽게 당하진 않을 거야.’

자신은 이대로 기다렸다가 에스카의 연락이 오면 약속 장소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함정인 걸 알아도 딱히 걱정되진 않았다.

‘문제는 발루두크가 오느냐 안 오느냐지.’

녀석을 꿰어내기 위해 스스로 타깃이 되었고, 에스카 혼자서는 잡기 힘들 거라는 밑밥을 깔아놨다.

발루두크와 에스카가 협공하러 온다면 그야말로 베스트.

그러나 오지 않을 가능성도 생각해두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발루두크가 오지 않는다면…… 차선책을 선택하는 수밖에.’

뭐가 됐던 놈들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이상 당할 이유는 없다.

그런 생각으로 여유롭게 기다리는 차에, 에스카의 연락이 왔다.

지크는 다시 아즈라힐로 변조한 뒤 통신을 받았다.

-아즈라힐 님. 황천의 계곡에서 만나는 게 어떻겠습니까?

“엘브로드 령 옆에 있는 곳 말이냐?”

-맞습니다.

“좋아. 그리로 가지.”

통신을 마친 지크가 히죽 웃었다.

약속 장소 근처에 마침 텔레포트 좌표가 있었다.

‘이거 한 번에 갈 수 있겠군.’

환복 기능으로 복장까지 완벽하게 아즈라힐로 꾸민 지크가 몸을 일으켰다.

“텔레포트(Teleport).”

이윽고 환한 빛이 지크의 몸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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