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천재의 헌터 라이프
화르르륵.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온 몸으로 뿜어내는 한 사내.
머리카락마저 용광로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는 김서준은 섬뜩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의 주변으로는 수많은 쇳조각들이 비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리고있다.
그건 방금 김서준이 천지를 가를 정도의 강력한 힘으로 때려부순 마신병의 잔해였다.
마신병.
신장이 5미터나 되는 거대한 괴물병기.
육식동물을 닮은 살기 가득한 외모에 일반적인 무기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는 강한 외장갑을 지닌 첨단 기술의 결정체가 바로 마신병이었다.
“후우…. 후우….”
김서준의 호흡은 거칠었다.
김서준은 무려 40기가 넘는 마신병을 혼자 상대했다.
함께 이곳에 온 동료들은 처참하게 목숨을 잃은지 오래.
긴시간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7인의 동료들도, 그들을 따라 천마를 쓰러뜨리겠다며 정의구현을 외치던 의기로운 협의지사들도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먹먹한 대지 위로 흩뿌려졌다.
김서준은 마지막 마신병들을 해치우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마신병 한 기가 지닌 힘은 절정고수 두 세명은 손쉽게 상대하고도 남을 정도.
아직 천마는 멀쩡히 살아있건만, 김서준에겐 더 이상 그를 상대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천강우! 내가 죽더라도 너만은 함께 데려가리라!’
너무도 원통하고, 미치도록 화가난다.
천마군장 천강우.
이미 세계의 대부분을 손아귀에 넣은 이 시대의 절대자.
그가 만약 사악한 심성을 갖지 아니하고, 사람의 목숨을 개미처럼 여기지 않았다면 역사에 남을 대영웅으로 칭송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천강우는 선하지 않았다.
그 어떤 악인보다도 악랄했으며, 미친 살인귀라 불리울 정도로 아무 의미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 희생자 속엔 김서준의 부모님도 포함되어 있었다.
9살의 어린 나이였던 김서준의 눈앞에서, 감히 천마군장 천강우가 걸어가는 길에 방해가 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무참히 살해된 것이다.
그래서 김서준은 무려 20년이라는 세월을 복수를 위해 맹목적으로 살아왔다.
다행스럽게도 무공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던 김서준.
그 덕에에 많은 은거고인들의 눈에 들어 강력한 무공을 사사 받았다.
그럼에도 천마군장 천강우를 상대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했다.
“크윽…”
모든 내공을 바닥까지 긁어다 쓴 김서준은 서 있는 것 조차 버거운지 비틀거렸다.
이건 그가 익힌 최고의 절기, ‘태양신공’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태양의 힘을 몸 안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육체를 태양처럼 불태움으로써 신에 필적하는 강력함을 손에 넣을 수 있는 태양신공.
그 강력함은 그 무엇과도 비할 수가 없겠으나, 태양신공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태양신공의 성취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와 반대로 육체 내부의 장기들은 급속도로 망가지게 된다는 것.
만약 태양신공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리게 된다면, 신체 곳곳의 세포조직을 파괴해 버려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만다.
지금 김서준의 상태가 딱 그러했다.
천강우를 보호하는 100여기의 마신병들을 해치우기 위해 김서준은 모든 힘을 끌어올려야 했고, 결국 몸이 버틸 수 있는 한계마저 넘어서고 말았다.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우웨엑!”
김서준이 입으로 시커멓게 죽은 핏물을 울컥 토해냈다.
“네놈도 여기까지인가 보군.”
입으로 피를 게워내는 김서준을 향해 한 사내가 다가선다.
꽈드득. 꽈드득.
사방에 나뒹구는 동료들의 시체를 발로 짓이기며.
마신병들의 산산이 조각난 부품들을 바스라뜨리며 다가서는 사내.
그는 바로 천마군장 천강우였다.
40대 초반의 나이였지만, 그가 익힌 천마경의 무공이 너무 대단하여 20대 후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훤칠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
온몸을 휘감은 금빛 찬란한 갑주는 그가 마치 신의 대변인인 것처럼 성스럽게 보이게 만들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서준이 이를 악물고 소리치자 천강우는 흘러내린 앞머리를 가볍게 쓸어올리며 피식 웃었다.
“마지막엔 다들 너와 똑 같은 소릴 내뱉었지. 하지만 결국, 모두 내 손에 죽었다.”
천강우는 황금빛을 뿌리는 손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모든 것을 이룬 자의 거만함.
단 한 번도 져본적 없는 무적자로서의 자신감.
천강우를 마주하면 그러한 것들을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게된다.
나이 서른에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대부분을 자신의 발 아래에 꿇리고.
마흔을 넘어섰을 땐, 서양무림 다섯 곳 중 네 곳을 정복해냈다.
이제 천강우에게 대항하고 있는 세력은 단 두곳 뿐.
김서준이 맹주로 있는 대한민국의 단군무림이 바로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단군무림도 오늘로 끝장이었다.
김서준은 단군무림의 모든 힘을 이곳에 쏟아부었고, 그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이젠.
김서준 자신마저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동료를 따라 갈 시간이다.”
천강우가 눈을 치켜뜬 순간,
푸화아아아악
그의 몸에서 황금갑주보다도 더욱 찬란한 황금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천마경을 극성으로 익힌 자만이 뿜어낼 수 있는 마황공력.
마황공력엔 스치기만 해도 신체를 가루로 만드는 무서운 기운이 담겨 있었다.
이를 본 김서준은 피가 흐를 정도로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난 살아남지 못한다.’
태양신공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린 탓에 이미 대부분의 내장들이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
이대로는 채 5분도 견디지 못하고 죽고 만다.
‘하지만…. 결단코 나 혼자 죽을 생각은 없다!’
김서준은 동귀어진을 각오했다.
그리고 태양신공을 한번 더 한계까지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츠
그의 몸 주변으로 강력한 태양의 불길의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두 발이 딛고 선 바닥은 순식간에 녹아버렸고, 사방에 흩어진 시체들과 마신병의 조각들이 두둥실 떠올라 화염에 휩싸인다.
그 모습에 천강우가 눈에 이채를 띄었다.
“마지막 발악인가?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네가 목숨을 걸었으니 나 또한 그에 대한 예우를 해줘야겠지.”
천강우가 오른손을 한차례 떨치자,
파캉
그의 손엔 어느새 기다란 언월도가 쥐어져 있었다.
천강우가 손에 쥔 언월도는 그가 세계를 정복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무기, ‘참극언월도’였다.
참극언월도에 목숨을 잃은 영웅은 무려 수백에 달한다.
그 어떤 무기도 참극언월도의 일격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그 어떤 무공도 참극언월도 앞에서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기에 최강이라 불리는 무기.
하지만 김서준은 그 참극언월도를 마주하고서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양 손에 태양신공의 힘을 더욱 강하게 쏟아낼 뿐.
후우우우우웅
김서준은 용광로에 달궈진 쇳덩이처럼 새빨게진 양 손을 불끈 거머쥐었다.
태양인.
태양신공 최후의 초식인 태양인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김서준의 손에서 빛을 발했다.
“와라.”
김서준은 선공을 양보했다.
사실은 천강우를 향해 달려나갈 힘조차 아끼기 위해서 였으나 그의 건방짐은 천강우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가소로운 놈.”
꽈앙
바닥이 터져 나가며 천강우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사라진 천강우가 나타난 곳은 김서준의 정면.
20여 미터의 거리가 단숨에 지워졌고, 참극언월도는 이미 김서준의 목을 베어내고 있었다. 그때,
터억
새빨갛게 달아오른 손이 참극언월도를 잡아챘다.
츠아아아아아악
날을 잡은 손에서 희뿌연 연기가 뿜어지더니, 태양인을 담은 김서준의 손이 푸스슥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천강우는 놀라워했다.
처음이었다.
그의 참극언월도를 맨손으로 막아내고도 버텨낸 인물은 김서준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내 일격을 막은 건 칭찬…. 크윽!”
말을 하던 천강우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고개를 내린 그의 시선에 꼿꼿하게 세운 김서준의 손날이 단전을 살짝 파고든 모습이 보였다.
천강우는 분명 마황공력으로 온몸을 보호하고 있었는데, 그 공력의 반탄력을 뚫고 손날이 파고들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까.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손날은 더 이상 파고들지 못하고 멈춰섰다.
이제 손날을 밀어내고 김서준의 목을 베어버리면 모든게 끝이었다.
그런데, 김서준이 웃고 있다.
참극언월도의 날에 맺힌 마황공력으로 인해 왼손마저 거의 가루가 되고 있음에도 전혀 고통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섬뜩한 느낌이 든 천강우는 흠칫 놀라며 몸을 뒤로 빼려했다. 하지만, 김서준이 그걸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콰득
사라진 왼손 대신, 팔뚝을 꺾어 참극언월도를 몸으로 끌어 안았다.
김서준은 참극언월도의 날이 목 언저리를 파고들고 있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천강우의 몸이 한순간 앞으로 끌려갔지만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뒤로 몸을 튕겼다. 그런데,
“크윽!”
몸이 뒤로 빠지지 않았다.
동시에 찾아드는 화끈한 고통.
시선을 내려보니 김서준의 오른 손날이 벌써 절반이나 파고들었다.
김서준은 파고든 손날을 움켜쥐어 천강우가 몸을 빼내지 못하게 한 것이다.
“…감히!”
천강우는 자신의 판단 미스를 후회하며 참극언월도를 더욱 강하게 찍어눌렀다.
츠아아아악
참극언월도의 날이 더욱 깊숙하게 파고들었지만 김서준의 미소는 더욱 짙어지기만 했다.
“저승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겠어.”
모든 걸 해탈한 듯한 김서준의 한마디.
그와 동시에, 그의 오른손이 더욱 붉은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콰득
“컥!”
김서준의 손날이 결국 그의 단전을 꿰뚫어 냈다.
천강우의 단전을 꿰뚫고 등 뒤로 불쑥 튀어나온 붉은 손 하나.
그 즉시로 천강우를 뒤덮고 있던 황금빛이 꺼지듯 사라졌다.
단전이 파괴된 이상, 천마경의 마황공력은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었으니까.
“너, 너….!”
천강우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서준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에겐 더 이상 아무런 힘이 없었다.
쩔그렁
그 대단한 참극언월도가 바닥에 떨어졌다. 더불어 천강우의 몸도 힘없이 주저앉았다.
“우웨엑! 하…. 하하하. 이런, 이런 병신 같은…..”
천강우가 피를 울컥 토해내고는 그대로 드러누웠다.
김서준 또한 몇 발자국 뒷걸음질 치다가 파괴된 마신병의 잔해에 걸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김서준의 왼팔은 팔뚝까지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참극언월도가 박혀있던 목 언저리부분도 점차 가루로 변하며 바람에 흩날려 사라지고 있었다.
“김서준…. 네놈이 결국 이겼구나.”
천강우도 이젠 사는 걸 포기했는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기고 지는게 뭐가 중요할까. 후후…. 네놈을 지옥으로 끌고 갈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김서준은 마신병의 몸통에 등을 기대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모든 걸 불사른 덕분에 천강우를 쓰러뜨릴 수 있어 마음이 너무도 편했다.
“충분….하다고? 큭큭큭…. 넌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있구나.”
천강우가 이상한 소릴 지껄인다.
김서준은 남은 한 손으로 돌멩이를 집어 들고 그걸 천강우 쪽으로 집어던졌다.
하지만 돌멩이는 채 1미터도 날아가지 못하고 툭 떨어졌다.
“헛소리 말고 죽음이나 받아들여라, 마귀새끼.”
“흐흐흐. 그래. 난 마귀지. 수백, 수천의 인명을 살상한 살인마귀. 하지만 말이다…. 내가 죽는다고 모든게 끝날 줄 아나? 이곳에 있는 마신병이 전부라고 생각하냔 말이다!”
“….”
천강우의 말은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너무 진지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그의 말을 듣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김서준은 헛웃음을 흘렸다.
“마신병은…. 저 악마의 인형들은 내가 만든게 아니야. 놈들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을 열고 내 앞에 나타났을 뿐이지.”
마신병이 하늘을 열고 나타나다니.
김서준은 천강우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네가 쓰러뜨린 마신병들은…. 시작에 불과해. 내가 죽어 없어진다고 해도 놈들이 제2, 제3의 천마군장을 만들어 세계를 멸망으로 이끌…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천강우는 고개를 떨궜다.
수십 년을 마魔의 정점에 이른 자로서 세상 위에 군림하던 천강우의 죽음이었다.
그때였다.
우르르르릉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려퍼졌다.
김서준은 감겨지는 눈꺼풀을 억지로 붙잡으며 하늘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콰지지직.
우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이 찢어졌다.
김서준의 머릿속에 방금 천강우가 한 말이 떠올랐다.
마신병이 하늘을 열고 나타났다는 말.
헛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사실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김서준의 의문에 답하듯, 하늘 위에 쭉 찢어진 틈새에서 뭔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치 사자를 닮은 듯한 외형의 마신병.
마신병은 한기가 아니었다.
호랑이를 닮은 마신병과 곰과 늑대를 닮은 마신병까지 줄줄이 균열 밖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정확히 8기.
김서준은 단 한기도 상대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런데, 그게 끝이아니었다.
기이이이잉-
차르륵. 차악!
철커덕. 철컥.
괴이한 소음이 울리더니 8기의 마신병이 형태를 변화시켰다.
사족보행의 육식동물 형태에서 이족보행의 인간형 로봇으로.
등에서는 날개와 같은 것이 펼쳐졌고, 손에는 검과 레이져건이 들려졌다.
5미터 정도였던 워머신이 12미터나 되는 거대한 로봇병기로 탈바꿈 한 것이다.
김서준은 말문이 막혔다.
눈을 부릅뜬 채 변형된 마신병을 노려보고 있을 때, 그중 한 기의 인간형 마신병이 레이져건을 김서준 쪽으로 겨눴다.
레이져건의 사출구에서 찬란한 빛이 뭉쳐들었다. 그리고,
쮸웅-
눈부신 빛이 뿜어지며 김서준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콰과과과과광
이어지는 폭발.
김서준이 있던 자리로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며 100미터가 넘는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화염과 열기가 가득한 그곳에 남아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