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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뒤, 안방.
45세의 중년가장 김주혁은 샤워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침대 위에 드러누워버렸다.
밤 9시가 넘은 시각.
어제도, 그제도 늘 야근을 하느라 10시 전에는 귀가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오늘은 직속상관인 고태환이 무슨 일인지 급히 퇴근하는 바람에 잡일이 크게 줄어 1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하루 하루가 어찌 이리 피곤한지….’
김주혁이 그런 상념에 빠져있을 때였다.
똑똑
그의 상념을 깨는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이 집에서 노크를 하고 여길 들어올 사람은 아들, 김서준 밖에 없었다.
“들어와도 된다.”
김주혁이 말하자 문이 열리고 김서준이 들어섰다.
“쉬고 계신데 죄송해요.”
“괜찮다. 집에 있는 거 자체가 쉬는거지 뭐.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냐? 표정이 왜 그래?”
그래도 아들이라고 김서준의 표정에서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김서준은 지금 20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와 대면한 것이라 무척이나 들뜬 상태였다.
“음. 어…. 혹시 몸 불편하신데 있으면 제가 마사지 좀 해 드릴까 해서요.”
“마사지? 너 엄마 모르게 마사지 학원이라도 다녀?”
김주혁은 백연지와 달리 헌터였기 때문에 아카데미에서 마사지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독학했어요. 엄마한테 해봤는데, 시원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도 좋아하실까 싶어서….”
“허. 내일 서울 하늘에 균열이라도 열리려나? 내가 이 나이에 자식이 해주는 마사지를 다 받아보게 되다니. 그래, 어디 한번 해 봐라. 제대로 못하면 다음달 용돈 인상은 동결하는 걸로. 어때, 콜이냐?”
부모를 챙기려는 자식의 마음이 고마웠는지, 김주혁이 드물게 농담까지 꺼낸다.
“그럼 제 마사지가 마음에 들면 인상되는 거죠?”
“5%.”
“에이, 쪼잔하게.”
“이 녀석 봐라? 쪼잔? 이 대인대덕한 아버지한테 쪼잔이라니! 크흠. 뭐, 좋다. 정 그러면 10%, 어떠냐?”
“엎드리세요.”
김서준이 밝게 웃으며 하는 말에 김주혁도 피식 웃고 말았다.
바로 엎드린 자세를 취한 김주혁.
김서준은 우선 허리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머리부터 목, 어깨, 팔까지 빠르게 혈을 주물렀다.
김주혁은 헌터이기 때문에 당연히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한창 때에는 꽤나 단단한 신체였기에 추궁과혈에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너무 과하면 체내에서 내공에 대한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었고, 너무 약하면 아무런 효과가 없을 수도 있었으니까.
전체적으로 몸을 살핀 김서준은 아버지의 몸 상태가 어머니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안 좋을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혈맥에 탁기가 가득한 건 둘째치고 몇몇 중요 혈맥은 완전히 꽉 막혀서 아예 내공의 기운이 흘러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뼈와 뼈 사이의 신경은 과로로 인해 약해질대로 약해져 있었으며, 내장 기능, 특히 간과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었다.
‘술도 즐기지 않는 분이 간 상태가 왜 이러지?’
가장 큰 문제는 내장지방이었다.
7년이 넘게 의자에 앉아서 사무업무만 보아서 그런지 내장에 엄청난 두께의 지방이 끼었다.
이대로 둔다면 지방이 내장을 짓누르고, 피의 흐름마저 막아 세상에 존재하는 병이란 병은 죄다 걸릴 판이었다.
그런데 너무 이상하다.
아버지는 사무직으로 좌천된 이후로도 운동을 멈춘적이 없다.
지금까지도 새벽같이 일어나 러닝머신을 이용해 달리기를 하고, 벤치프레스와 턱걸이 등으로 근육을 단련시킨다.
나잇살로 인한 체지방 증가와 비만은 어쩔 수 없다지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했다.
그리고 중요 혈맥이 이렇게까지 꽉 막히는 건 인위적인 힘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마 폐맥공?’
김서준이 살던 세상엔 인류의 50% 이상이 무공을 사용할 줄 알았다.
어디서나 쉽게 무공을 배울 수 있는 무도관이 존재했고, 호흡을 통해 내공을 쌓을 수 있는 수많은 내공심법 또한 존재했다.
그에따라 다양한 무공들이 파생되어 만들어 졌으며, 독특한 특성을 지닌 무공도 등장했다.
그런 무공 중 하나가 바로 폐맥공(閉脈功)이었다.
이 폐맥공에 당하면, 중요한 혈맥들이 막히게 되어 내공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게 된다.
심할 경우, 내공을 오히려 감퇴시키거나 더 이상 내공증진을 이룰 수 없게 몸을 망쳐버리기도 한다.
아버지, 김주혁의 몸 상태는 그 증상과 너무도 닮아있었다.
체지방이 급속도로 늘어나 고도비만의 체질을 갖게 되었다는 점만 빼면, 폐맥공에 당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
‘마력이 늘지 않는 이유도 이것 때문인 것 같은데?’
하지만 어떻게 이곳에 폐맥공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어쩌면 폐맥공과 유사한 효과를 지닌 ‘신비’에 당한 것일 수도 있다.
‘그건 아니야. 신비에 당했다면, 아버지가 모를 리 없어.’
아버진 지금 폐맥공의 효과를 지닌 뭔가에 당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럼…. 약일까?’
아버지도 모르는 사이 특수한 약이 담긴 음식을 먹은 거라면?
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이 세상에는 폐맥공과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특별한 몬스터가 존재한다는 걸 기억해 낼 수 있었다.
‘환마충?’
균열 너머의 세상에서만 자라는 검은색 꽃인 ‘귀화’.
그 귀화만 먹고 사는 팔뚝만한 벌레가 바로 환마충이었다.
환마충의 체액을 인간이 흡수하게되면 폐맥공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혈맥 폐쇄와 기력 상실, 신체 피로감 증가 등등.
가장 중요한 건, 환마충의 체액에는 짧은 시간 안에 체지방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은 물론, 강한 환각성분까지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는 환마충의 체액을 이용해 누군가의 건강을 일부러 해치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아버지의 몸에 환마충의 체액을 주입한걸까?
김서준은 아버지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환마충의 체액을 먹었으며, 그로 인해 마력 증가가 멈춘 거라고 확신했다.
‘감히…!’
김서준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죽음을 넘어서 간신히 다시만난 아버지인데, 정체 불명의 누군가가 아버지에게 해를 끼치려 하고 있었다.
불현듯, 김서준의 눈앞에 20년 전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김서준의 부모는 아들의 생일을 맞아 서울의 번화가로 나들이를 나섰었다.
그런데 같은 날, 단군무림과의 협상을 위해 한국을 찾은 천강우가 하필이면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지나고 있었다.
천강우가 탄 특수 SUV 차량이 수많은 경찰들과 무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왕복 8차선 도로를 지나고 있던 그때, 9살이었던 김서준은 아버지가 사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실수로 차도 쪽으로 놓치고 말았다.
장난감이 차도로 굴러갔고, 천진난만했던 김서준은 무심코 차도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곳은 불운하게도 천강우가 탄 차량 앞쪽이었다.
차량이 달려드는 순간, 김주혁과 백연지가 아들을 살리고자 몸을 날렸다.
다행히 차량은 김서준을 감싸며 도로 위를 나뒹군 부모 앞에서 멈춰섰다.
하지만 그 차에는 천강우가 타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사악한 심성을 지닌 천강우.
그는 차량 밖으로 나섰고, 자신이 탄 차를 급정거시킨 김서준의 가족을 무섭게 노려봤다.
김주혁은 천강우를 알아봤다.
그 또한 대한민국의 단군무림 소속 무인이었기에 천강우가 어떤 인물인지 너무도 잘 안다.
천강우는 그의 독문무기인 참극언월도를 뽑아들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던 김주혁은 바로 무릎을 꿇었다.
무례를 저질러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부디 아량을 베풀어 아이와 아내만은 살려달라며 목숨을 구걸했다.
하지만, 천강우는 깡그리 무시했다.
그의 손짓 한번에 김주혁의 팔이 날아갔고, 두 번째 손짓에 다리 한쪽이 잘려나갔다.
그러고도 모자라 천강우는 백연지와 김서준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김주혁은 팔 다리가 잘려나간 몸으로 바닥을 기었다.
천강우가 참극언월도를 번쩍 치켜들었을 때, 김주혁은 아내와 아들을 품에 감싸안았다.
그때, 참극언월도가 김주혁의 몸통을 꿰뚫고, 백연지의 가슴마저 관통했다.
그 사이에 끼어있던 김서준 역시 당연히 죽은 것으로 보였다.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누구하나 이를 막으려 나서지 못했다.
경찰들도, 무인들도 모두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천강우는 그렇게 한 가족을 처참히 살해해 놓고서는 히죽 웃으며 참극언월도에 묻은 피를 혀로 핥았다.
하지만 김서준은 죽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앞 뒤로 너무 꽉 껴안아서 답답함은 있었을 지언정, 아슬아슬하게 참극언월도의 날에 목이 꿰뚫리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김서준은 부모의 핏물이 눈앞을 적시는 상황에서도 천강우가 비릿하게 웃는 광경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게 김서준이 기억하고 있는 부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또 다시 부모님을 해하려 한다면, 누가되었든 내 손으로 죽여버린다!’
아버지의 몸에 환마충의 체액을 주입한 누군가를 향해 김서준의 분노가 들끓어 올랐다.
“아프다, 이녀석아.”
김서준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힘을 주는 바람에 김주혁의 몸이 좀 강하게 눌렸다.
“죄송해요. 힘이 넘쳤네요.”
“괜찮다. 손 맛이 꽤 매워졌는걸? 이제 다 큰 것 같아 기분이 좋구나.”
김주혁은 아무렇지 않은듯 껄껄 웃었다.
김서준은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이 문제를 확실하게 처리하기로 한번 더 마음을 굳혔다.
‘무리를 해서라도 해결을 해드리자.’
이왕 시작했으니 끝을 보자 싶었다.
김서준은 태양신공을 일으켰다.
태양신공이 지닌 또 하나의 장점은 태양처럼 뜨거운 열기를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세포 내에 생성된 순산소를 태양신공의 열기로 산화시켜 버렸듯, 아버지 몸에도 그 열기를 밀어넣어 지방을 태워버리는게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한번에 확 열기를 밀어넣게되면 지방 뿐만이 아니라 중요한 세포들까지 태워질 수 있으니, 천천히 시간을 들여 조금씩 태워야 했다.
‘몸에 무리가 없게 일주일에 한번 씩, 세 번 정도면 충분하겠지?’
여러 번 이 방법을 써야할 만큼 김주혁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태양신공의 열기가 밀려들자 김주혁의 몸에서 땀이 송글송글 솟아났다.
분명 후끈한 느낌이 있을 텐데도 김주혁은 아들을 믿는 것인지 조금도 불평불만을 내놓지 않았다.
‘고지식 하시긴…. 그냥 좀 덥다고만 말해도 될텐데, 그걸 꾹 참으시네.’
김서준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내공을 운용했다.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났다.
백연지도 안방에서 김서준이 뭘 하는지 알기 때문에 일부러 방에 들어오지 않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렇게 2시간 여가 지났을 때, 김서준은 첫번째 추궁과혈을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김주혁 뿐만 아니라 김서준도 땀으로 가득했다.
팩트만 따지자면, 추궁과혈을 직접 시행한 김서준야말로 필요이상으로 과로한 셈.
“후…. 아버지. 좀 어때요?”
김서준이 물었지만 대답이 없다.
“아버지?”
“….응? 어, 이런. 너무 시원해서 깜빡 잠들었나 보구나.”
“시원하다니 다행이네요. 이제 끝났습니다.”
김서준은 그제야 힘을 풀고 침대 아래로 내려섰다.
방 안에는 김주혁과 김서준의 몸에서 흘러나온 열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머니 백연지에 이어 김주혁의 추궁과혈도 대성공이었다.
내장지방의 30%를 태워버려 체중이 크게 줄었으며, 몸을 망가뜨리고 있던 병든 세포들도 태양신공의 열기에 모조리 기화했다.
기의 흐름을 방해하던 막힌 혈도도 모두 뚫어놨기에, 하루 정도만 지나면 아무 문제없이 기운이 온몸 곳곳으로 흐르게 될 것이었다.
김서준이 뿌듯해 할 때, 김주혁은 놀란 마음을 애써 감추는 중이었다.
마사지라고 해서 그냥 받아본 건데, 그 결과가 심히 놀랍기만 하다.
무슨 최고의 의료진들에게 대 수술을 받은 것마냥 지방이 순식간에 줄어들고, 피부는 오히려 탱탱해 졌다.
삐걱대던 관절은 기름칠을 한 듯 부드러워졌으며, 눈 아래 두껍게 자리하고 있던 다크서클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동안 쌓이기만 했지 조금도 풀지 못했던 육체의 피로감 또한 말끔하게 씻어졌다.
가슴 한켠을 답답하게 하던 묵직한 돌멩이의 느낌도 깔끔하게 사자졌다.
김주혁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기뻤다.
결과가 훌륭해서라기 보다, 김서준이, 자신의 아들이 직접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김서준의 용돈을 다음 달부터 20% 상향하기로 약속했다.
김서준은 자신의 방에 돌아와 있었다.
김주혁과 백연지는 거실에 앉아 서로 몸이 어떻게 변했다, 어디가 얼마나 달라졌다, 몸이 날아갈 것 같다 등등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수다가 한참이었다.
‘기분은 좋네.’
부모님의 몸에 추궁과혈을 하느라 간신히 생성시킨 내공을 홀라당 사용해버려서 지칠대로 지치긴 했지만, 기분만큼은 날아갈 듯 좋았다.
20년 전에는 너무 어렸기에 효도라는 걸 한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효도를 떠올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땐, 그의 부모는 세상에 살아있지 못했다.
그것은 자식으로써 커다란 한이 되었고, 큰 죄스러움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살리고자 목숨을 잃어야 했던 부모님에게 작은 보답이라도 해드리고 싶었다.
이제야 조금은 후련해졌다.
아직 해 드릴 것이 많고도 많지만, 두 분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천마군장 천강우를 쓰러뜨렸을 때 보다도 훨씬 뿌듯했다.
‘오늘은 하루가 유독 길구나.’
김서준은 뿌듯함에 미소를 그린 채 한번 더 태양신공을 운기했다.
어느새 12시가 넘은 시각.
이미 늦은 시간이지만, 이대로 잠드는 것보다 태양신공으로 운기를 한다면 소모된 내공도 다시 채울 수 있고, 피곤함도 상당히 해소시킬 수 있었다.
한 번, 두 번….. 다섯 번.
총 일곱 번의 대주천을 마쳤을 때, 김서준은 상당한 고양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를 이뤄냈다는 기쁨 때문일까?
뭔지 모를 묵직한 힘이 가슴과 단전에서 느껴졌다.
‘이거…. 이상한데?’
김서준은 가부좌를 풀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 봤다. 그리고 눈앞에 떠오른 자신의 정보를 보고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김서준]
-마력: 6(+10) / 내공: 5
-신비: 역발산기개세(11%) / 태양신공(1%)
자신의 능력치가 갑자기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