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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가 되었을 때.
김서준은 계획했던 일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집을 나섰다.
어제 습격자가 남긴 단검을 챙기고, 잘 입지 않던 후드티에 낡은 야구모자를 눌러 쓴 뒤, 남청색의 칙칙한 마스크까지 챙겼다.
목적지까지 원활한 이동을 위해 아버지한테 차 키도 받아둔 상태.
작년 생일이 지나자마자 따 놓은 면허증이 있어서 운전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김서준은 가장 먼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습격자들과 한바탕 일전을 치룬 장소로 가보니 바닥에 그들이 흘린 것으로 보이는 핏자국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내 주먹에 얼굴을 얻어맞은 자가 남긴 거구나.’
가장 먼저 얼굴을 강타당한 사내가 흘린 코피였다.
그 자국을 따라 가보니 차량 출입구 밖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 한쪽 구석에서 갑자기 흔적이 끊겼다.
‘여기서 준비해 둔 차를 타고 도망친거군.’
김서준은 곧바로 단지 입구에 세워진 경비실로 향했다.
그리고 경비원에게 5만원을 슬쩍 건네주며, 어제 저녁 전기가 나가기 직전과 다시 전기가 들어온 직후의 CCTV 기록을 보여달라고 했다.
40대 경비원은 별 의심 없이 영상을 보여주었다.
김서준과 잘 아는 사이이기도 했고, 헌터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서준은 경비실에서 바로 영상을 확인했다.
핏자국이 끊긴 지점의 영상을 확인해 보니, 그곳에 검정색 밴 한대가 쭉 주차되어 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번호판을 확인한 뒤,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다시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제 직접 만날 시간이다, 고한석.’
김서준은 아버지 차를 몰고 고한석이 살고 있는 연희동 주택가로 향했다.
약 1시간 뒤.
으리으리한 저택이 정면으로 보이는 장소에 차를 세운 김서준.
‘현무 길드 부길드장이라 사는 집도 으리으리 하네.’
집이 궁궐처럼 컸다.
주차장은 벙커식으로 되어 있었고, 그 위에 넓은 마당이 있으며, 디귿자 모양의 3층 집이 큼직하게 자리했다.
‘자신이 가진 걸 누릴 생각보다, 남이 가진 걸 빼앗는 일에 정신 팔린 놈.’
김서준이 보기에 고한석은 딱 그런 놈이었다.
하지만 오늘로서 그런 짓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리라.
김서준은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그 위에 후드까지 눌러 쓴 다음 고한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이 한참동안 울렸지만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발신자 표시에 김서준의 이름이 뜨자 일부러 받지 않는게 분명했다.
김서준은 대놓고 문자를 보냈다.
‘네가 한 짓 다 알고 있으니까, 전화 받아라.’
문자를 보내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고한석의 전화였다.
“고한석. 자라새끼처럼 목만 움츠리고 있으면 다 해결 될 줄 알았냐?”
김서준이 비웃음을 띄고 하는 말에 고한석이 성을 냈다.
-김서준, 이 새끼야! 갑자기 무슨 소릴 지껄이는건데? 집에서 잘 쉬고 있는 사람한테 헛소리할 시간 있으면, 잠이나 쳐 자라!
“오호. 이제와서 모른척 하시겠다? 그래봐야 너만 손해일텐데?”
-손해는 무슨. 내일 아카데미에서 내 손에 쥐어 터지고 싶지 않으면 적당히 하고 끊어.
“어제 그놈들이 제대로 보고를 안했나봐? 내 앞에서 누가 시켰는지, 얼마 받았는지까지 죄다 까발렸거든. 영상도 아주 잘 녹화되어 있고 말이지.”
-…..뭐?
“그러니까, 잔말말고 나와. 너희 집 근처에 연희동 수목공원이라고 있던데. 30분 안에 공원 입구로 나오지 않으면, 내가 가진 증거가 고스란히 네 아빠한테 전해질거다.”
당연히 아무런 증거도 없지만, 고한석은 믿을 수밖에 없으리라.
김서준이 단번에 자신에게 전화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이미 증거를 가졌다는 의미였으니까.
김서준은 대답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고한석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은 다름아닌 고태환.
정황 상 고한석은 이번 일을 아버지한테 말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진행한 것이 틀림 없었다.
그런데 실수를 했고, 증거까지 김서준에게 넘어갔으니 이 사실이 고태환에게 알려지는 걸 두려워 할 수밖에 없다.
김서준은 잠시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벙커 주차장이 열리더니 차량 한대가 빠져나왔다.
‘단순한 녀석.’
김서준은 고한석이 타고 있는게 분명한 차량을 몰래 뒤따르기 시작했다.
10여분이 지났을 때, 고한석이 탄 차량은 연희동 수목공원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공터에 멈춰섰다.
잠시 후, 그곳으로 또 다른 차량 한대가 나타났다.
검은색 밴.
그 차량의 번호는 김서준의 집 근처에 머물렀던 밴의 번호와 일치했다.
김서준은 멀찍이 떨어진 장소에서 모든 걸 지켜봤다.
밴에서는 네 사람이 내렸고, 승용차에서는 고한석이 나왔다.
그들은 그곳에서 잠시 다투는 듯 하더니 이야기가 잘 됐는지 악수를 했고, 고한석은 차에서 뭔가를 꺼내 그들에게 건넸다.
그건 노란빛의 액체가 담긴 작은 병이었다.
‘역시나 저놈이 귀화의 즙을 가지고 있었군.’
김서준의 예측은 모든게 들어맞았다.
고한석이 귀화의 즙을 저리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다는 건, 집 안에서 귀화를 키우고 있을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다는 의미였다.
‘그럼 당연히 환마충도 함께 키우고 있을테지.’
이로써, 아버지의 몸에 환마충의 체액을 주입한 범인이 고태환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서로 이야기를 맞춘 그들은 다시 차에 탑승한 뒤, 연희동 수목공원 쪽으로 이동했다.
김서준은 그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빤히 예상됐기에, 차에서 내려 가벼운 걸음으로 수목공원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두 손에는 검은색 가죽장갑이 예쁘게 끼워져 있었다.
*
고한석은 연희동 수목공원의 입구 근처에 차를 세웠다.
김서준이 말한 30분이 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3분.
‘김서준, 이 개새끼! 내가 절대 그냥 두지 않는다!’
고한석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지금까지 그가 행하는 일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놈은 본적이 없었다.
동갑내기 친구들은 물론이요, 나이 좀 먹은 이,삼십대 어른들도 고한석의 말에는 꼼짝을 못했다.
그 이유가 자신의 아버지, 고태환의 사회적 위치와 막강한 권력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고한석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 배경을 더욱 교묘하게 써먹었던 것이고.
그런데, 처음으로 타인의 손에 하려는 일이 막히고 말았다.
김서준.
고작해야 F급 마력에, 체력도 약해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병신 같은 녀석이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실습 대련에서도 그냥 조용히 쳐 맞다가 알아서 항복해 주면 끝나는 일인데, 악착같이 달려들어 기어코 자신을 쓰러뜨렸다.
아무리 고한석이 방심했다고는 해도, 교수와 동급생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기절까지 했다는 건 정말 너무나도 창피한 일이었다.
고한석은 김서준을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아버지한테 말해서 김서준 뿐만 아니라 녀석의 아비까지 아주 작살을 내 놓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김서준과 1대 1 대결에서 처참하게 나동그라졌다는 사실을 먼저 밝혀야만 했다.
그건 두려운 일이었다.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지만, 그 자신도 아버지에게 크게 치도곤을 당할게 분명했으니까.
그래서 차선책을 택했다.
그건 바로 스케빈저들을 이용한 복수였다.
스케빈저는 신비를 각성했지만, 마력이 약하고 신비도 평범해서 크게 성장할 수 없게된 보잘 것 없는 헌터들을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결코 남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만 사용한다.
대부업을 하며 힘없는 시민들을 등쳐먹는다던지, 범죄조직과 손을 잡고 악행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복수대행업이었다.
말이 좋아 복수대행이지, 스케빈저들이 약한자의 편에 서서 가진 자를 처단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열에 아홉은 있는 자가 없는 자를 더욱 궁지를 몰기 위해 스케빈저의 복수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들을 이용해 먹기가 좋은 이유는, 약하긴 해도 신비를 가진 헌터들이라 평범한 경찰의 공권력으로는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스케빈저가 엮인 일에는 반드시 헌터를 잡는 헌터 경찰이 나서야 했고, 헌터 경찰이 나선다 해도 워낙 잘 도망다녀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무척이나 드물다.
그럴수록 스케빈저들은 사회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일반 시민과 약한 헌터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더욱 거대해지고 있었다.
‘그 자들 말을 믿어야 하나?’
고한석은 김서준이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았다는 스케빈저들의 말을 믿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했다.
스케빈저가 어제 의뢰를 수행하면서 뭔가 실수를 했으며, 그로 인해 김서준이 스케빈저 뒤에 자신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는 것.
그래서 차리리 이번 기회에 김서준이 다시는 마력을 쓸 수 없게 만들어 주기로 마음 먹었다.
‘귀화의 즙에 중독시켜놓고, 몸에 이것까지 주입하면 놈은 끝장이야.’
고한석은 상의 안주머니에 놓아둔 주사기를 살짝 꺼내봤다.
거기엔 녹색의 형광 액체가 담겨 있었다.
환마충의 체액.
이 액체가 몸 안에서 귀화의 즙과 뒤섞이게 되면 두번 다시 마력을 쓰지 못할 정도로 몸이 망가지게 된다.
‘나타나기만 해라, 김서준!’
고한석은 부릅뜬 눈으로 주변을 면밀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렀는데도 김서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약속한 30분은 이미 지났다.
‘날 놀리는 건가?’
고한석은 짜증난 얼굴로 김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통화가 되지 않습니다. 삐 소리가 난 후….
그로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
퍼억
가벼운 손날치기에 뒷목을 얻어맞은 사내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김서준은 수목공원 한쪽의 음습한 곳에서 쓰러지는 사내를 손으로 받아냈다.
한낮이었지만, 김서준이 있는 곳은 울창한 나무로 그늘이 져서 꽤나 어두웠다.
고한석에게 고용된 스케빈저들이 고맙게도 알아서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어 주었기에 처리가 한결 수월했다.
‘이로써 세 명째.’
김서준은 정신을 잃은 사내를 들쳐업고 조금 떨어진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엔 이미 김서준에게 제압되어 정신을 잃고 있는 사내 둘이 나무기둥을 중심에 두고 사이좋게 누워있었다.
김서준은 세번째 사내도 그들 옆에 눕혀놨다. 그리고 태양신공을 사내의 머리속에 밀어넣어 강력한 트라우마를 깊숙하게 심어두었다.
‘남은 건 한명.’
이미 그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다 파악해 두었다.
십여분 전, 이들은 공원 입구에서 200미터 떨어진 곳에 밴을 세워두었고, 거기서 흩어져 수목 공원으로 숨어들었다.
김서준은 뒤에서 그들의 행동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기에, 이들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훤히 알 수 있었다.
‘내가 고한석 앞에 나타나는 순간, 기습으로 날 사로잡겠다 이거겠지. 멍청한 놈들.’
고한석도 그렇고, 이자들도 그렇고 참 멍청하다.
물론, 상대가 19살의 김서준 한명 뿐이라는 사실이 이들로 하여금 큰 착각을 일으킨 걸수도 있었다.
‘어제 습격에 실패한 것도 그저 우연이라 생각한건가?’
이들의 마력이 D급에 불과하긴 해도 나름 범죄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 스케빈저들이다.
그런 베테랑 스케빈저 네 명을 19살의 아카데미 학생이 혼자 싸워 물리쳤다?
그 학생이 B급 이상의 마력을 지닌, 촉망받는 기대주라면 모를까.
김서준은 기껏해야 F급 마력을 가진 낙제생에 불과했으니 자신들이 완벽하게 실력에 밀려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을 터.
그래서 이들은 어제의 굴욕을 되갚고자 다시한번 고한석과 손을 잡고 이곳에 나서게 된 것이리라.
김서준은 오히려 그 덕분에 일이 쉬워졌다고 생각하며, 마지막 네 번째 스케빈저가 숨어있는 곳으로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네 번째 스케빈저는 어제 습격자들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았던 여자였다.
그녀는 고한석이 있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목표인 김서준이 자신의 뒤로 접근해 오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
수목공원 입구 바로 옆에는 마침 3층 건물 하나가 공사중이었다.
여인은 그 건물 옥상에서 몸을 바짝 숙인 채, 저 아래에서 서성이고 있는 고한석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서준이 고한석을 만나기로 한 시간은 벌써 5분이나 지났다. 고한석도 뭔가 이상한지 불안한 얼굴이었다.
그러다 고한석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뭔가 잘못됐는지 고한석이 흠칫 놀라더니 급히 여인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손으로 엑스자를 그리더니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 표시는 작전 종료를 의미했다.
‘이렇게 끝내겠다는 건가?’
허무함에 한숨을 내쉬는 그때였다.
여인은 묘한 위화감에 몸을 홱 돌리며 단검을 내던졌다.
누르스름한 빛을 띈 단검은 섬전처럼 공간을 갈랐다.
놀랍게도 그 끝에는 마스크와 모자, 후드티로 얼굴을 가린 김서준이 서 있었다.
“감 좋네.”
김서준은 선 자세 그대로 날아드는 단검을 단숨에 낚아챘다. 그러더니 쭉 펼치고 있던 검지와 중지를 안쪽으로 휙 꺾었다. 순간,
피잉
여인으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가 날아들었다.
마치 또 다른 방조자가 다른 장소에서 암기를 날린 것 같은 상황.
하지만 그건 김서준이 펼친 천궁시의 요격 초식일 뿐이었다.
빠악
여인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돌멩이를 쳐냈다. 평범한 돌멩이가 아닌 것인지, 돌멩이를 쳐낸 손에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때,
콱
어느새 코앞으로 달려든 김서준이 여인의 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경악한 여인이 반격하려고 손을 들썩이는 순간,
퍽
김서준은 일말의 자비도 없이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쳤다.
“여자라고 봐주는 건 없어.”
기절한 여인의 목을 움켜쥔 상태로 그녀의 품을 뒤지자 노란색 액체가 반쯤 남은 작은 병을 찾을 수 있었다.
김서준은 그걸 챙겨넣은 뒤, 여자를 바닥에 내팽게쳤다.
공사중인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니 고한석이 자신의 차량 쪽으로 급히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도망치겠다? 그렇게는 안돼지.’
김서준은 그대로 옥상 난간을 박차며 날아올랐다.
한마리 비조처럼 날아오른 김서준은 놀랍게도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고한석을 향해 내리꽂혔다.
고한석은 그것도 모른 채 황급히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그 순간,
쿠웅
바로 뒤쪽에서 큰 울림이 일더니 뒷좌석 문이 열렸다가 쾅하고 닫혔다.
“누구….!”
고한석이 소리치며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고 뒷좌석으로 들어온 누군가를 향해 공격을 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상대가 한발 빨랐다.
고한석의 몸이 채 반이 돌기도 전에 뒷좌석에 탄 침입자의 팔뚝에 목이 휘감기고 말았다.
“움직이면 죽어.”
“커흑!”
고한석은 상대가 누군지 보지도 못했다.
목소리도 잔뜩 갈라져있어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뒷좌석의 사내는 운전석 목받침 쪽으로 고한석의 머리를 확 끌어당긴 채 목을 꽉 옥죄고 있었다.
“잘 들어. 이제부터 내 질문에 네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넌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다.”
저승사자마냥 무서운 목소리에 고한석은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대답했다.
“….네.”
얌전해진 목소리에 뒷좌석의 사내가 피식 웃었다.
“고분고분해서 좋군.”
후드와 모자, 마스크로 철저하게 얼굴을 가린 그는 김서준이었다.
비뢰신보를 펼쳐 귀신처럼 날아든 그는 고한석이 운전석에 타는 순간, 동시에 뒷좌석으로 스며든 것이다.
김서준은 내공으로 목소리를 변조한 뒤, 태양신공을 끌어올려 고한석의 머리에 강렬한 공포를 서서히 불어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