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스케빈저를 고용해 김서준을 습격한 건, 고한석 네 놈 지시였나?”
“네. 마, 맞습니다.”
고한석은 감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의 뒤에서 위협하고 있는 자는 스케빈저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목소리 만으로도 두려움이 느껴졌고, 마치 끝없는 어둠 속에 잠식되듯 공포스러움이 밀려들었다.
“귀화의 즙으로 김서준의 인생을 망치려고 한 것도 네 놈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고?”
“네….”
고한석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네 아버지가 시킨 건가?”
“아니, 아닙니다. 저 혼자…..”
“그럼 이제 곧 네 아버지도 모든 걸 알게 되겠군.”
“제발…. 제발 그것만은! 부탁드립니다! 뭐든지 드릴게요. 돈을 원하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그만.”
몰래 모든 걸 녹음 중이던 김서준은 이쯤에서 질문을 관뒀다.
어차피 얻을 건 다 얻었고, 태양신공을 이용해 고한석의 뇌리에 충분한 수준의 공포를 각인시켰다.
이제 마지막으로 고한석에게 처벌을 내릴 시간이었다.
“만약, 또 다시 김서준을 괴롭힌다면 네 목숨은 그 순간 끝장 날 거다.”
“저,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김서준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겠습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할 거야.”
김서준은 방금 스케빈저 여자가 내던진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걸 고한석의 목에 슬쩍 가져다 댔다.
“아, 안됩니다. 제발! 그, 그건 보통 물건이 아닙….”
“네 업보다.”
스윽
단검이 고한석의 목을 살짝 그었다.
“아악!”
고한석은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을 떨기 시작했다.
김서준은 어제 주웠던 단검과 고한석의 목에 상처를 낸 단검, 그리고 스케빈저 여인에게 빼앗은 노란색 병까지 조수석에 툭 던져 놓었다.
그리고 조용히 차량에서 빠져나왔다.
김서준이 사라지자마자 고한석은 운전석에서 발버둥 쳤다.
귀화의 즙이 발라진 단검에 상처를 입었고, 상처 속으로 즙이 흘러들어갔기 때문.
고한석의 눈앞엔 환영이 가득했다.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인들의 머리통이 사방을 휘저으며 점점 고한석 쪽으로 다가왔다.
귀 아래까지 쭉 찢어진 입으로 섬뜩한 미소를 그린 채, 개구리처럼 툭 튀어나온 눈으로 고한석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크아악!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실재하지 않는 환영임에도 고한석은 진짜인 것처럼 손을 휘젓고 몸을 마구 뒤틀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퍽
고한석이 휘두른 손이 운전대를 강하게 후려쳤고, 그 충격에 에어백이 터졌다.
몸부림치던 고한석의 가슴팍을 에어팩이 후려치면서 하필이면, 그의 상의 안주머니에 있던 주사기를 건드렸다.
몸부림으로 인해 주사기 바늘을 덮고 있던 캡이 벗겨져 있었고, 주사바늘은 고한석의 가슴을 깊숙히 찔렀다.
에어백의 힘으로 피스톤까지 밀려 주사기의 액체가 고한석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크헉!”
고한석의 몸이 벼락을 맞은 듯 딱 멈췄다.
잠시 후, 고한석은 에어백 위로 얼굴을 기대며 실실 웃기 시작했다.
“히히…. 히히힛….”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웃기 시작한 고한석.
그의 입에서는 침이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
2시간 뒤.
김서준은 자신의 집이 있는 아파트로 돌아왔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은 그는 폰으로 뉴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사실, 김서준은 고한석을 버려두고 그 장소를 떠나는 길에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다.
스케빈저들과 헌터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고.
특히, 헌터는 어린 학생으로 보였는데 무슨 약을 한 것처럼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경찰이 출동하는 모습까지 확인하고 자리를 떠났던 김서준.
그는 그 뒤에 고한석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예상대로 고한석과 관련된 뉴스가 속보로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헌터 아카데미 1학년 생, 유사마약에 취하다!]
[환각성분에 쩌든 고한석, 그는 스케빈저와 무슨 거래를 한 것일까?]
[고한석의 아버지는 현무 길드의 부길드장 고태환이었다!]
[스케빈저는 왜 고한석 학생을 해치려 했나?]
[사회의 악, 스케빈저. 왜 균열 관리국은 그들을 뿌리뽑지 못하는가!]
고한석이라는 이름은 포탈 사이트 검색어 5위 안에 오를 정도로 순식간에 이슈화 되었다.
뉴스 기사에 나온 내용은 간단했다.
현무 길드 부길드장인 고태환의 아들이자, 제3 헌터 아카데미의 1학년 생인 고한석이 마약에 취해 스케빈저들과 싸움을 벌였다는 것이다.
스케빈저 세 명이 현장에서 기절한 상태로 헌터 경찰에 연행되었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사건을 부인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증거가 너무 명확했기에 그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내용을 통해 김서준은 여자 스케빈저는 알아서 잘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잡히면 오히려 방해가 되기에 일부러 놔준 것이기도 했고.
반면, 고한석의 상태는 다른 면에서 꽤나 심각했다.
헌터들의 마약이라 불리는 초고가의 환각성분인 귀화의 즙을 투약받은 고한석.
거기다 그의 몸에서 환마충의 체액이 담긴 주사기까지 발견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 커졌다.
나름 장래가 촉망되는 아카데미 학생이었지만, 귀화의 즙과 환마충의 체액이 몸 안에서 뒤섞였고 그 결과 회생 불능의 상태로 몸이 망가진 것이다.
고한석 측에서는 한낱 스케빈저 따위가 감히 이런 일을 벌였을 리가 없다며, 제 삼자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그 주변에서 제 삼자를 봤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고, 심지어 주변 CCTV에도 고한석이 스케빈저들과 만나는 장면 말고는 아무것도 잡힌 게 없었다.
있다면 스케빈저들과 한편으로 보이는 여인이 CCTV에서는 보였는데, 사건 현장에서는 모습을 감췄다는 정도?
그 뉴스들을 접한 김서준은 슬며시 미소지었다.
스케빈저들이나 고한석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올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태양신공을 이용해 그들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으면서 무의식 적으로 김서준이라는 이름을 완벽히 거부하게 해 놨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완벽하게 제압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는 제약이 있긴 했지만, 제압에 성공만하면 상대에게 특정 사물, 또는 사람에 대한 트라우마를 강제로 심어넣을 수가 있어 굉장히 유용한 수법이었다.
고한석이 마지막으로 통화한 인물로 김서준이 지목될 수는 있다.
하지만 아카데미 실습 수업 중에 다치게 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는 사과를 한 것 뿐이라고 하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 고한석 그 녀석…. 환마충의 체액도 가지고 있었던가?’
그건 김서준도 몰랐던 일이라 조금 황당했다.
하지만, 김서준 입장에선 오히려 시원하고 만족스런 결과였다.
‘이로써 고태환이 환마충의 체액을 써서 아버지를 해치려고 했다는 것도 증명이 된 거고.’
고한석을 나락으로 보내버렸으니, 다음은 고태환 차례였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고한석처럼 쉽게 생각하면 오히려 당한다.
그러니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확실한 기회가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김서준은 모자와 마스크를 벗어 가방에 챙겨 넣고, 가뿐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건 부모님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즐기는 것 뿐이었다.
***
그날 저녁.
김서준과 김주혁은 백연지 여사의 손에 이끌려, 집 근처에 위치한 유명한 소고기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갑작스런 외식에 김주혁이 크게 놀라했지만, 김서준은 그 이유를 너무도 잘 안다.
이 외식의 주인공은 바로 김주혁이었으니까.
김서준은 집으로 귀가하는 도중 백연지에게 연락해 아버지가 마력 59의 벽을 넘어서서 드디어 CC급의 헌터가 되었음을 알렸었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헌터 김주혁의 아내로서, 그리고 지금은 헌터가 되기 위해 아카데미에서 교육 중인 김서준의 엄마로서 살아가고 있는 백연지였기에 헌터의 등급 구분에 대해서는 빠삭했다.
59의 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있던 김주혁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동안 얼마나 가슴아파 했던가.
그녀에게 있어 김주혁이 행정 사무직으로 좌천된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가 가장 걱정하는 건, 김주혁의 상실감이었다.
DC급에 불과하지만, 그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김주혁이 얼마나 뿌듯해 했는지를 백연지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랬던 그가 마력 59의 벽을 넘지 못해 결국 행정 사무직으로 좌천 되었을 때, 얼마나 큰 상실감을 느꼈을 지 백연지가 어찌 모를까.
그런데 이제 그 벽이 부숴졌다.
아들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 백연지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래서 남편 김주혁을 얼싸안고 눈물까지 흘렸었다.
백연지는 그런 연유로 이날 저녁을 외식으로 정했다.
더 비싸고, 더 훌륭한 음식점도 있었지만 먹성 좋은 남자가 둘이나 있는 세 명 가족에겐 한우 소고기 집만한 곳이 없었다.
세 사람은 ‘우나라 소나라’라는 간판을 단 음식점에 들어섰다.
이곳은 증산역 근처에서 꽤 이름난 곳이었고, 늘 손님들이 꽉 차있는 맛집이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빈 자리가 꽤 보였다.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창가에 앉게된 김서준 가족.
예쁜 베레모에 마스크, 그리고 앞치마까지 두른 여 종업원이 메뉴판을 건네자 백연지는 그걸 김서준에게 넘겼다.
“주문은 서준이가 해. 네 아빠한테 맡기면 죄다 싼 거만 고를 거라 안돼.”
“커흠. 어차피 고기가 다 거기서 거긴데 굳이 비싼 부위 시켜먹을 이유가 없지 않소?”
“거 봐라. 엄마 말대로지?”
백연지는 이런 곳에 와서까지 꼭 그래야 하냐며 김주혁을 째려봤다.
그 사이 김서준이 주문을 마쳤다.
이 집에서 가장 비싸고 맛있는 살치살과 꽃등심 위주로 시켰고, 냉면에 돌솥비빔밥, 그리고 알밥까지 다양하게 주문했다.
김주혁은 슬쩍 백연지 여사 눈치를 보다가 소주도 시켰다.
아버지가 술 마시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백연지였지만, 이날 만큼은 피식 웃어보이며 음주를 허락해 주었다.
밑반찬이 세팅되고 숯불도 올라왔다.
뜨거운 숯불 위에서 꽃처럼 예쁜 마블이 새겨진 고기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자 절로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김서준은 고기가 익기도 전에 소주부터 한 잔 걸치는 아버지에게 상추와 깻잎 위에 고기 한점을 올리고, 마늘과 고추까지 정성스럽게 쌈을 싸서 드렸다.
김주혁은 처음엔 어색해 하더니 곧 만면에 웃음을 띄며 한입에 쌈을 넣어 씹었다.
다음은 백연지 여사였다.
매운 걸 무척이나 즐기는 분이었기에 쌈장과 고추를 푸짐하게 얹어 쌈을 싸 드렸다.
“아들이 싸줘서 그런가? 오늘 따라 너무 맛있는데?”
백연지 여사는 단숨에 쌈을 삼켜버리곤 감상평까지 내 놨다.
김서준은 즐거워 하는 부모님을 보며 이것이 행복이구나 싶었다.
20년 전, 이전 세계의 김서준은 아홉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기에 제대로 효도라는 걸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선 가능했다.
과거에 하지 못했던 효도를 이곳에서 만큼은 후회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해 드릴 수 있었다.
‘다시 제 곁으로 돌아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서준은 조금씩 얼굴이 붉어지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사랑이 담긴 쌈을 싸 주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마음속 깊이 감사드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주문했던 고기가 거의 사라지고, 아버지가 드신 소주도 두 병이 다 비워졌을 때였다.
“…..아니, 사람이 무슨 말 귀를 이리 못알아 먹어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신비를 각성한데다가 태양신공까지 익힌 김서준이었기에 음식점 한쪽 구석에서 오고가는 대화도 자세히 들을 수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 가게는 인플루언서의 홍보도 좋지만, 그보다 서비스와 맛으로 입소문을 타는데 주력하고 있어서 말씀하신 내용은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170이 조금 안되는 작은 키를 한 남자 종업원이 세 명의 여자 손님들에게 정중히 사과하는 중이었다.
“이봐요. 내가 지금 그런 말을 일개 종업원한테 들어야 겠어요? 매니저 불러요. 아니, 여기 사장 좀 불러달라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감히 내 제안을 거절해? 흥!”
손님으로 보이는 여인 한명이 처음엔 존대를 하다가 아예 반말로 종업원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나이는 스무살 중반 정도.
같이 온 여자 두 명은 친구인듯 보였는데, 그들도 종업원을 위 아래로 흘겨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구를 불러도 똑 같은 대답일 겁니다. 손님께서 정상적으로 결재만 해 주신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누가 결재를 안 한데? 결재 할 테니까 50% 디씨를 해 달라는 거 잖아? 당신, 나 몰라? 지난 주에 음식점 리뷰 하나로 3백만 뷰 달성한 혜수맛져 채널 주인이라니까?”
이제보니 저 여자 손님은 자신이 유명 인플루언서라는 점을 이용해 합의 된 적도 없는 가격 할인을 요구하고 있는 거였다.
“내가 맛 집 리뷰영상 하나 안좋게 찍으면, 이 집 문 닫아야 할텐데 상관 없겠어? 혼자 책임 못질거면 당장 사장 불러 오라고!”
“손님. 그렇게 억지를 부리셔도 안되는 건 안되는 겁니다. 죄송하지만 정상적으로 결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종업원도 만만치 않았다.
벌떡 일어선 여자 손님보다도 키가 작은 종업원이었지만, 무대뽀 같은 손님을 상대로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다.
“당신, 이름이 뭐야? 여긴 어디서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을 데려다 종업원으로 쓰는 건데? 어디, 잘난 얼굴이나 좀 보여줘 보시지!”
여인, 방효진이 뾰족하게 소리를 치더니 손으로 종업원의 마스크를 확 낚아챘다.
벗겨버린 마스크를 바닥에 내팽게친 방효진은 드러난 종업원의 얼굴을 보고는 입에 비웃음을 걸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생긴게 그따위라 말이 안 통하는 거였구만? 다들 보셨죠? 여기 이 종업원이 얼마나 사가지 없는지. 생긴 건 무슨 도둑놈 처럼 생겨가지고!”
“손님. 말씀이…. 심하십니다.”
종업원은 두 주먹을 꽉 쥔 채 억지로 분노를 참는 듯 보였다.
멀리서 종업원의 맨 얼굴을 보게 된 김서준은 다른 의미로 크게 놀라고 말았다.
마스크가 벗겨지며 드러난 얼굴.
그 얼굴은 김서준이 매우 잘 아는, 익숙하고 친근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창석이 형?’
오창석.
그는 이전 세상에서 김서준과 가장 가까웠던 일곱 명의 동료 중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