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천재의 헌터 라이프-14화 (1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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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준에겐 길고 길었던 주말이 끝나고,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었다.

집에서 아카데미까지는 걷는 시간을 포함해 40분이면 충분했다.

출근하는 인파로 가득찬 지하철.

김서준은 지하철 창밖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어제 저녁, 아버지로부터 용돈 인상 20%까지 확실히 획득해낸 김서준.

지금 김서준의 기분은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지난 주말 동안 정말 많은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

부모님께 추궁과혈로 효도를 해 드렸고, 그토록 자신을 괴롭혀 왔던 고한석에게 확실한 참교육을 시전해 주었다.

게다가 아버지의 평생 숙원이나 마찬가지인 마력 59의 벽을 깨뜨릴 수 있는 계기 또한 마련해 드렸다.

이 세계엔 무공이 존재하지 않지만, 기존의 지식을 이용해 완벽하게 익히는게 가능하다는 사실도 김서준에겐 크나큰 기쁨이었다.

더불어 잘만하면 무공을 신비로 각성시키는 것 또한 가능한 상황.

물론, 100%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토요일엔 균열이 발생해 많은 희생자가 나왔으며, 전 세계에서 공포로 자리잡은 마신병이 가이아닉스라는 회사에서 만들어낸 전술로봇일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도출되었다.

아버지도 모르게 환마충의 체액을 주입해 마력 성장을 막고, 건강 또한 악화시킨 범인이 고태환이라는 증거도 확보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무리 김서준이라고 해도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정도의 능력은 없었다.

‘누구부터 찾는게 좋을까?’

김서준은 자신을 도울 동료를 모을 생각이었다.

김서준이 믿고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동료라고 할만한 인물은 일곱 명.

다섯이 남자고, 둘은 여자다.

일곱 명 중, 남자 셋은 김서준보다 나이가 많았으며, 동갑이 둘에, 동생이 둘이었다.

저쪽 세계에서 늘 김서준을 그림자처럼 따르며 위험에서부터 김서준을 지켜주었던 동료들.

그중 한 명인 오창석은 바로 어제 집 근처 고기집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하지만 뭔가 비밀스런 신분을 지닌 것으로 보여 인연을 만들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오창석을 만났기 때문인지 다른 동료들도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가 사뭇 기대된다.

‘여기선 모두들 잘 살고 있겠지?’

이전 세계에서는 그들 모두 천마군장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치열하게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헛되이 목숨을 버리지 않고 잘 살고 있기를 마음 속 깊이 바랐다.

제각각의 성격에 절대 한뜻으로 뭉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독특한 성정의 동료들이다.

그들은 무공도 강력했지만, 김서준을 돕고 천마군장를 쓰러뜨리겠다는 마음가짐 또한 지독했던 인물들이었다.

‘특히 대만이 형이 가장 심했지.’

불괴야차(不壞夜叉) 박대만.

7인의 동료 중, 가장 연장자이면서 가장 정의로웠던 인물.

190이 넘는 거구에 근육 덩어리 몸을 가졌던 그는 37살의 대머리 사내로 김서준과 동료들을 이끄는 리더의 역할을 수행했었다.

무대뽀처럼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누구보다도 신중하며, 치밀한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전략가였던 박대만.

그를 우선적으로 찾아낸다면 다른 동료들을 찾아 자신의 편에 서게 하는 것도 한층 쉬워지리라.

‘여기선 어떤 모습으로 지내려나?’

박대만은 이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전역의 무승들이 모여 만들어낸 ‘누리주’라는 문파의 항마호법(抗魔護法)이었다.

그의 성격과 사상이 그대로라면 이곳에서도 결코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있지는 않을 터.

‘번듯한 헌터가 되서 활발하게 정의구현 중이지 않을까?’

그럼 대한민국의 헌터 명단을 구해 이름부터 확인해 보면 된다.

문제는 신빙성 있는 헌터 명단을 구하는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헌터들의 신상정보는 균열관리국의 메인 데이터베이스에만 기록되기 때문에 아무나 쉽게 그 정보를 열람할 수 없었다.

적어도 C급 이상의 중,상급 헌터 라이선스가 있어야 균열관리국의 인트라넷에 접속할 수 있는 ID가 발급되는 것이다.

즉, 김서준의 아버지도 ID를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당장은 아는 헌터도 없는데….’

아카데미에서도 워낙 아웃사이더로 지내오던 김서준이라 교우 관계도 좋지 못했고, 이름있는 선배 헌터들과도 전혀 친분을 나누지 못했다.

김서준은 ID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잠시 고민했다.

‘아카데미 교수들한테는 학생들 교육 때문에 ID가 지급된다고 했던 거 같은데?’

아카데미 교수들은 D급부터 B급까지 다양했다.

A급 헌터들은 나이를 먹더라도 길드에 소속된 상태로 후배를 양성하는 편이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기에 아카데미 교수가 되는 경우가 드물다.

아무튼, 김서준은 아카데미 교수들에겐 기본권한 뿐이긴 해도 균열관리국 인트라넷을 사용할 수 있는 ID가 지급된다는 걸 기억해 냈다.

그리고 교수의 ID를 빼돌려 균열관리국 인트라넷을 사용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 때, 김서준은 아카데미가 있는 불광역에 도착했다.

불광역 2번 출구로 나와 북동쪽으로 200미터쯤 가자 바로 아카데미 정문이 보인다.

[제3 헌터 아카데미]

김서준이 다니고 있는 아카데미의 교문에 큼지막하게 써있는 글자였다.

서울에 위치한 헌터 아카데미는 총 세 곳.

제3 헌터 아카데미는 배출하는 졸업생의 수준이 가장 낮다고 평가받는 곳이었다.

각성한 학생들 중, 마력이나 신비가 B등급 이상인 학생들은 모조리 제1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그 나머지가 제2, 제3 아카데미로 배정된다.

따라서 제3 아카데미의 1,2학년에는 마력이나 신비가 B등급 이상인 학생이 없다.

그렇다면 신비 등급이 A인 김서준이 제3 아카데미를 다니게 된 이유는 뭘까?

각성자 면접 시, 김서준의 헌터 적합도가 40점으로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낮아 면접관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질문에 제대로 대답도 못해 우물쭈물 거렸으니 적합도가 높게 나올 수가 없었다.

사실상 제2 아카데미와 제3 아카데미는 실력적으로 별 차이가 없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제3 아카데미가 은근히 무시당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래도 일반 대학이 아닌, 무려 헌터 아카데미다.

헌터들 세상에서나 무시당하지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시점에서는 제3 아카데미의 학생들 또한 대단하고, 부러운 존재일 뿐이었다.

교문을 지나고, 화려하게 꾸며진 교내 도로를 가로지르자 웅장한 모습의 건물들이 속속 드러났다.

여러 개의 강의동과 수련동에 이어 실습동과 식당, 기숙사 등이 보기좋게 배치되어 있었다.

김서준은 그중 1이라는 숫자가 간판처럼 새겨진 강의동으로 향했다.

아카데미의 한 개 학년은 40명 씩 세 개의 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반을 구분하는데에는 별다른 기준이 없었다.

대신, 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전투학과, 마력학과, 지원학과로 구분되어 전문성을 갖추게 된다.

김서준의 경우, A급의 전투형 신비를 가졌기에 전투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평가점수가 너무 낮아 잘못하면 2학년이 되기도 전에 퇴학당할지도 몰랐다.

평가점수가 최소 50점이 넘어야 다음 학년으로 진학이 가능했고, 그 아래는 유급된다.

그리고 20점 아래의 학생에겐 유급이 아닌 퇴학조치가 내려지는데, 아카데미가 설립된 이래로 퇴학이 실제로 이루어진 경우는 단 한번 뿐이었다.

그 이유도 평가점수 때문이 아니라, 해당 학생이 빌런화 되었기에 내려진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김서준은 어린 김서준의 과거를 떠올리며 씁쓸한 얼굴로 강의실에 들어섰다.

그가 들어서자 왁자지껄 떠들던 강의실이 순식간에 침묵에 빠졌다.

모두의 시선이 김서준에게 쏠렸다.

그 시선엔 전에 없던 경계나 두려움 같은 감정이 잔뜩 실려있었다.

‘그 거만한 고한석을 날려버렸더니 아주 제대로 효과를 보는군.’

툭하면 김서준에게 시비를 걸고, 중고등 학생 때나 하던 일진놀이를 즐기던 학생들이 김서준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김서준이 날려버린 고한석은 이 반은 물론, 1학년 전체에서 TOP3에 드는 강자였고, 10대 길드 중 하나인 ‘현무’의 부길드장 고태환의 아들이었으니까.

김서준은 자신을 향해 힐끔거리는 것에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학생들을 훑었다.

그러다 고한석과 가장 친하게 지내던 큰 덩치의 학생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학생이 흠칫하더니 고개를 완전히 돌린다.

‘효과 좋은데?’

김서준은 속으로 고소함을 느끼며 후미진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학생 몇몇이 조용히 소근거리는 소리가 김서준의 귀를 간질였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내용이 가관이었다.

화제의 중심은 고한석이였다.

고한석이 헌터들 사이에선 금기시 되는 귀화의 즙을 자기 몸에 투약했으며, 정부의 허가없이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중죄가 되는 환마충의 체액까지 사용했다는 내용이었다.

거기다 스케빈저들을 고용해 불법적인 일까지 자행했음이 드러나 실형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버지가 고태환이니 무슨 수를 써서든 감형받겠지.’

하지만 무죄로 빠져나오는 건 어려울 것이다.

여론 때문이라도 단 한달이든, 두달이든 실형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로 인해 고한석은 더 이상 아카데미에 다닐 수 없게 될 테니까.

학생들의 이야기를 엿듣던 김서준은 피식 웃고는 그들에게서 관심을 접었다.

‘오지랖 부리는 건 여기까지.’

김서준은 이곳에서 만큼은 대의를 위해 살아가는 영웅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돌볼 줄 아는 소시민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고한석 건은 녀석이 먼저 자신을 향해 악의를 드러냈기에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였지만, 이 이상 나서는 건 여러모로 부담스러웠다.

물론, 최종보스나 다름없는 고태환도 언젠가는 반드시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 줄 생각이었다.

‘신비가 있는 이상 평범한 소시민은 절대 될 수 없겠지만, 뭐. 그건 그거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피식 웃는 김서준.

그때, 강의실 문이 열리며 담당교수인 심재덕이 나타났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학생들을 쭉 둘러보더니 김서준에게서 시선을 잠시 멈췄다.

딱 보기에도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 심재덕.

마치 ‘네가 고한석을 때려눕혔기 때문에 결국 그런 사단이 난거다’라며 김서준을 탓하고자 하는 속마음이 훤히 느껴지는 표정과 눈빛을 내보였다.

하지만 그런 표정과는 다르게 심재덕은 별다른 말 없이 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오늘 오전 수업은 몬스터 도감을 확인하고, 각 몬스터별 특징과 출현한 균열 위치 등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재밌는건, 김서준의 머릿속에는 이미 몬스터 도감의 내용이 꽤나 자세하게 기억되어 있다는 것이다.

수업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어린 김서준이 혼자 예습을 했다는 말인데, 그 범위와 정확도가 교수의 설명보다 훨씬 심도가 깊었다.

김서준이 머리에 담고 있는 정보는 생각보다 훨씬 방대했다.

산소중독증세로 인해 육체를 활용하는 일이 어려웠기 때문인지, 어린 김서준은 틈 나는데로 책을 읽고,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일에 몰두했다.

대한민국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헌터 길드의 순위를 외우고 있는 건 기본이요, 유명한 헌터들의 신상정보는 보지도 않고 줄줄 외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머리 좋네, 김서준.’

이 몸의 원래 주인이자, 자기 자신이기도 한 어린 김서준을 남처럼 대하는 것이 우습긴 해도, 그의 머리가 좋다는 사실 만큼은 인정해 줘야 했다.

하지만, 그 외적인 면에서의 어린 김서준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병신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미 한손 가득 쥐고 있는 행복도 알아보지 못하고, 산소중독증을 지닌 자신의 운명만을 탓하며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왔던 어린 김서준.

‘그 좋은 머리와 신비를 가지고도 아카데미에서 왕따나 당하고 말이지.’

김서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열과 성의를 다해 강의에 집중하고 있는 심재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 뭔가를 떠올리고 눈을 반짝였다.

‘잠깐. 교수 ID를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잖아?’

저 앞에 먹음직 스러운 먹잇감이 ‘내 ID를 훔쳐줘!’라며 두 팔을 벌린 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심재덕 교수.

CC급 헌터 라이선스를 지닌 40대 초반의 헌터.

그는 23살에 제2 헌터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약 5년 간 사설 길드에 들어 헌터 생활을 하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균열관리국으로 투신했다.

거기서 다시 7년간 균열관리국 요원으로 지냈으나 나이가 들자 관리국 추천을 받아 제3 헌터 아카데미의 교수로 발탁된 것이다.

그런데, 저 심재덕 교수는 이상하게 어린 김서준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사사건건 김서준의 행동에 제동을 걸었고, 일부러 강한 학생을 대련 상대로 붙여주거나 괜히 어려운 질문을 던쳐 창피를 주는 방식으로 ‘난 네가 싫다’라는 감정을 아무렇지 않게 표출했다.

그런 심재덕 교수의 행동이 동급생들에게 불을 지폈다.

교수에게 미움받는 학생인데 이보다 더 좋은 장난감이 어디에 있겠는가.

거기다 김서준은 1학년 전체를 따져서 최약체였다.

몸은 허약하고, 신비는 제대로 사용할 줄도 모른다.

괴롭혀도 반항하는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욕을 하고, 웃음거리로 만들어도 혼자서만 분통해 할 뿐 대놓고 따지는 행동 또한 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김서준의 아카데미 생활은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을 수밖에.

어린 김서준의 어두웠던 과거가 떠오르자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이번 기회에 저 교수, 제대로 엿을 먹여줘야겠어.’

김서준은 심재덕의 균열관리국 ID를 훔쳐 마음껏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빠른 시간 안에, 동급생들이 자신을 우습게 보지 못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미 고한석을 시원하게 때려눕힌 일로 김서준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는 있었지만, 아직은 부족했다.

또한 어린 김서준을 궁지로 몰아갔던 심재덕 교수에게도 적당한 참교육이 필요했다.

‘이왕 하는 거, 확실하게 보여줘야겠지?’

자신은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하면서, 확실하게 자신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버릴 생각이었다.

김서준이 어떻게 일을 벌일까를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오전 수업이 끝났다.

“…. 이것으로 오전 수업은 끝이다. 다들 점심 맛나게 먹고, 오후 실습 시간에 보자. 그리고, 김서준?”

심재덕이 갑자기 김서준을 불렀다.

“네?”

“넌, 지금 바로 내 방에서 좀 보자.”

“….”

김서준은 딱히 대답을 안했지만, 심재덕은 상관없다는 듯 바로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나만 따로 부른다라…. 고한석 일로 할 말이 있는 건가?’

대충 예상되는 상황이 있었지만 별로 신경쓰이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하려는 일에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김서준은 서둘러 심재덕 교수의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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