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김서준 학생.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심재덕이 학생 앞에서 담배를 물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요.”
김서준의 성의없는 대답에 심재덕은 눈썹을 찌푸렸다.
“넌, 대련 상대가 더 이상 대련을 계속할 의사가 없는데도 기습을 가해 심각한 부상을 입혔다. 설마 그걸 모른다고 발뺌할 셈이냐?”
“….고한석이 대련을 계속할 의사가 없었다고요? 누가 그럽니까?”
“내가 봤다. 고한석 학생은 너한테 그만하자는 뜻으로 손바닥을 펼쳐 보였어!”
“하. 그럼 왜 중단시키지 않으셨습니까, 교수님?”
김서준은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는 심재덕이 우습기만 했다.
어떡하든 트집을 잡아 뭔가 불리한 조치를 가하려는 의도가 빤히 보였으니까.
“그건…. 네가 너무 빠르게 기습을 해서 타이밍을 놓친 것 뿐이다.”
“그런 중요한 타이밍을 놓치다니…. 교수로서의 자질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뭐라고!”
“게다가, 엄연히 대련 실습 중이었습니다. 약간의 부상 정도는 늘 있어왔고요. 게다가 전 고한석으로부터 명백히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교수님도 뉴스 보셨을 텐데요? 고한석은 평소에도 귀화의 즙을 사용해서 정신 상태가 올바르지가 않았어요. 저와 대련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던거 아닙니까? 제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았다면, 약쟁이 학생의 손에 크게 다칠뻔 했다 이겁니다. 교수님은 그걸 방치한 무능한 교수가 될 수도 있었다고요!”
김서준의 자기 변호는 꽤나 적극적이었다.
심재덕은 일부러 엄포부터 놓고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오려고 했다가 되려 자신이 곤란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가 알던 김서준이라면 절대 이럴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이 왜 이렇게 달라졌지?’
그는 김서준이 고한석을 쓰러뜨린 건 우연이라 생각했고, 소심한 김서준을 생각하며 여전히 쉽게 보고 있었다.
하지만 대화를 하고보니 결코 만만치 않음이 느껴진다. 심재덕은 급히 작전을 바꿨다.
“크흠. 뉴스는 나도 봤다. 고한석 학생이 그런 학생일 줄은 나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고. 어쨌든 담당 교수로서 학생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으니 내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는 없지.”
“이제야 인정하시는 건가요? 교수님의 방임이 고한석을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게 했다는 것도 인정하십니까?”
“그건…. 억지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학생은 무려 40명이 넘는다. 그들 모두의 사생활에까지 내가 일일이 간섭할 수는 없지 않느냐?”
심재덕은 한발 물러섰다.
그에겐 김서준에게 받아내야 할 대답이 있었기에, 괜히 흥분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서준도 그런 심재덕의 속마음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좀 더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간섭이 아니라, 관심이 필요한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는 사실을 모르시진 않겠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학생들에게 그 관심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학생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누가 그러느냐? 내가 장담하는데, 나보다 더 학생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는 교수는 이 아카데미에 몇 없을 거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친구를 너무 욕하진 마라.”
“누가 친군데요? 고한석이요? 이제와서 교수님도 모른척 하시는 겁니까? 그 자식이 절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는 사실을 몇 번이나 교수님한테 말씀드렸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김서준은 팩트로만 공격했다.
아카데미에서 따돌림이 너무 심해, 어린 김서준은 큰 결심을 하고 도움을 받기 위해 심재덕을 찾았었다.
하지만 심재덕은 고작 학생들끼리 장난 좀 치는 걸로 뭔 호들갑이냐며 오히려 김서준을 나무랐었다.
“그거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의 신분으로 어느 한쪽 말만 듣고 편견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게다가…. 후. 아니다. 됐으니 그 얘긴 그만하자.”
심재덕이 돌연 말을 끊었다.
“어쨌든 이제 고한석 학생도 대가를 치르게 된 상황이니, 잘잘못을 따지는 건 그만 두자꾸나. 너도 더 이상은 고한석 학생과 관련하여 쓸데없이 입을 놀리지 않게 조심하고.”
갑작스레 이야길 마무리짓자 김서준은 살짝 의구심이 들었다.
‘이렇게 쉽게 끝낸다고?’
문뜩 심재덕이 고한석 이야기를 꺼냈던 건, 다른 이야기로 김서준을 끌어들이기 위한 밑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지는 심재덕의 이야기는 김서준의 예상대로였다.
“사실, 고한석 학생은 아카데미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인재였다. 그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그런데요?”
“원래 아카데미에서는 이번 주말에 고한석 학생의 실전 경험을 위해 균열 레이드에 참가시키려고 했다. 다른 경험많은 베테랑 헌터들과 팀을 짜서 함께 균열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이거지.”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자 김서준은 바로 심재덕이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챘다.
“저보고 대타를 뛰라는 겁니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튀어나온 질문.
심재덕은 속마음을 들킨 듯 흠칫 하더니 괜히 헛기침을 흘렸다.
“크흐흠. 그, 그래. 네 말대로다. 고한석 학생이 참가해야 할 레이드에 김서준, 네가 대신 참가해 줬으면 한다. 이미 참가를 확정지은 상태라 인원을 채우지 못하면 우리 아카데미의 체면이 뭐가 되겠나?”
심재덕의 설명에 김서준은 그제야 이 자리가 만들어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균열 레이드를 핑계로 날 아주 단단히 골탕먹여 보겠다?’
심재덕 혼자만의 뜻인지, 아니면 아카데미 교수진의 통일된 의견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 심재덕이 고태환의 사주를 받은 걸지도 모르는 일.
어쨌든 이 균열 레이드가 단순한 레이드일리 없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적어도 김서준에게만큼은.
김서준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심재덕의 제안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고한석이 참가해야 할 균열 레이드에 아카데미를 대표하여 대신 참가해 달라는 요청이었지만, 이것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건 너무도 빤히 보이고 있었다.
이에 심재덕은 레이드에 참가하면 얻을 수 있는 여러가지 혜택을 늘어놨다.
평가점수가 매우 낮은 김서준에게 퇴학을 면할 수 있는 충분한 추가점수를 부여할 것이며, 레이드 결과로 획득하는 부산물과 보상도 일부 수령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솔직히 그런 이득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김서준에겐 지금의 이 상황을 계획한 심재덕의 의도가 궁금할 뿐.
‘주말에 고태환한테 따로 연락을 받은 걸까?’
일요일 오후에 고한수 사건이 터졌으니 심재덕과 연락했다면, 그보다 앞선 시점일 것이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끔찍하다고 알려진 고태환이니 자신의 아들이 보잘 것 없는 학생한테 두들겨 맞은 사실을 모를리 없다.
아마 고한석이 스케빈저를 고용하기도 전에 이미 심재덕에게 연락해 별도의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고태환과 무관하다 해도 함정이 뻔한데 내 발로 걸어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당연히 그럴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고태환 같은 작자는 마음이 풀리지 않으면 집요하게 자신을 괴롭히려 할 것이기에, 이 제안을 거절하는 건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차라리 이 기회를 이용해서 나에대한 인식을 바꿔버리자.’
김서준의 최종 선택은 이거였다.
대신 멍청하게 당해줄 생각은 없으니 철저히 준비하고, 얻을 수 있는 이득도 모조리 챙기기로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심재덕이 은근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쉽게 결정하긴 어렵겠지. 하지만, 이건 네게도 큰 기회가 될 거다. 이제 1학년 밖에 안된 학생에게 균열 레이드 참가는 천금을 주고도 얻지못할 기회지. 게다가 이번 레이드를 주도하는 헌터들은 균열관리국에서도 베테랑으로 정평이 난 헌터들이다. 레이드 공대장으로 나설 분이 무려 B급 최상의 마력을 지닌데다가 B급 신비까지 지니신 분이다. 균열도 전혀 걱정할 거 없다. 얼마전에 D급 균열로 격상되긴 했지만, 균열 안에 등장하는 몬스터가 대부분 E급에 불과할 정도로 수준이 낮으니까. 게다가 넌 참가만 할 뿐이라 전투에 직접 뛰어들 이유도 없지. 그냥 영화 관람하듯 구경만 하면 된다, 이거야. 어때, 이 정도면 할만하지 않느냐?”
심재덕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김서준을 레이드에 참가시키려고 발을 동동 구르는 그의 급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정말 전투에 참가할 필요는 없는 거죠?”
“물론이지. 레이드 팀 꽁무니만 잘 따라다니면 된다. 2박 3일 일정이긴 한데, 첨단 장비를 챙겨갈 거라 숙식은 전혀 걱정할게 없지.”
“교수님도 함께 가시나요?”
“…..응?”
훅 들어간 질문에 심재덕이 움찔했다.
“크흠. 난 용인에 있는 57번 균열 입구까지만 함께할 거다. 마음이야 너와 함께 들어가서 지도 편달을 해주고 싶다만, 참가 인원에 제한이 있어서 말이야.”
“아쉽네요. 교수님도 함께였다면 좋았을텐데.”
“그럼, 레이드 참가를 승락하는 것이냐?”
“그 전에….”
김서준은 슬쩍 말꼬리를 늘이며 심재덕을 살폈다.
드디어 함정에 걸려들었다며 한시름 놓는 표정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뭐든 말해 보거라.”
“이번에 참가하게 되는 레이드 팀의 구성원에 대한 거요. 제가 직접 볼 수 있겠습니까?”
“팀 구성원을?”
심재덕은 갑자기 그걸 왜 보자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인상을 찌푸렸다.
“2박 3일 뿐이지만 어쨌든 낯선 세계에서 함께할 헌터 선배들인데, 안심하고 레이드에 참가하려면 어떤 분들인지 미리 알 필요가 있죠.”
“흐음. 이름이나 사진 정도는 보여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나로서도 알기 어렵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좋아. 기다려 보거라.”
심재덕은 자기 책상으로 가서 전자식 패널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김서준 바로 앞 탁자 위로 홀로그램 화면이 떠올랐고, 곧바로 균열관리국의 인트라넷으로 접속되는 화면이 보였다.
그때, 김서준은 아닌척 하며 심재덕의 손놀림을 자세히 살폈다.
김서준의 눈썰미는 보통이 아니었기에 심재덕의 손가락이 패널의 어느 위치를 누르는지 정확히 파악이 가능했다.
‘아카데미2030?’
심재덕의 균열관리국 접속 ID였다.
연이어 비밀번호까지 알아낸 김서준은 엷은 미소를 띄운채 홀로그램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화면엔 ‘레이드팀 2-14’라는 타이틀로 총 여덟명의 사진과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걸 본 김서준은 속으로 심재덕을 비웃었다.
‘레이드팀 2-14’면 균열관리국 소속의 수많은 헌터팀 중에 2군에 속하며 거기서도 14번째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베테랑인건 맞겠지만, 심재덕이 입에 침을 바르며 칭찬할 정도의 엄청난 레이드 팀은 아니라는 소리.
헌터들 얼굴과 이름을 대충 훑어본 김서준은 일부러 만족스런 미소를 그려보였다.
“믿음직 스럽네요, 다들.”
“그렇지? 자, 그럼 너도 승락했으니 관리국에 참가자 변경 통보를 하도록 하마.”
“네, 알겠습니다.”
김서준이 시원하게 대답하자 심재덕은 마음이 바뀔새라 서둘러 패널을 두드려 뭔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출발은 금요일 오후 3시다. 그날은 어차피 오후 수업이 없으니 점심만 챙겨먹고 바로 C3 구역의 주차장으로 오면된다. 거기서 널 기다리마.”
“따로 준비할 거는요?”
“여벌의 옷하고, 비축식량. 그리고 네가 즐겨쓰는 무기 정도면 될거다.”
“그거 준비하면서 사용되는 비용은 아카데미에서 지원해 주는 거죠?”
김서준이 히죽 웃으며 꺼낸 말에 심재덕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끄응…. 적당한 선에서는, 후….. 지원 해 주마.”
마지못해 나온 대답이 분명했다.
“역시, 아카데미는 통이 커서 좋네요. 그래도 설마, 준비비용으로 백만원 이상 나오겠어요?”
그 말은 곧, 백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준비에 쓰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영수증은 꼭 챙….”
“이제 가볼게요.”
심재덕의 말을 끊으며 일어선 김서준.
좋은 기회를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끝으로 김서준은 맛난 점심을 먹기 위해 학생식당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
오후 실습 수업을 간단히 마친 김서준.
이날은 지난 주에 김서준이 보인 임팩트있는 대련 때문인지, 학생들끼리의 대련은 없었다.
대신 교수가 보여주는 동작을 따라하며 연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간단한 동작조차 제대로 흉내내지 못했다.
사실, 김서준이 보기엔 담당교수인 심재덕의 동작도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몸에 힘 잔뜩 주고, 절도있는 동작을 선보이긴 했지만, 그건 실전에 거의 소용이 없는 쓸데없는 보여주기식의 무용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그러니 그걸 보고 배우는 학생들은 더 형편없을 수밖에.
‘이러니 A급 헌터도 마력이 바닥나면 빌빌거리는 거지.’
김서준은 아카데미에서 이런 로봇댄스 같은 동작을 가르치니, 상위헌터들이 저급 몬스터에게 찢겨죽는 참사가 종종 발생하는 거라며 한숨만 가득 내쉬었다.
물론, 드물게 실전으로 다져져 마력의 큰 도움없이 근접전투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 헌터들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신비의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전투기술이 부족하고, 낮은 신비를 지닐수록 신체능력이 우수하다.
전투기술이 뛰어나면서 신비 등급도 높은 헌터는 열에 하나도 안될 정도로 적은 것이 현실이었다.
‘헌터 등급을 평가하는 기준이 마력과 신비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도 참 웃긴 일이고.’
김서준이 볼 때, AA니 AB니 하는 헌터 등급은 실질적으로 헌터의 능력을 평가하는 올바른 기준이 될 수 없었다.
앞의 등급은 마력등급이라 강함의 표준으로 삼을 수는 있지만, 뒤의 등급은 매우 주관적인 방법으로 부여되는 신비의 등급이라는게 문제다.
신비를 각성한 사람이 정식 헌터가 되려면 균열관리국에 가서 마력과 신비에 대한 등급 평가를 받게 되는데, 신비의 경우는 전적으로 본인의 설명만을 심사관들이 듣고, 그 위력을 관전하는 걸로 등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작정하고 신비의 위력을 낮춰서 설명한다면 아무리 심사관들이라도 알아챌 방법이 없다는 것.
따라서 실전 전투능력 평가가 없는 상태에서는 헌터 등급만으로 상대의 강함을 전혀 확신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신체능력까지 쳐서 AAA 같은 방식으로 등급을 부여하는 건, 그것대로 상당히 우스운 일이었고.
‘하긴…. 내가 살던 세상에서도 내공만 절정고수지 실제로는 실전능력이 형편없는 깡통무인들도 잔뜩 있었으니까.’
이곳의 상황과 비교하자면 마력은 A급인데, 전투에 돌입하면 당황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거품헌터나 마찬가지.
김서준은 땀까지 흘리며 심재덕 교수의 동작을 열심히 따라하는 학생들 속에서 그 자신도 담걸린 환자처럼 삐꺽대느라 진땀을 빼야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우습기 짝이 없지만, 따라해 주지 않으면 수업거부로 또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오후 수업도 종료.
김서준은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이번 레이드 참가 건에 대해 부모님께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를 놓고 고민했다.
원래는 하나도 숨기지 말고 말씀드리자고 결론을 내렸다가, 과연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가 그냥 내버려 둘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결과는 아니올시다였다.
아버지 성격 상, 누군가의 뒷공작이 숨겨져 있을게 빤히 보이는 위험한 곳에 김서준을 보내려고 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숨겨야 했다.
김서준은 반드시 이 레이드에 참가할 것이고, 거기서 심재덕의 뒷배로 의심되는 고태환에게 확실하게 보여줘야 할게 있었다.
‘당신이 뭔가를 준비했다면, 난 그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박살내주겠어.’
두 번 다시 이런 유치한 함정을 꾸미지 못하도록.
아, 이 녀석 건들면 뭐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도록.
김서준은 강약약강의 심리를 지닌 자들을 너무나도 잘 안다.
강한자에게는 약하지만, 약한자를 상대로는 한없이 강해보이고자 하는 비겁한 자들.
지금 내가 강한 자임을 내보이지 않는다면, 고태환 같은 사람은 하이에나처럼 끊임없이 먹이를 찾아 괴롭히려 들 것이 분명했다.
김서준, 자신만이 아니라 아버지까지도.
‘남은 4일동안 최대한 성장해야 해.’
김서준은 레이드까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마치 커리큘럼 짜듯 자세하게 머리속에 그려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