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천재의 헌터 라이프-24화 (24/153)

24

가슴에 검을 박은 이형모가 머리를 떨구며 움직임을 멈췄을 때였다.

콰드득

부르크의 허리쪽 상처가 크게 찢겨 지더니 사람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곧이어 머리가 나오고 몸이 빠져 나왔다.

핏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피에 절은 사내.

그는 바로 김서준이었다.

피에 흠뻑 젖은 김서준은 무심한 눈길로 이형모와 이한수의 시체를 내려다 봤다.

“끝까지 사람 죽일 생각밖에 안하는 네놈들이 괴물새끼들이야.”

김서준은 이들을 없애기 위해 균열 안에서부터 대형 부르크의 몸 안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부르크의 사체 속에서 적당히 기회를 보고 있던 김서준은 내공을 이용해 이형모와 이한수의 대화를 모두 엿들었다.

그러다 박재홍의 가족을 죽이라는 통화를 듣게되자 바로 ‘중력 글러브’를 이용해 사체의 무게를 5배로 확 늘렸다.

그 무게로 인해 탑차의 타이어가 터졌다.

그 뒤는 김서준이 계획한 그대로였다.

마력을 주입해 놓은 ‘홍구안’을 미리 부르크의 눈에 박아넣은 채, 일부러 몸을 흔들어 이형모를 탑차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형모는 홍구안을 마주하자마자 최면에 걸렸다.

그래서 자기 손으로 동생을 죽였고, 스스로 자결까지 한 것이다.

사실 이형모를 자살하게 만든 건, 최면이 아니라 염동장막의 힘이었다.

스스로 심장에 검을 찔러넣는 행위에는 이형모의 자아가 강하게 반발했다.

아무리 강력한 최면에 걸렸더라도 BB급의 헌터에게 자살을 유도하는 건 쉽지 않았던 것.

그래서 염동장막을 사용해 검의 손잡이를 짓눌렀다.

최면에 염동장막까지 더해지자 이형모의 반발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그렇게 두 형제의 목숨을 취한 김서준.

그는 피비린내가 가득한 탑차 안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서 되살아난 이후,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다.

이전 세계에서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또는 복수를 이루기 위해 이미 수많은 악인의 목숨을 취해왔었기 때문.

‘그래도 기분은 별로군.’

당연히 좋을 수가 없었다.

가급적 여기선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하고싶지 않았으니까.

오직 아끼는 사람을 지켜주는데에만 자신의 힘을 쓰고 싶었으니까.

‘이건 더욱 기분이 더럽고.’

김서준은 검이 박힌 이형모의 가슴을 조금 더 찢어내 심장을 헤집었다. 그건 심장에서 마석을 찾기 위함이었다.

‘없군.’

이형모는 마석이 없었다.

대신 그가 매고 있던 배낭에서 마석을 비롯한 아티팩트들을 잔뜩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김서준은 그중 그린 마석과 쓸만한 아티팩트 몇 개, 그리고 황금석의 8할 정도만 챙겨 공간주머니에 담았다.

‘모두 쓸어가면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까.’

쓸모없는 아티팩트들과 황금석 조각 몇 개를 주변에 흩뿌렸다.

아티팩트를 놓고 형제가 싸우다 형이 동생을 죽이고, 그 죄책감에 스스로 죽은 것처럼 현장을 조작했다.

김서준은 이한수의 가슴도 갈라 마석이 있는지 확인했다.

‘있다!’

놀랍게도 정말 인간의 심장에서 마석이 나왔다.

선명한 에메랄드 빛을 내는 그린 마석.

한수호는 그 마석도 챙겼다.

마지막으로 부르크의 눈에 박았던 홍구안까지 챙긴 김서준은 이한수의 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시체의 지문을 이용해 잠금장치를 풀어낸 뒤, 최근 통화 목록을 뒤졌다.

그리고 이한수가 조수석에서 통화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벨이 울리는 동안 김서준은 ‘음성 카피 밴드’를 목에 붙였다.

이건 균열에서 얻은 아티팩트로, 원하는 소리를 저장시켜 똑 같은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효과를 지녔다.

김서준은 그 밴드에 이한수의 통화 목소리를 복사해 놨다.

그때, 달칵 소리가 나며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성격이 급하시군요. 이제 곧 마무리 됩니다.

“케이. 생각이 바뀌었다. 미끼는 그냥 놓아줘라. 추가 의뢰도 취소하지. 대신, 잔금을 두 배로 내겠다.”

김서준의 목소리는 이한수와 똑같았다.

음성 카피 밴드의 효과가 제대로였다.

-….흐음. 뭐, 알겠습니다. 잔금을 두배로 주신다면야.

“부탁하지.”

그렇게 통화를 마친 김서준은 휴대폰에 남겨진 자신의 지문을 지우고 그걸 다시 이한수의 품에 잘 넣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김서준은 박재홍 가족의 위험을 모른척 하지 않겠다는 말을 지켰다.

직접 발벗고 찾아나서진 않았지만, 할만큼은 했다.

김서준에겐 그 이상의 도움을 줘야 할 의무도, 오지랖을 부려 직접 가족을 찾아 살려내겠다며 영웅 행세를 해야할 이유도 없었다.

이곳에서의 모든 걸 마친 김서준은 ‘클로킹 마스크’를 꺼내 얼굴에 썼다.

가면이 그의 얼굴을 완전히 가렸을 때,

스르륵

그의 모습이 투명화 되더니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지워졌다.

그리고 아주 미세한 발자국 소리를 내며 현장에서 감쪽같이 모습을 감췄다.

***

대한민국이 두 가지 사건으로 떠들썩 했다.

첫째는 용인의 57번 균열이 극적으로 폐쇄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D급 헌터 두 명이 희생당한 사건이었다.

BB급 헌터인 이형모와 CB급 헌터 두 명이 포함된 준수한 수준의 레이드 팀이었음에도 희생자가 나왔다는 것에 균열의 위험성이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었다.

두 번째 사건은 첫 번째와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두 명의 희생자를 낸 레이드 팀의 공대장 이형모가 물욕에 눈이 어두워 친동생인 이한수의 목을 베고, 그의 시체 옆에서 자살한 사건.

처음엔 그렇게 우애가 좋은 형제가 그럴리 없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사건 현장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나오고, 살해가 이루어지던 시각 그곳을 지나던 차량의 블랙박스를 확인한 결과, ‘형제간의 살인 및 이를 비관한 자살’임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영상 속엔 이형모가 탑차 뒤쪽에서 이한수의 목을 치고, 그 시체를 탑차 안으로 들고 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또한 주변 어디에서도 제 삼자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다른 범죄와 연루된 사건이 아니라고 잠정적으로 결론났다.

물론, 석연치 않은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검에 관통된 이형모의 심장은 너무 훼손이 심했고, 목이 잘려 죽은 이한수도 심장이 파헤쳐진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다른 가능성을 따지기엔 이형모가 동생을 죽이고 스스로 자살했다는 증거가 너무 완벽했다.

어쨌든 이 일로 균열관리국의 명성은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용인의 57번 균열은 균열관리국에서 절대 문제가 일어날 리 없다며 고의로 E급을 D급으로 진화시킨 케이스라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결국 토요일 오후 4시에, 균열관리국의 국장인 최철형이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 성명서를 냈다.

당분간은 균열 폐쇄를 위한 레이드에 필요 인원을 두 배로 투입할 것이며, 아무리 낮은 등급의 균열이라 해도 반드시 A급 헌터를 참가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이번 레이드에 희생당한 두 헌터의 가족에게 막대한 보상금과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조가 이루어질 것임을 공표했다.

그리고 최철형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허리를 숙이며 정중히 사과했다.

모든 것이 관리국에서 소속 헌터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며 향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인선에 있어, 더욱 철저한 내부 검열을 거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반발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지금 당장은 분노가 들끓어도 시간이 지나면 금새 가라앉을 거라 생각하는지 균열관리국도 그 이상의 대응은 하지 않았다.

***

수원 근처에 위치한 수목공원 깊숙한 곳.

김서준은 도심으로 향하지 않고 숲으로 숨어들었다.

김서준이 근처 도심에 모습을 보이면 제3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이 왜 이런 곳에 나타났는지를 의심스럽게 보는 사람이 분명 생길 터.

잘못하면 김서준이 57번 균열 레이드에 참가했었다는 사실까지 알려질 위험이 있었다.

이형모가 증거인멸을 위해 김서준의 레이드 참가 기록을 전부 삭제해 버린 것이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다행인 셈.

김서준은 레이드에 없었던 사람이고, 때문에 이형모와 이한수의 죽음이 김서준과 연결지어질 일은 없었으니까.

타닥. 탁타닥.

김서준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야영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피에 절어있던 옷은 불에 태워져 재로 변했으며, 지금은 새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

다행히도 수목공원 바로 옆에 개울이 있어서 몸을 씻는 것도 별 문제 없었다.

김서준은 모닥불로 물을 끓여 미리 준비해 온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며, 휴대폰으로 57번 균열과 관련된 뉴스를 하나도 빠짐없이 확인하고 있었다.

‘조심히 움직인 보람이 있네. 클로킹 마스크가 없었으면 고속도로 CCTV 화면에 내가 잡혔을지도 몰랐겠는데?’

균열 안에서 얻은 아티팩트가 큰 역할을 했다.

최면 능력을 지닌 홍구안에, 투명화 기능이 있는 클로킹 마스크, 거기에 중력 글러브까지.

그 외에도 순간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깃털은 아직 두 개가 남아있으며, 속성의 구슬도 세 개나 얻었으니 정말 많은 걸 얻은 셈이다.

그것 뿐인가?

쓸데없긴 하지만 시중에 팔면 개당 수천만원은 받을 수 있는 아티팩트가 여섯 개나 더 있다.

3킬로그램이나 되는 황금석도 있었고, 그린 마석 두 개에 블루 마석도 두 개나 획득했다.

‘내가 운이 좋은 거야, 아니면 레이드 뛰면 보통 이 정도 보상을 얻게 되는 거야?’

너무나 꿀 같은 보상에 김서준은 이게 현실인가 의문이 들 정도.

그때, 김서준이 만지작 거리고 있는 휴대폰에서 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백연지 여사였다.

“네, 엄마.”

-아이고, 우리 아들! 너 괜찮은 거지? 훈련 중이라 뉴스는 못봤겠구나? 지금 난리 났다, 난리 났어. 용인 쪽에 있는 균열에서 사건이 벌어졌는데….

백연지 여사는 뉴스를 보고 생존훈련에 나가있는 아들이 걱정되었던 모양.

“엄마. 지금 훈련 중이라서 통화 길게 못해요.”

-어머머. 그래, 그래. 이 엄마가 참 주책이다. 훈련 중인 아들한테 무슨 전화질이라니. 목소리 들었으니 됐다. 그런데, 내일 몇 시쯤 오는 지 알려줄래? 엄마가 너 좋아하는 된장찌개 구수하게 끓여 놓으마.

김서준은 부모님이 이상히 여기지 않게 하려고 오늘 하루를 이 숲에서 보내고 내일 귀가할 계획이었다.

“대충 10시쯤 될 거에요.”

-그래, 알았다. 조심해서 오렴! 무리하지 말고. 이만 끊을께.

백연지와의 통화는 달칵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확실히 백여사의 아들 사랑은 넓고도 깊었다.

이 세상에 이런 어머니가 있고, 인자하며 강인한 아버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김서준은 괜스레 코끝이 시큰해 지는 기분이 들었다.

“부모님 때문에라도 사고치고 다니면 안되겠네.”

육성으로 투덜대듯 한 말이지만, 실제로는 감사함에 몸둘 바를 몰랐다.

김서준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공간주머니를 집어들었다.

주머니 안에서 네 개의 마석을 꺼내 든 그는 영롱한 빛을 흘리는 마석들을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그린 마석은 5억, 블루 마석은 거의 10억은 받을 수 있다고 했지?’

그럼 이것만 해도 벌써 30억이다.

매일같이 야근하며 몸을 혹사시키고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모조리 팔아서 부모님에게 거금을 전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걸 내가 먹어서 빨리 강해지는게 모두를 위한 길일 수도 있어.’

평범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김서준이 알고 있는 이곳의 미래는 어둡기만 했다.

균열이 발생하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큰 위험을 예고하고 있었고, 가이아닉스가 개발하게될 마신병은 인류의 종말을 불러일으킬지도 몰랐으니까.

‘내가 먹자.’

김서준은 마음에 결정을 내렸다. 마석 네 개중 그린 마석 하나만은 아버지를 위해 남겨주기로 했고.

부모님을 위한 돈을 마련하는 데에는 쓸모없는 아티팩트들과 황금석을 파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게다가 신우진은 보스 몬스터의 사체를 좋은 값에 팔아서 김서준의 몫을 충분하게 챙겨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으니 돈은 충분했다.

신우진은 심재덕처럼 욕심많은 사람도 아니었고, 오히려 김서준의 안전을 누구보다도 걱정해 주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라 믿을 수 있었다.

‘어디보자, 지금 내 마력이 얼마나 되려나?’

마석을 섭취하기 전, 현재의 상태를 정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김서준은 손을 내려다 보며 자신의 정보를 확인했다. 그리고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았다.

[김서준]

-마력: 30 / 내공: 17

-신비: 역발산기개세(13%) / 태양신공(6%) / 염동장막(1%)

마력이 갑자기 10이나 늘었으며, 내공도 2 상승했다.

그런데 태양신공 옆에 새로 생긴 신비는 뭐란 말인가!

‘염동장막이 신비로 각성됐다고?’

김서준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대체 언제 신비가 추가로 생긴 걸까?

수라극섬이나 비뢰신보, 천궁시는 아무리 노력해도 신비로 각성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염동장막은 새로 익히기 시작한지 하루도 안 된 무공이고, 몇 번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다른 무공보다 먼저 신비로 각성하다니.

김서준은 자신의 정보창에 선명하게 새겨진 ‘염동장막’이라는 글자를 한참동안이나 뚫어져라 바라봤다.

[염동장막]

-의지를 담은 내공으로 방어막을 형성하여 몸에 닿는 모든 것을 튕겨낼 수 있다.

-5미터 거리 내의 사물을 조작한다.

-재사용 대기 시간: 1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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