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천재의 헌터 라이프-29화 (29/153)

29

이번 발차기는 허초가 아니었다.

명백한 타격의지가 담겼으며, 그 안에 실린 파괴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마력이 담겨있지 않았음에도 제대로 맞을경우 뼈가 부러질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킥.

김서준의 시선이 주광식이 돌려찬 발의 경로로 향했다.

그냥 보기엔 옆구리를 목표로 한 발차기다.

하지만 주광식의 살기가 쏘아지는 곳은 목언저리.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무공으로 정점에 섰었던 김서준에게는 이 정도 몸놀림은 우습기만 하다.

김서준은 옆구리는 무시하고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왼손은 목언저리를 보호하며 오른손바닥으로 주광식의 턱을 올려쳤다.

그 순간, 주광식의 발차기가 옆구리 쪽에서 갑자기 방향을 비정상적으로 틀어내더니 목언저리로 쑤셔박혔다.

퍼억

하지만 그곳은 이미 김서준이 왼손으로 방어하고 있었다.

주광식의 입장에선 자신의 브라질리언 킥을 김서준이 꿰뚫어 보고 미리 막은 것으로 느껴졌다.

그가 크게 놀라워 할 때, 그의 턱으로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그것으로 모자라 주광식이 축으로 삼고 있는 왼발을 김서준이 안쪽에서 툭 걷어차 버렸다.

턱에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몸의 균형까지 무너져버리자 주광식의 몸은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심하게 엉덩방아를 찧은 주광식.

그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턱을 맞은 충격보다 자신의 변칙 공격을 정확히 방어해 냄과 동시에 반격까지 한 김서준의 반응이 더 놀라웠다.

주광식은 머리를 세차게 휘젓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김서준을 향해 우왁스러운 손을 힘차게 뻗어냈다.

그 광경에 학생들은 이제 곧 엄청난 싸움이 벌어지겠구나 싶어 눈을 크게 뜨며 바라봤다.

그런데, 주광식은 손바닥을 김서준의 가슴 앞에서 활짝 편채로 우뚝 멈춰세웠다.

“으하핫! 이놈 진짜배기네? 반갑다. 정식으로 인사하지. 난 쌍문동 도끼발 주광식이다.”

돌연 태도를 바꿔 악수하듯 손을 내민 주광식.

그의 행동에 김서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쌍문동 도끼발 주광식.

별명을 참 유치하게도 지었다고 생각하며 주광식의 손을 무시한채 몸을 돌렸다.

악수하자고 내민 손이 민망해졌는지, 주광식은 그 손으로 벌게진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히죽 웃더니 크게 외쳤다.

“오늘 저녁은 이 주광식이 쏜다! 거기, 너 예쁘장한 여학생아. 네가 모두한테 단체 톡 좀 날려줄래? 이 주광식이 우리반 전체한테 크게 한턱 쏜다고 말이야.”

“시, 싫어. 내가 그걸 왜…. 솔직히 네가 쏘는 저녁은 별로거든!”

여학생은 그렇게 말하고는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자리를 떠났다.

정신을 잃은 이찬성은 친구들 어깨에 걸쳐져 질질 끌려가듯 공터에서 사라졌다.

김서준도 자리를 뜨려는데, 주광식이 또 앞을 막는다.

“이봐, 너. 이름이 뭐냐?”

“김서준.”

주광식이 무대뽀같긴 해도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아서 이름을 알려줬다.

“김서준이라…. 생긴 거하고는 다르게 이름이 점잖네? 아무튼, 고맙다. 네 덕분에 아카데미를 자퇴할 필요가 없어졌어. 원래는 오늘 딱 하루만 수업 듣고 자퇴할 생각이었거든.”

“그게 왜 내 덕분인지 모르겠다만, 난 관심 없으니 자퇴를 하든지, 짱을 먹든지 알아서 해라.”

김서준은 주광식이 두 살 위의 형임에도 서슴지 않고 말을 놨다.

어차피 같은 학년이고, 한 반인데 고작 두 살 차이로 존대를 하는 게 더 이상했으니까.

그건 주광식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가자. 내가 맛난 거 쏘마.”

주광식이 대뜸 김서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지만, 김서준은 그냥 내버려 뒀다. 대신 차갑게 말했다.

“손 안치우면 입에서 피똥싼다?”

“와우! 입도 거친 녀석이네.”

주광식은 괜히 놀란척 하며 손을 황급히 뗐다.

김서준은 더 볼 일이 없다는 듯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주광식이 무슨 생각인지 계속 김서준 뒤를 졸졸 쫓아왔다.

그러면서 묻지도 않은 자기 과거사를 구전동화 하듯 손짓발짓까지 섞어가며 좔좔 읊었다.

주광식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버려진 고아였고, 쌍문동의 한 고아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고아원에 자길 끔찍하게 아껴주던 네 살 위의 형님이 하나 있었고, 그 형님 덕분에 엇나가지 않고 지금까지 착하게 살 수 있었다는 것.

그 말을 듣게된 김서준은 지금도 양아치 같은데, 정말 엇나갔으면 대체 얼마나 흉악한 범죄자가 되었을지를 생각하며 혼자 기막혀 했다.

주광식은 지하철도 따라 탔다.

김서준 옆에 착 달라붙어서 한 턱 쏘겠다는데 왜 거절하냐며, 먹는게 싫으면 선물이라도 사주겠다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더불어 자신이 왜 편입 첫날부터 시비를 걸었는지 그 이유까지 떠들어 댔다.

자신은 원래부터 강한 신체와 훌륭한 전투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굳이 신비를 각성해 헌터가 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을 아껴주는 고아원 형님이 헌터 학원 강사가 되어서는 자신을 억지로 각성의 길로 이끌었다는 믿지못할 이야기까지 했다.

지금껏 자신을 돌봐준 형님이라 어쩔 수 없이 각성은 했지만, 이왕 각성하게 된 것 제1 헌터 아카데미에 다니고 싶었다는 주광식.

하지만 편입 준비를 하던 주광식에게 제3 아카데미에서 연락이 왔고, 고아원 형님이 한시라도 빨리 아카데미에 다녀야 한다며 덜컥 수락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주광식도 강하게 거부했지만 형님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고 한다.

제3 헌터 아카데미에 딱 하루만 등교해 보고, 그날 주광식을 피지컬로만 쓰러뜨릴 수 있는 학생을 만나지 못한다면 마음 껏 쓰라며 200만원을 건넸다.

게다가 바로 제1 아카데미로 옮겨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주광식은 200만원이라는 거금과 제1 아카데미로의 전학이라는 보상이 걸리자 바로 승락했다.

제1 아카데미도 아니고, 제3 아카데미에서는 피지컬 만으로 자신을 압도할 학생은 없을 거라고 자신했으니까.

주광식의 형님은 만약, 그를 쓰러뜨리는 학생이 나온다면 200만원으로 반 전체 학생에게 거한 식사를 대접하고 착실하게 아카데미를 다녀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거래는 당연히 성립.

그래서 주광식은 아침에 등교 하자마자 짱을 찾겠다며 설치고 다닌 것이고.

“….원래는 전학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자퇴해서 자유를 찾으려고 했다 이거야. 그런데, 아뿔사! 널 딱 만났지 뭐냐. 이런게 천생연분인가? 아니면, 말고. 하하하!”

주광식은 산적 같은 외모에 눈에 힘만 줘도 사람들이 알아서 피할정도로 강한 이미지였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수다쟁이였다.

“내가 왜 쌍문동 도끼발인지 아냐? 그 동네가 내 구역이었거든. 거기서 난다 긴다 하는 녀석들은 죄다 내 발차기에 맞아 승모근이 찢겨나갔지. 도끼에 맞은 것처럼 찢어져서 붙여진 별명이 도끼발이고. 좀 살벌하지? 흐흐흐.”

지하철에 타서도 끊임없이 주절거리고 있으니 김서준은 정신이 다 사나웠다.

집 가는 방향이 같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정거장에서 자신은 내리면 되기에 그냥 꾹 참기로 했다.

“야, 김서준. 넌 나보다 체격도 작고, 힘도 없어보이는데 어쩜 그렇게 세냐? 내가 피지컬로는 아직까지 누구한테 맞고 쓰러져 본적이 없는데 말이지.”

주광식에 비해서 체격이 작은 거지, 김서준도 체격은 무척 좋았다.

183이나 되는 키에 균형잡힌 몸매. 헬창 같은 근육은 아니지만, 상의를 탈의하면 조각 같은 근육이 온몸에 꽉 들어차 있다.

지금의 김서준은 예전의 그 허약한 김서준이 아니었다.

마침 출입문 앞에서 두 사람과 가까이 서 있던 한 여학생이 주광식의 말을 듣고 힐끔힐끔 쳐다봤다.

주광식을 볼 땐 흉악한 외모에 눈쌀을 찌푸리다가 김서준을 보고는 이상형을 만난 듯 눈빛을 반짝거린다.

그때, 지하철이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문 앞에 바짝 붙어선 김서준은 주광식을 향해 무덤덤히 한마디 했다.

“너랑 같이 밥 먹을 생각 없으니까, 여기서 헤어지자. 계속 따라오면…. 알지?”

김서준에게서 살기라도 느낀 걸까?

주광식이 움찔하더니 시선을 피해 고개를 들고는 노선표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입맛을 쩝 다시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씨. 여기서 삼성동 학원가까지 가려면 1시간도 더 걸리는데. 가다가 배고파 뒤질지도. 그냥 눈 딱 감고 밥만 같이 먹자. 내가 최고급으로 쏜다니까?”

이 말에 김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너 쌍문동 사는 거 아니야? 삼성동 학원가에는 왜 가는데?”

“말했잖아. 고아원 형님이 학원가에서 알아주는 1타 강사라고. 내가 자란 곳이 쌍문동이고, 지금은 삼성동에서 그 형님이랑 같이 사니까 거기로 가는 거지.”

“학원 이름은?”

“이 새끼, 이상한데 관심을 가지네? 아까 말할땐 듣는둥 마는둥 하더니만.”

아깐 관심이 아예 없어서 대충 흘려들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삼성동 학원가라는 말에 누군가의 얼굴이 번쩍하고 떠올랐기 때문.

“그래서, 학원 이름 뭐냐고?”

김서준이 질문을 던졌을 때, 지하철은 정차했고 출입문이 열렸다.

“제왕의 후예라고, 학원가에서는 나름 인지도가 있….”

말을 하던 주광식의 팔을 김서준이 확 잡아당겼다.

두 사람은 어느새 출입문 밖으로 함께 나와 있었다.

“제왕의 후예? 그 1타 강사라는 형님 이름이….?”

김서준은 묘한 촉을 느꼈다.

제왕의 후예라는 학원 이름과 그 학원의 1타 강사라는 말에서 주광식의 형님이 자신이 아는 그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

“이름은 유호성. 왜, 너도 형님한테 수업 들은 적 있냐?”

역시나였다.

유호성.

이전 세계에서 김서준이 가장 믿고 따랐던 형이자, 자신을 위해 희생을 자처했던 동료였다.

주광식이 유호성과 가깝다면 오히려 가까이 해야할 상황.

동료들 중 최고 연장자인 박대만을 만나는 것보다 유호성을 먼저 만나 유대감을 쌓는게 더 좋을 수도 있었다.

‘이 녀석을 이용해 먹어야 겠는데?’

주광식을 향한 김서준의 시선이 부드럽게 변했다.

“나랑 같이 좀 가자.”

김서준이 턱짓으로 앞을 가리키며 앞장서자 주광식은 잠시 당황해 하다가 피식 웃었다.

“짜식, 진작 그럴 것이지. 너도 배 고프지? 이 동네에서 가장 비싼 음식점으로 모셔라. 이 형이 한턱 제대로 쏜다.”

주광식은 김서준과 나란히 걸어가며 다시 입을 털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나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김서준은 주광식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내가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환상의 맛에, 누구도 본 적 없는 다양한 메뉴의 음식을 맛볼 수 있게 해주마. 그러니 넌 돈만 내.”

“지금?”

“어, 지금.”

주광식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가 지갑에서 5만원 권 20장을 꺼내 건넸다.

“형님이 200 줬다며?”

“우리 둘이 먹는데 200이 다 필요할라고? 나도 남는게 있어야지.”

주광식은 100만원을 자기가 꿀꺽할 생각이었다.

“내가 남은 돈으로 나중에 또 사주면 되잖냐. 안그래?”

괜히 찔리는지 주광식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자 김서준도 마주 웃어주었다.

“뭐, 알았다.”

김서준은 100만원을 챙겨 넣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아들. 집에 오는 중이니?

“네. 근데 오늘 저녁 메뉴가 뭐에요?”

-저녁? 갈비찜하고 잡채 준비하고 있는데, 왜?

“친구 데려가려고 하는데, 메뉴 좀 추가해도 되요?”

-어머머. 친구? 우리 아들이 집에 친구를 데리고 온다고?

백연지 여사가 크게 놀라했다.

지금까지 김서준이 친구를 집으로 데려온 적은 없었다.

초중 때까지는 그래도 가까운 친구가 좀 있었지만, 고등학교 이후로는 김서준의 입에서 친구라는 단어가 나온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먹고 싶은거 말해봐.”

김서준이 주광식을 보며 묻자,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눈만 껌뻑거리던 주광식이 얼결에 대답했다.

“마, 만두전골? 부대찌개도 괜찮고…. 닭볶음탕도 좋아하긴 하는데.”

“엄마, 들었죠?”

-어어. 들었다, 들었다. 이 엄마가 오늘 그거 다 해주마. 재료 준비하려면 시간 좀 걸리니까 천천히 오렴. 한 1시간 정도만 어디가서 커피라도 한잔 하고 와.

“네. 1시간 뒤에 들어갈게요.”

김서준은 전화를 끊고 여전히 어리둥절해 하는 주광식과 함께 근처 백화점에 들렀다.

그리고 거기서 명품 코너를 돌며 여성용 백을 구경했다.

대략 40여분이 지났을 때, 500만원 상당의 명품백 하나를 자기 돈으로 직접 구매했다.

그리고 백 안에 주광식에게 받은 100만원 현금을 봉투에 담아 예쁘게 집어넣었다.

“너, 지금 뭐하냐?”

“선물 준비.”

“뭔 선물? 누구 주려고?”

“우리 엄마. 이 백은 중고로 산거고, 안에 있는 현금은 네가 마음을 담아 감사의 표시로 넣은 거다. 이해되지?”

김서준의 말에 주광식은 아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서준이 말한, 다양한 메뉴에 환상의 맛을 지닌 음식은 바로 백연지 여사가 만든 집밥을 의미했던 것이다.

그 집밥을 맛보는 대가로 가져간 100만원은 주광식의 이름을 달고 백연지 여사에게 명품백과 함께 전해질 예정이었고.

주광식은 이런 김서준의 행동에 괜히 코끝이 시큰해지는 기분이었다.

어려서부터 부모 없이 고아로 살아온 주광식에게 김서준의 이런 마음 씀씀이는 부러우면서도 꽤나 감동적이었다.

“쌈질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효자였누?”

“넌, 그 말투 좀 어떻게 안되냐?”

“아, 됐으니까. 이제 앞장 서라. 편입 첫날부터 급우 집까지 찾아가서 집밥 오지게 먹게생겼구만.”

“어휴. 그냥 따라 오기나 해라.”

김서준은 어쨌누, 저쨌누 하는 주광식의 말투는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

“어머머. 어서 오렴. 밖이 많이 덥지?”

문이 열리자마자 백연지 여사가 환하게 웃으며 주광식을 반겨주었다.

집 안에는 향긋한 냄새가 가득 했다.

여러가지 음식 냄새가 뒤섞이면 별로일 법도 한데, 어째 조금도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음. 어….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김서준하고 친구가 된 주광식이라고 합니다.”

“어, 그래. 광식이구나? 이름도 참 구수하니 좋네. 첫사랑 춘식 씨 느낌도 나고 말이야. 호호호. 어서 들어오렴. 밥은 다 준비됐으니까 손만 씻고 바로 먹으면 된다.”

백연지에게 아들의 친구는 진귀한 보물과도 같았다.

소심하고 붙임성 없는 아들한테 집까지 찾아올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백연지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했다.

주방에 차려진 음식을 본 주광식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8인용 식탁이 음식으로 꽉 차있다.

같은 음식은 하나도 없이, 모두 다른 음식들.

향긋한 냄새에 먹음직스러운 비쥬얼까지 갖춘, 진정한 진수성찬이었다.

“엄마, 이거.”

김서준이 준비해온 선물을 백연지에게 넘겼다.

“이게 뭐니?”

명품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쇼핑백 안에는 어김없이 유명한 브랜드의 백이 들어 있었다.

그걸 본 백연지가 화들짝 놀랐다.

“광식이가 오늘 신세진다고 사왔더라고. 중고라서 별로 안비싸니까 부담갖지 않아도 된데.”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중고라 해도 한두 푼이 아닐텐데? 게다가 너무 깨끗해서 완전 새것 같잖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명품백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토끼눈으로 감상하는 백연지.

그러다 백 안에 들어있는 현금봉투를 보고는 어머낫! 하고 소리까지 질렀다.

“그건 오늘 저녁 식사에 대한 감사의 표시. 광식이가 보기엔 이래도 돈을 엄청 잘 버는 형이 있거든. 원래는 그 돈으로 나한테 한턱 쏘기로 했는데 내가 그냥 집으로 데려온거야.”

“정말 이래도 괜찮아? 뭐니 뭐니 해도 집밥이 최고이긴 하다만, 음식점 맛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을텐데….”

백연지가 어쩔줄 몰라하자 주광식이 나섰다.

“아닙니다, 어머니. 어려서부터 형님과 단 둘이 자라온 저한텐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신 집밥이 그 어떤 음식보다 소중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러니까 부담없이 받아주세요.”

주광식이 김서준의 손발을 맞춰주자 백연지도 더 이상은 선물을 거부하지 못했다.

그러자 김서준은 한번 더 쐐기를 박았다.

“이런거 거절하면 상대를 무시하는 거처럼 느껴져서 예의가 아니래.”

“….알았으니까 어서 밥부터 먹으렴. 그리고, 광식이라고 했지?”

백연지가 어정쩡하게 서있는 주광식에게 다가가더니 작은 몸으로 그의 허리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집밥이 생각나면 언제든지 찾아오려므나. 이모라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고. 우리 서준이도 잘 부탁한다.”

진심이 담긴 백연지의 말에 주광식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걱정 마세요. 저는 친구를 절대 외롭게 두지 않는 의리의 사나이니까요.”

주광식은 백연지의 반응에서 한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김서준이 자신처럼 외롭게 자란 녀석이라는 걸.

부모님은 있지만, 친구는 없고.

강한 힘을 가졌으나,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따돌림 받는 녀석.

주광식은 김서준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