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잘려진 울프즈의 머리통 두 개가 구석으로 데굴데굴 굴러간다.
여인의 눈에는 다른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그녀 앞에 우뚝 서있는 훤칠한 키의 젊은 청년만이 그녀의 시선에 꽉 차있었으니까.
“지금 도망가야 해요. 여긴 위험합니다.”
젊은 청년이, 아니 청년이라 하기엔 좀 더 어린 학생이 여인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가,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흐으윽!”
여인이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다리를 꽉 안고 있는 여덟살 아이도 으아앙 하고 울기 시작했다.
“예쁜 아이야. 지금은 울면 안된다. 아이들이 울면 무서운 늑대가 어흥하고 찾아온데. 그러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참자. 저기, 저쪽으로 가면 더 이상 늑대가 찾아오지 않을 거야.”
빙그레 웃어보이며 아이를 다독여주는 학생은 다름아닌 김서준이었다.
차분하고 듣기좋은 김서준의 목소리 덕분일까? 아이는 금세 울음을 멈췄다.
여인은 다친 팔을 주무르고 있는 덩치 사내와 김주혁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아이를 데리고 김서준이 가리킨 방향으로 급히 뛰어가기 시작했다.
김서준은 여인과 아이가 떠나자 덩치 사내를 바라봤다.
“주광식. 너 집에 간 거 아니었냐?”
덩치 사내는 바로 주광식이었다.
“지하철 타려는데 재난문자가 뜨더라고. 그냥 갈 수가 있어야지. 헌터들 쪽 수 딸리면 끼어들려고 했는데 이쪽이 더 급해보셔서.”
“잘난 신비는 국이라도 끓여먹었냐? 맨몸으로 설치니까 그꼴나는 거다.”
김서준은 주광식의 다친 팔을 조금은 안쓰럽게 쳐다봤다.
사실, 방금 주광식이 아니었으면 김서준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여인과 아이는 죽었을 지도 모른다.
주광식이 자기 팔을 희생하면서까지 두 울프즈를 막았기에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내 신비는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이 좀 까다로워서 말이야.”
“일단 치료부터 해라.”
김서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양복의 중년사내, 김주혁 쪽으로 다가갔다.
“가르쳐 드린 무공은 어쩌고, 뭔 육탄 돌격이래요?”
김서준은 지저분해진 양복을 툭툭털며 성큼성큼 다가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들고 있던 아론다이트를 검집에 끼웠다.
“김서준! 네가 여긴 왜 왔어? 엄마는 어쩌고?”
김주혁이 다소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그에겐 아들이 자신을 돕기위해 이곳에 나타났다는 반가움보다, 아내인 백연지가 집에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엄마가 그렇게 걱정되었으면 이곳에 오질 말았어야죠.”
“우선은 너만 돌아가라. 네 친구도 다쳤으니 치료도 받아야 할테고. 지금 헌터들 방어선이 뚫렸어. 하고많은 몬스터들 중에서 하필 울프즈가 쏟아질 줄이야…. 아무튼, 난 괜찮으니까 엄마한테 가보거라. 지금 상태에선 내가 도저히 발을 뺄 수가 없을 거 같다.”
추궁과혈로 몸이 예전으로 돌아온데다 무공까지 배우기 시작해서일까?
김주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정의감에 불타고 있었다.
“몬스터들은 헌터한테 맡겨요. 아버진 방금 두 사람을 살렸고, 할 일을 충분히 하신겁니다.”
김서준은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하며 혀를 빼물고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울프즈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울프즈의 머리를 발로 콱 밟아버렸다.
머리가 와그작 우그러진 울프즈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주혁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 헌터다. 한물가긴 했어도 불쌍한 시민을 두고 어찌 나만 도망치겠냐?”
김서준이 백연지 여사에게 했던 말과 똑 같은 말을, 이번엔 김주혁이 아들에게 돌려주었다.
생각하는 것마저 어쩜 이리 똑같은지, 김서준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아버진, 헌터이기 이전에 한 집안의 가장이십니다. 우리 백여사께서 사랑하는 남편이기도 하고요.”
김서준은 김주혁을 똑바로 바라봤다.
외모는 다소 달라졌지만, 20년 전에 목숨을 잃었던 아버지의 고지식한 성격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불의를 보면 절대 모른척 하지 못하는 정의로움.
선(善)을 위해서라면 남을 위해 목숨을 내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고집불통의 사내, 김주혁.
김서준은 그런 아버지를 간절한 눈빛으로 뚫어져라 응시했다.
“앞으로 몇분이면 된다. 상위 헌터들이 도착하면 모든게 끝날테니 먼저 돌아가거라.”
김주혁의 의지는 굳건했다.
당장 가족이 위험한 상황이라면 모든걸 내팽게치고 가족부터 챙기겠지만, 그런게 아니라면 눈앞의 시민들 안전부터 걱정하는게 바로 김주혁이었다.
“저도 혼자는 못갑니다.”
김서준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방금도 봤다시피 울프즈 두 세마리 까지는 김주혁이 상대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의 숫자는 절대 혼자 상대할 수 없다.
아버지를 혼자 두고 간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 할 수 없는 상황.
“고작 아카데미 1학년짜리가 여기서 뭘 하겠다고!”
“그 1학년짜리가 뭘 할 수 있는지, 방금 보셨잖아요.”
김주혁도 분명 봤다.
한창 때의 그였어도 따라하기 힘든 속도로 움직이며 단숨에 울프즈의 목을 베는 아들의 모습을.
A등급의 신비를 가진 아들이지만, 마력은 F급에 불과하며, 체력도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정도는 김주혁도 잘 안다.
그런 아들이 울프즈 두 마리를 단칼에 해치우는 모습은 이질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물론, 맨손으로 울프즈 두 마리를 상대했던 주광식이라는 청년도 만만치 않은 건 마찬가지.
김주혁은 김서준을 똑바로 바라보다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옛 일을 회상하듯 감상에 젖은 표정으로 차분하게 말했다.
“19년 전…. 균열에서 쏟아진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던 임산부가 있었다.”
뜬금없는 옛날 이야기에 김서준은 의아해 했고, 옷을 찢어 팔의 상처를 동여매고 있던 주광식은 뭐에 홀린듯 다가와 경청했다.
“그 여인은 임신 9개월 차의 만삭이었지. 나를 비롯해, 균열을 막기 위해 투입된 헌터들은 전부 다른 곳에 있어서 그녀를 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은 사람이 있었다. 무려 E급에 해당하는 보잘 것 없는 마력을 지닌 헌터였지만, 그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임산부를 구하려고 지옥에 뛰어들었지. 그는 네 친구처럼 자신의 한팔을 잃는 대신 두 생명을 구해냈다. 그 임산부의 남편인 나조차 해내지 못한 일을, 생면부지인 그 헌터가 자신을 희생해 해낸 것이지.”
김주혁의 마지막 말에 김서준도, 주광식도 크게 놀라워 했다.
임산부. 그리고 그녀의 남편 김주혁.
지금 김주혁이 말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백연지였고, 그녀의 뱃속에 있던 새 생명은 바로 김서준이었던 것이다.
“이제 알겠느냐? 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게 아니다. 그때의 그 헌터가 그랬던 것처럼, 어딘가에서 위험에 처해있을 누군가를 단 한 명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것이다. 그래야, 이 애비 같은 헌터가 또 생겨날 수 있는 거고, 어쩌면 사라졌을지도 모를 생명을 구해내 이렇게 세상의 빛을 보며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거니까.”
김서준은 이제야 아버지의 고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히 사람을 구하겠다, 헌터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숭고한 사명감이었다.
자신이 이미 받은 은혜가 있기에,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려는 마음.
“역시, 은인께서 과거에 저희를 구해주셨던 건 우연이 아니었군요!”
주광식이 끼어들자 김주혁의 눈에 의문의 빛이 떠올랐다.
“은인? 자네, 날 본적이 있나?”
“보다마다요. 9년 전, 은인께서는 저와 제 형님을, 그리고 고아원의 수많은 아이들을 구해주셨습니다.”
“9년 전이라면…. 설마, 희망 고아원?”
김주혁도 그때의 일을 기억하는지 바로 알아챘다.
“하하! 맞습니다, 희망 고아원. 은인의 말씀처럼, 그때 절 살려주셨기에 방금 두 생명을 지킬 수 있었던 거네요.”
기가막힌 우연.
만약 9년 전, 김주혁이 주광식을 살리지 않았다면 아까 그 여인과 아이는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
김서준은 김주혁이 한 말의 의미를 완전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버지. 저도 돕겠습니다. 대신 상위 헌터가 도착하는 즉시, 바로 집에 돌아가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네가, 돕겠다고?”
김주혁이 잠시 고민에 빠지자 김서준은 쐐기를 박았다.
“지금 이러는 동안에도 죄없는 시민들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후. 알았다.”
김주혁은 빠르게 결정했다.
아들과 옥신각신하며 시간을 낭비할 바에,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는게 맞지 않는가.
“저도 끼면 안될….”
주광식이 슬쩍 한마디 하자,
“넌 안돼.”
“안될 소리! 자넨, 얼른 치료부터 받게.”
김서준과 김주혁이 동시에 거부했다.
“이 팔 그럭저럭 괜찮은데요?”
주광식이 팔을 휘휘 휘둘러 봤지만, 김서준이 상처부위를 꾹 누르자 바로 펄쩍 뛰며 아파했다.
결국 주광식은 두 사람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응급치료소로 향하게 되었다.
“여기요.”
주광식이 자리를 뜨자 김서준이 김주혁에게 검을 내밀었다.
아버지가 준 검이지만, 지금은 자신보다 아버지에게 더 필요해 보였다.
검을 힐끔 본 김주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 검의 주인은 이제 너라고 했을텐데.”
“앞장서서 싸우려면 무기가 필요하잖아요.”
“앞장서는 건 내가 아니다. 내가 널 백업해 주마.”
김주혁의 백업.
신우진에게 듣기로, 5년 전까지만 해도 김주혁에게서 백업을 받으려면 길드에선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려야 했었다고 한다.
그만큼 김주혁의 신비가 지닌 서포트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
지금이야 예전의 영광은 빛이 바랜지 오래지만, 과거에는 김주혁이 뒤를 봐준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헌터들이 안심하고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김서준도 왠지모르게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전 실제로 아버지의 신비를 경험해 봤기에 기대감은 더 컸다.
“아들 뒤통수에 구멍이나 내지 마세요.”
“당장 뛰어가지 않으면 엉덩이에 불부터 날 거다.”
“쳇. 알았다고요.”
김서준은 검을 다시 허리에 차고는 울프즈의 살기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런 김서준의 등 뒤엔 탄탄한 체격의 중년사내, 김주혁이 피묻은 양복을 펄럭이며 빠르게 뒤쫓고 있었다.
*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도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도로가 꽉 찰만큼 많은 차들이 달리고 있던 그곳이 지금은 무척이나 황폐해져 있었다.
사방엔 어수선하게 멈춰선 차들로 가득했고, 몸통이 갈라지거나 활활 불타고 있는 울프즈들의 시체도 한가득이다.
부러지고, 고장난 가로등 불빛이 껌뻑이는 도로 곳곳엔 사람의 잘려진 팔다리가 나뒹굴고 있으며, 목이 뜯겨나간 시체와 찢긴 상처에서 흘러내린 내장까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참혹함을 자아냈다.
그 끔찍한 현장에서 김서준은 김주혁과 함께 있었다.
수많은 빛이 번쩍거리며 폭발음이 터지는 장소를 지켜보는 두 사람.
아홉 명의 헌터들이 스물 세마리의 울프즈와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었다.
김서준이 보기에 헌터들의 상태는 무척이나 위태로웠다.
몸을 보호하는 갑주가 대부분 우그러지거나 무참히 뜯겨나간 상태였고, 옆구리나 팔다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도 셋이나 된다.
균열이 열리고 몬스터들이 떨어져 내린지 고작 17분이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증산역에 모여있던 헌터 스물 여섯 중, 넷이 죽었다.
살아남은 스물 두명의 헌터들은 도심 곳곳으로 스며든 울프즈들을 섬멸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진 상태.
그나마 아홉 명이 이곳에서 뭉쳐 큰 무리를 이룬 울프즈들을 묶어 두어 피해가 줄었다.
“위험해 보이는데요?”
김서준은 전장에 뛰어드는 걸 망설였다.
그가 위험해 보인다는 건 헌터들이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였고.
“겁먹을 거 없다. 내가 백업을 맡은 이상 네가 다칠 일은 없으니까.”
김주혁은 반대로 아들이 걱정되는지, 위험한 순간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보호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서워서 그러는게 아니라…. 에휴. 아닙니다. 아무튼 아버진 절대 오버하지 마요. 위험하다 싶으면 일단 몸부터 빼시고요.”
김주혁은 얼마 전부터 달라진 아들을 뿌듯한 듯 쳐다본다.
자신의 아들은 부모를 위하는 마음이 끔찍하긴 하지만, 위험 앞에서는 굉장히 소극적인 성격이었다.
아무리 아버지를 걱정한다고 해도, 지금처럼 대범하게 나서는 건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 반대다.
당장이라도 전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고, 오히려 아버지의 안전을 걱정까지 해 준다.
어린애 같았던 김서준이 지금만큼은 의젓한 어른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괜히 시비를 걸고 싶어졌다.
“…..너나 잘 해라.”
“전, 알아서 잘 합니다.”
“잘난 척은.”
김주혁은 피식 웃었다. 그때, 김서준이 상황이 급박하다고 판단했는지 표정을 굳혔다.
“지금, 갑니다!”
김서준이 크게 외치며, 전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 뒤를 김주혁이 바짝 뒤쫓았다.
30여 미터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김서준이 전장에 거의 도착한 시점에 김주혁은 아들의 등을 향해 신비를 발현시켰다.
번쩍
김주혁의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가 지닌 신비는 ‘멀티플레이어’.
자기 자신에게 사용할 수도 있지만, 타인에게 사용하면 전투에 좀 더 효과적인 신비다.
간단하게는 목표로 삼은 헌터의 마력에 집중도를 높여주어 그가 사용하는 신비의 위력을 크게 높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주혁의 신비가 그런 효과만 가진줄 알고 있지만, 실제론 그렇지가 않다.
김주혁의 신비는 대상으로 삼은 자와 마력 파동을 연동시킴으로써 그 사람의 인지능력을 엄청나게 끌어올리는 것도 가능했다.
정확히는 공간지각능력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 능력은 김주혁의 마력이 높지 않다 해도 일정수준 이상의 효과를 보증해 준다.
즉, 김주혁과 마력 파동만 잘 연동된다면 마력의 크기와 상관없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김주혁은 그의 신비인 멀티플레이어를 아들에게 발현시켰다.
피잉-
앞서 달려나가던 김서준은 자신의 시야에 가로로 한줄기 빛이 쭉 그어지자 흠칫 놀랐다.
그 빛이 사라졌을 때, 김서준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360도 방향의 모든 정황이 마치 초고화소의 사진으로 촬영하듯 또렷하게 머릿속으로 각인되는 걸 느꼈다.
어느 각도, 어느 거리, 어느 위치에 무엇이 있으며 무슨 행동을 취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당장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까지가 모두 그려지고 있었다.
‘엄청난데?’
두번째 경험해 보는 신비 멀티플레이어.
지난 번에는 평온한 상황에서 경험한거라 임팩트가 평범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리 굉장한 임팩트가 느껴졌다.
어찌보면 역발산기개세로 적의 공격을 흡수할 때 주변이 느려져 보이는 현상과 유사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이 다르다.
역발산기개세는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모든 걸 파악하고 움직여야 하지만, 김주혁의 신비는 자신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주변의 모든 것이 인식되어 자동으로 처리되고 있었다.
마치 슈퍼컴퓨터를 몸에 달아 직접적인 서포트를 받고 있는 듯한 느낌.
공간지각능력이 엄청나게 상승한 덕에 헌터들 중 누가 가장 위험한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순식간에 판단이 섰다.
김서준은 심해의 밑바닥에서 혼자서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듯한 묘한 기분을 느끼며, 자동차 지붕을 발로 힘차게 밟고 붕 날아올랐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자.’
사방에 CCTV가 가득한 이상 모든 힘을 끌어내 원맨쇼를 펼쳐보일 수는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아슬아슬하게 울프즈들을 쓰러뜨려야 했다.
태양신공을 끌어올린 김서준은 검을 쥔 손에 내공을 살짝 불어 넣었다.
그의 눈에 신호등을 박차며 한 헌터의 사각으로 비스듬히 달려드는 울프즈가 보였다.
김서준의 목표는 애초부터 그 놈이었다.
놈이 그 방향에서 기습할 것임을 미리 인지하고 있던 김서준은 딱 맞는 타이밍에 울프즈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푸욱
검이 놈의 두개골을 꿰뚫고 턱 아래로 튀어나왔다.
콰드드드득
울프즈는 머리에 검을 꽂은 채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김서준은 검을 뽑아내자마자 다음 타겟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김서준의 움직임은 짧고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이쪽 저쪽 고민하는 일 없이 미리 정해놓은 위치를 가장 빠른 루트로 이동하며 닥치는대로 검을 휘둘렀다.
서걱
푸욱
일검에 한마리씩.
정확히 머리만 베고, 꿰뚫어 순식간에 여덟 마리를 해치워 버렸다.
그 사이 가장 위태로웠던 헌터 한명이 울프즈에게 물려 팔의 살점이 뭉텅이로 뜯겨나가긴 했지만, 김서준의 활약으로 죽은 헌터는 없었다.
어느새 울프즈는 열 한마리로 줄었다.
놈들도 김서준의 등장에 두려움을 느꼈는지 공격을 멈추고 한쪽으로 뭉쳤다. 그리고 김서준을 향해 으르렁 거리며 일제히 공격할 태세를 갖췄다.
어쩌다보니 모든 헌터들을 뒤로 한 채, 홀로 울프즈를 마주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김서준의 바로 뒤에 있던 김주혁이 갑자기 숨을 헐떡인다.
‘마력이 바닥났구나.’
62나 되는 높은 마력을 지닌 김주혁이었지만, 신비를 3분간 사용한 것만으로 모든 마력과 체력이 고갈된 것이다.
서포트 효과가 뛰어난만큼, 유지력이 길지 못했다.
여기서 더 무리하면 위험했다.
“뒤를 부탁드릴게요.”
김서준은 이렇게까지 나서고싶지 않았지만, 아버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상위 헌터들이 도착하기로 한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1분여.
그냥 대치만 해도 되겠다 싶을만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는 순간 저 몬스터들은 바로 총공격을 감행해 모두를 물어뜯어 죽이고 말리라.
김서준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선수를 치기로 했다.
더 이상 김주혁의 백업은 없다. 하지만, 그게 없어도 김서준은 눈앞의 몬스터들을 해치울 능력이 충분했다.
김서준은 빠르게 열 한마리의 울프즈를 살폈다.
죄다 똑같이 생겼지만 이놈들 중 무리를 이끄는 대장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놈을 먼저 쓰러뜨리기만 하면 나머지를 해치우는 건 식은죽 먹기.
김서준은 최근에 각성한 심안을 발휘했다.
피잉
그의 눈에서 황금빛이 일렁였고, 사방으로 마력의 파동이 퍼져나갔다.
파동에 노출된 몬스터와 헌터들 모두의 머리 위로 정보가 떠올랐다.
김서준은 그 정보 중 하나에 시선을 집중했다.
[19/엘리트]
‘저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