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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밥을 먹던 김주혁이 숟가락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놨다.
“이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구나!”
김주혁은 현관문 너머에서 들리는 엄청난 소음에 화가 나 있었다.
증산역에서 열렸던 균열이 닫힌 지 이제 1시간.
어렵게 균열을 닫는데 성공하자 김주혁과 김서준은 서둘러 집으로 귀가했다.
주광식은 다행히 상처가 크지 않아 응급치료소에서 치료를 받은 뒤, 경찰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으로 귀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김서준이 주광식과의 통화 내용을 알려주자 김주혁은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고, 곧바로 백연지 여사에게 전화로 안전을 알렸었다.
김주혁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백연지 여사가 준비한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미 저녁을 먹은 김서준이었지만 아버지가 혼자 적적할까봐 일부러 함께 식탁에 앉았다.
하지만 행복한 식사시간은 길게 가지 못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수많은 방송국의 기자들이 김서준의 집 문앞으로 몰려들었으니까.
그들은 끊임없이 벨을 누르고, 문 좀 열어보라며 시끄럽게 굴었다.
거실의 티비에서는 ‘증산역의 비극을 막은 영웅들’이라며 몇몇 헌터들의 영웅적인 모습이 찍힌 영상을 반복적으로 틀어대고 있었다.
그 영상 속에는 김주혁과 김서준의 모습도 담겨있었고.
“신경쓰지 마요, 여보. 저러다 제 풀에 지쳐서 돌아가겠죠.”
백연지는 시끄럽게 구는 기자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남편이, 그리고 자식이 티비에서 영웅 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 정도 소란은 문젯거리도 아니었다.
“우리는 참으면 된다지만, 이웃은? 저 자들 때문에 이웃까지 피해를 입고 있으니 그게 더 화가 나는 거요.”
“그건 그렇네요. 그럼 어쩌죠? 옆집에 전화해서 이해해 달라고 해야 하려나?”
백연지 입장에서는 기자들을 쫓아내는 것 보다는 이웃의 양해를 구하는게 더 쉬워보였다.
“이해를 구할 필요 없이, 저 기자들을 죄다 쫓아 버리면 되지.”
김주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에 김서준이 아버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호통친다고 돌아갈 사람들이면, 기레기라고 불리지도 않았겠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지 않느냐? 벌써 10시가 넘었어. 그냥 두면 새벽까지도 저러고 있을 작자들이다.”
“그럼 저들이 원하는 걸 해 주면 되죠.”
김서준은 차라리 기자들이 원하는 인터뷰에 응해주자고 했다.
“인터뷰 할 내용도 없는데, 무슨….”
“대충 아버지가 현장에서 했던 일들 말해 주고 돌려보내죠? 물론, 전 빼고요.”
김서준은 모든 공을 아버지에게 돌리기로 했다.
자신은 그저 아버지의 신비 덕분에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었다는 식으로 얼버무릴 필요가 있기도 했고.
“너 혼자만 쏙 빠질 셈이냐?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낸 건 바로 너였지 않느냐?”
“제가 카메라 앞에만 서면 어버버 거리는 거 아버지도 잘 아시잖아요. 그래도 저보단 인터뷰에 익숙하신 아버지가 처리하는게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제 스승님이나 마찬가지인 그 은거기인께서 말씀하시길, 아직 어린 녀석이니 헛된 명성에는 관심도 갖지 마라….고 당부하셨거든요.”
김서준은 엉터리 말로 모든 걸 김주혁에게 떠넘기고는 방으로 잽싸게 도망쳤다. 그리고 문을 닫기 전에 한마디 덧붙였다.
“아버지, 파이팅!”
가슴 앞에서 주먹을 꽉 쥐며 하는 말에 김주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잠시 후.
김주혁은 어쩔 수 없이 집 안으로 기자들을 들였다.
무려 8개의 방송국에서 기자와 촬영기사들이 밀어닥친 탓에 거실은 사람들과 장비들로 가득찼다.
김주혁은 쇼파에 앉은 채로 마이크와 촬영장비들에 둘러싸이고 말았다.
“김주혁 씨는 현무 길드의 행정부 사무실장이라던데, 사실입니까?”
“퇴근 길에 재난문자를 수신한 걸로 아는데, 두렵지는 않으셨습니까? 어떻게 현장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시민들을 구할 생각을 하셨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군요.”
“현장에 함께 있던 아드님은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이라고 들었습니다. FA등급이라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FA등급이면 울프즈를 상대하기엔 위험했을텐데, 아들을 앞장세워서 전투에 임하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습니까?”
“마력이 F급이라는 얘긴데, 어떻게 그런 화려한 전투가 가능했던 거죠?”
“김주혁 씨가 과거 서포터로서 현역 시절에 사용했던 신비를 아드님에게 사용한 것인가요?”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김주혁의 표정은 점점 무거워졌다.
인터뷰를 간단히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이 기자들은 그 짧은 시간에 벌써 김주혁과 김서준의 신상정보를 죄다 털어버렸다.
대충 울프즈를 상대하면서 어떤 마음가짐이었고,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었는지를 알리고, 균열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면서 인터뷰를 끝내려던 생각은 그만의 착각이었다.
기자들의 질문은 조금씩 선을 넘기 시작했다.
김주혁의 과거를 들쑤시고, 아들 김서준의 아카데미 생활에 대한 것까지 들춰냈다.
급기야 김서준의 인터뷰도 따고 싶다며, 굳게 닫힌 아들의 방문까지 강제로 열려고 했다.
그 모습에 김주혁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지금 뭐하는 짓들입니까! 여기가 당신들 안방입니까? 당신들은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도 없는 무식한 사람들인 것이오?”
김주혁의 호통에 기자들이 움찔했다.
슬그머니 김서준의 방문 앞에서 물러난 기자들.
사람들이 조용해지자 그제야 김주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여러분의 말씀처럼 오늘 전투에서 내가 신비를 사용한 건 맞소. 나이는 먹었어도 내가 헌터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소?”
잠시 숨을 고른 김주혁.
그는 마이크를 바짝 들이밀고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기자들에게 꼭 하고싶었던 이야길 꺼냈다.
“제 아들녀석이 F급 마력을 지닌 것도 사실이오. 그렇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마력이 그렇게나 낮은대도 불구하고…. 열 아홉의 어린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균열에서 쏟아진 몬스터를 상대했소. 도망을 쳐도 모자를 판에, 이 아비를 돕겠다고 말이오.”
“그럼…. 김주혁 헌터님의 신비 덕분에 아드님이 그런 멋진 활약을 보일 수 있었던 거군요?”
한 기자가 기회를 잡았는지 한마디 끼어들었다.
그런데 김주혁은 그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내 아들은 조금도 멋지지 않았습니다.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에서 아들이 무서운 몬스터들과 싸우는 모습이 멋져 보일 것 같소? 전혀 그렇지 않다오. 난 아들이 다칠까봐 보는 내내 조마조마 했소. 하지만…. 하지만 시민들을 한명이라도 더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들을 위험 속에 방치한 거요. 오늘 난 아버지로서 빵점이었소.”
김주혁의 말에 진심이 담겨서일까?
인터뷰를 하고 있던 기자들의 분위기가 다소 숙연해 졌다.
“내 아들은 영웅이 아니오. 나 또한 마찬가지고. 신비를 각성하고, 헌터 자격증을 가졌을 뿐.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이기도 하다오. 다만 헌터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오. 그런 의미에서 그곳에 있었던 모든 헌터분들은 자기의 역할에 충실했으니 함께 칭찬받아야 마땅하오.”
김주혁이 담담하게 내뱉는 말에 기자들은 물론, 촬영담당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여기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곳에 있었던 헌터들이라…. 말씀 잘 하셨네요. 그럼 김주혁 씨와 아드님이 해치운 울프즈들의 사체는 어떻게 정산하실 생각인가요? 김주혁 씨 말대로라면 모든 사체를 정확히 24등분 해야 맞는 거 아닐까요?”
여기자는 이상한 논리를 앞세워 김주혁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헌터들 세계에서는 이런 경우, CCTV 같은 걸로 누가 해치웠는지를 명확히 확인해서 해당 헌터에게 수당을 지급하게 되어 있었다.
김주혁과 김서준이 해치운 울프즈는 대충 20여 마리.
이번 균열로 쏟아진 울프즈가 92마리였으니, 두 부자가 거의 20%가 넘는 몬스터를 해치운 셈이었다.
그런데 몬스터 사체로 얻게되는 보상금을 24등분 해라?
그 말은 즉, 김주혁과 김서준에게 손해를 보더라도 공평하게 헌터들과 보상금을 나누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였다.
“그건 헌터들의 룰을 따르면 되니 복잡할 것이 없소.”
“그런가요. 그럼 이건 어떨까요? 영상자료를 보니, 아드님이 마지막에 오렌지 빛의 마석을 챙기던데…. 엄밀히 말하면 그 마석엔 생존한 헌터들의 지분도 분명 있지 않을까요?”
이번에도 여기자가 괜한 트집을 잡았다.
마석은 김서준이 마지막에 해치운 대장 울프즈에게서 나온 것이다.
엘리트 몬스터였기에 마석이 나오는 행운이 있었고, 오렌지 마석이면 시가로 5천만원이나 된다.
그걸 먹어서 마력을 흡수하면 최소 3에서 5사이의 마력을 올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자는 그 마석도 헌터들과 나눠야 하지 않냐며 상황을 이상하게 꼬이게 만들었다.
김주혁은 여기자의 목에 걸린 기자증을 확인했다.
‘윤지희 기자?’
현무 길드의 행정부 사무실장인 김주혁은 그 이름이 왠지 낯이 익었다.
그녀가 들고있는 마이크를 보니 ‘SBC’라는 영문이 새겨져 있었다.
‘그 기자로구나. 엉터리 평등사상으로 유명하다는 윤지희 기자.’
평등운동가 윤지희 기자.
헌터계에서 꽤나 이름이 자자했다.
균열이 발생하거나 드물게 균열 안으로 들어가 레이드를 벌이는 경우, 상위 헌터들이 보상을 독식하는 것에 큰 불만을 가지고 늘 이상한 논리를 앞세워 헌터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관련된 일이 있기만 하면 득달같이 달려가 하위 헌터가 불합리한 일을 당하진 않았는지, 강제로 보상을 빼앗긴 건 없는지 대신해서 나서주는 오지랖이 넓은 여성이기도 했고.
그런 그녀가 이번엔 김주혁과 김서준을 타겟으로 잡았다.
하지만 이상하다.
김주혁이나 김서준 모두 하위 헌터인데 왜 저렇게 공격적으로 나오는 걸까?
김주혁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유야 어쨌든, 김주혁은 그녀가 지금까지 해온 일을 꽤 자세히 알기에 괜히 시비가 붙었다간 아들이 난감한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제를 키우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아들이 힘겹게 얻어낸 마석을 윤지희 말 몇마디에 24조각으로 쪼개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지금 기자님이 하신 말씀은 생존한 헌터들 모두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이오? 만약 그런거라면 아들이 취한 마석을 그들의 뜻대로 24등분하여 공평하게 나눌 의사가 분명 있소. 허나, 그들이 직접 연락해 분할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라 판단할 것이오.”
김주혁은 윤지희가 그녀 개인의 생각만으로 어필한 말일 뿐이라고 확신했다. 역시나 윤지희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그래도 말발에서 밀리고 싶지 않았는지, 억지 주장을 이어갔다.
“다른 헌터분들이 분할을 원치 않는다 해도, 좀 더 가진 입장이시니 먼저 나서서 나눔을 펼쳐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좀 더 가진 입장.
그녀에게 김주혁 부자는 다른 헌터들보다 많은 걸 가진 가족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각성하여 헌터가 되었고, 서울 한복판에 25평이나 되는 훌륭한 집까지 가지고 있었으니까.
다른 헌터들은 불우한 환경에서 어렵게 각성했음에도 등급이 낮아 제대로 보상을 챙기지도 못한 채, 상위 헌터의 총알받이로 쓰여지다 죽는 경우가 많다는게 그녀의 평소 주장이었다.
이 많은 기자들 앞에서 좀 더 가졌으니 나눔을 보이면 좋겠다는 건, 그렇게 하지 않을 시엔 대중의 비난을 감수하라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이에 김주혁조차 할 말을 잃고 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때, 김서준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추리닝 차림의 김서준은 옆구리에 12인치 테블릿 하나를 끼운 채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방문 앞에 서 있었다.
고개를 살짝 모로 꺾은 채 윤지희를 빤히 바라보는 김서준.
취재진의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김서준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당사자가 직접 나서준다면, 훨씬 더 보기 좋은 장면이 연출될 것 같네요. 후훗.”
윤지희가 왜 이제 얼굴을 내비치냐는 듯 마이크를 앞세우고 김서준에게 다가서려는 찰나였다.
김서준이 테블릿을 꽉 움켜쥐더니 윤지희 쪽으로 냅다 집어던져버렸다.
테블릿은 무서운 속도로 윤지희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신비를 각성한 헌터가 던진 물건을 윤지희가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스윽
윤지희가 머리를 비틀어 테블릿을 뺨 옆으로 흘려보냈다.
그녀를 지나친 테블릿은 정확히 김주혁에게 날아갔고, 그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연스럽게 테블릿을 낚아 챘다.
이 광경에 모두가 놀라있을 때, 윤지희가 눈썹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헌터가 기자에게 위협을 가하는 겁니까?”
그 말에 김서준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 이거 웃기는 아줌마시네. 그걸 피하는거 보니까 평범한 기자가 아닌 것 같은데 뭘 놀란척 하고 그래요?”
그러고보니 다들 이해가 안갔다.
방금 윤지희가 보인 반응은 헌터와 다름없었으니까.
“그건….”
“숨길 필요 없잖아요. 기자님도 헌터시라면서요. 그것도 C급이나 되는.”
김서준의 말에 분위기가 갑자기 이상하게 변했다.
기자들은 이게 무슨 소리냐며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는데, 정작 당사자인 윤지희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아버지. 테블릿 켜보세요.”
“그래.”
김주혁은 손에 든 테블릿을 탁자 위에 세워놓으며 버튼을 살짝 눌렀다.
검은 화면에 불이 들어오더니 24등분이 된 화면에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짜잔 등장했다.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어떤 기자가 흠칫 놀라며 소리쳤다.
“어? 오늘 생존한 헌터들인데?”
그 말대로였다.
테블릿에 얼굴을 비치고 있는 사람들은 오늘 균열을 폐쇄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고 살아남은 헌터들이었다.
그들은 테블릿 카메라를 통해 이곳의 상황을 고스란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구야. 기자들 엄청 많이 모이셨네? 다들 안바쁘신가봐?
-EGS도 있고, MTK도 있네. 근데 SBC는 왜 있어? 저긴 말로만 평등운동가인지 뭔지 하는 겁나 요상한 윤지희 기자가 있는 곳이잖아?”
-그러니까. C급 헌터 자격증을 가지고도 균열 사태 때, 단 한번도 힘을 보탠적이 없는 이기적인 기자년을 감싸고 도는 방송국이지.
-아니, 그럴거면 뭐하러 헌터 자격증을 땄데?
-자격증 따면 국가에서 꼬박꼬박 헌터 보조금이 나오니까 그러지.
-그거 시민들 세금이잖아? 시민을 위해 목숨을 거는 헌터들에게 보상처럼 지급되는 거. 그걸 아무런 의무와 책임도 지지 않는 가짜 헌터가 기레기 짓거리 하면서 받아쳐먹는다고?
-내가 그 년이랑 아카데미 동기라 잘 알아. 겁은 또 엄청 많아서 몬스터랑은 제대로 마주서지도 못해. 그래도 집안이 빠방한지 헌터라는 신분을 아주 꽁꽁 잘 숨기면서 살고 있더라고.
마지막 말을 한 사람은 생존 헌터들 중 유일한 여성 헌터였다.
헌터들이 각자 한마디씩 해 버리자 장내는 숨죽이듯한 고요함에 빠졌다.
그중 오직 윤지희만이 낯빛을 울그락푸르락 하며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
김서준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히죽 웃어보였다.
“헌터 선배님들 연락처 받아놓길 잘했네요. 제가 다 물어봤는데, 마석 팔아서 나오는 돈 나눠갖자고 해도 다 싫다는데요? 마석은 서포터계의 대마법사라 불리는 김주혁 씨 차지랍니다. 제말 맞죠, 형님들?”
김서준이 툭 던진 말에 테블릿 화면 속의 헌터들이 다들 크게 웃었다.
-푸하핫. 말 참 시원하니 좋네. 김서준 학생 말 그대롭니다. 서포터계의 대마법사, 김주혁 씨! 당신 덕분에 저희가 살았는데 무슨 자격으로 마석을 나눠가져요? 에이, 안되지.
-아드님 말대로 김주혁 씨가 그곳에 오지 않았으면, 우리 중 절반은 다른 곳에서 옥황상제랑 대면하고 있었을 거라고요. 하하하.
-우리 몫까지 떼어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건, 부디 이해 바랍니다. 이번 작전으로 아끼는 무기가 맛탱이 가버려서 새로 장만해야 하거든요.
-아니, 이 친구야! 그러게 왜 그렇게 죽자고 달려들어! 누구처럼 굳이 헌터일 안해도 국민 세금 꼬박꼬박 타먹을 수 있는데, 그냥 존버했어야지. 쯧.
그들이 하는 말들은 고스란히 방송에 나가고 있었다.
이제 이곳에 있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이 방송을 보고 있는 국민 대다수가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게 된 것이다.
증산역 균열에서 생존한 헌터들은 김주혁이라는 헌터에게 큰 은혜를 받아 더 많은 걸 주지 못해 미안해 하고 있다는 것을.
윤지희가 평등이 어쩌고 하던 말들은 자신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가면을 쓰고 행한 눈속임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제 윤지희는 기자 경력도 박살났고, 헌터로서 받게되는 보조금도 끝장나 버렸다.
그녀도 창피함을 느끼는지 급히 장비를 챙겼다.
그녀 옆의 카메라맨은 고개조차 못들고 구부정한 자세로 윤지희와 함께 집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 김서준이 한마디를 전했다.
“거기, 부끄러움 모르는 아줌마. 헌터면, 헌터로서 권리만 챙기지 말고, 헌터가 가져야할 책임과 의무도 함께 가지세요. 그럼 적어도 욕은 덜 먹지 않겠습니까?”
“….”
윤지희가 김서준을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하지만 이 많은 기자들 앞에서 분노를 표출하지는 못했다.
이를 한차례 뿌드득 갈아버린 윤지희는 도망치듯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남아있던 기자들은 시원한 김서준의 말에 손뼉을 쳐 주었다.
하지만 정작 기자들을 보는 김서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것으로 인터뷰는 종료합니다. 다들 여기서 이러시지 마시고, 현장에 가셔서 피해자 상황이나 취재하세요. 돌아가신분들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아보시고 필요한 도움을 주시는게 여러분들이 해야할 일 아닐까 싶네요.”
그 말에 뜨끔했는지 모두들 서둘러 짐을 챙겼고, 몇분 되지 않아 집 안엔 어떤 기자도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