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천재의 헌터 라이프-35화 (35/153)

35

그날 밤.

김서준은 잠에 들려는 아버지를 조용히 불러냈다.

잠시 할 말이 있다며 자신의 방으로 아버지를 모신 김서준은 두 개의 마석을 불쑥 꺼내 내밀었다.

“두 개 다 엘리트 울프즈한테서 나온 마석이에요. 그린 마석까지 나왔다는 건 아무도 모르고요.”

김서준은 57번 균열에서 얻은 그린 마석을 이번에 얻은 것처럼 슬쩍 돌려서 말했다.

“그 몬스터한테서 그린 마석까지 나왔다고? 허어…. 두 단계나 높은 마석이 하나 더 나오는 일이 있을 줄이야. 생각보다 훨씬 강한 개체였나 보구나. 잘 됐다. 네가 그걸 흡수하면 마력이 단숨에 E급으로 오를 거다.”

김주혁은 김서준의 말에 큰 의심을 하지 않았고, 두 개의 마석 모두를 아들에게 주려고 했다.

“아니요. 이거 다 아버지가 드세요. 아니, 이거 팔아서 가계에 보태도 됩니다.”

“뭐?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 네가 먹어라. 그리고 팔다니? 그건 더더욱 안될 말이고.”

“받지 않으시면 그냥 제가 팔아버릴 거에요.”

김서준은 어떡하던 마석을 아버지에게 주고 싶었다.

아버지가 이걸 모두 먹어야 B등급 마력에 한층 가까워 질테고, 가족은 더욱 더 안전해 질 테니까.

김주혁은 인상을 찌푸린채 잠시 고민하다가 하는 수 없다는 듯 마석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가 챙긴 건 오렌지 마석 하나 뿐이었다.

“난 이것만 받으마. 네가 정말 팔아버릴까봐 받는 거다. 마석은 파는게 아니라 먹는게 가장 올바른 쓰임새니까.”

“그린 마석도 받아요.”

“그것까지 받을 수는 없다. 자꾸 고집 부리면 오렌지 마석도 안 받으련다.”

김주혁의 고집은 보통이 아니었다.

정말 오렌지 마석까지 돌려줄 분위기였기에 김서준도 더 강요할 수는 없었다.

“후…. 알았어요. 대신 그거라도 꼭 드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마. 그런데, 서준아.”

김주혁이 은근한 어조로 김서준을 불렀다.

“네, 아버지.”

“그 윤지희 기자 말이다. 그녀가 헌터라는 건 어떻게 알았니? 수년간 기자생활을 해 오면서도 헌터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겨온 모양이던데.”

이건 김주혁이 의문을 가질만 했다.

윤지희 기자와 헌터 아카데미 동기라는 헌터도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니고, 테블릿을 통해 영상으로 보고 나서야 그녀를 알아본 듯 했으니까.

사실, 김서준은 아버지가 인터뷰 하는 동안 방 안에서 ‘심안’의 투시능력으로 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능력치를 훑어봤다.

무심코 행한 일이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아버지에게 계속 시비를 거는 여기자의 능력치가 예사롭지가 않았던 것.

[66/노멀]

마력만 따지면 아버지보다도 높은 마력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기자가 되어 취재를 나왔다?

이상함을 느낀 김서준은 바로 심재덕 교수의 ID를 이용해 균열관리국의 인트라넷에 접속해 윤지희를 검색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이 헌터로 등록되어 있다는 걸 알아냈던 것.

하지만 김서준은 자신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테블릿으로 헌터분들과 영상통화 하다가 알았어요. 하도 사가지 없게 말하길래, 뭐하는 사람인가 싶어 물어봤더니 그 여기자를 아는 헌터가 있더라고요.”

“흐음…. 그러냐?”

뭔가 미심쩍긴 하지만, 아들이 그렇다는데 굳이 깊게 따질 이유는 없었다.

“어…. 아버지. 그 마석이요. 그냥 대충 먹지 말고, 꼭 운기조식 하면서 먹어야 해요. 그러면 효과가 더 좋을 거에요.”

“그래? 알았다. 아무튼, 오늘 고생했다. 그리고 몬스터 사체 정산한 비용은 네 통장으로 쏴 주마.”

김주혁은 아무리 부자관계라도 아들이 처리한 몬스터 사체의 판매비용을 자신이 꿀꺽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균열 폐쇄 작전에 참여한 보상만 받아도 충분했으니까.

“전 괜찮으니까, 차라리 엄마한테 주는 건 어때요?”

“진심이냐?”

“네. 열 아홉이나 먹고 부모님한테 기대어 살아가는게 얼마나 죄송한데요. 이렇게라도 집안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좋은 거죠.”

“하하하. 그래, 그럼. 네 말대로 백여사한테 크게 쏴 주도록 하마. 그 돈 받으면 네 엄마 입 찢어질거다.”

“아버지 비상금으로 조금 떼셔도 됩니다. 모른 척 해드릴게요.”

김서준은 김주혁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크흐흠. 내가 무슨 비상금이 필요하다고…. 늦었다. 얼른 자라.”

“네. 아버지도 푹 주무시고요.”

김주혁은 방을 나서기 전, 김서준의 머리를 흐트러주는 걸 잊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가고 혼자 남은 김서준.

그는 손에 쥔 그린 마석을 어쩔까 잠시 고민했다.

‘이걸 먹고 태양신공을 운용하면, 마력이랑 내공이 15씩 오를거란 말이지?’

대신 먹지 않고 팔아버리면 상당한 돈을 챙길 수 있다.

먹느냐, 파느냐.

답은 쉽게 나왔다.

‘마석은 파는게 아니라 먹는게 가장 올바른 쓰임새’라는 아버지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아른거린다.

김서준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뒤, 바로 마석을 삼켰다.

식도를 타고 넘어간 따뜻한 기운을 태양신공을 일으켜 혈맥으로 빨아들이고, 그 기운을 이용해 대주천을 돌렸다.

그린 마석이라 그런지 운기조식은 5분만에 끝났다.

전처럼 몸 안에서는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김서준]

-마력: 110 / 내공: 92

-신비: 역발산기개세(15%) / 태양신공(13%) / 염동장막(2%) / 수라극섬(2%) / 심안(2%)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니 예상대로 마력과 내공 모두 15씩 상승했다.

더불어 역발산기개세와 태양신공의 숙련도도 1%씩 상승했고.

김서준은 자신의 마력이 이젠 B급을 넘어섰다는 사실에 꽤나 기분이 좋았다.

‘두 달 내로 A급 가즈아!’

A급 마력이 되려면 마력이 200을 넘어야 한다.

그린 마석으로 치면 6개, 블루 마석으로 치면 5개가 필요한 셈.

‘심안만 있으면 마석을 지닌 몬스터를 알 수 있으니까, 몰래 웨이브에 끼어들어서 꿀꺽 하자고.’

당연히 정식으로 참전하는 건 아니다.

자기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헌터들도 많았으니 김서준도 투구나 가면 같은 걸 구해서 쓰면 별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김서준에겐 클로킹 마스크까지 있어서 얼마든지 다른 사람 눈을 피해 마석을 챙길 수가 있었다.

‘하…. 언제부터 내가 균열이 열리길 기다리는 입장이 됐냐.’

김서준은 자신이 생각해도 헛웃음이 났다.

***

이틀이 지나, 금요일이 되었다.

그 사이 김서준은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증산역 균열에서 주광식이 활약한 모습도 CCTV에 담겨 방송에 나왔지만, 그래도 김서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매스컴에서는 모든게 김서준의 아버지인 김주혁의 신비 덕분이라고 분석하며, 김서준보다 김주혁을 더 추켜세우는 분위기였다.

그것과는 별개로, 어쨌든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으로써 직접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두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 내에서 김서준을 마주치는 학생들은 하나같이 엄지 척을 해 보였다.

그들도 뉴스를 통해 김서준의 활약상을 봤던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엘리트 몬스터를 해치우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엘리트 몬스터가 쏘아낸 화염포를 검으로 갈라내며 입에 검을 박아 넣은 뒤, 화염을 도로 튕겨내 놈을 새까맣게 태워버리는 모습은 영화 속 한장면 같았다.

안 그래도 잘생기고 모델 같은 몸매의 김서준이다.

이전에야 워낙 소심하고, 저질 체력에 늘 그늘진 얼굴이라 따돌림을 받았지만, 이젠 분위기가 완전 뒤집혔다.

김서준 근처엔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하지만 김서준 옆에 주광식이라는 성질 더러운 학생이 딱 붙어 있어서 함부로 말을 못붙이고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근데, 김서준. 너 마력이 F급이라는 거 진짜냐?”

주광식이 오전 강의가 끝나자마자 질문을 던졌다.

왼팔을 붕대로 칭칭 감은 상태였지만 움직임에는 아무 불편이 없는지 자연스럽기만 했다.

“마력이 6이면 F급 맞잖아?”

“허, 참. 네가 잡은 그 엘리트 울프즈 말이야. 그거 E급 마력을 지닌 놈이라며? 마력 6짜리가 그걸 어떻게 잡냐고?”

“마력이 약하다고 신비까지 허접한 건 아니니까.”

김서준은 대충 둘러댔다.

“그게 신비 덕분이라고? 에이, 그건 말이 안되지. 호성이 형님이 그랬거든. 아무리 대단한 신비를 가졌어도, 마력이 뒷받침 되지 못하면 말짱 꽝이라고. 마력이 낮으면 신비의 위력은 물론이고, 유지시간도 형편없을 거라던데?”

“그건…. 그때 그때 달라요.”

때 지난 유행어에 주광식이 인상을 확 긁었다.

“친구가 물으면 좀 성의를 보여라, 성의를.”

“아, 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김서준은 길게 이야기 하기 싫어서 바로 강의실을 나가려 했다.

그때, 강의실 입구에서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여자가 우두커니 서있다.

‘윤지희 기자?’

이틀 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줄행랑 친 기자가 뜬금없이 이곳에 나타났다.

그녀는 김서준의 시선을 받자 화사하게 웃었다.

“김서준 학생. 잠시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시간 없는데요.”

김서준이 딱 잘라 말하자 윤지희는 피식 웃었다.

“싫다면, 할 수 없지. 대신 김주혁 씨나 백연지 씨를 찾아가는 수밖에.”

윤지희는 아무렇지 않게 몸을 돌렸다.

“멈춰요.”

김서준이 윤지희를 불러세웠다.

그녀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언급하자 김서준의 낯색은 확 변해있었다.

딱히 위해를 가하겠다는 말은 없었지만, 윤지희의 표정과 말투만으로도 충분한 악의를 느낄 수 있었다.

김서준은 윤지희가 부모님에게 헛짓거리를 하지 못하게 자신이 직접 감당하기로 생각을 바꿨다.

“시간 낼 테니 가죠.”

김서준은 주광식에게 먼저가라고 한 뒤, 윤지희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건물 밖에는 잔디밭이 있었고, 풍성한 나뭇잎을 지닌 나무 앞에는 벤치가 하나 놓여 있었다.

김서준은 그곳에 윤지희와 나란히 앉았다.

“할 말 있으면 빨리 하시죠.”

김서준은 윤지희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철저한 무시에도 윤지희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궁금한게 있어서. 네 덕분에 방송국에서 징계먹고, 아무 문제없이 잘 받고 있던 헌터 보조금도 끊기게 생겼거든. 그러니 내 질문에 제대로된 답을 주어야 할 거야.”

생글생글 웃으며 하는 협박.

김서준은 윤지희가 무슨 말을 하려고 이리 엄포를 놓나 궁금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일부러 윤지희 얼굴을 안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너무 보고싶어졌다.

그녀의 목소리는 천상의 것처럼 아름답게 들렸고, 차갑게 가라앉아 있던 마음까지 마구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김서준은 알 수 없는 힘이 자신의 정신을 지배하려 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가 태양신공을 익히고 있지 않았다면, 인지하지도 못한 순간에 이 미지의 힘에 정신을 빼앗겼을 정도로 강한 힘.

김서준은 태양신공을 일으켰다.

단전에서 불같이 일어난 내공의 힘은 그의 머리를 강하게 휘저었고, 그의 정신에 간섭하려는 미지의 힘을 밖으로 튕겨냈다.

김서준은 고개를 홱 돌려 윤지희를 바라봤다.

노랗게 빛나는 눈.

윤지희는 지금 신비를 발휘하고 있었다.

시선을 마주하자 윤지희가 더욱 고혹적인 미소를 그렸다.

“자, 이제 이야기 해 보렴. 너와 한 반이었던 고한석. 그 아이를 쓰러뜨린 동급생이 김서준, 너 맞지?”

꽁꽁 언 얼음마저 사르르 녹일 정도의 부드러운 음성.

김서준은 그 음성에 최면의 힘이 숨겨져 있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정신에 간섭할 수 있는 신비를 가진 헌터였나?’

윤지희의 헌터 등급은 CB급.

C급 마력을 지닌 그녀가 정신계열 신비를 사용한다면, 이를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김서준은 이제야 그녀가 어떻게 지금까지 헌터임을 숨길 수 있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네. 제가 쓰러뜨렸어요.”

김서준은 일부러 그녀의 신비에 당한 것처럼 몽롱한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이런 류의 인간을 상대할 땐, 속아주는 척 연기를 하다가 가장 확실한 기회를 잡아 뒤통수를 확 쳐주는게 최선이었다.

“흐흥. 역시 그렇구나. 그럼 고한석 학생이 57번 균열 레이드에 참가할 계획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겠네?”

“레이드….? 그런 일이 있었나요?”

얼빵한 얼굴로 모르는 척 대답하자 윤지희가 인상을 구겼다.

“잘 생각해 보려므나. 심재덕 교수가 고한석 대신 널 그 레이드에 데려가려고 한 거 맞지? 실제로 네가 그 레이드에 참가도 했었고? 아니야?”

“아, 심 교수님이요? 그분이 평가 점수 운운하면서 같이 어딜 좀 가자고는 했었습니다. 그런데 못갔어요. 2박 3일이나 되는 일정이라 부모님이 허락을 해주지 않았거든요.”

“뭐? 그거 정말이니?”

“네. 정말이고 말고요.”

윤지희는 김서준의 말에 낭패한 기색이었다.

거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고한석이 레이드에 참석하기로 했지만, 김서준과의 실습 대련에서 부상당해 빠지게 되었고, 그 자리를 김서준이 대신 꿰차게 것이라고.

그녀가 보기에, 김서준의 능력은 알려진 것 보다 훨씬 뛰어났다.

증산역 균열에서 보인 활약은 김주혁의 신비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김서준이 57번 균열 레이드에 참가했으며, 거기서 모종의 일을 꾸며 이형모 형제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게 아닌가 의심했었다.

냉동탑차와 신우진의 승용차에 탔다가 내린, 보이지 않는 신비인이 김서준일 거라는 심증도 있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창피를 준 김서준이 여러 사람을 해친 살인자임을 세상에 밝혀서 시원하게 복수하려고 아카데미까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착각으로 결론이 나고 있었다.

그녀의 신비 ‘정신압박’은 최면 효과와 진실찾기에 탁월한 효과를 지니고 있어서 알고도 당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지금 김서준이 하는 말은 100% 진실이라는 말.

“김서준 학생. 그럼 57번 균열 레이드가 있던 날, 넌 어디서 뭘 했지?”

“그냥 집에서 쉬었어요. 요즘 유행하는 게임 좀 하면서요. 엄마가 그날 해준 순두부찌개는 정말 기가막히게 맛있었는데….”

김서준이 묻지도 않은 내용까지 주절거리자 윤지희는 제대로 헛다리 짚었구나 싶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학생이 잘 모르는 모양인데, 이 누나가 여기저기에 경찰이나 고위 정부 인사 쪽에 백이 좀 있거든? 내가 조사시키면 다 나오게 되어 있다고. 네가 주말에 뭘 했는지, 정말 집에 있었던게 맞는지도. 그러니 거짓말 하면 큰일 날거야. 너나 네 부모도 절대 편하게 살지 못할걸? 사람 한 둘 슥 없애버리는 거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거, 너도 잘 알거고. 자, 그럼 한번만 더 물어볼게. 57번 균열 레이드와 관계 없는 거 확실하니?”

일부러 정신압박 신비가 더 강하게 작용하도록 말로도 협박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 방법으로도 같은 대답이 나오면 김서준은 정말 레이드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다.

“네.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김서준은 속으로 분노가 치솟았지만 억지로 참아내며 대답해 주었다.

‘감히…. 감히 그 천한 입으로 내 부모님까지 들먹여?’

대충 거짓 정보를 흘려 더 이상 엮이지 않으려고 했던 김서준은 이 순간 생각을 바꿨다.

“하아…. 그렇구나. 그래, 잘 알았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꾸나.”

윤지희는 신비를 쓰고도 소득이 없자 실망한 기색으로 곧장 자리를 떠났다.

혼자 남은 김서준은 멀어져가는 윤지희를 가만히 바라봤다.

‘절대 여기서 물러날 여자가 아니야.’

김서준은 윤지희가 계속 자신의 주변을 멤돌며 뭔가를 캐내려 들 거라 직감했다.

게다가 윤지희는 김서준의 부모님까지 들먹이는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

김서준의 머릿속에 그동안 윤지희가 어떤 방식으로 기자생활을 해왔는지 빤히 그려졌다.

최면효과가 있는 신비와 만만치 않은 백을 써서 회유와 협박으로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부당한 이익을 취해왔을 터.

‘당신이 한 짓에 대해 땅을 치고 후회하게 해 주지.’

김서준은 그렇게 다짐하며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네네. 저에요, 김서준. 갑자기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네. 전 잘 있어요. 그런데…. 제가 한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는데요.”

김서준은 누군가와 꽤 길게 이야기를 나눴다.

김서준의 마지막 통화 내용은 이거였다.

“….네. 진심입니다. 남의 인생을 망칠 생각이라면, 자기 인생도 걸어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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