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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지난 월요일 아침.
김서준은 백연지 여사에게 학교에 다녀온다고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예전엔 고층 건물 내려갈 땐 그냥 뛰어내리는게 다반사였는데….’
이전 세계에선 많은 이들이 경공술을 할 줄 알기에 휙휙 날아다니기 일쑤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랬다간 당장 뉴스거리다.
하늘을 나는 헌터들도 있긴 하나, 고작 고층건물에서 빨리 내려오겠다고 신비를 사용하는 멍청한 헌터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어느새 1층에 도착한 김서준은 지하철 역을 향해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8시가 안된 시간이지만 도로엔 사람도, 차도 무척이나 많았다.
그런 광경을 아무 의미없이 바라보며 걷고 있던 김서준은 어제 근처 야산에서 천번구를 수련했던 일을 잠시 떠올렸다.
천둥과 번개를 불러 일으키는 구슬, 천번구.
이건 태양신공을 활용해 펼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었고, 흔히 말하는 ‘스킬’에 가까웠다.
그런데 보통 스킬이 아니라는게 문제였다.
야산 깊숙한 곳까지 가서 대충 1할의 내공을 이용해 역발산기개세를 흡수한 뒤, 역카운터를 펼쳐낸 결과는 엄청났다.
사람보다 커다란 바위를 향해 뿜어진 붉은 콩알은 김서준이 미처 제어를 하기도 전에 바위를 들이받아 폭발해 버렸다.
마치 포탄이 떨어져 폭발하듯 터져나온 커다란 폭음으로 인해 야산에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김서준은 몰래 야산을 빠져나와 경찰에 끌려가는 일은 면할 수 있었지만, 주변 일대에선 난리가 났었다.
군부대에서 오발사고로 포탄이 떨어진거라며 시민들이 불안에 떨었으며, 한줄 뉴스로 보도까지 나왔다.
‘천번구를 제대로 제어하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한 건가?’
김서준은 야산에서도 천번구 수련을 하기 어렵다는 현실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제어만 할 수 있으면, 미래에 등장할 마신병을 상대할 때 매우 유용할 것 같았다.
양의분심공을 활용해 카운터의 카운터를 치는 방식으로 천번구를 쏘아내면, 한방에 마신병 하나를 확실히 처리할 수 있었다.
‘천번구 수련을 위해 강원도 산골로 내려가봐야 하나?’
며칠 여행을 핑계로 깊은 산속에 가서 천번구를 수련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김서준은 그런 생각을 하며 지하철을 탔고, 금방 아카데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의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으니 월요병에 걸린 학생들이 좋지 못한 표정으로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광식만은 표정이 즐거워보였다.
혼자 히죽거리는 얼굴로 김서준에게 다가온 그는 손까지 들어보이며 여유롭게 인사를 건넸다.
“주말은 잘 쉬었냐?”
“그냥 저냥.”
“내가 좋은 소식 하나 알려줄까?”
“나한테 좋은 소식이 네 입에서 나올 확률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자식, 반응이 왜이리 네거티브하누.”
주광식이 피식 웃으며 옆자리에 앉았다.
“잘들어, 인마. 내가 어제 호성이 형 통화하는 걸 들었는데 말이지.”
“남의 통화를 왜 엿들어?”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니까. 크흠. 로즈핀치 세이 있잖냐. 그 애가 계속 형 강의 듣고 싶다고 했나 보더라고. 새벽반 운운하는 거 보니까 강의 시간을 옮기려는 것 같아.”
주광식이 말한 좋은 소식은 한세아에 대한 내용이었다.
마침 김서준도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라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학원에 새벽반도 있어?”
“아니. 형은 새벽반은 운영 안해.”
“그럼 말짱 꽝이잖아.”
“근데, 이번엔 형이 새벽반을 하겠데. 그것도 세이 한명만 위해서.”
“….뭐?”
이건 좀 놀랐다.
유호성이 한세아 한명을 위해 새벽반을 꾸리겠다고 했다니.
“너도 놀랍지? 우리 호성이 형이 아무한테나 이런 서비스를 해주는 사람이 아니거든. 세상에 둘도 없이 사람이 좋아보여도, 이득이 되지 않는 일엔 절대 나서지 않지. 아마, 세이 측에서 수업료로 거액을 제시했을 걸?”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리 새벽반이라 해도 학원건물에서 강의하면 조용할 수가 없을텐데?”
“형이 직접 세이 집으로 출장강의를 가기로 한 거 같아. 낮에는 형 강의가 꽉 차있으니까 새벽으로 한 거고.”
이렇게되면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세이가 밖으로 나와야 어떡하든 기회를 봐서 대화라도 나눌 수 있었으니까.
김서준의 표정이 좋지 않자 주광식이 피식 웃었다.
“완전 실망한 표정이네, 이거? 그런데, 내 말 끝까지 들어보면 달라질걸?”
“….?”
김서준은 말대신 표정으로 뭔소리냐고 물었다.
“형이 이 동생들 마음을 알았는지, 개인수업하러 갈 때 보조강사 데리고 갈 일이 있을 거라고 말하더라 이거지.”
“보조강사?”
“그게 무슨 의미겠냐? 너나 내가 원하면 보조강사 타이틀로 세이 집에 함께 따라갈 수 있다 이거 아니겠냐?”
듣고보니 그렇다.
유호성이 정말 주광식이나 김서준에게 세이를 만나게 해 줄 기회를 주려고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기회는 있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잘 보이라 이거야. 우선 내가 먼저 기회봐서 형 따라가 볼 테니까, 넌 좀 기다려 봐. 내가 네가 끼어들 자리도 만들어 줄께.”
“뭐, 그럼 고맙고.”
김서준은 별거 아닌듯 알아서 하라는 표정으로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그 자리가 빨리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잠시 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심재덕 교수가 교단에 서고 새하얀 칠판에 빽빽하게 글자들이 채워졌다.
오늘은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균열의 종류와 번호, 그리고 진입이 가능한 균열에 대한 이론 수업이었다.
김서준은 3시간이나 되는 시간 동안 방대한 양의 지식을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머리속에 기억시켰다.
양의분심공을 수련하기 시작한 덕분인지, 전보다 훨씬 편안하고 빠르게 기억이 가능했다.
김서준은 수업 중에도 양의분심공을 사용했다.
하나의 정신은 수업에 집중하고, 다른 하나는 무공을 연구하거나 심상수련을 이어갔다.
그렇게 오전수업이 끝났을 때였다.
“김서준 학생. 잠시 따라오겠나?”
심재덕 교수가 간만에 김서준을 호출했다.
그의 뒤를 따라 교수실로 가보니, 그곳엔 낯설지 않은 사내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 분은 중앙경찰청 대 헌터 형사과 소속의 최경문 형사시다. 뭐 좀 확인할게 있다고 하시니까, 최대한 협조해 드리도록. 난 다른 일이 있어 먼저 가 보마.”
심재덕은 최경문을 소개만 해주고는 바로 자리를 떴다.
“반갑구나. 최경문이다.”
최경문 형사가 악수를 청했다.
김서준은 그 손을 마주잡았다.
“김서준….입니다.”
김서준은 살짝 의아했다.
최경문은 지난번에 윤지희 기자를 체포한 담당 형사였는데, 이 시기에 그가 자신을 찾아올만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
“일단, 앉아라. 나쁜 일로 찾아온 건 아니니까 긴장할 건 없고. 하하하.”
형사라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누구나 긴장한다.
게다가 그 형사가 평범한 형사도 아니고, 빌런 잡는 헌터 형사라면 더더욱.
하지만 김서준에게 긴장감은 전혀 없었다.
그저 최경문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궁금할 뿐.
“차라도 드시겠어요?”
최경문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서준은 교수실을 제집 안방처럼 자유롭게 다니며 물을 끓이고 차를 준비했다.
“여기 자주 오나 보구나? 하긴, 너 같은 학생이 내가 맡은 반에 있으면 나라도 애지중지 하겠다.”
”애지중지가 아니라 애물단지일걸요?”
김서준이 농담조로 대답하자 최경문이 웃는다.
“우선, 네 덕분에 그 재수없는 기자한테 엄중한 처벌을 내릴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부터 전하마.”
최경문은 증거라든지, 영상 자료 같은 게 모두 김서준의 손에서 넘겨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직접 통화한 적은 없지만, 지인인 헌터에게서 김서준에 대한 이야기도 대충 들은 상태였고.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 장미진 헌터님은 잘 계시죠?”
장미진 헌터는 증산역 균열 사태에서 알게된 헌터였고, 이번 윤지희 사건에서 김서준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이었다.
윤지희에 대해 신고한 인물도 그녀였고, CCTV 조작에, 증거물 제작까지 장미진의 신비가 크게 한몫 했다.
“미진이야 뭐, 늘 똑같지. 그건 그렇고…. 사실 내가 학생을 찾아온 이유는 한가지 제안을 하기 위해서다.”
“제안이요?”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일까?
‘설마 나보고 헌터 형사하라는 스카우트 제안?’
딱 드는 생각이 이것밖에는 없었다.
최경문의 표정을 보니 정말 중요한 말인듯 진중해 보였다.
“혹시, 예거라는 이름을 아나?”
뜬금없이 나온 이름, 예거(Jaeger).
대한민국에서 헌터밥을 조금이라도 먹은 사람이라면 이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헌터 잡는 형사보다 더욱 은밀하게 활동하며, 평범하지 않은 악명높은 흉악한 빌런만을 전문으로 사냥하는 특별 수사반.
흉악 빌런 전문 처리반이라고도 불리는 비밀 요원들의 집합체가 바로 예거였다.
이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기껏해야, 예거라는 조직이 중앙경찰청 소속임에도, 경찰청장에 준하는 막강한 권력을 지녔고, 국가에서 지정한 살인면허를 지닌 소수 정예의 헌터 요원이라는 정도였다.
그들이 몇 명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어떤 인물들인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려진 바가 없었다.
“표정을 봐서는 알고 있구나. 그럼 예거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알겠지?”
당연히 안다.
세상에 존재하는 헌터들 중, 악에 물들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며, 국가가 지정한 법을 지키지 아니하는 존재들을 빌런이라 부른다.
이 빌런은 다시 위험도에 따라 1급부터 9급으로 구분되는데, 예거들은 5급 이상의 상급 빌런만을 전문적으로 때려잡는다.
5급 빌런이면, BB급 헌터를 상회하는 강력한 능력자였기에 일반적인 헌터 형사들로는 희생없이 잡는게 거의 불가능했다.
게다가 헌터 형사들은 체포가 목적이지만, 예거들은 체포가 어려울 경우엔 가차없이 빌런의 목숨을 취할 수가 있다.
최경문이 이런 예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걸 봤을 때, 그가 하려는 제안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형사님도 예거인가요?”
“그건 말해줄 수 없다.”
말해줄 수 없다는 건 예거라는 소리.
‘뻔한 걸 뭐하러 숨겨?’
최경문도 김서준의 생각을 아는지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예거는 자신의 신분을 스스로 인정하면 안된다는 규정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절 거기에 끌어들이고 싶다는 건가요?”
“지금 예거엔 새로운 멤버가 필요하다. 미진이 덕분에 너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여러모로 예거로서의 필요한 요건을 갖추었더구나.”
“요건이라니요? 전 그냥 평범한 아카데미 학생인데요?”
김서준은 최경문이 자신의 뭘 보고 예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는지가 궁금했다.
“대한민국 예거의 정보망은 세계가 두려월 할 정도로 광범위하고, 정확하며, 정밀하지. 그런 곳에서 너에 대해 파고들었다면 어디까지 알아낼 수 있을까?”
최경문이 묘한 눈빛을 띄었다.
마치 ‘난 네가 57번 균열에서 한 일을 알고있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느낌.
속으로야 흠칫했지만, 그대로 인정할 수는 없었다.
“뭐 여러가지를 알아냈겠네요. 제가 때려눕혔던 고한수라는 녀석이 알고보니 뽕쟁이 였고, 편입한 주광식이 짱 먹겠다고 설치다 제 손에 나자빠진 일들 모두요.”
“그 정도야 기본이고.”
“윤지희 엿 먹이려고 장미진 헌터님한테 도움 받은, 작은 범법 행위 정도는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김서준은 끝까지 57번 균열에 대한 건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그러자 최경문도 더 깊게 따질 생각은 없는지 캐묻지 않았다.
“그래서 예거가 널 필요로 하는 거다.”
“….”
김서준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최경문은 분명 김서준이 57번 균열에서 벌인 일을 알고 있다.
중앙경찰청 소속의 빌런 잡는 형사이면서, 예거이기도 한 최경문.
그런 그가 그 일을 더 따지지 않는다는 건, 비밀을 지켜줄 테니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반 협박성 의도이지 않은가.
“전 아직 1학년 입니다만.”
“예거를 들임에 있어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헌터 자격증을 딸 때까지는 정식으로 예거 활동을 할 수 없겠지만, 예거의 자격을 갖추는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게다가 모든 예거는 기존의 신분을 그대로 유지한 채 최고 등급의 보안 속에서 진짜 신분은 숨겨지기 때문에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지.”
“저보고 1인 2역을 하라는 말씀이군요.”
“예거는 모두 그렇게 살지.”
최경문은 진심으로 김서준을 예거로 끌어들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예거가 되려면 다른 과정을 거쳐야 합니까? 예거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뭐고요?”
김서준은 가타부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예거에 대한 좀 더 많은 걸 알아보고 싶었다.
나중에 거절했을 때를 대비해, 뭔가 조치가 있긴 하겠지만 지금 당장 궁금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네가 예거가 되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다른 예거 후보생들과 함께 한달동안 특수 교육을 받게될 거다. 거기서 적성검사까지 마치고 예거 정식 멤버가 될지, 아니면 지원 멤버가 될지가 정해지지. 그 뒤로는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까지 자기 능력 계발에 매진하면 된다. 게다가 예거 본부에서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손해볼 건 하나도 없을 거야.”
최경문의 말은, 지금 김서준이 제안을 수락한다고 해도 바로 정식 멤버가 되는 건 아니라는 의미였다.
김서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경문이 말을 이었다.
“혜택은 너도 마음에 들거다. 특수 교육을 수료하는 순간부터 기본 초봉 8억에, 일산 타운 하우스의 시가 30억이 넘는 2층 주택이 제공될거다. 거기다 원활한 이동을 위해 방탄 기능을 갖춘 SUV 차량이 주어질거고, 예거 본부에 있는 ‘유물창고’에서 원하는 무기도 하나 가질 수 있지. 그리고 마지막은…. 살인면허다.”
최경문은 19살의 김서준을 앞에 두고 거침없이 살인면허까지 언급했다.
그가 살인면허를 가장 마지막에 특별히 강조했다는 건, 김서준이 이형모, 이한수 형제를 살해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예거가 되어 살인면허를 갖게된다면, 그 형제를 살해한 죄는 묻어버릴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김서준의 표정엔 아무 변화가 없었다.
속으로야 크게 놀랐지만, 그걸 최경문에게 보여줄 이유는 없었으니까.
‘살인면허는 둘째치고, 조건이 너무 좋은데?’
초봉이 8억이라는 건 이후 더 오를 수도 있다는 것이고, 30억이 넘는 주택에 차량 지원까지 한다니 꿈의 직장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예거가 되기 위해서는 신분을 숨긴 채, 목숨을 걸고 고위급 빌런을 때려잡아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할 뿐.
물론 그런 위험을 감수하게 되는 건 앞으로 3년이 지난 후가 될테니 큰 부담은 없다.
사실, 최경문이 57번 균열에서 김서준이 벌인 일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걸 알고서도 묻어줄 의사가 있다는 것.
하지만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시간을 좀 주겠습니까?”
“나도 오늘 바로 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길게 주기는 어렵구나. 예거 후보생들의 특수 교육이 7월 말에 시작되거든. 그러니 적어도 2주 전까지는 답을 주어야 한다.”
지금이 7월 초이니 대충 10일 정도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2주 안에 답을 드리죠. 그런데…. 제가 만약 거절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이미 예거에 대해 많은 걸 알게됐는데, 검은 정장을 입은 요원들처럼 붉은 빛이 번쩍이는 볼펜으로 기억을 지우기라도 하나요?”
김서준이 고전영화를 빗대며 엉뚱한 말을 하자 최경문이 웃었다.
“설마 그러겠냐? 대신, 비밀유지 계약서에 싸인을 해야 할거야. 만약 예거에 대해 그 어떤 정보라도 외부에 유출할 시, 국가에서 취하게 될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일종의 약속이지.”
“하아…. 입 함부로 나불대면 죽여버리겠다는 말보다 무섭네요.”
국가에서 취하게 될 불이익이라는 건 정말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누구라도 그런 계약서에 싸인을 하게된다면 입도 뻥끗 못하게 되리라.
“그럼 조만간 다시 보자꾸나.”
최경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번호는 이미 있을 테니, 따로 명함은 주지 않으마.”
“제 번호도 이미 알고 계실 테니, 말씀 안드릴게요.”
사이좋게 한마디씩 주고받은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교수실 밖으로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