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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준의 퇴원은 하루가 더 지난 후에야 이루어졌다.
상처가 완전히 나았음에도 백연지는 몇 번이나 정밀검사를 요구했고, 담당의사가 깨끗하게 나았음을 세 번째 확인해 줬을 때에야 비로서 안심하고 퇴원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사실, 백연지가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처음 입원할 당시, 담당의는 김서준의 상처를 보고 최소 이주일은 입원해야 한다며 꽤 심각하게 말했기 때문.
그것도 김서준의 나이가 어려 회복력이 좋은 걸 감안해서 그렇다는 것이니 굉장히 심각한 상태였던 것이다.
백연지는 최고의 의료진과 상처개선이라는 신비를 지닌 의료헌터까지 모셔와 김서준의 상처를 치료하게 했다.
그런데, 의료헌터가 또 희안한 소리를 했다.
상처에 신비의 효과가 잘 먹히지 않는다고.
김서준의 상처에서 치료를 거부하는 반응이 나와 입원치료 날짜를 줄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그러니 백연지가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김서준이 퇴원 날짜를 크게 줄일 수 있었던 건, 그 스스로 해낸 일이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태양신공을 끊임없이 운용해 재생력을 높인 덕분에 이주일을 예상했던 치료가 삼일까지로 줄어들 수 있었던 것.
이 현상에 의료진과 의료헌터는 매우 놀라워했다.
그들로서도 전혀 예상못했던 상황이라 그저 운이 좋았다고밖에 설명하지 못했다.
그렇게 퇴원한 김서준은 집에서 며칠 더 쉬라는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바로 아카데미에 등교하기로 했다.
몸이 멀쩡해 졌는데 집에서 마냥 쉬는 건 체질 상 도저히 맞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김서준은 목요일부터 등교를 시작했다.
아카데미로 향하는 지하철 안.
출입문 근처에 자리를 잡고 선 김서준은 조용히 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주변이 점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 저기 저 사람…. 이번 아카데미 대항전에서 준우승한 그 학생 아니야?”
“비슷한거 같은데? 그런데, 부상입어서 입원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머머. 잘생긴거 봐! 실물이 훨씬 나은데?”
“와, 씨. 그냥 서있는데도 포스가 완전 쩔어! 모델 같아!”
함께 지하철에 타고 있는 시민들이 김서준을 알아보고 있었다. 이에 김서준은 뻘쭘해졌고, 슬그머니 마스크를 꺼내 썼다.
균열 사태가 일상화 된 이후로, 마스크는 사람들에게 필수품이 되었기에 외출 시에는 누구나 마스크 하나 쯤은 가지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이미 김서준이라는 게 알려진 터라 소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다행히 목적지에 다다라 김서준은 서둘러 지하철에서 내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소란은 계속 이어졌다.
몇몇 젊은 사람들이 김서준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뭔가 싶어 호기심에 몰려드는 사람들.
젊은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김서준이 아카데미 대항전의 그 유명인이라고 말했고, 그 말은 일파만파로 퍼져 더욱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결국, 아카데미 교문 앞에 도착했을 때, 김서준은 많은 인파에 휩싸여 싸인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어린 학생들부터 2,30대의 청년들까지 모두 김서준에게 싸인과 사진촬영을 요구했다.
아니라고 발뺌할수도 없어서 하는수 없이 김서준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줬다.
더 기가막힌 건, 교문 위에 큼지막한 글씨로 쓰여진 플래카드였다.
[제23회 헌터 아카데미 대항전 준우승, 김서준! 제3 헌터 아카데미의 자존심을 드높이다!]
김서준으로하여금 창피함에 몸둘바를 모르게 만드는 문구였다.
강의실을 찾아가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관심은 계속됐다.
아카데미 안이라 좀 나아지나 싶었는데, 이번엔 아카데미 학생들이 김서준에게 몰렸다.
“우리 학교의 자랑, 김서준이다!”
“드디어 김서준이 등교했다!”
“여기, 여기 좀 봐줘라. 김서준!”
“내 사랑, 김서준!”
“나랑 사겨줘요!”
특히나 여학생들의 대쉬가 상당했다.
어렵게 어렵게 강의실로 들어온 김서준.
하지만 강의실에서도 김서준은 편할 수가 없었다.
동급생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김서준에게 온갖 질문을 해대며, 폰카 촬영에 싸인요청까지 쇄도했다.
그때, 한 사람이 나타나 김서준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쓰읍! 니들은 머리를 무슨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냐? 이제 막 퇴원한 환자한테 무슨 짓거리야? 빨리 안 꺼져?”
주광식이 눈을 부라리며 한소리 하자, 그제야 학생들이 하나 둘 제 자리로 돌아갔다.
“하아…. 이건 또 뭐다냐.”
김서준은 그 사이 자기 책상 위로 수북하게 쌓인 선물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긴, 뭐야? 널 향한 여학우들의 마음이 담긴 사랑의 선물이지. 쟤네들, 너 퇴원하면 주겠다고 어제부터 잔뜩 뭘 사들고 다니더라고.”
주광식은 이쪽을 힐끔거리는 여학생들을 가리켰다.
“이거 부담되네.”
“그만큼 네가 이룬 일이 엄청났으니까. 그 쟁쟁한 강자들을 상대로 준우승이라니. 하핫. 나도 솔직히 네가 그 정도 일거라고는 생각 안했거든.”
“그런 너도 16강까지는 안착했잖아.”
“16강이랑 준우승이랑 같냐? 그나저나 거기, 그 편지나 읽어봐라. 어떤 사랑의 메시지가 적혀있을지 기대되는데?”
책상 위에는 선물 외에도 분홍색 편지봉투에 예쁜 장식까지 달린 편지도 놓여 있었다.
김서준은 주광식이 그걸 노리는 듯 하자 얼른 편지만 따로 챙겨 품에 넣었다.
그리고 모든 선물을 쓸어서 가방에 담았다.
헐렁했던 가방은 금새 선물로 가득 차 빵빵하게 변해버렸다.
“선물 개봉식엔 이몸도 불러줄거지? 흐흐.”
주광식은 손을 싹싹 비비며 기대에 찬 눈빛을 보였다.
“개봉식은 개뿔. 그보다, 너 나한테 형이라고 불러야 되지 않냐? 1분 컷에 성공하면 형이라고 부른다며? 나 분명 들었다.”
김서준은 시합 중에 주광식이 소리쳤던 말을 까먹지 않고 있었다.
“어? 내, 내가 그랬었나? 하하하. 친구끼리 뭐 그런거까지 다 따지고 그래? 대항전이 무슨 스피드런도 아니고. 내가 밥으로 대신할게. 16강 성공으로 용돈 두둑하게 받았거든.”
주광식이 용돈이라는 말을 꺼내자 김서준도 뭔가 퍼뜩 떠오르는게 있었다.
“아, 맞다. 장학금이랑 3억 지원금은? 그건 언제 지급되는지 알아?”
“이번 주에 정산해 준다더라고. 심재덕 교수가 계좌번호 달라더만.”
“그런 건 빨라서 좋네.”
김서준은 아카데미에서 나올 지원금 3억에, 예거에게 받을 보상금 2억을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그렸다.
“그러고보니 한턱은 니가 쏴야겠네. 너 준우승해서 포상금도 받을 거 아냐?”
“응? 포상금?”
김서준은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애초부터 우승이나 준우승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기 때문에, 준우승을 달성할 경우 포상금이 5억이나 나온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총 10억?’
이번 일로 통장에 꽂히는 금액이 무려 10억이다.
평범한 시민이 평생을 노력해도 모으기 힘든 금액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축하한다, 새꺄. 그걸로, 부모님 호강시켜드려라.”
주광식이 김서준의 등을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한대 쳤다.
“너, 방금 나 쳤으니까 한턱은 그걸로 퉁친다.“
“뭐? 야이, 씨! 치사한 놈!”
김서준과 주광식이 그러고 있을 때, 강의실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나타났다.
한명은 당연히 심재덕 교수였는데, 다른 한명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손님이었다.
“자자, 모두 주목. 오늘은 너희들에게 특별히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 여기, 이 학생이 누군지는 모두들 잘 알고 있겠지?”
심재덕이 만면에 미소를 띄운채 소개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아델하이트 로리앙이었다.
브론즈빛 머리카락을 포니테일 스타일로 예쁘게 묶은 푸른 눈의 소녀, 아델하이트.
그녀가 왜, 무슨 이유로 이곳에 와 있는지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자, 다들 인사해라. 프랑스 명문대학인 PSH의 아델하이트 양이다.”
심재덕이 손짓을 해 보이자 아델하이트가 한발 앞으로 나서며, 조금 쑥쓰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모두 안녕? 난 아델하이트라고 해.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말과 존댓말이 섞여 다소 어색한 한국어였지만, 의미를 아는데는 어렵지 않았다.
“우와아아아! 여신이 등장했다!”
“직접 보니 더 예쁘잖아?”
“아델 양! 내 사랑을 받아주세요!”
남학생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심재덕은 학생들을 잠시 진정시키고는 할 말을 이었다.
“아델하이트 양은 오늘과 내일, 이틀간 우리 아카데미에서 체험학습을 하게 된다. 특별히 우리 반으로 배정되었으니 모두 신사적으로 행동하도록. 알겠나?”
“오예!”
“내 옆에 앉아 주오!”
“교수님! 우리 야간 수업도 합시다!”
“밤샘 수업도 마다하지 않으리!”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심재덕은 그런 말에는 신경도 안쓰고 어색한 영어로 아델하이트에게 원하는 자리에 앉으라고 말했다.
아델하이트는 생긋 웃어보이고는 당당히 걸어나갔다. 그리고 미리 정해놓은 것처럼 고민도 없이 김서준의 옆자리에 털썩 앉아버렸다.
“으아아! 역시, 미인은 영웅의 차지인가?”
“내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구나!”
“오, 나의 여신이여! 나를 버리지 말아주오!”
여기저기서 안타까워하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김서준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주광식은 상체를 앞으로 쑥 내밀어 아델하이트를 바라봤다.
“여어. 다시 보니 반갑네, 아델하이트. 나 알지? 주광식. 암튼 잘 부탁한다.”
살벌하게 생긴 얼굴로 씨익 미소까지 그리자 아델하이트가 움찔했다. 그러자 김서준이 한숨을 내쉬고는 영어로 말했다.
“이 녀석 이름은 주광식. 16강에서 만났었지? 보다시피, 내 친구고. 생긴것 만큼 흉악하진 않으니까 안심해.”
“아, 16강에서 시간관련된 신비를 쓰던 그 학생이구나? 김서준, 너하고 친구일 줄은 몰랐는걸?”
“얼굴이 좀 삭긴 했지만, 그래도 스물 한 살의 파릇파릇한 청춘이지.”
김서준의 영어는 물 흐르듯 부드러웠다.
반 친구들은 김서준과 아델하이트가 아무 문제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한 걸 보고는 부러운 눈빛을 가득 담았다.
“인사가 끝났으면 이제 수업해야지? 아, 그리고 김서준 학생. 다시 보게되서 반갑구나. 건강이 회복된 걸 축하하마.”
“네. 감사합니다.”
심재덕의 말에는 가식이 없었다.
정말 김서준의 상처를 걱정했고, 건강이 나아진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김서준은 그런 심재덕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이 저렇게 바뀔 수가 있나? 저게 연기나 거짓이 아니라서 더 헷갈린단 말이지….’
***
이틀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특히, 인형 같은 외모의 아델하이트가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보니 남학생들은 시간 가는줄 몰랐다.
이론 수업시간엔 교수가 아닌, 아델하이트를 힐끔거리느라 바빴고, 실습 시간엔 서로 아델하이트의 대련 상대가 되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하지만, 아델하이트는 단 한시도 김서준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치 아스팔트에 붙은 껌딱지처럼, 김서준 옆에 딱 붙어서 다른 사람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점심 시간엔 김서준만 졸졸 따라다니고, 밥도 바로 옆에 앉아서 먹었다.
그 덕에 주광식과는 조금 친해질 수 있었다.
아델하이트는 늘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다만, 그 미소가 향하는 곳은 다름아닌 김서준이었다.
그녀의 입은 쉴새가 없었다.
김서준을 향해 끊임없이 뭔가를 말하고, 반응을 보고싶어 했다.
“….그래서 우리 PSH 아카데미는 분위기가 좀 많이 딱딱해. 이곳 학생들처럼 자유분방한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니까?”
아델하이트는 실습수업을 위해 수련실로 향하는 지금도 묻지도 않은 프랑스 명문 아카데미 PSH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로리앙가의 규율에 따라 PSH를 반드시 수료해야 한다는 의무만 없었어도, 당장 편입 신청을 해서 여길 다니고 싶거든…. 그러지 못하는게 너무 아쉽다.”
그러고보니 아델하이트도 세계 십대 가문 중의 하나인 ‘나이트 로리앙 패밀리’. 즉, 기사의 로리앙가의 후계자였다.
김서준이 몰래 역발산기개세를 사용해 아델하이트의 마력을 살펴본 결과, 그녀는 백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과연 기사의 가문 다운 훌륭한 마력의 소유자였다.
“네 가문도 다른 십대 가문들하고 가깝나?”
“글쎄. 가깝다고 말할 정도는 아닐 걸? 1년에 한 두 번 정도 왕래가 있는 정도거든. 그래도 늘 서로의 가문에 대해 자세히 알아내려고 안날이긴 해. 세상에 정보력 만큼 강한 무기는 없으니까.”
“브라이트 가문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
김서준은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레오나드의 가문인 브라이트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아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뭔가 좋지 않은 기억이라도 있는지, 표정이 영 별로였다.
“불편하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아델하이트가 뭔가 더 말하려고 할 때, 교수가 수업시작을 알렸다.
학생들은 서로 파트너를 정해 1대 1로 가벼운 대련을 하는 수업이었는데, 아델하이트는 당연히 김서준을 파트너로 삼았다.
“오늘도 잘 부탁할게.”
아델하이트가 방긋 웃으며 말하자 김서준은 어색하게 마주웃었다.
“오늘은 내 검술 좀 봐줄래?”
“내가?”
“응. 지난 번에 네가 그랬잖아. 내 검술에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고.”
김서준이 그런 말을 하긴 했었다.
이제와서 모른척 할 수는 없어서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하이트는 연습용 레이피어를 들었고, 김서준은 전처럼 도를 쥐었다.
두 사람은 마력을 끌어올리지 않은 채로 순수하게 검술로만 서로의 실력을 검증하기 시작했다.
퓨뷰뷰뷰븃
아델하이트의 레이피어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단 한번의 찌르기인듯 하지만, 한번에 서너곳을 동시에 찌를 수 있어서 상대를 상당히 곤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김서준은 그녀의 검술을 너무도 쉽게 파훼해 버렸다.
물흐르듯 부드럽게 용이 승천하듯 도를 한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아델하이트의 레이피어를 전부 튕겨버렸다.
오기가 생긴 아델하이트는 더욱 빠른 속도로 섬전 같은 찌르기를 펼쳐냈다.
이번엔 더욱 숫자가 늘어나 한번에 여덟개의 찌르기가 날아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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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하이트의 찌르기는 김서준이 만들어낸 도막(刀幕)을 한번도 뚫어낼 수가 없었다.
몇 번을 반복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델하이트는 더 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한숨을 푹 내쉬며 자세를 풀어버렸다.
“정말 대단해. 도대체 어떻게 그걸 다 막아낼 수가 있지? 네 말대로 최소한의 동작으로 깔끔하게 펼쳤는데도 안 되잖아.”
아델하이트는 김서준의 충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였고, 자신의 검술에서 쓸데없는 동작을 최대한 줄였다.
그 덕분에 속도는 더욱 빨라졌으며, 위력도 한층 강해졌다.
그건 김서준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녀석 천재인가?’
솔직한 김서준의 속마음이었다.
“전보다는 훨씬 좋아졌다. 다른 사람이 상대였으면 피하기 어려웠을 거야.”
“하지만 넌 피했잖아. 아니, 다 막아냈지.”
“나야…. 네가 펼쳐내는 검술의 검로를 모두 읽어낼 수 있으니까 그런거고.”
“내 검로를 읽어? 그게 가능해?”
아델하이트는 깜짝 놀랐다.
김서준이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갈거라 생각했는데, 제대로된 대답이 나왔으니 너무도 의외였던 것이다.
“네 눈의 움직임을 읽고, 네 어깨의 각도를 예측하고, 네 체중이 두 발에 어떤 비율로 분배되는 지를 알면 검로를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그걸 알면 너도 할 수 있어.”
“….뭐라고?”
아델하이트는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였는데, 김서준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파악할 수가 없었다.
마치, 난 이렇게 하면 쉽게 되는데 넌 왜 못해? 라고 되묻는 듯한 기분.
“조금 쉽게 말해주면 안될까?”
“검술을 이해하는데 쉽게라는 건 없어. 그걸 이해하려면 적어도 1년은 내 방식대로 수련을 해야 하고.”
즉, 제대로된 검술이 무언지 알고 싶으면 최소 1년은 자기 밑에서 배우라는 말.
아델하이트는 금세 시무룩 해졌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날 찾아와. 그땐, 좀 더 많은 걸 가르쳐 줄 수 있을거다.”
김서준은 아델하이트와 나중을 기약했다.
소울트랩이라는 엄청난 신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레이피어 검술을 상당한 수준으로까지 익히고 있는 아델하이트.
시합 때는 신비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고 했지만, 아델하이트는 다른 헌터들에 비해 신비에 의존하는 비중이 그리 높은 편도 아니었다.
김서준은 아델하이트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았기에, 그녀의 발전을 위해 조금 강하게 충고한 것이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실제로 김서준은 아델하이트가 다시 자신을 찾아온다면, 얼마든지 그녀가 가진 검술의 취약점을 개선시켜줄 생각이 있었다.
“응. 꼭 다시 찾아올게.”
아델하이트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아무 사심없이 이렇게 모든 걸 말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김서준이 자신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었기에 그 기쁨은 더욱 컸다.
그래서 이대로 그냥 떠나기엔 너무 미안했다.
뭔가 도움이 되어주고 싶었다.
“한가지 말해줄 게 있어.”
“아, 그래?”
김서준은 아델하이트의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브라이트 가문과 로스차일드 가문을 조심해야 할 거야. 특히, 다크 티엔 가문은 정말 위험한 곳이니 절대 엮이지 말고. 알겠지?”
갑작스럽게 나온 말에 김서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지?”
여러 의미가 담긴 물음이었다.
왜 이런 말을 자신에게 하느냐는 의미도 되고, 왜 그 가문들을 조심해야 하는 질문도 되는.
“우리가 다시 만나려면 그래야 하니까.”
아델하이트의 대답 역시 단순하지 않았다.
김서준은 그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아델하이트가 명쾌하게 답을 줄 생각이었으면, 처음부터 시원하게 말해줬을 터.
그녀가 애매하게 말했다는 건, 그 이상은 말해줄 수 없다는 뜻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아델하이트와의 마지막 수업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녀는 그날로 아카데미를 떠나 공항으로 향했다.
떠나기 전, 아델하이트는 김서준에게 한마디를 더 남겼다.
“너한테는 날 아델이라고 부르는 걸 허락할게. 다음번에 만날 땐, 꼭 그 이름으로 불러줘.”
아델은 환한 미소를 남기고는 한국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