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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문을 만난 이후, 김서준의 하루 하루는 바쁘게 흘러갔다.
예거 넘버 투엘브나 써틴이 아닌, 최강의 예거 넘버 포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실력으로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그래서 특수 교육이 시작되기 전까지, 넘버 포가 되어도 충분할 정도의 강력한 무력을 손에 넣기 위해 스스로를 끝없이 채찍질 하기로 했다.
김서준은 태양신공을 기본으로 한 지속적인 운기조식과 양의분신공을 이용해 1인 2역을 수행하며 무공을 갈고 닦았다.
이젠 아예 염동장막도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 천번구를 펼쳐내 그 엄청난 파괴력을 맨몸으로 고스란히 견뎌내는 지독한 훈련까지 시작했다.
거기다 한동안 등한시 했던 수라극섬과 천궁시까지 틈 나는대로 적극적으로 수련함으로써, 김서준의 하루는 가히 살인적인 스케줄로 꽉 채워지게 되었다.
아카데미에서 방학이 시작되면 이틀의 휴식만 거치고 바로 예거가 되기 위한 특수 교육에 들어가야 했다.
특수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가평의 화악산 정상.
균열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군사시설이었지만, 지금은 예거가 특수 교육을 위한 훈련소로 사용되는 모양이었다.
정확한 소집 장소와 도착 시간, 소집 장소로 이동하는 방법, 그리고 필요한 준비물 등은 출발 이틀 전에 따로 통보될 거라고 했다.
원활한 정보전달을 위해 최경문에게 받은 특수폰으로 특정 어플을 다운받은 상태였는데, 어플은 아직 오픈이 되지 않아 사용할 수가 없었다.
특수폰은 최경문의 말처럼 지문인식과 홍채인식, 그리고 안면인식 기능까지 설치되어 있어 보안에 있어서 만큼은 확실했다.
처음 특수폰을 작동시켜보니, 다짜고짜 백문백답이라며 질문지가 떠올랐고, 김서준은 이것도 하나의 절차이구나 싶어 정성들여 답변을 마쳤다.
질문은 무척이나 개인적인 내용들이었다.
가족관계를 묻고, 성향, 취미, 하루 일과 등에 대한 평범한 질문들이었다.
마지막엔 예거로 활동하면서 사용하게 될 별도의 통장 개설과 카드 발급 등을 위한 절차까지 진행됐다.
김서준이 이런 저런 일들로 바쁜 일상을 보내는 동안, 그를 기분좋게 만드는 일들이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2학기 장학금 지급 확정 통지와 함께, 2억의 학생지원금이 입금되었다.
거기다 준우승 포상금 5억에, 박대만이 약속대로 3억의 보상금을 입금시켜주어 이제 김서준의 통장에는 기존의 금액에 더해져 23억 6천이라는 어마어마한 거금이 들어있게 된 것이다.
박대만은 보상금 말고도 특수 교육에 관한 가벼운 팁을 알려주었다.
예거 후보생을 위한 특수 훈련소에 입소하기 하루 전, 특수폰에 설치된 어플이 활성화 되게 되는데, 그때부터 김서준의 모든 것이 예거 본부로부터 감시되기 시작할 거라고 했다.
훈련소로 출발하는 시점부터 후보생에 대한 평가가 시작되는 것이며, 모든 주변 상황이 예거 본부의 컨트롤 하에 놓이게 될 것이니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김서준은 그런 박대만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박대만은 꼭 넘버링 요원으로 다시 만나자며 힘을 북돋아 주었다.
그렇게 10일이 흘렀고, 김서준은 꽤 많은 성장을 이루어냈다.
[김서준]
-마력: 138 / 내공: 136 / 제어: 121
-신비: 역발산기개세(22%) / 태양신공(25%) / 염동장막(7%) / 수라극섬(5%) / 심안(6%)
모든 능력치가 상당히 올랐다.
신비의 숙련도도 쑥쑥 오르고 있어 김서준에겐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이제 내일이면 아카데미는 방학에 돌입한다.
아카데미 학생들의 알찬 방학을 위해 여러 훈련 프로그램이 존재했지만, 김서준은 그 어디에도 신청서를 내지 않았다.
그에겐 예거가 되기 위한 특수 교육이 기다리고 있으니, 다른 프로그램에 참가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주광식, 그 녀석 너무 집요하잖아?’
벌써 며칠 째, 주광식은 김서준에게 매달려 함께 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하자고 조르는 중이었다.
이미 다른 계획이 있어서 안된다고 했지만, 그럼 그 계획에 자신을 껴달라고 안달이었다.
김서준은 1학기 마지막 수업인 내일, 어떡하든 주광식을 잘 설득해서 자기 일에 관심을 끊게 만들자고 마음 먹고는 다시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
금요일 오전.
강의실에 도착할 때쯤, 백연지 여사에게서 톡이 날아왔다.
사랑하는 백여사>>아들. 이거 무슨 돈이니?
아침 등교 길에 백여사의 통장에 계좌이체를 했더니 바로 연락이 온 것이다.
나>>대항전 상금인데?
사랑하는 백여사>>헌터 아카데미라 그런가? 보상이 무슨 오천씩이나 된다니?
나>>오천? 잘못 본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없는데.
김서준은 좀 전에 백연지 여사 계좌로 이체한 금액을 다시 확인해 봤다.
[이체금액] : \500,000,000
분명 5억이 맞다.
아마도 백연지 여사가 0의 숫자를 잘못 본 모양.
김서준의 예상대로 잠시 후, 다시 톡이 도착했다.
사랑하는 백여사>>아들! 이거 5억이야?
나>>응. 5억.
사랑하는 백여사>>아니, 이러ㄴ 큰 도늘 어떠ㅎ게…..
백연지 여사는 크게 당황했는지 톡에 오탈자가 난무했다.
나>>나 곧 수업이라…. 그 돈 아들이 엄마 주는 거니까 알아서 마음껏 써도 돼! 저녁 때 봐.
김서준은 얼른 톡 어플을 닫았다.
때마침 강의실 앞이었고, 김서준은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꿀톡!
꿀톡 어플에서 수신음이 들려 폰의 소형 액정을 슬쩍 보니,
사랑하는 백여사>>사랑한다, 아들.
백여사의 진심이 담긴 메시지가 보기좋게 떠올라 있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저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가 그려졌다.
“야, 김서준! 너 요즘 연애하냐? 폰 보고 히죽거리면 연애하는 거 백퍼라던데?”
주광식이 옆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연애보다 더 좋은 거.”
“그런게 어딨냐? 너나 나 같은 모태쏠로한테는 연애야 말로 최종 목표이자, 최고의 안식처지. 안그래?”
“난 모태쏠로 아닌데.”
“아, 그러세요? 그래서, 너의 반쪽은 어디 계신나? 여기? 저기? 아~ 안보이는 거 보니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거구나?”
주광식은 되도않는 농담을 하며 혼자 큭큭 거렸다.
“네가 너무 딱 붙어 있으니까 나 찾아오던 인연도 죄다 도망간다고.”
“그 반대라고는 생각 안해봤냐? 내가 너한테 꼬여드는 날파리들 같은 악연을 알아서 차단해주고 있는 걸 몰라주다니, 이거 섭하군.”
“말은 참 잘하세요.”
“하핫. 그게 내 전매 특허거든. 그보다…. 너 내일 새벽에 시간 되지?”
아침도 아니고 새벽이라니.
뜬금없는 물음에 김서준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주광식이 껄껄 웃었다.
“이 형님이 모태쏠로인 동생을 위해 아주 좋은 기회를 마련했다.”
거기까지 말한 주광식이 갑자기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소곤거렸다.
“호성이 형이 내일 새벽 수업에 너 데리고 오란다.”
“….!”
김서준의 눈이 살짝 커졌다.
유호성의 새벽 수업은 다름아닌 한세아의 개인 수업이었으니까.
“요즘 형이 한세아 각성 유도 중인데 생각보다 잘 안되나봐. 나보단 마력 컨트롤이 좋은 네가 더 나을 것 같다면서 좀 도와달라던데? 수고비는 잘 챙겨준다니까 걱정말고. 까놓고 말해서, 한세아를 따로 만날 수 있는 기회인데, 수고비가 문제겠냐?”
기가막힌 타이밍이다.
오늘부로 방학이 시작되고, 주말을 지나 월요일이 되면 특수 교육이 시작되는데, 그 전에 한세아를 한번 더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새벽 몇시에?”
김서준이 정확한 시간을 묻자 주광식이 음흉한 미소를 그려보였다.
“흐흐. 역시 너도 관심이 가지? 시간은 4시 반. 내가 형 차타고 증산역 4번 출구 앞에서 기다릴게.”
“뭐, 알았다.”
김서준은 약속을 잡았고, 그날 수업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오늘 수업은 오전만으로 끝났다.
수업 내용도 2학기 커리큘럼에 대한 설명뿐이어서 그다지 중요한 건 없었다.
주광식은 예상대로 오전 내내 김서준에게 방학 중 훈련 프로그램에 대해 떠들었지만, 김서준의 철벽 방어로 인해 아무 소득이 없었다.
오전 수업 마지막에 심재덕 교수가 이제 방학이 시작된다고 선포하자 학생들은 마치 졸업이라도 한 듯 손에 든 물건을 위로 집어던지며 환호했다.
이를 흐뭇한 미소로 지켜보던 심재덕 교수는 유독 김서준에게 시선을 던지며 한마디 던졌다.
“모두들 뜻깊은 여름방학을 보내기 바라마. 한층 나아진 모습으로 다음 학기에 다시 만나자.”
***
그날 저녁.
김서준은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오창석을 만나기 위해 ‘우나라 소나라’ 음식점으로 향했다.
동료들 중 가장 먼저 찾아낸 오창석이였지만, 딱히 연결 고리가 없어 대화조차 하지 못했었다.
대신 박대만과 유호성, 거기에 김유라까지 연이어 만나게 되면서 조금이나마 친분을 다질 수 있었고, 한세아와 최동현도 서로 눈도장 정도는 찍은 상태였다.
동갑 친구인 정욱은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오창석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찾아가 인사를 해 두고 싶었다.
‘며칠 뒤면 한달 간 여길 떠나 있어야 하니까 오늘이 딱 좋아.’
김서준은 어느새 우나라 소나라 음식점 앞에 도착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손님들로 붐볐다.
“어서오세요!”
예전에 김서준 가족의 테이블 서빙을 맡았던 여종업원이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죄송하게도 식사하러 온 게 아니라서요.”
“아, 그러세요? 그럼 무슨 일로….”
“여기 혹시 오창석이라는 분 계시지 않나요?”
“….!”
여종업원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이젠 이 정도 미세한 반응은 손쉽게 캐치할 수 있을 정도로 김서준은 모든 것에 민감해져 있었다.
“어…. 그게.”
여종업원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말을 더듬을 때,
“창석이 녀석을 찾아 왔다고?”
한 사내가 불쑥 끼어들었다.
40대 초반의 사내는 이전에 여기 왔을 때 본적이 있는 고기집 사장이었다.
그가 나타나자 여종업원이 고개를 까딱해 보이고는 다시 자기 일 하러 가버렸다.
“이거 어쩌지? 창석인 지금 우리 가게에서 일 안하는데. 조만간 다시 출근할 예정이긴 하다만…. 창석이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지? 이름까지 알고 있는 걸 봐서는 친한 사인가?”
사장 양상익이 사람 좋은 얼굴로 묻자 김서준은 미리 준비해 온 대답을 꺼내놨다.
“그 형 이름이 오창석 맞군요? 지난 번에 여기 와서 봤을 땐, 명찰만 살짝 본거라 기억이 가물가물 했거든요. 제가 여기 온건, 그 형한테 전해 줄 게 있어서예요.”
“아는 사이는 아니다?”
“네. 저도 그날 처음 본거라…. 여기, 이거요.”
김서준은 잘 접힌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사장에게 건넸다.
“전화번호 하나 적어뒀어요. 삼성동에서 유명한 헌터 학원 강사님 번호인데, 혹시 생각 있으면 연락해 보라고 전해 주세요. 혹,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강사님께서 사정에 맞게 조율해 주실거니까 걱정 말라고 꼭 말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서준이 건넨건 유호성의 번호였다.
지난 번에 봤을 때는 심안의 신비가 없었을 시점이라 오창석이 신비를 각성했는지, 아니면 신비 없이 스스로 몸을 단련한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창석의 당시 몸놀림을 감안해 봤을 땐 분명 상당한 실력자였기에 유호성을 소개해 준다면 어떤 식으로든 친분이 생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직 유호성에게는 오창석에 대한 걸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일 주광식과 함께 만나게 되면 넌지시 부탁을 해볼 생각이었다.
“헌터 학원 강사라면…. 하하하. 이거, 학생이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이구나? 창석이는 헌터 일에 관심이 없다. 각성은 못했지만, 그냥 평범하게 사는게 목표라고 떠들던 녀석이라.”
“아,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뭐. 그래도 혹시 모르니 번호랑 제 말은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김서준은 양상익에게 정중히 다시한번 부탁했다.
“전달하는 거야 뭐가 어려울까. 그런데, 아는 사이도 아니라면서 왜 창석이한테 그리 관심을 갖는 거지?”
“사실, 제가 헌터 아카데미 학생이거든요. 나름 눈썰미가 좋다고 자부하고요. 처음 여기 와서 창석이 형을 봤을 때, 그 형이 제대로 각성만 하면 참 훌륭한 헌터가 될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는 강사님한테 형 이야기를 했더니, 언제든 연락을 주면 한번 각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찾아온 거고요.”
김서준은 앞 뒤가 정확히 들어맞게 이야기를 꾸몄고, 그 말을 들은 양상익은 전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듯 보였다.
“참 착한 학생이구나. 학생 같은 사람이 헌터가 되어야 이 세상이 훨씬 더 안전해 질텐데 말이지.”
“별 말씀을요.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김서준은 할 말을 다 했지만 마지막으로 하나 더 확인해 볼 것이 있었다.
“그래, 편하게 사용하렴.”
화장실로 향한 김서준은 대충 세수를 한 뒤, 문을 열기 직전에 심안을 사용했다.
눈이 황금빛으로 변한 순간, 그의 몸에서 남들은 느끼지 못하는 마력의 파동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파동은 반경 20미터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제야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김서준은 여기저기에 떠있는 머리 위의 표식들을 보고 흠칫 놀라고 말았다.
‘뭐야? 한 두 명이 아니잖아?’
일개 음식점에 불과한 이곳에 마력수치가 떠오른 사람들의 숫자가 무려 7명이나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