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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로 마력수치와 격이 떠오른 7명의 사람들.
놀랍게도 그들 모두 이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주방에 있는 세 명에, 홀에서 일하는 세 명, 그리고 사장인 양상익까지.
더욱 놀라운 건, 그들 모두가 마력 60이 넘는 C급 이상의 헌터라는 점이다.
특히 양상익은 150을 넘고 있어 상당한 수준의 헌터였다.
‘여기… 평범한 음식점이 아니었잖아?’
사장부터 직원들까지 모조리 힘을 숨기고 있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 남들 모르게 뭔가 일을 꾸미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 느낌이 정확했다.
‘그럼 창석이 형도 마찬가지겠지?’
사장 양상익은 오창석이 각성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거짓말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단순한 고깃집으로 보이는 이 곳이 사실은 신비를 각성한 헌터가 무려 7명이나 운집한 장소라는 건 너무도 이상한 일이었다.
특별히 사람들이 몰리는 동네도 아니었고, 균열이 집중적으로 일어난다거나 늘 위험이 산재해 있는 장소도 아니다.
그럼 왜, 무슨 이유로 이곳에 헌터들이 음식점을 차리고 힘을 숨기고 있는 걸까?
김서준의 머리가 갑자기 복잡해졌다.
“학생, 음료라도 하나 마실래?”
김서준이 다가오자 양상익이 음료 냉장고를 열어 캔음료를 꺼내들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제가 여기 온 소기의 목적은 이뤘으니, 이만 가 볼게요. 장사하시는데 괜히 방해만 드린 거 같아 죄송하네요.”
“방해는 무슨. 이건 가면서 마시거라. 그리고, 학생이 준 번호하고 전할 말은 그대로 창석이한테 전해주도록 할 테니 걱정 말고.”
양상익은 꺼낸 캔음료를 김서준에게 건넸다.
“잘 먹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봬요.”
“그래. 언제든 부모님하고 또 찾아와 주렴! 서비스 팍팍 줄테니까. 하하하.”
김서준은 그렇게 음식점을 벗어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김서준은 마지막에 양상익이 한 말을 계속 곱씹고 있었다.
‘내가 거길 부모님하고 같이 갔다는 걸 어떻게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
부모님과 그 고기집을 찾은 건 벌써 한달도 훨씬 지난 일이었다.
게다가 김서준은 양상익에게 자신이 부모님과 같이 왔었다는 말도 꺼낸 적이 없다.
마지막에 부모님하고 또 찾아와 달라고 한 말은, 그냥 으레적으로 예의상 꺼낸 말이 아니라 정확히 김서준이 그 음식점에 언제 왔으며, 누구와 왔다는 걸 기억하고 꺼낸 말이었다.
하루에도 수백명의 손님이 오가는 음식점 사정이, 한달도 전에 딱 한번 방문한 학생을 기억하고, 그 학생이 부모와 함께 왔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미 그때부터 날 눈여겨 봤다는 말인데….’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김서준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고, 자신의 방에 들어가 균열관리국의 인트라넷에 접속했다.
그리고 자신이 기억하는 가게 직원들의 이름을 떠올려 하나하나 검색해 봤다.
직원들 모두 가슴팍에 명찰을 달고 있어서 이름을 떠올리는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인트라넷 어디에서도 직원들 이름이 검색되지 않았다.
신비를 각성한 헌터라면 균열 관리국 데이터에 존재해야 했다. 만약, 헌터인데도 데이터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면, 딱 두 가지 경우밖에 없다.
‘국가를 위해 비밀리에 움직이는 비밀헌터이거나, 각성을 하고서도 헌터 아카데미를 거치지않은 누락자이거나 둘 중 하나라는 거겠지.’
비밀헌터는 ‘유령’이라고도 불리는데, 예거와는 달리 세상에 꽤 많은게 알려져 있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헌터 조직이였다.
이 유령이라는 조직은 세계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존재하고 있는데, 이 유령들의 능력이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 한 국가의 국력을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이름도, 얼굴도, 신분도 거의 알려진게 없는 유령들.
이들은 국가를 위해 소리소문 없이 흉악한 빌런을 처리하거나, 균열에 스며들어가 특수한 작전을 펼치곤 한다.
그리고 매년, 전 세계 유령들이 모여서 서로의 강함을 비교하기 위해 대회를 치르기도 한다.
만약, 이 대회에서 우승하게되면 국가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는 것이기에 서로 강력한 헌터를 자국의 유령 조직에 끌어들이려고 눈에 불을 켜는 실정이었다.
유령이 국가가 서로의 강함을 비교하는 잣대가 되는 범국가적인 조직이라면, 예거는 오직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강력한 히든카드와 같았다.
물론 다른 국가에도 예거와 비슷한 특수조직 한 둘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명칭과 구조, 구성원이 다르고 그 어떤 것보다도 철저하게 정보가 보호되기 때문에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창석이 형도, 그 음식점 직원들도 모두 유령인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국가의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으로서의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
‘아니면, 균열 관리국에 신고되지 않은 누락자들이려나?’
오히려 이쪽일 더 가능성이 높다.
느낌 상으로는 나쁜 의도를 지닌 어둠의 조직은 아닌 것 같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 조심할 필요는 있었다.
‘우리 집이 어딘지도 이미 파악하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자신은 상대의 정체를 모르는데, 상대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기분은 상당히 꺼림칙 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김서준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꺼림칙함을 조용히 안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휴…. 조용히 살아가기가 왜 이리 힘든 건지.’
김서준은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워, 팔배개를 한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일 유호성을 만나면 오창석에 대해 어떻게 말할지를 잠시 고민했다.
***
샤워를 마친 오창석이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털어낼 때였다.
띠리리리.
거실에 놓아둔 휴대폰 소리에 오창석은 저벅저벅 다가가 액정을 확인했다.
‘양상익?’
전화한 사람은 양상익이었다.
금요일 저녁이니 한참 부업인 고기집 운영으로 바쁠 시간인데,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걸까?
오창석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수신을 눌렀다.
“네. 오창석입니다.”
-양상익입니다. 쉬고 계신데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부주님께 먼저 알려드리는게 좋을 것 같아서, 전화드렸습니다.
“무슨 일이죠?”
-방효진 기억하십니까?
양상익은 자신의 상관인 오창석의 기억을 돕기 위해 방효진의 이름을 먼저 꺼냈다.
“방효진? 아, 그 인플루언서 흉내내면서 가짜 오파츠를 만들어 팔던 여자요? 방효진 건은 이미 끝난 거 아닙니까?”
오창석이 눈가리기 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가게에서 진상을 부리던 방효진은 한달도 전에 진면목이 밝혀지면서 조용히 제거된 상태였다.
-방효진이 저희 가게에 왔을 때, 부주님께서 관심을 보였던 학생…. 기억나시는지요?
오창석은 잠시 기억을 되짚다가 양상익이 말한 학생이 누군지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눈썰미 좋던 학생 말입니까? 물론 기억하죠.”
-그 학생이 방금 전 다시 찾아왔습니다.
“우리 가게로요? 무슨 일로?”
평범하게 손님으로 찾아온 거면 양상익이 이 시간에 급히 전화할 일이 없었다.
-부주님을 찾았습니다. 언제 봤는지 부주님 명찰까지 확인해서 이름도 알고 있더군요.
“내 이름을? 내가 그 학생 근처로 간 적이 있던가?”
한달이 훨씬 지난 일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당시 오창석이 학생 근처로 다가간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제 생각엔 그 학생이 부주님의 능력을 살짝 눈치 챈 것 같습니다. 부주님께 드리라고 헌터 학원 강사 전화 번호를 줬습니다.
“헌터 학원? 푸하하! 이거 참 쑥쓰럽네요. 이 나이 먹고 다시 헌터 학원을 다니라는 소린가?”
-웃을 일만은 아닙니다. 아직 아카데미를 졸업한 것도 아닌 학생이, 부주님의 움직임을 읽어내고 범상치 않다는 것까지 파악했을 정도면….
“그 학생의 감이 보통은 아니라는 소리겠죠.”
오창석은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채 작게 말했다.
자길 언제봤다고 고작 그 간단한 움직임 하나만 보고 헌터 학원을 소개해 주려고 하다니.
참 재미있는 학생이다.
-아무래도 정성적으로 재평가를 해서 관심을 좀 가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저도 그 학생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지는군요.”
-최대한 빠른 시간 내로 결과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이 줬다는 강사 번호 저한테도 보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양상익과 통화를 마친 오창석은 깔끔한 정장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다.
작은 키에 곰보처럼 우들투들한 얼굴.
이 외모로 인해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어야 했던 오창석은 ‘강림’이라는 신비를 각성 순간, 모든 걸 뒤엎을만큼 강한 힘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외모는 헌터 아카데미에서도 따돌림을 받게 만들었다.
처음엔 감정을 꾹 눌러 참을 수 있었지만, 그럴수록 동급생들의 괴롭힘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다 결국, 오창석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지닌 바 마력은 보잘 것 없었지만, 강림이라는 신비가 워낙 엄청났기에 그의 분노는 아카데미 내에서 역대급의 사고를 일으키고 말았다.
오창석을 괴롭히는 일에 주동자로 나섰던 학생의 사망. 그리고 이를 방조한 동급생 26명의 크고 작은 부상.
이로 인해 오창석은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했고,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나마 사고 당시, 오창석을 향한 따돌림이 심했으며, 우발적인 사고였다는 점이 정상 참작되어 1년으로 감형된 것이다.
오창석은 출소 후, 한동안 밑바닥 삶을 살았다.
닥치는데로 일을 했지만, 그의 못난 외모는 어디에서도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또한 범법자라는 타이틀 때문에 일자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넘게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며 지내던 오창석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대한민국 어디에든 존재하는 어둠의 지하세계에서 오창석의 능력을 알아본 사람이 그를 거두어 들인 것이다.
그 이후 오창석은 탄탄대로를 걷게 되었고, 막강한 조직의 우두머리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 조직이 바로 천간십이지(天干十二支)였다.
‘내 얼굴을 보고서도 날 헌터 학원에 소개해 주려는 학생이라…. 재미있군.’
외모에 깊고 큰 콤플렉스가 있는 오창석에게 이번 일은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못난 외모를 감추기 위해 멋진 옷으로 치장하고, 늘 마스크와 썬글래스까지 쓰고 있는 그였기에, 한 학생의 그 작은 마음이 꽤나 고맙게 느껴진 것이다.
지금껏 그의 외모를 보고서도 호의를 가지고 다가와 주는 사람은 몇 명 보지 못했다.
그에겐 스승이나 마찬가지인 천간십이지의 전(前) 부주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오창석은 담배를 하나 입에 물고 베란다로 나갔다.
밖은 이미 어두웠지만, 사방에 네온사인이 가득해 휘황찬란했다.
호텔 같은 건물의 3층 베란다 난간에 기댄 오창석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저 아래에 펼쳐진 잔디밭을 내려다 봤다.
그곳엔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모두들 가면을 쓰고 삼삼오오 모여서 히히덕 거리며 즐겁게 떠들고 있다.
이름모를 재벌가에서 주최하는 파티이긴 하지만, 결코 단순한 파티는 아니다.
넓은 잔디밭 한쪽에는 무대가 세워져 있었고, 단상이 있었으며, 그 앞으로는 수많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 둘 그쪽으로 이동해 의자에 앉았고, 잠시 후 무대 위 단상으로 장년의 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등장에 시끄러움은 금세 사라졌다.
“자, 오늘도 이렇게 저희 십이지(十二支)의 경매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오늘 경매 물품들에 대해서는 모두 검토해 보셨겠죠? 놀라실 준비를 해야 할 겁니다. 오늘 경매품 중에는 무려 오파츠, 그것도 고대유물에 해당하는 물건이 두 개나 나올 테니까 말이죠.”
신사의 말이 끝나자 장내에 있는 사람들의 눈빛이 탐욕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토요일 새벽 4시 28분.
증산역 4번 출구 앞에서 유호성과 주광식을 만난 김서준.
셋은 한 차에 올라타 성령의 한 가문이 위치한 한남동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 대였기에 도로에 차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김서준은 한세아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유호성에게 오창석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오창석이라는 사람한테 연락이 오면, 최대한 배려해 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유호성은 오창석이 누구냐고 물었고, 김서준은 간단하게 대답해 줬다.
느낌상 강력한 신비를 각성할 수 있을 것 같은 동네 형인데, 사정이 좋지 않아 아직까지 각성을 못했으니 이를 감안해 비교적 저렴하게 학원을 다닐 수 있게 해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에 유호성은 쿨하게 허락했다.
주광식의 친구로 지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수강료가 무슨 문제가 되겠냐며 공짜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서준은 유호성의 이런 시원시원함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전 세상에서도, 여기서도 유호성은 언제나 마음 따뜻한 형으로서 듬직하게 뒤를 지키고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차는 30분 정도 지나서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매봉산 서쪽 숲에 도착했다.
한 그룹의 회장인 한두호.
그의 저택은 이름에 걸맞게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집 입구에서 본채 건물까지 가는데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는데, 몬스터 웨이브를 대비해서인지 넓게 펼쳐진 담벼락은 높기도 했지만 곳곳에 초소가 세워져 철저한 경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20미터 간격마다 중화기가 설치되어 개미새끼 한마리 담장을 넘지 못하게 한다더니 소문은 사실이였다.
다시 산 위쪽으로 나있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자 드디어 숲속의 왕궁처럼 크고 웅장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유럽풍의 대저택.
그 앞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댄 일행은 대저택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유호성은 거의 매일 같이 이곳에 오다시피했고, 주광식도 서너번 함께 와봐서 익숙했지만, 김서준은 처음이라 그런지 저택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꽤나 놀란듯 보였다.
“엄청나지? 여기만 오면 같은 한국이 맞나 싶다니까?”
주광식이 툭 던지는 말에 김서준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김서준이 놀란건 저택의 규모나 멋 때문이 아니라 곳곳에서 느껴지는 감시의 시선 때문이었다.
깔끔한 턱시도를 쫙 차려입은 집사의 안내에 따라 저택의 복도를 지나는 중에 김서준이 확인한 CCTV만도 벌써 12개다.
또한 위험이 닥치면 언제든지 창문이나 복도 중간을 폐쇄할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다는 것도 알아볼 수 있었다.
가장 놀라운 건, 중간 중간 마주치는 정장의 사내들이었다.
슬쩍 심안을 사용해보니 하나같이 마력수치가 100을 넘기는 B급 이상의 헌터다.
격은 대부분 노멀. 그런데, 안쪽으로 들어가보니 엘리트로 표시되는 자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양복 안쪽에 권총을 착용하고 있었지만 그건 구색을 맞추려는 것에 불과했다.
잘 단련된 육체만 봐도 그들이 하나같이 격투기를 제대로 배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과연 십대 가문 답구나.’
김서준은 여러모로 감탄했다.
이 정도가 세인트 한 패밀리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지금 상태만으로도 헌터로 구성된 특수부대 몇 개 소대는 우습게 막아낼 전력이었다.
‘보이는게 이정도면, 숨겨진 전력은 더 엄청나다는 거겠지.’
김서준은 한세아가 안전한 곳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안심하는 중이었다.
“아가씨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40대로 보이는 집사는 인상 자체가 웃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사람 좋게 보이는 집사마저도 A급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집사가 육중한 문을 밀자, 커다란 돔 형태의 홀이 나타났다.
크기는 대략 직경 50미터 정도.
바닥엔 충격을 흡수하는 특수재질의 매트리스가 깔려있었다.
“이곳이 오늘 수업장소야. 한씨 가문 전용 수련실이라나 뭐라나. 저기, 주인공께선 벌써 와 계시네.”
주광식은 마치 자기 집을 자랑하는 것처럼 신이나서 김서준에게 이것 저것을 알려주었다.
그 사이 집사는 문을 닫고 사라졌다.
“오늘은 한 분이 더 오셨네요?”
한세아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볍게 웨이트 트레이닝 중이었고, 그녀 대신 비슷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여인이 다가왔다.
“오늘 수업을 도와줄 아카데미 학생입니다.”
“아, 이분도 각성자시군요? 반갑습니다. 전, 세아 양의 매니저인 이채하라고 해요.”
자신을 매니저라고 소개한 이채하는 올 해 스물 두살의 젊은 여인이었다.
이곳에 오면서 주광식에게 듣기론 17살에 각성해서 제1 헌터 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바로 한 그룹에 특채로 입사한 인재라고 한다.
아카데미 학생 시절부터 한두호의 눈에 들어 한세아의 모든 걸 돌보는 매니저로 활동했기 때문에 이 가문의 내부 사정에 대해 굉장히 많은 걸 아는 인물이라고도 했다.
‘마력이 406이라…. 엄청나군.’
일개 매니저의 마력이 A급을 크게 상회한다.
“처음뵙겠습니다. 김서준이라고 합니다.”
김서준이 마스크를 벗으며 인사하자 이채하는 싱긋 미소를 그려보였다.
“어머. 모델 같은 학생이네요. 아무튼, 우리 세아 잘 부탁할게요.”
이채하의 칭찬에 머쓱해진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웃어주었다.
그때, 혼자 몸을 풀던 한세아가 김서준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대항전에서 준우승한 그 김서준?”
한세아도 김서준이 누군지 알아본 모양이었다.
“하하하. 세아 양도 봤나 봅니다? 네, 맞아요. 이 녀석이 이번 아카데미 대항전에서 준우승을 기록한 김서준이자, 제 단짝 친구지요.”
주광식이 나서며 한 말에 한세아는 귀여운 토끼 눈이 되어 쪼르르 달려왔다.
“서준 오빠, 반갑습니다! 이번에 멋진 시합 보여줘서 너무 감사드려요. 제가 꿈에 그리는 헌터의 모습 그대로였거든요.”
“아, 네….”
김서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그냥 짧게 대답했다.
“네가 뭐에요? 올 해 열 아홉 맞죠? 그럼 오빠니까 편하게 말해요, 편하게.”
“네? 아…. 그럼 그러죠.”
김서준도 말을 놓는 편이 훨씬 편했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때, 주광식이 끼어들었다.
“저기, 저도 편하게 하면 안될까요?”
주광식은 이미 몇 차례 이곳에 왔으면서도 아직 말을 놓으라는 소릴 듣지 못한듯 했다.
“어…. 네. 그러세요.”
한세아는 살짝 고민하는듯 하더니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와하하하! 감사합니다. 아니, 고맙다, 세아야.”
“네네. 하하. 하하하.”
마주 웃는 한세아의 표정엔 살짝 부담스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