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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거 캠프는 총 2개 층으로 된 대공동과 일반형의 3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 B1층에는 주로 훈련 장비와 전술, 전략 장비, 그리고 훈련을 위해 마련된 다양한 장소가 위치하고 있었다.
거기에 예거의 실전을 위해 사로잡은 몬스터들까지 같은 층에 존재했다.
B2층은 B1층보다 훨씬 위험한 장소였다.
이곳엔 균열이 존재했다.
총 16개 섹터로 구분되어져, 각 섹터마다 특징적인 균열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B2층은 훨씬 커다란 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균열 16개가 자연적으로 이곳에 몰려서 생성되었을 리는 없다.
그 말은, 인위적인 힘으로 균열을 이곳으로 가져왔다는 의미.
김서준은 예거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균열을 이곳으로 옮겨왔을지가 너무도 궁금했다.
예거 소속의 각성자가 가진 신비의 힘일까?
아니면, 균열을 이동시킬 수 있는 특수한 장비라도 있는 걸까?
아무튼 예거에 균열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니 그 방법이 무언지 꼭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B3층.
이곳은 숙소와 식당, 그리고 휴식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둔 중인 군부대의 군인들과 예거 요원들, 그리고 훈련 생도들이 지내게 될 숙소까지 모두 이 B3층에 있었다.
이곳은 대공동이 아니라 일반적인 형태의 지하 층이었는데, 그래도 층고가 5미터나 되고 엄청 큰 규모로 만들어져서 예거 요원이나 군인들, 생도들이 마주칠 확률이 거의 없게끔 확실히 구분되어 있었다.
B4층과 B5층은 훈련 생도들로서는 갈 수도, 무엇이 있는지 알 수도 없는 층이었다.
그곳에 대한 것은 훈련을 모두 마치고 정식으로 요원이 되어야만 알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교관으로부터 이런 설명을 듣다보니 B2층도 거의 지나갔다.
이제 곧 B3층이고 엘리베이터는 멈추게 된다.
그때, 이리나가 한 가지 질문을 더 했다.
“교관님. 예거가 되면 주어지는 특수장비가 있다던데, 혹시 그것에 대해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리나가 묻고 있는 건, 생도 중 하나인 박해성이 말했던 기프트에 대한 것이었다.
교관도 이를 알기에 피식 웃으며 바로 대답을 내놨다.
“기프트에 대해 알고 싶은 거구나? 하지만 곧 자세하게 알게 될 텐데 굳이 내 설명이 필요하려나?”
“그냥 대충이라도요.”
이리나는 예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말했고, 애교라면 애교일 수 있는 행동에 교관은 또 한번 웃고 말았다.
“하하. 알았다. 그럼 간단히 설명해 주지. 기프트가 뭐냐면 말이다.”
교관은 짧게나마 기프트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기프트.
이른바 신이 준 선물이라는 뜻을 지니며, 각성자가 얻게되는 신비와 유사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예거들만의 전용 무기다.
기프트는 일반적인 아티팩트와는 완전히 다르다.
또한 유물과도 차이가 있었다.
최첨단 기술로 천재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마법장치. 그것이 바로 기프트인 것이다.
기프트는 보통 시계의 형태를 띄게 되는데, 단순한 시계적인 기능부터 통신 및 주변 스캔, 지도 제작, 모든 전자기기에 대한 리모트 컨트롤 기능까지를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다.
거기에 총 12개의 마법적 능력을 내장하게 된다.
베리어, 마력보조, 신체강화, 이속증폭, 위력증가, 비행, 클로킹, 마력측정, 매혹, 면역강화, MPSP(Magical Power Shutdown Pulse-마력폐쇄파),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력커버 능력까지.
능력 하나하나의 효과가 그리 엄청난 정도는 아니지만, 신비를 하나밖에 갖지 못하는 헌터들에게 이 기프트가 갖게되는 가치는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이 12개의 마법능력이 하나의 기프트 안에 모두 한꺼번에 내장되는 건 아니다.
기프트가 한번에 품을 수 있는 능력은 단 세개.
그 이상의 능력은 그 작은 장치에 담을 수도 없을 뿐더러, 담는다고 해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커다란 위험성을 갖기 때문에 사용이 불가능했다.
이 기프트는 모든 예거 요원에게 주어지는데, 기본적으로 ‘마력커버’를 공통적으로 갖게 된다.
예거의 임무 특성 상, 외부에 신분이나 능력이 밝혀지면 안되기 때문에 기프트의 마력커버 능력으로 자신의 마력수치를 반드시 낮추고 활동해야 했다.
즉, 모든 예거 요원이라면 기프트를 가질 수 있지만 마력커버 외에 두 개의 능력 더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와. 그럼 그 엄청난 기프트를 오늘 받게 된다는 거잖아요?”
“그렇지. 훈련을 받는 동안에는 12가지 능력을 모두 쓸 수 있을 거다. 훈련이 끝나면 마력커버 능력을 포함해 총 세 가지를 선택해야만 하지. 최종 선택 후, 락을 걸어야 그때부터 기프트의 능력을 100%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거고.”
“그래도 엄청난 매리트네요. 마력보조 능력이 있는 것도 놀랍고요.”
“그렇긴 하지. 기프트 사용자마다 마력 친화도 다르고, 그 친화도에 따라 효율도 차이가 나긴 한다만, 대부분 10%에서 15% 정도 강화된 능력을 쓸 수 있게 되지.”
확실히 대단했다.
수치 상으로 10%, 15%는 그리 높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막상 실전에 들어가게 되면 10%, 15% 상승 효과는 굉장한 것이다.
100미터를 10초에 뛰던 걸 9초에 뛸 수 있다는 것이고, 멀리 뛰기3미터가 3.3미터로 늘어나는 것이니 그 차이는 결코 작지가 않았다.
특히, 마력적인 면에서는 그 차이가 더욱 커진다.
“이제 다 왔다.”
교관의 말대로 엘리베이터는 B3층에 멈춰서 있었다.
뻥 뚫려 있던 삼면의 벽은 어느새 꽉 막혀 있었다.
그때, 정면의 벽 중간이 가로로 쫙 갈라지더니 위 아래로 빠르게 사라졌다.
부르릉
차량들이 모두 출입구로 빠져 나갔고, 생도들은 삼거리 형태로 된 커다란 복도에서 모두 하차했다.
김서준도 배낭 하나만 달랑 둘러맨 채 금속 느낌의 벽으로 된 공간에 내려섰다.
생도들과 교관들이 내리자 차들은 모두 왼쪽 통로로 빠르게 사라졌다.
차가 사라지자 왼쪽 통로에는 차단막이 내려와 공간을 완벽하게 분리시켰다.
“이제 날 따라와라. 숙소까지는 꽤 먼거리가 될 테니 최대한 짐을 가볍게 하고 뛰어오도록.”
박문호가 선두에 서고, 그 뒤에 생도들이 일렬로 늘어섰다.
그 옆에는 교관들이 붙어 섰고, 가장 후미에도 교관 한명이 자리했다.
김서준이 가져온 짐은 개인 물품 몇 가지와 옷가지를 담은 공간확장용 배낭과 각종 아티팩트가 들어 있는 공간주머니 밖에 없어서 무거울게 전혀 없었다.
다른 생도들 또한 대부분 공간확장용 아티팩트를 소지했기 때문에 차림이 간편한 편이었고.
하지만 딱 한명.
이제 막 각성한 18살의 임희주는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 아직은 비싼 공간확장용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녀는 자기 상체만한 커다란 배낭을 매고 있었는데 마력이 높긴 해도, 체력은 그렇지 못했기에 꽤나 버거워 보였다.
그 상태에서 박문호가 뛰기 시작하니 임희주는 점점 뒤쳐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임희주의 사정을 생각해주지 않았다.
어느새 맨 뒤로 빠진 임희주.
그녀는 체력적인 훈련을 전혀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20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을 매고 걷는 것도 아닌, 뛰어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박문호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넓은 복도를 따라 쭉쭉 나아갔다.
다른 생도들도 마찬가지.
임희주와 생도들의 거리는 더욱 벌어졌다.
그때, 앞에서 세 번째로 뛰고 있던 김서준이 벌써 50미터 이상 뒤쳐진 임희주를 슬쩍 돌아봤다.
짧게 한숨을 내쉰 그는 일부러 속도를 늦췄다.
그의 옆으로 다른 생도들이 하나 둘 지나쳐 갔고, 결국 아홉번째까지 밀려났다.
그런 김서준 옆으로 한 교관이 따라 붙었다.
“김서준 생도. 지금 이 순간부터 하는 모든 행동은 생도의 훈련 평가점수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잊지 마라.”
“압니다.”
“지금 하려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아는가?”
“안다니까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이렇게 하지않으면 오히려 후회할 것 같습니다만.”
김서준은 그렇게 한마디 하고는 속도를 더욱 늦추며 옆으로 살짝 비켜서 뛰었다.
임희주가 헉헉 대며 옆으로 스쳐간 직후, 김서준은 그녀의 뒤에 바짝 붙은 뒤 무거운 배낭을 아래에서 살짝 들어올려 줬다.
그렇다고 배낭의 무게를 전부 책임져 준 건 아니다.
정확히 10킬로그램까지였다.
아예 배낭을 대신 들어주거나, 공간주머니 속에 배낭을 넣어 주는게 훨씬 간단한 해결법이었지만, 김서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임희주가 조금이나마 버텨낼 수 있는 체력을 기를 시간을 주기 위해서 딱 필요한 만큼의 도움만 주는 것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걷는 걸 힘들어 한다고 매번 안아주는 건 아이가 걷기 시작하는 시간을 늦추는 것 뿐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김서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걸까?
임희주는 배낭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지자 김서준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여 준 뒤, 계속 앞을 향해 뛰어가기만 했다.
그런데 묘한 일이다.
임희주의 배낭에게서는 특이한 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인들이 사용하는 화장품 냄새랄까?
이제 18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자신을 꾸미고 싶은 마음은 여느 여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던 모양.
배낭이 다소 무거운 이유엔 예거 생도로서는 크게 불필요한 화장품까지 한몫 단단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도들은 무려 1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똑같이 생긴 복도를 하염없이 뛰기만 했다.
“이곳이 여러분이 한달동안 생활할 숙소다.”
박문호는 땀 한방울 흘리지 않은 모습으로 생도들에게 숙소를 소개했다.
그들이 멈춰선 곳은 중심에 커다란 원형의 구조물이 자리한 오각형 모양의 교차 지점이었다.
총 다섯 개의 복도가 방사형으로 나 있었고, 그 중심에 있는 원형 구조물에는 빙 돌아가며 문이 달려 있었다.
모든 문 앞에는 훈련 생도들의 이름이 푯말처럼 부착되어 있었다.
“지금부터 약 2시간 동안 휴식 시간이다. 그 안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이곳의 모든 걸 파악한 다음, B3-101 지점으로 모이도록. 질문은 받지 않는다. 이상.”
박문호는 자세한 설명은 전혀 하지도 않았다.
각자 방에서 무엇을 어떻게 파악하라는 것인지, 그리고 B3-101 지점은 또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의 이름이 새겨진 문을 향해 서둘러 움직일 뿐.
김서준도 자신의 이름이 붙은 문을 찾아 움직이려 했는데, 그때 임희주가 다가와 그의 옷깃을 살짝 잡았다.
“아깐 고마웠어요.”
임희주는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김서준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힘 내라.”
김서준은 그렇게만 말하고는 자신에게 배정된 방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김서준이 방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혼자 남은 임희주는 잠시 우두커니 서 있다가 발길을 돌렸다.
때마침 자신의 문앞에 멈춰서 있던 이리나가 그런 임희주를 바라보며 생긋 웃어주었다.
그러자 임희주는 살짝 당황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리나를 향해서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곤 얼른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이리나가 방으로 사라지자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박문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옆에 서 있던 교관이 슬쩍 한마디 했다.
“평가는 끝내셨습니까?”
“물론이지.”
“김서준 생도는 감점인가요?”
“응. 마이너스 3점.”
“예거 요원에겐 각자도생이 룰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하지만, 마음은 훈훈하네요.”
이 말을 하는 교관은 복도에서 뛰기 시작했을 때, 임희주를 도와주려는 김서준에게 엄하게 충고했던 인물이었다.
“예거의 넘버링 요원이 되기 위해서는 냉철한 판단이 반드시 필요하지. 동정심 따윈 임무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고. 어쩌면, 김서준 생도는 예거의 생리와는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박문호는 굉장히 실망한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 말에 옆에 선 교관이 웃으며 한마디를 더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방식의 예거가 탄생할지도 모르지요.”
“새로운 방식의 예거?”
“아시잖아요. 사상 최강의 예거 윤현도. 제가 그 녀석하고 생도 동기입니다.”
“아, 그랬었나?”
“그때도 총교관님께서 똑같이 그러셨죠. 윤현도는 예거의 생리와는 맞지 않는다고.”
“내가?”
“하하하. 네, 그러셨습니다. 그리고 퇴소식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윤현도가 새로운 예거의 시대를 만들어 낼 거라고.”
젊은 교관이 웃으며 말하자 박문호는 입맛을 다시며 짧게 반박했다.
“그거 8년 전 일이야. 그때랑 지금이랑 어찌 같을 수가 있겠나?”
“시대도 달라졌고, 사람도 달라졌지만…. 절대 변하지 않는 한가지가 있죠.”
“그게 뭔가?”
“바로 총교관님의 사람보는 눈입니다.”
“….뭐?”
박문호는 젊은 교관의 말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숙소는 생각보다 잘 만들어져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10평은 될 것 같은 거실이 있고, 욕실 하나와 작은 주방, 그리고 거실 절반 크기의 방이 따로 있었다.
인테리어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뭔가 미래지향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한달 동안 지내기엔 그닥 나쁘지 않은데?’
김서준은 짧은 감상을 마치고 바로 배낭의 짐을 풀었다.
옷과 개인물품 몇 가지를 빼면 짐이랄 것도 없어서 정리는 금방 끝났다.
곧바로 옷을 벗어던지고 욕실로 들어간 김서준.
따뜻한 물로 기분좋게 샤워를 마친 그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뒤, 거실 한켠에 위치한 책장 앞에 섰다.
‘오랜만에 보는 거라 괜히 반갑네.’
이쪽 세계로 넘어온 이후, 종이로 된 책은 오랜만이었다.
김서준이 원래 살던 세상에선 아무리 문명이 발달되고, 첨단화가 이루어졌어도 ‘책’의 중요성은 조금도 퇴색하지 않았었다.
종이에 글자가 인쇄되는 책은 무인들이 비급을 후세에 전하는데 반드시 필요했고, 역사를 기록하는 데에도 책은 절대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였다.
하지만 이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후엔 좀처럼 활자 책을 볼 기회가 없었다.
모든게 전자화 되어 폰으로, 컴퓨터로, 테블릿으로 모든 걸 해결했다.
그것도 나름 나쁘지 않았지만, 책을 좋아했던 김서준에겐 참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곳 예거 캠프에서 그 책들이 책장 가득 꽃혀 있는 걸 보게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신비의 정의, 신비는 어디에서 오는가?, 몬스터 종의 구분, 예거 생활백서….?’
책장에 꽃힌 책들을 쭉 살피다가 ‘예거 생활백서’라는 책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이건 뭐야?’
김서준은 다른 책들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책 제목에 의구심이 생겼다.
바로 그 책을 꺼내들었다.
그 자리에 선 채로 ‘예거 생활백서’라는 책을 살펴본 김서준.
그렇게 약 30분이 흘렀을 때,
김서준은 박문호 교관이 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생도들을 숙소에 들여보내 2시간이나 휴식을 취하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