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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거 생활백서.
이 책에는 예거 생도들이 이곳에 와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고, 어떤 규칙에 따르며,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가 아주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특히, 책 중간 쯤에 끼워져 있는 예거 캠프의 지도는 각 층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까지도 자세히 알려주었다.
물론, 지도에도 B4층과 B5층에 대한 건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김서준은 책을 들고 침대에 누워 천천히 정독하기 시작했다.
예거 캠프에서의 한달 스케줄은 굉장히 빡빡했다.
매일같이 5시에 기상해야 했고, 7시 식사 시간 전까지 반드시 해야할 아침 훈련이 존재했다.
아침 식사 후에는 1시간 가량 이론 강의가 있고, 9시부터 다시 훈련에 돌입한다.
점심 식사는 12시부터 2시까지로, 휴식시간까지 포함해 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데, 그 이유는 오후에 이어지는 훈련이 너무나도 혹독했기 때문이었다.
오후엔 저녁 6시까지 내내 훈련이었고 잠시 식사를 한 뒤, 7시부터 11시까지 야간 훈련이 진행된다.
무려 13시간 동안 훈련 및 수업이라는 살인적인 스케줄.
하지만 김서준에게 이 정도 스케줄은 그저 웃으며 넘길 정도로 가벼운 수준이었다.
‘내가 부모님 복수를 위해 10년이 넘게 수련을 했던 때와 비교하면 애들 장난이네.’
그땐 밥 먹고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 그 시간에도 적의 암습을 회피하는 수련을 하거나 시시 때때로 음식에 독을 섞어 독 내성을 기를 정도였다.
아무튼 그런 지독한 수련을 10년 이상 해온 김서준이었기에, 예거 생도들의 훈련 스케줄은 그다지 부담스러울게 없었다.
‘그래도 이 훈련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쳐야 예거 넘버링 요원이 될 수 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대충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김서준이 예거 생활백서의 내용을 두 번 정도 정독했을 때, 집합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B3-101이면…. 여기구나.’
예거 생활백서에 있는 지도 덕분에 B3-101 지점이 어딘지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그곳은 일종의 시청각실이었다.
앞으로 이론 수업이 이루어질 장소이기도 했고, 기상과 취침 전에 늘 모여야 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김서준은 B3-101가 어딘지 알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냉장고에 비치된 음료를 마시고, 자신의 현재 능력치 정보를 간단하게나마 살펴봤다.
[김서준]
-마력: 139 / 내공: 137 / 제어: 121
-신비: 역발산기개세(22%) / 태양신공(25%) / 염동장막(7%) / 수라극섬(5%) / 심안(6%)
마력과 내공이 그 사이 미세하게 증가했다.
처음에 비해서는 장족의 발전이었지만, 그동안 만나온 신비 능력자들과 비교해 보면 아직 한참이나 멀었다.
예거 후보생들 중, 가장 어린 임희주만 해도 마력이 225나 되니 더욱 더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곳에 있으면서 태양신공을 수련하는데 좀 더 매진해야겠어.’
김서준은 그런 결심을 하며 방을 나섰다.
다른 생도들의 방을 슬쩍 돌아보니 이름표가 회색으로 칠해진 것이 모두 외출 중인 걸로 보였다.
‘내가 마지막인가?’
김서준은 박문호 교관이 말한 시간 까지 아직 10분이나 남아 있었기에 여전히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움직였다.
생도들의 숙소가 있는 이곳의 정식명칭은 생도 생활관. 인식 번호로는 B3-100 이였다.
이곳에서 다섯 방향으로 펼쳐진 통로는 각종 장소로 연결이 되어 있었는데, 그중 A통로를 따라가면 B3-101의 시청각실이 나오게 된다.
김서준은 곧바로 A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꼭 거대한 우주 정거장 속에 들어온 것 같은 통로를 잠시 걷고 있으니 정체 불명의 출입문들이 등장했다.
재밌는게 예거 생활백서에 나온 지도에는 각 출입문의 용도와 인식 번호가 표시되어 있어 쉽게 매칭이 가능했다.
하지만 실재로는 인식 번호 없이 그냥 A-1호, A-2호 이런 식으로 되어 있어서 그 방이 무슨 방인지 알 수가 없었다.
‘B3-101은 A통로 7번째에 있었지.’
김서준은 곧 A-7호 방을 찾아냈다.
방 표시가 녹색을 띠고 있는 걸로 봐서는 다른 사람이 이미 들어가 있는 모양.
김서준처럼 예거 생활백서를 읽고 제대로 찾아온 생도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지잉
문 옆의 버튼을 누르자 부드럽게 문이 열렸다.
안에는 세 사람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들이었다.
가장 먼저 이리나가 환하게 웃으며 김서준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고, 그녀 바로 옆에서 임희주가 수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녀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는 양휘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용케 여길 찾아왔네?’
이리나는 처음 봤을 때부터 꽤 똑똑하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임희주는 정말 의외였다.
잘 적응 못하고 뒤쳐지는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그건 기우였다.
임희주도 예거 후보생인 만큼 어느 정도 특출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양휘는 이번 생도들 중, 신태양을 제외한다면 두 번째로 마력이 높은 인물이다.
아직 예거로서의 훈련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324라는 마력을 소유하고 있으니 나중엔 얼마나 더 성장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김서준은 자신을 반겨주는 이리나 옆에 앉았다.
시청각실이라서 의자는 3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길쭉한 형태라 김서준, 이리나, 임희주가 한 의자에 앉게되었다.
“역시, 너라면 헤매지 않고 잘 찾아올 거라 생각했어.”
이리나의 말에 김서준은 피식 웃어주었다.
“운이 좋았지 뭐.”
“운도 실력이야. 특히 예거한테는 더욱 더 필요한 요소고.”
“그런가?”
“그나저나, 넌 기프트 받으면 어떤 능력을 선택할 거야?”
이리나는 기프트에 대한 관심이 무척이나 높았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단순한 호기심인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한달 동안 사용해 보고 결정해야지. 굳이 지금 정해 놓을 필요는 없잖아?”
“뭐, 그렇긴 하지. 그래도 난 벌써 마음에 대충 정해 놓은 능력이 있거든.”
“벌써?”
이리나는 아직 기프트를 받지도 않았는데 어떤 능력을 사용할지 결정을 해 놓은 모양이었다.
“마력보조랑 비행. 이 두가지 능력이 내 신비하고 찰떡 궁합일 거 같거든.”
“아… 그래.”
김서준은 ‘그래서 네 신비가 뭔데?’라고 물으려다가 다시 삼켰다.
어차피 훈련이 시작되면 서로 어떤 신비를 가졌는지 금방 알게될 터라 굳이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안 궁금해? 내 신비가 뭔지.”
“말해주면 고맙고.”
“에이. 반응이 너무 뜨뜨미지근 하다. 김 새게.”
이리나는 첫 인상과는 다르게 수다쟁이였다.
그러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네 명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신태양을 필두로, 안지운, 민소라, 최철민이었다.
그들은 이미 자리를 선점하고 있는 김서준 등을 보더니 살짝 실망한 눈치였다.
“먼저 온 녀석들이 있었네. 어쨌든, 민소라. 내 말이 맞지? 철민이 형 말대로 C통로로 갔으면 제 시간에 여기 못 찾아왔다고.”
안지운의 말에 최철민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야, 안지운. 내가 언제 C통로로 가자고 했냐? 조태석이 D통로로 갔으니 우리는 C통로부터 확인해 보자는 말이었지.”
“아무튼요. 두 사람 다 내 덕에 시간 손해 안 봤으니까 나중에 신세 갚아요.”
안지운, 최철민, 민소라.
이 세 명은 벌써 친해졌는지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들이 자리를 찾아 앉자 신태양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양휘 뒷자리로 가서 털썩 앉았다.
그러자 양휘가 눈살을 찌푸린 채 신태양을 흘겨봤다.
“난 내 뒤에 누가 있는 걸 별로 안좋아 한다.”
“그러면 네가 맨 뒤로 가시던가.”
“내가 먼저 왔는데, 왜 내가 자리를 옮겨야 하지?”
“여기가 네 자리라는 표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뭔 헛소리야?”
양휘와 신태양의 신경전이 상당했다.
두 사람 모두 스무살.
마력만 놓고 본다면 생도들 중 가장 높은 두 사람이었기에 김서준은 그들을 관심있게 바라봤다.
그때, 또 다시 문이 열렸고 박문호 교관이 다른 두 교관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두 교관은 두 생도를 포로처럼 잡아서 끌고 들어왔다.
그 둘은 바로 박해성과 조태석이었다.
시간을 보니 박문호가 말한 2시간은 이미 1분이 지나 있었다.
“그래도 나머지 생도들은 제시간에 여길 찾아왔으니 다행이군. 여기 두 생도는 엉뚱한 곳을 찾아간데다가 하필 그곳이 제한구역이었기에 이렇게 강제로 제압된 거다.”
박문호는 박해성과 조태석을 세워놓고 엄한 얼굴로 꾸짖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2시간이라는 여유를 준 이유를 알지도 못하고 그 시간을 낭비하다가 감히 제한구역에 침입하다니. 이런 녀석들을 생도라고 한달 동안이나 교육해야 한다는 내가 다 한심하구나.”
박문호의 거침없는 말에 박해성이 발끈했다.
“아니 그럼 어디가 어딘지 잘 알 수 있게 표시를 제대로 해 놓던가요! 제한구역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지 않았으면서, 왜 우릴 탓합니까?”
박해성은 성격 자체가 비뚤어진 것 같았다.
“그럼 여기 이렇게 잘 찾아와서 기다리고 있는 생도들은 다 뭐지? 이 생도들한테는 누가 따로 정보를 줬다고 생각하나?”
“그건….”
또 다시 말이 막혀버린 박해성.
그는 늘 먼저 발끈하지만 사실을 근거로 반박하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다.
“됐으니 들어가 앉도록. 박해성, 조태석 생도. 너희 둘은 감점 2점이다.”
두 생도가 벌게진 얼굴로 자리를 찾아 앉자 박문호가 생도들을 쭉 돌아봤다.
“너희들 방에는 책장이 하나씩 있다. 그리고 그 책장엔 ‘예거 생활백서’라는 책이 꽂혀 있지. 그 책에 이곳의 모든 정보가 다 들어 있다. 그러니 오늘 훈련이 끝나면 각자 방에 들어가서 그 책부터 숙지하도록.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기억하기 바란다.”
박문호가 눈짓을 하자 두 교관이 생도들에게 자그마한 상자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폭 5센티에 길이 20센티 정도 되는,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상자였다.
“그 상자 안에는 예거의 꽃이자, 권리이며, 혜택이라고 볼 수 있는 기프트가 들어있다.”
박문호는 설명을 시작했고, 교관 하나가 박문호 앞쪽에 홀로그램을 작동시켰다.
그건 기프트의 정확한 형태와 기능이 설명되어 있는 영상이었다.
“생도들의 기프트에는 총 12개의 신비한 능력이 담겨져 있다. 그 신비는 바로 이것들이다.”
박문호는 홀로그램 영상의 한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곳엔 20개의 목록이 나열되어 있었고, 이름만 봐도 대충 무슨 능력인지 충분히 알만한 것들이었다.
마력커버/베리어/마력보조/신체강화/이속증폭/위력증가/비행/클로킹/마력측정/매혹/면역강화/MPSP
“한달 동안의 훈련 기간 동안, 너희들은 이 12개의 신비 능력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자신과 가장 적합한 능력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훈련이 끝나는 날, 이 중 세개를 선택하게 되고, 그 세 가지 능력을 자신의 조력자로 삼게 되는 것이지. 하지만, 세 가지 중 하나는 반드시 이것, 마력커버를 기본으로 선택해야 한다. 이해했나?”
박문호는 ‘마력커버’라는 글자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생도들을 돌아봤다.
다들 자신의 앞에 놓인 상자 안에 기프트가 들어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흥분한 듯 보였다.
“질문 있나?”
박문호의 말에 이리나가 번쩍 손을 들었다.
“이리나 생도. 뭐가 궁금하지?”
“신비 능력은 12가지나 되는데, 최종적으로는 세 가지만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뭐죠? 네 가지나 다섯 가지 능력은 안되나요?”
이리나는 이곳에 오는 도중, 젊은 교관에게 들었던 설명에서 궁금해 하던 걸 다시 물었다.
“아직까지는 기프트가 가진 한계다.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세 개의 신비 능력을 기프트에 담는 것 자체도 이미 초고도의 하이테크놀러지다. 앞으로 십년, 혹은 이십년이 흐른다면 생도가 원하는 만큼의 신비 능력을 다 담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엄청나면서도 많이 아쉬운 제약이네요.”
이리나는 정말로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건 다른 생도들도 비슷했다.
헌터가 지닐 수 있는 신비의 개수는 기본적으로 하나였기에 본인의 신비 말고도 다른 신비를 더 가질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특혜였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기프트라고 해도, 세 개 이상의 신비 능력을 담겠다는 건 지나친 욕심이요, 불가능에 가까운 바람이었다.
적어도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말이다.
“또 다른 질문은?”
박문호가 다시 생도들을 돌아보자 이번엔 임희주가 손을 들었다.
“임희주 생도의 질문은 뭐지?”
“저기…. 신비 능력 중 마지막에 있는 거요. MPSP는 뭐죠?”
“흠. 임희주 생도는 예거 생활백서를 발견해 이곳의 위치는 파악했으면서 기프트에 관한 내용은 확인하지 않은 모양이군.”
“네? 아니, 그게….”
박문호의 말대로, 예거 생활백서에는 기프트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기재되어 있었다.
MPSP를 모른다는 건, 그 설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뜻.
임희주의 얼굴이 벌게지자 박문호는 피식 웃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MPSP는 Magical Power Shutdown Pulse의 약자로, 이해하기 쉽게 말해주면 마력폐쇄파라고 볼 수 있지. 이 신비 능력은 사용자의 반경 10미터 주변에 특별한 파장을 뿜어내서 5분간 마력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효력을 지녔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
반경 10미터 범위에 있는 모두의 마력을 5분동안 잠글 수 있는 신비.
그 자체만으로는 정말 엄청난 능력이다.
하지만 이 능력에는 심각한 단점이 존재했다.
“그건, 몬스터한테는 이 파장이 통하지 않는데다가 마력을 제한하는 힘이 사용자 본인에게도 적용된다는 단점이다.”
타인의 마력을 잠글 수 있지만 자신도 마력을 못쓰게 되니 어찌보면 자충수가 될지도 모르는 신비였다.
하지만 김서준에게 이 신비는 너무도 큰 매리트가 있었다.
김서준은 마력만 있는게 아니다.
내공.
이 내공이 있는 한, 마력이 잠겨도 김서준은 얼마든지 신비와 같은 강력한 힘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직은 김서준도 사용해 본 게 아니라 정확히 장담할 수 없었다.
‘일단은 테스트를 해 봐야겠지. MPSP의 파장이 마력만 잠글 수 있는지, 아니면 내공까지 한번에 잠그는게 가능한지를 말이야.’
만약 전자라면 이 기프트는 김서준에게 최고의 선물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