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천재의 헌터 라이프-63화 (63/153)

63

예거 캠프 입소 첫날.

오후 3시 경에 시작된 체력 테스트는 저녁 7시까지 이어졌다.

테스트는 총 네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첫 번째 그룹은 김서준이 있는 그룹으로 캡슐 이동장치를 별 문제없이 견뎌낸 생도 세 명이었다.

두 번째 그룹은 단 한명이었다.

제 힘으로 걸어나오지는 못했지만 빠르게 정신을 회복한 최철민이 그 주인공이었다.

세 번째 그룹은 이리나처럼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극심한 현기증으로 인해 10여분 동안 정신없이 구토를 하던 생도 세 명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 그룹.

이들은 캡슐 안에서 정신을 잃은 세 명의 생도였는데, 1시간이 지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교관이 따귀를 때려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이들은 가장 늦게 테스트를 시작한데다가 마력까지 사라지게 되니 테스트 진행은 더디기만 했다.

김서준이 포함된 첫 번째 그룹의 생도들은 7시에 테스트를 마치고 식사를 한 뒤 첫날 일정을 모두 마감한 반면, 마지막 그룹은 밤 11시가 되어서야 테스트를 마칠 수 있었다.

누구에게는 지옥 같은 하루였고, 누구에게는 학교 체력장 수준의 가벼운 하루였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김서준.

그는 기프트가 지닌 MPSP 기능을 혼자 몰래 테스트 해 보고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이거면 됐다!’

MPSP 파장은 김서준의 바람대로 마력만 잠글 뿐, 내공은 전혀 건드리지도 못했던 것이다.

이미 테스트를 진행하기 전에 MPSP에 노출되어 마력만 잠긴다는 걸 확인한 뒤였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MPSP에 다른 설정이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본 것이다.

그 결과는 김서준이 바란 그대로였다.

‘훈련이 끝날 때, 기프트의 신비 중 세 개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지….’

능력을 어느정도 감춰주는 마력커버는 필수로 선택해야 하는 신비였으니 두 개를 임의로 정할 수 있다.

김서준은 그 두 가지 중 하나는 무조건 MPSP로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직접 사용해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물론 이미 대략적인 선택 범위는 정해져 있었다.

베리어의 경우, 이미 김서준에겐 염동장막이라는 신비가 있었으니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했고, 그 외의 신비들도 대부분은 대체가 가능한 것들이었다.

신체강화와 위력증가 신비는 태양신공이 지닌 능력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고, 이속증폭은 비뢰신보로, 마력측정은 심안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클로킹 또한 클로킹 마스크가 있으니 굳이 기프트에 저장해 둘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면 남는 건 단 네 가지 뿐.

마력보조와 비행, 매혹, 면역강화.

이 네 가지 중 하나를 고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매혹은 필요 없지 않나?’

이 매혹 신비는 예거 요원으로서 잠입 임무를 맡았을 때 필요한 것이라 김서준에겐 크게 쓸모가 없었다.

잘난척은 아니지만, 지금의 자신은 외모 자체가 매혹 신비를 페시브로 지닌 것이나 마찬가지 였기 때문.

‘면역강화도 부동심을 익히면 해결되는 거고.’

부동심.

이는 김서준이 무림계 세상에서 살아갈 때, 익히고 있던 무공 중 하나였다.

천강우가 이끄는 마도의 사악한 무리들 중에는 사람의 정신을 혼란하게 만들거나 몸에 이런 저런 제약을 거는 등의 마법과 같은 힘을 사용하는 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그들의 제약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동심을 익혀야 했다.

부동심은 정신과 마음이 절대 흔들리지 않도록 해주는 강력한 마음의 공부다.

이 헌터계로 온 이후에는 아직 부동심을 익힐 필요성을 딱히 느끼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럼 남는 건 마력보조와 비행 뿐인데….’

마력보조는 신비를 사용함으로서 소모된 마력을 단숨에 50%까지 채워주는 효과를 지녔고, 비행은 최대 높이 20미터를 약 10초간 비행할 수 있게 해주는 신비 능력이었다.

둘 다 마음에 들기에 당장은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한달 후, 둘 중 하나라를 결정하면 되겠지.’

이 두 가지는 수많은 무공을 알고 있는 김서준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해도 대체할 만한 무공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부터 당장 부동심을 익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김서준은 시간을 확인해 봤다.

밤 11시 27분.

뭔가를 새로이 익히기엔 다소 늦은 시간이지만 부동심은 마음의 공부라서 별 문제가 없었다.

김서준은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태양신공으로 내공을 다스리면서 이미 한번 익혀본 적이 있는 부동심의 구결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김서준이 부동심을 익힐 수 있었던 건, 위험에 처한 한 사내를 도와준 덕분이었다.

사내는 대한민국에서 비밀리에 전승되어 오던 화랑의 후예였고, 그는 화랑의 무예를 익힌 인물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천강우는 그 사내가 화랑의 후예라는 것과 그가 ‘부동심’의 비급을 숨기고 있다는 걸 알고 손을 쓴 것이다.

전 세계를 자신의 발 아래에 두기 위해서라도 방해가 될 수 있는 부동심의 비급을 찾아 없애버릴 생각이었던 것.

화랑의 후예는 목숨을 잃기 전, 부동심의 비급을 김서준에게 맡겼다.

그는 부동심의 비급이 사라지지 않도록 김서준이 직접 그 무공을 익혀 후세에 길이 길이 전해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그 때의 일을 떠올리자 부동심을 처음 익힐 때 엄청나게 고생했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복수심에 가득 차 있던 김서준은 불법의 묘리와도 일치하는 부동심의 구결을 마음 속에 담을 수가 없었다.

마치 부처가 된 듯,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구결에 따라 내공을 움직이며 몸과 마음을 단단히 보호해야 하는데, 당시의 김서준으로서는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거의 5년에 가깝게 노력한 끝에 간신히 익힐 수 있었던 부동심.

김서준은 그때의 경험을 되살린다면, 지금처럼 평온한 마음이라면 단기간에 부동심을 자신의 것으로 이루어 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쏴아아아아아

김서준의 몸 위로 차츰 하얗게 서리 같은 것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더불어 몸 밖으로 돋아난 모든 털들이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하지만 탈색은 몇 초만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금방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고, 살짝 내려앉았던 서리도 깨끗하게 지워졌다.

부동심을 익히게 되면 생기는 변화인 ‘백색화’였다.

백색화 상태가 되야 그 어떤 외부의 충격에도 흔들림이 없게된다.

김서준은 무려 3시간 동안, 이 백색화 상태를 수십번이나 오가면서 끊임없이 부동심을 익혀나가고 있었다.

***

예거 캠프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기상과 동시에 간단히 씻고 집합 장소로 나간 김서준.

그곳엔 전날의 피로를 고스란히 간직한 생도들이 하나 둘 모이고 있었다.

10명의 생도 중, 피로감이 보이지 않는 인물은 단 세 명 뿐.

바로 김서준과 양휘, 그리고 최철민이었다.

다른 생도들은 초죽음이 된 듯 퀭한 눈에 축 처진 어깨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특히 늦은 밤까지 테스트를 진행해야 했던 기절 삼인방은 툭 건드리면 쓰러질 것처럼 비칠거렸다.

임희주, 박해성, 안지운.

이 셋의 상태만 봐도 전날의 테스트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사실 테스트 내용은 간단했다.

거대한 트랙을 한계에 달할 때까지 전력으로 달리기.

높이 1미터의 계단 100개를 서전트 점프로만 뛰어 올라 총 50번 오르락 내리락 하기.

양 발을 번갈아 가며 돌려차서 인간형 더미의 허리 부러뜨리기.

시속 약 100킬로로 날아드는 특수 고무공을 10분동안 맨몸으로 버티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턱걸이를 100개씩 총 10세트를 하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시간 측정하기 등등.

일반인 이라면 단 하나만 해도 바로 기절해 버릴 정도의 강도 높은 테스트가 몇 시간이나 이어졌던 것이다.

이 테스트에서 김서준은 최대한 본 실력을 감추고 평균적인 성적을 내려 애썼다.

하지만 박문호를 비롯한 교관들은 김서준이 진짜 실력을 감추고 있다는 걸 대번에 알아챘다.

500미터 짜리 트랙을 전력으로 10분이나 달리고도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있는데, 아무리 숨을 헐떡인다고 해도 그게 전력이라고 누가 믿을까.

김서준은 모든 테스트를 2위, 또는 3위로 마감했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한 김서준 나름의 자구책이긴 했지만, 오히려 그게 더 눈에 띄는 역효과를 내고 말았다.

김서준은 자신의 테스트 결과를 본 모든 교관들이 크게 경악하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른채, 양휘와 최철민이 너무도 멀쩡하게 나타난 모습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둘 다 몸을 단련한 수준이 만만치 않은데?’

이쪽 세계로 넘어온 이후로 양휘와 최철민처럼 스스로의 몸을 강하게 단련시킨 헌터는 처음 봤다.

김서준이 아는 이곳의 헌터들은 신비를 각성하게 되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 신비의 강력한 힘에 푹 빠져 육체 단련을 등한시하게 된다.

물론 육체를 단련하는 헌터들도 있긴 하지만, 그 수준이라는게 헬스를 꾸준히 이어가는 정도라 김서준이 생각하는 신체 단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양휘와 최철민은 거의 무인들 수준으로 신체를 단련시켰다.

김서준이야 내공이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적은 노력으로도 얼마든지 강력하게 신체를 단련시킬 수 있다.

또한 양의분심공이 있어서 혼자서 두 사람 역할을 하며 치열한 전투를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 김서준이 보기에 양휘와 최철민의 단련 수준은 꽤나 높은 것이었다.

“어제의 테스트 결과는 지금 방금 생도들의 기프트로 전달했다. 결과를 참고해서 앞으로 자신이 얼마나 더 열심히 훈련에 임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박문호는 집합장소에 나타나자마자 무서운 표정으로 생도들을 훑어봤다.

생도들은 기프트에서 알림 소리가 울리자 액정 화면에 집중했다.

거기엔 종합평가결과라는 제목으로 표 하나가 떠올라 있었는데, 양휘가 1위였고, 2위는 최철민, 3위가 김서준이었다.

가장 마력이 높은 신태양은 육체 단련에는 소홀했는지 6위에 머무르고 말았다.

오히려 이리나와 박해성이 신태양보다 순위가 높았다.

꼴찌는 당연히 임희주였다.

9위에 오른 민소라와의 점수 격차가 상당히 컸는데, 그 결과를 본 임희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결과는 생도들에겐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 훈련 기간 동안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따라 최종 결과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걸 잊지 마라.”

박문호가 임희주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주려 한 말에 또 다시 박해성이 토를 달았다.

“교관님. 한달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닙니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그 짧은 시간 안에 돌멩이가 보석으로 바뀔 수 있을까요? 너무 차이가 크면 오히려 앞서 있는 생도들이 발목을 붙잡힐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룹을 나누어서 훈련을 진행하는게 어떻겠습니까?”

박해성의 말에 몇몇 생도가 동조하는 눈빛을 보였다.

그들은 모두 대단한 배경을 지닌 생도들이었고, 임희주를 한없이 깔보는 시선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룹을 나눈다? 그럼 박해성 생도는 자신이 어느 그룹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테스트 결과에서 5위에 들었으니 당연히 선두 그룹에 포함되야겠죠. 나머지야 몇 그룹으로 나누던 상관 없습니다만.”

박해성은 자신까지만 선두 그룹으로 삼아 별도의 엘리트 훈련을 받게 해달라는 말이었다.

“지랄하네.”

그 말은 신태양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6위에 오른 신태양은 자신을 하위 그룹으로 빼려는 박해성의 의도를 눈치채고 기분이 크게 상했다.

박해성이 아무리 해군 참모총장의 아들이라고 해도 코스모 재단의 이사장을 아버지로 둔 자신에 비하면 한참 아래였으니까.

“어린 놈이 누구 앞에서 함부로 반말이야?”

“나이 처 먹었으면 나이값을 하던가. 이제 테스트 하나 받아놓고 선두네 뭐네 하는 꼴이 얼마나 우스운지 몰라서 하는 말이냐?”

“뭐가 어째?”

신태양의 거침 없는 말에 박해성도 열이 받았는지 발끈했다.

그런데 박문호 교관은 이 둘이 싸울 것처럼 서로 눈을 부라리는데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듯 교관들을 뒤로 물렸다.

몇 몇 생도들이 이 상황을 어이없는 얼굴로 바라보자, 박문호가 피식 웃었다.

“마침 잘 됐군. 안 그래도 오늘 첫 수업은 대련이다. 아침 밥 먹기 전에 가볍게 몸을 푼다고 생각하고 각자 짝을 찾아 대련을 시작한다. 어제 테스트 결과에 맞춰서 1위가 2위랑 붙고, 3위가 4위랑 붙으면 딱이겠군.”

박문호의 말에 생도들은 더욱 기막혀 했다.

무슨 훈련이 아침 댓바람부터 대련이란 말인가.

그때 잘됐다는 듯 신태양과 박해성이 가까이 다가섰다.

두 사람 다 이 참에 상대를 아예 작살내 놓겠다는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1위인 양휘는 2위인 최철민과 마주섰다.

누가 따로 자리를 마련해 준 것도 아니지만, 두 사람은 조금 떨어진 넓은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김서준도 짝을 찾았다.

그의 상대는 4위인 이리나.

그녀는 시작부터 김서준을 상대로 마주한 것에 조금 부담이 되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해. 날 바닥에 메다 꽂아도 절대 원망하지 않을 테니까.”

김서준이 웃으며 꺼낸 말에 이리나의 표정이 빠르게 풀어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너 신비가 역발산기개세라고 하던데, 무슨 신비인지 알 수가 없겠더라.”

“아, 그거? 일종의…. 카운터 어택이랄까? 상대가 공격하면 타이밍을 잘 맞춰서 더욱 강한 힘으로 되받아 치는 거지.”

김서준이 너무도 쉽게 자신의 신비에 대한 걸 설명해 주자, 이리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막 알려줘도 괜찮은 거야?”

“같은 생도끼리 뭐 어때서?”

김서준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말 아무 생각없이 자신의 신비에 대해 설명해 준 건 아니었다.

다 들으라고.

이곳에 있는 모든 생도들을 향해 나 김서준의 신비가 이런 것이니 원한다면 얼마든지 덤벼보라고 대놓고 도발한 것이다.

김서준은 자신의 실력을 대부분 숨길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병신처럼 약한 모습을 보여 우습게 보일 생각은 없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