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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준이 지닌 공간 주머니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사용하기에는 훨씬 편리한 아공간 아티팩트.
김서준은 왜 이런 엄청난 아티팩트들이 허접해 보이는 나무 상자에 아무렇지 않게 던져져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네. 일단 챙길 건 다 챙기자.’
공간 글러브가 생겼으니 생존장비는 마음껏 챙길 수 있게됐다.
김서준이 나무상자에서 세 번째로 찾아낸 건, 갓난아기들이나 입을법한 매우 작은 우주복이었다.
[133/스페셜]
‘뭐 이런 게 133이나 돼?’
어디다 써먹어야 할지 전혀 예측이 되지 않는 작은 아기 우주복을 살펴보던 김서준.
그의 눈이 화등잔만큼이나 커졌다.
[R-MPSP 슈트]
-MPSP 파장을 튕겨낼 수 있는 리플렉션용 슈트이다.
-사용자 신체 구조에 맞게 크기를 자유자재로 늘리고 줄일 수 있다.
-착용 시, 기본 방어력 5%를 높여준다.
-소모 마력: 분당 1
‘이거였구나!’
김서준이 그동안 내내 궁금해 하던 것이 드디어 해결됐다.
교관들은 훈련에 들어갈 때마다 MPSP를 사용해 생도들의 마력 사용을 제한해 왔지만, 똑같이 파장에 노출된 교관들은 마력이 사라지지 않았다.
김서준은 그 이유가 교관들의 몸에서 생긴 투명한 막이 MPSP를 튕겨내기 때문이라는 사실까진 알아냈었다.
어떻게 MPSP를 튕겨내는지 그 방법은 지금껏 알아내지 못했었는데, 알고보니 이 작은 아기 우주복이 바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아티팩트였던 것이다.
‘이걸 입고 있다고? 교관들 모두?’
김서준은 팔뚝만한 크기에 얇고 고탄력의 재질을 지닌 아기 우주복을 보다가 교관들을 바라봤다.
아기 우주복을 착용하고 있는 교관들의 모습을 상상하자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졌다.
슈트가 사용자 신체 구조에 맞게 크기를 늘리고 줄일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헐렁하게 입는 형태는 분명 아닐 터.
아무리 좋게 생각해봐도 영화에서 등장하는 히어로들이 입는 쫄쫄이 슈트와 조금도 다를바가 없었다.
털이 숭숭 난 사내들이 이토록 얇고, 타이트한 쫄쫄이 슈트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자 아침에 먹은 음식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김서준은 냅다 집어던지려다가 가까스로 참았다.
그래도 아티팩트이고, R-MPSP 슈트인데 쓸모가 없을 수가 없다.
‘일단은….. 챙기자. 후….’
한숨까지 내쉬며 아기용 우주복까지 챙긴 김서준.
그런데 고민의 시간이 너무 길었던 걸까?
심안으로 마력 수치와 특성이 표시되던 나머지 아티팩트들은 어느새 다른 생도들의 차지가 되어 있었다.
마력 84에 노멀 특성을 지닌 손바닥 크기의 동그란 방패는 임희주가 가져갔고, 마력 93에 엘리트 특성을 지닌 기다란 막대기는 신태양의 손에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마력 47에 노멀 특성을 가진 작은 호각은 조태석이 집어들었다.
김서준이 보기에 그들은 자신처럼 아티팩트의 마력수치를 읽어낼 수 있는게 아니었다.
전적으로 우연이었다.
이리저리 뒤지다가 손에 잡힌 물건의 정보를 읽고 그것이 아티팩트라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 분명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김서준은 6개나 되는 아티팩트 중에 3개를 자신이 가졌으면서도 나머지 3개를 놓친 것에 아쉬워했다.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머뭇거리지 말고 모든 걸 가져야 한다.
그것이 지금 김서준이 품고 있는 나름의 각오였으니까.
김서준은 3개의 아티팩트를 놓친 건 아쉽지만 그렇다고 내내 거기에 집착하는 바보도 아니었다.
얼른 미련을 털어버린 그는 공간 주머니를 손에 끼우고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당장은 모두가 지켜보고 있으니 공간 글러브의 마법진을 형성시킬 수 없었다.
남이 가진 정보는 자기 것으로 만들고, 내가 가진 정보는 최대한 숨기는 것이 생존의 법칙이라는 걸 김서준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생도들에게는 공평하게 가방 하나씩이 주어졌다.
아무 기능도 없는 평범한 가방에 좀 과할 정도로 많은 양의 식재료와 취사도구부터 챙겨넣고, 남는 공간에는 단검 몇 개와 소총 하나, 그리고 대량의 총알을 챙겼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50킬로그램은 훌쩍 넘을 것 같은데, 김서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폭발물이라던가, 텐트에 침낭, 네 개의 무전기까지 추가로 얹었다.
마지막으로 기다란 강철도 한 개까지 가방 옆에 끼워 넣는 것으로 김서준의 준비는 끝났다. 그때, 박문호 교관의 묵직한 음성이 울려퍼졌다.
“남은 시간은 5분이다.”
그는 균열 아래에 세워진 고소작업차 옆에 뒷짐을 지고 서있었다.
우연히 김서준과 시선이 마주쳤지만 그는 딱히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다.
“이 장비들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는 안 가르쳐 주나요?”
여러 장비들을 만져보던 민소라의 질문이었다.
그녀도 멍청하진 않았기에 이 장비들 중에 아티팩트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장비들을 일일이 만져보며 마력을 밀어넣어 정보를 확인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없이 되는데로 장비를 챙겨보려 했지만 그게 녹록치가 않았다.
말은 생존장비인데, 가짓수도 많고 덩치가 큰 것들도 상당해서 민소라는 무엇부터 챙겨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직접 확인해라. 우린 교관이지 너희 생도들이 쓸 생존장비까지 챙겨주는 베이비시터가 아니다.”
박문호의 차가운 대답에 민소라는 입을 삐죽거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벌써 이것 저것 챙겨서 국방색 가방에 넣는 생도도 있고, 몇몇 이상한 장비들을 만지작 거리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생도도 있다.
민소라는 그중 세 사람을 눈여겨 봤다.
김서준과 양휘, 그리고 신태양이었다.
지금까지 평가 점수만 따져보면 김서준이 압도적이지만, 양휘와 신태양도 만만치 않았다.
이들이 하는 걸 제대로 따라만 해도 절반은 간다는 말이 돌 정도로 이들에 대한 생도들의 믿음은 무척이나 깊었다.
그런데 세 사람이 챙기는 장비들이 너무 제각각이다.
양휘는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진짜 생존장비 위주로 챙겼고, 신태양은 스캔 장비와 전투용 장비를 주로 챙겼다.
하지만 혼자서 챙길 수 있는 양이 많지가 않다보니 푸른색 가방 하나를 꽉 채우는 수준까지 한계였다.
무게는 대략 20킬로그램.
아무리 신비를 각성한 헌터라고 해도 삼일 내내 그 이상의 무게가 나가는 가방을 메고 다니는 건 무리였다.
그런데 김서준은 달랐다.
그는 가방을 꽉 채우는 걸로도 모자라 가방 위와 옆으로도 물건들로 채웠다.
누가봐도 엄청난 양.
제대로 걸을 수나 있을까 싶을만큼 많은 물건을 챙겨 그걸 등에 짊어졌다.
‘저걸 매고 다니려면 계속 마력을 소모해야 겠는데?’
민소라는 김서준을 따라하는 건 아니다 싶어 결국 반반을 택했다.
의식주를 위한 생존장비 절반에 전투 장비 절반.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였지만, 양휘와 신태양을 그대로 보고 따라한 거라 그다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민소라만 그런게 아니었다.
다른 생도들 역시 양휘와 신태양을 따라 장비들을 챙기고 있었다.
누구는 생존장비 위주로, 누구는 전투장비 위주로.
김서준 처럼 무리해서 물건을 챙기는 사람은 이리나와 임희주 두 사람 뿐이었다.
그렇게 10분이 모두 지났을 때, 생도들은 큼직한 가방 하나씩을 둘러메고 박문호 앞에 정렬했다.
다들 적당한 무게로 장비를 챙긴 것에 비해, 세 사람은 서 있는 것조차 버거워 보일정도로 많은 장비를 챙겼다.
박문호는 그런 생도들을 쭉 훑어보다가 피식 웃었다.
“예거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 또한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 너희들이 메고 있는 가방의 무게가 너희들이 지고 가야할 책임감의 무게라고 생각하도록.”
“네!”
“너희들이 챙긴 장비들은 이 시간부로 너희들 것이다. 훈련이 끝난다 해도 반환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 껏 사용해도 된다.”
그 말에 대부분의 생도들은 씁쓸하게 웃었다.
생존장비들 대부분이 낡고 오래된 것들인데다 식품은 먹는 것으로 소모되고 생필품 역시 굳이 밖으로 챙겨갈만큼 질이 좋은게 아니었기 때문.
하지만 낡은 장비들 속에서 아티팩트를 찾아낸 네 사람만큼은 반응이 달랐다.
공짜로 훌륭한 아티팩트의 주인이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다들 좋아하는 표정을 보니 본 교관이 다 기분이 좋다. 그럼 지금 바로 균열에 진입하겠다.”
박문호는 김서준을 포함한 네 사람에게 시선을 맞추다가 고소작업차의 판넬 위에 올라섰다.
그 옆에는 여러 장비들을 챙긴 교관 다섯이 따라붙었다.
교관들도 균열에 들어가지만, 생도들과 함께 이동하는게 아니라 균열 출입구 근처에서 대기만 한다.
따라서 그들 역시 3일간 머무르기 위한 생존장비가 필요했던 것.
판넬 위로 생도들이 모두 올라서자 엘리베이터처럼 판넬이 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판넬은 균열과 같은 높이에서 정확하게 멈췄다.
지그재그로 쭉 찢어진 허공.
찢겨진 공간 주변은 수많은 색이 반짝거리며 눈을 현란하게 만들었다.
박문호는 균열 앞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생도들을 스윽 훑어보고는 천천히 균열 안으로 진입했다.
***
김서준은 균열 너머의 풍경을 잠시 감상했다.
그동안 실습 훈련을 위해 들어갔던 균열들은 주로 늪이나 설원, 또는 대평야 같은 장소였는데 이번엔 사방이 숲으로 가득한 정글이었다.
나무들이 너무 크고 높아 하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
웅장한 숲의 규모에 생도들이 다들 놀라고 있을 때, 박문호와 교관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도착과 동시에 바닥에 포지션 마커를 심었고, 약 5미터 상공에 떠 있는 균열 아래에 구름판까지 설치했다.
그리고 텐트와 가시가 달린 전기 선으로 울타리를 치며 캠프를 만들었다.
“이제 이곳이 베이스 캠프다. 나와 교관들은 여기서 너희들의 무사 생환을 기다리도록 하지. 중간에 이곳으로 돌아오는 녀석들은 감점 10점이다.”
생도들은 박문호의 협박 같은 말에 각오를 다지고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각자의 방법대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 박문호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를 경고하겠다. 보스룸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페이즈 2에서 물러나라. 할만해 보인다고 레이드를 끝까지 진행하는 똥멍청이 같은 짓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말이다. 알겠나?”
“네!”
생도들이 힘차게 대답했지만 박문호는 여전히 못디더운 표정이었다.
“아무튼, 무사귀환을 바라겠다.”
박문호는 그 말을 끝으로 생도들에게 관심을 껐다.
잠시 후,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생도는 최철민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비인 ‘공간점프’를 이용해 20미터 상공으로 단숨에 이동했다.
거기서 주변을 빠르게 확인한 뒤 안전하게 착지한 최철민.
“여긴 꽤 높은 산 중턱인 것 같다. 이쪽으로 가면 산 정상으로 향하게 되고, 저쪽이 산 아래 방향이야.”
그의 말에 양휘가 한마디 했다.
“선택지가 두 곳이면 두 팀으로 나눠 움직이면 됩니다.”
“인원을 나누자고?”
“위와 아래. 두 곳을 다 같이 확인하기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건 맞지만….”
최철민은 10명 밖에 안되는 인원을 둘로 쪼개면 5명이 되기에 목표를 완수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이틀 내로 수많은 몬스터를 사냥해 마석을 획득해야 하고, 보스룸까지 찾아야 했다.
그러려면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다.
“형의 선택이 뭐든 난 위로 갈겁니다.”
양휘는 바로 떠날 태세였다.
그러자 그를 따라 민소라와 박해성, 조태석이 움직였다.
“양휘! 가는 건 좋은데 서로 연락할 방법은 준비해 놔야….”
휙
양휘가 최철민에게 무전기 하나를 던졌다.
“헌터 전용 무전기라 이런 숲에서도 연락엔 문제가 없을 겁니다.”
“이런 것까지 다 챙겼어?”
“생존훈련인데 무전기를 안챙기면 그게 등신이죠.”
양휘의 한마디에 등신이 되버린 최철민.
하지만 최철민은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환하게 웃으며 양휘의 어깨를 두드렸다.
“역시, 양휘네. 하여튼 준비성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덕분에 이곳을 수색하는 일이 쉬워질 것 같다.”
최철민은 양휘의 성격을 알기에 말 몇마디에 발끈하지 않았다.
24살로 생도들 중 가장 연장자이기도 해서 웬만해선 동생들에게 화내는 일이 없었다.
그것이 최철민의 장점이자, 최대 단점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일단 우리도 이곳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는게 어떨까? 양휘, 네가 챙겨온 무전기가 세 개나 있으니 세명 씩 조를 짜서 주변을 수색하는 거지. 일단 몬스터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을 찾고, 그 다음 베이스 캠프를 옮겨가면서 보스룸을 찾으면 시간을 많이 단축시킬 수 있을 거 같은데.”
“흐음….”
최철민의 제안은 균열 레이드의 정석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목표지점을 안다면 모를까 아무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는 수색을 끝낸 후 캠프를 이동하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그때 지금껏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우두커니 서 있던 김서준이 한마디 툭 던졌다.
“다 같이 위쪽으로 가죠.”
갑작스런 의견에 다들 뭔 소린가 싶어 의아해 할 때, 김서준은 손을 쑥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 위에는 동그란 나침반이 올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건 일반적인 나침반이 아니었다.
생명체 탐지기(CDT-Creature Detector).
반경 10킬로미터 내에 가장 많은 생명체가 군집한 장소를 알려주는 특별한 장비였다.
이건 꽤 오래전에 ‘마력 연구소’에서 개발한 장비였지만, 수십억의 인간들이 살아가는 지구에선 특별히 쓸 일이 없어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균열 너머의 세상에선 이 CDT의 활용도가 높아 아직도 유용하게 사용하는 헌터들이 꽤 있었다.
김서준은 장비를 챙길 때, 이 오래된 CDT를 발견했었고 이걸 가져온 것이다.
생도들은 모두 이 CDT가 무언지 알아봤다.
이것만 있으면 몬스터들의 군집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때문에 굳이 이곳에 캠프를 차리고 수색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CDT의 붉은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은 방금 양휘가 가려던 산 정상 쪽 방향이었다.
“이게 있으면 여기서 이럴 필요가 없지. 고민할 것도 없네. 바로 움직이자.”
이번에 최철민이 한 말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었다.
김서준은 앞장서려는 최철민에게 CDT를 덥썩 쥐어주었다.
어차피 최철민이 리더로 움직이게 될 테니 CDT는 그가 가지고 있는게 맞았으니까.
CDT는 아티팩트도 아니었고, 구하기 힘든 귀한 장비도 아니었다.
최철민은 CDT를 받고 고마워 했지만, 김서준은 그냥 웃음으로 넘겼다.
특별히 최철민을 위해서 준 것이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목표를 완수하고 싶어 한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생도들이 목적지를 찾아 숲 속으로 사라지자 박문호는 교관에게 지시했다.
“드론 띄워.”
위이이이이잉
약한 진동음을 흘리는 드론 세 대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