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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을 일으켜 아무리 살펴봐도 단 한글자의 정보조차 나타나지 않는 신기한 아티팩트.
분명 김서준의 심안으로 봤을 땐 528이라는 마력 수치와 유니크라는 격까지도 보인다.
하지만 막상 손에 쥐고 살펴보면 아무런 정보도 읽히지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교관들도 이 구슬이 아티팩트라는 걸 전혀 알지 못했을 터.
김서준은 이 구슬에 뭔가 큰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걸 직감했다.
‘마력으로 작동되는게 아니라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 구슬을 쥔 손에 내공을 일으켜 봤다.
우우우웅
갑자기 구슬에서 전에 없던 진동이 일었다.
이거다 싶은 김서준은 내공의 힘을 좀 더 높였고 구슬의 진동은 더욱 강렬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빠각!
구슬 표면이 깨져나갔다.
회색빛 구슬의 표면이 박살나자 그 아래 숨겨져 있던 찬란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김서준은 그 상태에서 다시한번 구슬의 정보를 확인해 봤다.
[유니온 코어(S)]
-고대의 유물이다.
-코어를 심어 사물을 각성시킨다.
-마력 잔량: 100%
드디어 구슬의 정보가 떴다.
그런데 정보에 드러난 내용들이 김서준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고대의 유물.
거기다 S등급 표시까지 붙어 있다.
이 작은 구슬이 오직 균열 너머의 이세계 유적지에서만 발견된다는 고대의 유물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사물을 각성시키는 능력이라니.
‘어떤 사물을, 어떻게 각성시킨다는 거지?’
표면적인 정보만으로는 정확한 사용법을 알수가 없었다.
김서준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코어 형태의 유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까지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공간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물건들을 죄다 꺼내자 침대 위로 십여 개의 아티팩트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클로킹 마스크부터 홍구안, 중력 글러브, 희망으로의 회귀 등의 여러 아티팩트들을 살피던 김서준은 우선 클로킹 마스크를 집어들었다.
‘여기에 유니온 코어를 심으면 각성이 시작된다 이건가?’
김서준은 클로킹 마스크와 유니온 코어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다 코어를 마스크의 이마 부위에 냅다 박아버렸다.
푹
코어는 생각보다 큰 반발력 없이 자연스럽게 박혀들었다.
순간, 마스크 전체가 코어와 똑 같이 찬란한 빛에 휘감기기 시작했다.
그 상태에서 클로킹 마스크의 정보를 확인해 보니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클로킹 마스크]
–각성 중…. 1%
정보 자체에 각성 중이라는 표시가 뜨더니 퍼센트가 아주 느리게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대충 시간을 계산해 보니 5분에 1%씩 오른다.
‘거의 9시간은 지나야 100%를 채우겠군.’
유니온 코어로 각성한 결과를 바로 알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어쨌든 각성이 된다는 걸 확인했으니 클로킹 마스크가 어떻게 달라질지 사뭇 기대가 컸다.
김서준은 우선 각성이 진행 중인 클로킹 마스크를 공간 글러브 속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잔뜩 널브러져 있는 아티팩트들을 다시 챙겨 넣으며 각성을 시도할 순서를 정했다.
각성 순서에 맞춰 아티팩트들을 하나 하나 살피면서 공간 글러브의 아공간에 집어 넣은 김서준.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서 받은 아론다이트가 손에 잡히자 잠시 감상에 젖었다.
‘아버진 10년 동안이나 이 아론다이트를 쥐고 균열 속을 누비고 다니신 거구나.’
김서준은 이번에 5단계에 걸친 몬스터 웨이브를 겪게 되면서 무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마구잡이식으로 몬스터를 때려 잡을 땐, 어떤 무기를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5단계 웨이브에서 김서준이 풍뢰도를 펼쳤을 땐,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평범한 철제로 만들어진 대도로는 풍뢰도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었다.
다른 생도들이 보기엔 엄청나 보일지 모르지만, 풍뢰도의 본래 위력을 너무나도 잘 아는 김서준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대도를 이용한 풍뢰도의 효율은 고작 40%.
그 마저도 제대로 채우지 못해 대도는 결국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때의 답답했던 상황을 떠올리자 이 아론다이트가 제대로 각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더 커졌다.
“두 번째 각성은 너로 하는게 낫겠다.”
김서준은 각성 순서를 살짝 바꾸기로 했다.
그때였다.
디링.
인터폰 벨 소리가 울리더니 화면으로 제복을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 교관의 얼굴이 나타났다.
“김서준 생도. 레이드 보상을 지급할 테니 나와서 수령하도록.”
생각보다 보상 지급이 빠르다.
김서준은 자신에게 배당된 마석과 아티팩트가 얼마나 될지를 기대하며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신입 교관인 이천희 교관이 서 있었다.
그는 찬바람 쌩쌩 날리는 다른 교관들과는 다르게 생도들의 편이를 봐주려고 꽤나 노력하는 교관이기도 했다.
“잘 쉬고 있었나?”
이천희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김서준을 바라봤다.
“네. 물론이죠.”
“훗. 역시나로군. 같이 생활하던 생도를 둘이나 가차없이 죽여 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잘만 쉬고 있다니….”
“….네?”
이천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서 굉장한 위화감을 느낌 김서준.
그의 본능이 위험을 감지했다.
순간,
츄학!
이천희의 손이 아무런 기미도 없이 갑자기 확 튀어올랐다.
그의 손엔 섬뜩한 빛을 뿜어내는 단검이 쥐어져 있었고, 단검은 순식간에 마력에 휘감기며 두 배는 크고 길어졌다.
푸욱
단검이 김서준의 손바닥을 꿰뚫었다.
김서준은 전혀 경계하지 않고 있었음에도 그 짧은 사이에 손으로 단검을 가로 막은 것.
“신교단의 일을 방해한 자에겐 죽음 밖에 없다!”
이천희가 소리친 순간, 그의 눈빛이 빠르게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콰과과과과과과곽
손바닥을 빠져나온 단검이 수백 개의 조각으로 쪼개지더니 김서준의 온몸을 향해 비처럼 쏘아져 나갔다.
이는 이천희의 신비인 ‘폭우기검’이었다.
무기를 폭파시켜 그 조각들을 비처럼 쏟아붓는 잔인하면서도 강력한 신비였다.
그런데,
쩌저저저저저정
수백의 검 조각들이 김서준의 몸과 1센티 떨어진 곳에서 보이지 않는 막에 막혀 일제히 튕겨져 나갔다.
이 광경에 이천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의 폭우기검은 이런 식의 기습에서는 단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하지만 김서준에겐 통하지 않았다.
통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폭우기검을 완벽하게 튕겨내 이천희 본인에게 되돌려 버렸다.
퍼버버버버벅
튕겨진 수백의 검 조각들이 이천희의 온몸을 뚫고 들어갔다.
방어력 향상 효과를 지닌 R-MPSP 슈트까지 입고 있었지만 튕겨진 검 조각들에 담긴 힘은 A급 헌터인 이천희의 방어력을 우습게 씹어먹었다.
“아악!”
이천희는 끔찍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 순간,
꽈앙
김서준이 앞으로 크게 한걸음 내디디며 진각을 밟았다.
그 충격은 고스란히 이천희의 몸에까지 전해져 그를 바닥에서 10센티 가량 띄워 올렸고,
후웅
상체를 앞으로 내던지며 이천희의 품으로 파고든 김서준이 어퍼컷을 날리듯 오른 주먹을 무서운 기세로 올려쳤다.
뻐어어어어어어억-
김서준의 주먹이 이천희의 복부를 깊숙히 파고들었다.
강철처럼 단단하게 쥐어진 주먹은 이천희의 옷과 뱃살까지 한꺼번에 밀어 올렸고, 끝내 갈비뼈까지 박살냈다.
우드득.
“크헉!”
이천희가 입을 크게 벌리며 핏물을 왈칵 토해냈다. 그리고,
퍼엉!
이천희의 몸이 강력한 충격파에 휩싸이며 천장으로 날아가 박혀버렸다.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천장이 움푹 파일 정도로 강력한 힘.
이천희가 박혀든 천장 주변으로 핏물이 퐉 흩뿌려졌다.
그렇게 2초의 시간이 흘렀을 때,
쿠웅
이천희의 육중한 몸이 아무 움직임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머리부터 떨어져 목까지 부러져버린 이천희.
그는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김서준은 그제야 자세를 바로 잡았다.
방금 그가 펼친 한수는 팔극철산고의 초식인 ‘진각정주’.
진각을 통해 힘을 한순간 증폭시킨 상태에서 스트레이트, 혹은 어퍼컷의 형태로 목표에 권을 적중시키는 기술이었다.
문을 열었을 때 이천희의 묘한 미소를 본 순간, 김서준은 그가 무슨 의도로 자신을 찾아왔는지를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도 명백한 살의를 품은 미소.
이천희의 살의가 느껴진 순간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래서 기습적인 공격에도 손이 먼저 나가 단검을 막아낼 수 있었으며, 이천희가 발동시킨 신비를 태양신공으로 튕겨내는게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김서준은 아론다이트를 아공간에서 꺼내 이천희의 목을 베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을 죽이려한 적에게 있어 너무나도 깔끔한 죽음이었다.
그래서 죽는 순간까지 끔찍한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는 진각정주를 본능적으로 펼쳐냈다.
진각정주에 정통으로 맞으면 근육이 찢겨지고, 뼈가 바스라지는 고통에 숨조차 쉴 수 없게 된다.
이 진각정주는 김서준이 무림계에서 살아갈 때, 천마군장 천강우의 수하들을 상대할 때나 사용하던 잔인한 기술이었다.
김서준은 아무 이유없이 자신을 죽이려 한 이천희를 상대로 자기도 모르게 그 기술을 사용했던 것.
‘제길. 너무 성급했어.’
모든 생도들의 방문 앞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김서준이 신비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천희를 때려잡는 광경이 고스란히 촬영되었을 것이다.
물론, 김서준이 이천희를 죽인 것은 정당방위로 인정될 테니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그를 죽이는데 사용한 무공이 문제였다.
짧은 찰나에 자신이 처하게 될 상황을 예상한 김서준은 급히 심안을 발동시켜 눈동자를 일부러 황금색으로 물들였다.
이미 숨이 끊긴 이천희를 향해 심안을 펼쳐봤자 나타나는 건 없어야 정상. 그런데,
‘뭐야 저건?’
이천희의 시체에서 무려 세 종류의 마력이 읽혔다.
[115/스페셜]
[487/레어]
[188/스페셜]
이천희는 이미 죽었으니 지금 나타난 마력 수치들은 모두 아티팩트라는 뜻.
김서준은 구멍 뚫린 손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이천희의 시체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자세로 이천희의 생사를 확인하는 척 하면서 마력이 읽히는 부분에 공간 글러브를 낀 손을 대어 세 개의 아티팩트를 아공간으로 흡수해 버렸다.
혹시나 이천희가 입고 있는 R-MPSP 슈트까지 딸려오는 건 아닌가 했는데 다행히 슈트는 그대로였다.
아무래도 단검 조각에 수많은 구멍이 뚫리게 되면서 슈트의 기능이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김서준이 이천희의 몸에서 세 개의 아티팩트를 슬쩍 하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시점에 딱 맞춰 교관들과 다른 생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왼쪽 손에 구멍이 뚫린 채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김서준과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이천희를 번갈아 보고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김서준은 그들을 바라보며 지친 얼굴로 말했다.
“신교단의…. 하수인….”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김서준은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그러자 이리나가 가장 먼저 달려와 김서준을 들쳐업었다. 그리고 곧바로 의무실을 향해 뛰었다.
남은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인지 몰라 당황해 어쩔 줄 몰라했다.
그때 박문호가 등장했다.
그는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지 교관들에게 이천희의 시체를 수습하도록 한 뒤 생도들에게 간략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이천희 교관은 신교단의 끄나풀로 확인됐다. 소란이 일지 않게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는데, 우리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이 사달이 나고 말았구나. 어쨌든, 이천희 교관을 끝으로 신교단과 연루된 첩자는 모두 처리되었으니 더 이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괜한 걱정 말고 들어가 푹 쉬도록. 김서준 생도 또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박문호의 말에 대충 상황을 파악한 생도들은 하나 둘 자신의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하지만 양휘와 신태양, 최철민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나?”
박문호는 최철민에게 물었다.
“신교단의 첩자가 박멸됐다는 말…. 확실한 겁니까?”
“본 교관은 생도들에게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럼 왜 김서준이 위험에 처할때까지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 겁니까? 한눈을 판 사이 사달이 났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예거의 심장부인 이곳에서?”
최철민은 이천희 교관의 시체와 주변 상태만 보고도 김서준이 얼마나 위험했었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놈이 우리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을 뿐이다. 이런 짓을 벌일 줄 알았다면 진작에 손을 썼을 거고.”
“그로 인해 앞날이 창창한 생도 한명이 죽을 뻔 했습니다!”
“죽지 않았으면 된 거다.”
“놈들의 목표가 저나 다른 생도였다면 죽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천희가 노린 건 다행스럽게도 김서준 생도였구나. 그 덕에 다른 생도들은 무사했고.”
“실수를 인정하는게 그렇게나 힘듭니까?”
최철민이 계속 따지고 드는 건 박문호가 예거의 실수를 인정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안일한 조치로 인해 훌륭한 생도 하나가 목숨을 잃을 뻔 했는데, 그저 한눈을 팔았다가 이 사달이 났다는 이상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으니 화가 날 수밖에.
하지만 박문호도 나름의 고충이 있어 속 시원하게 원하는 말을 해줄수가 없었다.
박문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다시 조용히 말했다.
“지금 당장 방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명령 불복종으로 너희 모두에게 감점을 부여하겠다.”
어쩔 수 없는 명령.
그러자 세 명의 생도 모두 굳어진 얼굴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최철민이 강한 어조로 한마디 남겼고,
“혹시라도 김서준을 치료하는데 문제가 있으면 말만 하시죠. 코스모 재단 최고의 의료진을 바로 불러들일 테니까요.”
신태양은 김서준을 걱정하고 있었으며,
“예거라는 조직이 생각보다 훨씬 허술하고, 억지도 많군요. 이대로 아무 것도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제가 직접 나서서 바꾸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양휘는 예거를 통째로 비난하며 자신이 직접 개선하겠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