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천재의 헌터 라이프-82화 (82/153)

82

클로킹 마스크는 원래 모습만 감춰주는 은신용 아티팩트였다.

그런데 유니온 코어로 각성을 마친 지금은 기척까지 지워주는 암살용 아티팩트가 되었고, 거기에 장비나 마력으로도 감지가 되지 않는 엄청난 부가효과까지 생겼다.

‘한번 더 각성시키면 더 엄청난 놈이 되겠지만….’

-각성 종료

마스크의 정보엔 각성이 끝났다는 문구가 떡 하니 새겨져 있었다.

‘아쉬워도 할 수 없지. 다음 각성은 이놈인가?’

김서준은 아공간에서 아론다이트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다른 손에 유니온 코어를 쥐고 마음에 준비를 했다.

‘준비하시고….’

김서준은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심호흡을 하다가,

‘쏘세요!’

푸욱

코어는 전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아론다이트의 손잡이에 박혀들었다.

동그란 코아가 깊숙히 박혀있는 아론다이트를 보니 과연 어떤 모습으로 각성하게 될지가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아론다이트]

–각성 중…. 1%

김서준은 각성 진행율이 2%로 바뀔 때까지 조용히 지켜봤다.

그런데 5분이 지나도 각성율은 1%에서 벗어나질 않았다.

‘뭐야? 물건에 따라 각성에 필요한 시간이 다 다른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좀 더 기다렸고, 무려 11분이나 지나서야 2%로 바뀌었다.

‘11분에 1%? 와, 씨. 18시간이나 지나야 각성이 끝난다는 거잖아?’

그래도 내일 밤이면 각성을 끝마친 아론다이트를 만날 수 있으니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김서준은 각성이 시작된 아론다이트를 아공간에 집어 넣고는 배를 살살 쓰다듬었다.

꼬르륵

24시간이나 아무 것도 먹지 않았더니 너무나 배가 고팠다.

하지만 이 시간에 생도를 위한 식당이 열려있을 리가 없었다.

‘라면이나 먹지 뭐.’

김서준은 혹시 몰라 훈련 캠프에 오면서 라면을 챙겨왔고, 배낭에 아직 2개가 남아 있었다.

숙소에 비치되어 있는 냄비에 라면 2개를 끓여 맛있게 한끼를 해결한 김서준.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푹 쉬자.’

간단히 샤워를 마친 김서준은 곧바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내일 김유라, 그 녀석도 이곳에 오려나?’

전달사항의 내용으로 유추해 보건데, 이번 홈커밍 데이에는 다른 때보다 많은 넘버링 요원들이 참석할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김유라도 올 가능성이 있었다.

‘가능하다면 녀석하고 한 팀이 되면 좋겠는데….’

김서준은 무림계에 있을 때 김유라와 함께 수많은 적들을 해치우던 기억을 떠올리며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

“….지금부터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홈커밍 데이를 보내게 될 넘버링 요원들의 인사가 있겠다.”

단상에 선 박문호 교관의 말에 생도들은 바짝 긴장했다.

세상 밖에서는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비밀 조직 예거.

하지만 예거의 생도로서 훈련에 참가하고 있는 이들 중에는 이 넘버링 요원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8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엄청난 규모의 사이비 종교집단 청명회를 완전하게 분쇄시킨 것도 이들이었고, 5년 전 균열 폭주로 A급 몬스터 20여 마리가 서울 한복판에 튀어나왔을 때, 별 피해 없이 몬스터들을 때려 잡은 것도 사실 예거의 넘버링 요원들이다.

그것 뿐인가?

3년 전에는 일본의 극우 집단의 손에 대한민국 애국지사가 암살당할 뻔한 일이 발생했었다.

이로인해 두 나라의 관계는 당장이라도 전쟁이 터질 듯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때 예거 넘버링 요원이 나섰고 일본의 극우 집단을 비밀리에 처단함으로써 전쟁을 막아낸 적도 있었다.

대략적으로 알려진 업적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비밀작전들까지 감안하면 예거 넘버링 요원들의 임무수행 능력은 절대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완벽했다.

예거 내부에서 도는 소문에 의하면 총 11명의 넘버링 요원 중, S급만 8명이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국가에도 S급 헌터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숫자가 적다.

많아봐야 20명이고, 적은 경우는 한 나라에 한 두명의 S급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작은 한반도의 어느 한 조직이 8명의 S급 헌터를 거느리고 있다?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때문에 그런 넘버링 요원들이 이곳에 와 있다는 말에 생도들이 긴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이이잉-

박문호의 뒤쪽 공간이 갑자기 세로로 쭉 찢어지더니 2미터 정도 크기의 타원형 포탈이 등장했다.

이 포탈 기술은 아직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완벽하게 성공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예거에서는 이미 포탈 기술을 생활 속에서 쉽게 사용하고 있으니 생도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포탈 속에서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한 명씩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생도들의 입은 점점 벌어졌고, 박문호의 좌우에 놓여진 의자에 앉는 사람이 여덟명이 된 순간엔 턱이 빠질 정도가 되었다.

열 한명의 넘버링 요원 중, 무려 여덟 명이 한 장소에 모이다니.

생도들은 여덟 명의 전설적인 넘버링 요원들을 하나 하나 살피며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때, 넘버링 요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려보이는 여자가 단상으로 나섰다.

“음. 안녕하세요? 예거 넘버 일레븐의 김유라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07기 생도 여러분들을 만나뵙게 되어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어리고 예쁜 김유라가 생긋 웃으며 하는 말에 남자 생도들은 죄다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입을 헤벌쭉 벌리고 있지 않은 건 김서준 한명 뿐이었다.

그렇게나 냉소적인 성격을 지닌 양휘도,

안하무인 격으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신태양도 김유라의 미모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김유라의 시선이 김서준과 마주쳤다.

아는 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보고도 기쁜 표정을 짓지 않는 것에 불만이 있는 것인지 김유라가 한쪽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자 신태양이 갑자기 고개를 확 돌려 김서준을 노려봤다.

“김서준. 너 유라하고 아는 사이였어?”

신태양도 김유라와 안면이 있는지 친근하게 이름으로 호칭했다.

“내가 알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냐?”

“아는 건 상관없다만, 관심은 꺼줬으면 해서.”

신태양이 드물게 얼굴을 붉히면서 한 말에 김서준은 뭔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자식…. 김유라를 좋아하는구나?’

신태양은 성격이 그다지 좋지 못하지만 감정을 잘 감추지 못하는 편이다.

지금 신태양의 얼굴에 나타난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여자로서 관심은 없지만, 넘버링 요원으로서의 관심은 있는데.”

“여자로서 관심이 없다는 건 확실하겠지?”

“그런 걸로 널 속여서 내가 무슨 이득을 보겠다고.”

“크흠. 그럼 다행이고.”

신태양의 너무 확연히 드러나는 반응에 김서준은 물론, 다른 생도들도 모두 신태양의 마음을 눈치챘다.

‘신태양도 남자는 남자였네.’

‘김유라와 신태양이라…. 잘 하면 선남선녀 커플이 탄생하겠구만.’

생도들의 얼굴에 키득거리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는 사이 다른 넘버링 요원이 단상 위에 올라 있었다.

그는 이십대 중반 정도 되보이는 체격 좋고 잘생긴 사내였다.

“넘버 텐. 차준혁이다.”

차준혁의 소개는 이게 끝이었다.

거만한 눈빛에 냉소적인 표정.

딱 보기에 양휘와 신태양을 절반씩 섞어 놓은 듯한 인물이었다.

차준혁이 내려가고 다음은 넘버링 요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내가 등장했다.

“커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넘버 나인 지학선.

그는 01기수로 최초의 넘버링 요원 중 하나였다.

무려 3분이 넘게 이런 저런 말들로 자기 소개를 마친 지학선.

그는 잘 해보자는 인사와 함께 단상에서 내려갔다.

다음은 넘버 에잇인 장호였는데, 김유라 다음으로 나이가 어린 청년이었다.

겉 보기엔 마음씨 좋은 모범학생 같지만, 이래뵈도 십대 길드 중 하나인 가우리의 에이스 헌터였으며 치밀한 성격에 조심성도 많아 굉장히 지능적인 인물이었다.

장호 다음으로 소개에 나선 인물은 넘버 세븐 박대만이었다.

“….오늘 하루 너희 생도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상.”

담담하게 이어진 박대만의 소개에 생도들은 ‘과연’, ‘역시’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 거렸다.

넘버링 요원들 중 가장 덩치가 좋고, 가장 사내답게 생겼으며, 가장 마음이 넓은 인물이 바로 박대만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대만에 이어서 넘버 식스 조미진이 자기 소개를 했다.

그녀는 생도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차준혁처럼 짧게 이름만 소개하고 자리에 들어가 버렸다.

뒤이어 넘버 투 이채윤과 넘버 원 권윤성이 차례로 자기 소개를 마쳤다.

이 두 요원이 사실상 현 예거를 이끌어 가는 우두머리나 마찬가지였기에 생도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엔 깊은 존경의 빛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여덟 명의 넘버링 요원 소개가 끝나자 생도들은 다소 아쉬운 표정이었다.

넘버링 요원들 중 가장 활약상이 뛰어난 넘버 파이브 최경문과 넘버 포에 버금갈 정도의 강자인 넘버 쓰리 배창훈의 얼굴을 볼 수 없었기 때문.

이를 눈치 챈 이채윤은 다시 단상 위에 올라 넘버 쓰리와 넘버 파이브 요원이 중요한 임무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다고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오늘은 아시다시피 예거의 홈커밍 데이랍니다. 오후에는 넘버링 요원은 아니지만 예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 중이신 지원 요원들도 대거 방문할 예정이지요. 그러니 그때 다 함께 연회를 즐기면서 서로에 대해 많은 걸 알아보도록 해요. 괜찮겠죠?”

“네! 문제없습니다!”

생도들이 힘차게 대답하자 이채윤은 매혹적인 미소를 그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오늘의 하일라이트부터 시작해 보죠. 다들 함께 오늘을 보내고 싶은 넘버링 요원은 정해 두셨나요?”

“물론입니다!”

“그럼 한 명씩 나와서 정해 둔 넘버링 요원 뒤에 서 주세요. 우선…. 최철민 생도부터.”

그렇게 이채윤의 말에 따라 생도들은 팀을 이루고 싶은 넘버링 요원의 뒤에 한명씩 자리잡기 시작했다.

최철민은 처음부터 점찍어 둔 넘버링 요원이 있었다.

바로 이채윤.

넘버 투 이채윤이 예거 조직의 실질적인 사령탑이라는 걸 알기에 그녀와 한팀이 되어 많은 걸 배워보고 싶었던 것.

그 다음은 박해성이었다.

박해성은 넘버링 요원들 중 가장 만만해 보이는 조미진과 지학선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남자보다 여자가 한팀이 되는게 낫다는 생각에 조미진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이리나는 박대만을, 안지운은 자신과 비슷한 스타일인 장호를, 민소라는 지학선을 택했다.

양휘는 여섯 번째로 선택권을 받았는데, 남은 넘버링 요원이 셋 밖에 없자 주저없이 차준혁을 골랐다.

“넘버링 요원을 고르는 것도 참 일이네요. 그래도 다들 불만없이 선택해 줘서 고마워요. 이제 두 생도만 남았군요. 이번엔….”

이채윤이 선택권을 줄 생도의 이름을 부르려고 할 때, 신태양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제가 먼저 선택해도 되겠습니까?”

“아, 이런. 조금만 더 일찍 말하지 그랬어요. 지금은 선택권을 드려도 별 소용이 없거든요.”

“…네? 아직 두 분이 남아 있는데요?”

“아니에요. 신태양 생도에게 남은 선택은 넘버 원 권윤성 님밖에 없답니다. 넘버 일레븐 김유라 양은 이미 상대가 정해져 있거든요.”

“그게 무슨….?”

신태양이 무슨 상황인지 몰라 다소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이채윤이 설명을 덧붙였다.

“여러분들이 선택한 넘버링 요원은 함께할 팀원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상대해야 할 적이 될 겁니다. 이번 홈커밍 데이는 조금 특별하게 진행해 보기로 했거든요. 생도들 중 한명만 넘버링 요원이 직접 상대를 정하고, 나머지는 생도들이 직접 상대를 선택하는 방식이죠. 그래서 저흰 김유라 양에게 선택권을 주었고, 그녀가 선택한 상대는 김서준 생도랍니다. 그러니 신태양 생도의 상대는 자연스럽게 권윤성 님이 되는 거고요.”

이채윤의 말에 몇몇은 속으로 아싸를 외쳤고, 몇몇은 젠장을 외쳤다.

신태양은 ‘아싸’를 외친 쪽에 속했다.

2년 전, 이미 제1 아카데미에 입학한 전적이 있었던 신태양.

그는 김유라와 입학 동기였고, 그때부터 김유라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입학 3개월 만에 가문의 일로 어쩔 수 없이 아카데미를 자퇴하고 미국으로 떠나야 했지만, 이렇게 예거에서 우연히도 김유라를 만나게 되었으니 다시 잘 해보자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팀이면 모를까 적이 되어 싸워야 하는 입장이면 김유라가 아닌 권윤성을 택하는게 당연했다.

신태양은 안심한 얼굴로 당당히 나섰고 권윤성 뒤에 섰다.

남은 건 김서준 하나 뿐.

하지만 김서준에겐 선택권이 아예 없었다.

‘이게 뭐하자는 거지?’

김서준은 지금 이 상황이 결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갑자기 홈커밍 데이의 전통을 깨고, 넘버링 요원들을 팀이 아닌 적으로 상대해야 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8명 중 한명 만 넘버링 요원이 상대를 선택하기로 했다는 건 더욱 더 이상했고, 우연히도 김유라가 선택권을 가져서 하필이면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일이다.

‘날 일부러 김유라와 붙여놓은게 분명한데….’

이틀 전, 이천희 교관을 죽인 일로 김서준의 능력에 의심을 품게 되었다면 김유라가 아니라 권윤성이나 차준혁 정도의 강한 요원을 상대로 붙여주는게 맞다.

그런데 아직 정식적으로 활동하지도 못하는 김유라를 상대로 붙여놯다?

반드시 김유라여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게 아니고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김유라가 반드시 내 상대로 나서야만 하는 일이라면?’

딱 하나 떠오르는 게 있다.

‘설마 마력의 원류 때문인가?’

김유라에겐 상대가 지닌 마력의 원류가 무엇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그렇다는 건, 예거들이 지금 김서준이 지닌 마력의 원류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해 김유라를 통해 그걸 확인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날 의심해서 이런 짓을 벌인다고?’

김서준의 마음 속에 갑자기 불길이 확 치솟아 올랐다.

조태석과 임희주를 처리하고, 신교단의 내통자인 이천희 교관까지 죽인 김서준이다.

그런데도 의심을 풀지 못하고 김유라를 이용해 마력의 원류가 무엇인지를 끝까지 확인하려 하다니.

‘이것들 봐라?’

차라리 직접적으로 마력의 원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솔직히 대답해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대화 대신, 몰래 뒤를 캐는 추잡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최철민의 설득으로 긴 고민 끝에 예거가 되기로 결심한 김서준을 상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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