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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천재의 헌터 라이프-83화 (83/153)

83

원래 홈커밍 데이의 하일라이트는 생도들과 넘버링 요원이 한 팀이 되어 다른 팀과 멋진 팀대결을 벌이는 것이었다.

이 팀대결을 통해 생도와 넘버링 요원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훗날 생도들이 예거 요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할 때 훌륭한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그 전통이 깨졌다.

생도와 넘버링 요원이 팀이 아닌 적으로만 마주서게 된다면 돈독함보다는 두려움같은 거부감이 생길 가능성이 더 컸다.

그만큼 생도와 넘버링 요원의 능력 차이는 엄청났으니까.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생도들과 넘버링 요원의 대결은 너무도 쉽게 결판이 나고 있었다.

최철민은 단 1분만에 이채윤의 스크류 킥에 얻어맞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것도 사실은 이채윤이 봐줘서 그런 것이지 진심으로 상대했다면 첫 격돌에 바닥에 눕고 말았을 것이다.

박해성과 안지운, 민소라도 비슷했다.

마력만 따져봤을 때 넘버링 요원들 중 두번째로 낮은 수치를 지닌 조미진이었지만 박해성은 그녀의 ‘운무’ 신비에 휘말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제압당했다.

넘버 에잇인 장호는 신비, 카피를 발동시켜 안지운을 순식간에 쓰러뜨렸고, 지학선도 넘버링 중 최하위라는 편견을 깨고 ‘벙커존’ 신비를 발휘함으로써 민소라의 유체화를 아무 소용이 없게 만들었다.

그나마 양휘와 신태양이 생도들의 자존심을 살려주었다.

차준혁과 권윤성이 상대를 봐준 것인지는 몰라도, 두 생도는 무려 5분 동안이나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쳤다.

권윤성은 칠보격살이라는 막강한 신비로 신태양을 장외로 튕겨내 버렸고, 차준혁은 사이킥 포스라는 말도 안되게 강력한 신비를 사용해 양휘를 바닥에 메다꽂았다.

그래도 양휘와 신태양은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가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김서준은 마지막 순서였다.

대련을 위해 차려진 무대는 가로 세로 20미터의 적당한 크기였다.

무대 중앙에서 마주선 김서준과 김유라.

김서준은 김유라를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지었다.

그런데 그 미소엔 왠지 모를 섬뜩함이 담겨있었고, 가까이에서 마주선 김유라는 그걸 느낄 수 있었다.

“뭐야, 그 이상한 웃음은?”

김유라가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네게 필요한 건 5분이겠지?”

김서준이 피식거리며 엉뚱한 말을 꺼내자 김유라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눈치…. 챘어?”

“이렇게 티를 내는데 모르는게 병신이지.”

“알면 협조 좀 해줘. 난 널 믿지만, 윗분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니 확실하게 보여줘야지.”

예상대로 김유라는 김서준이 지닌 마력의 원류를 파악하기 위해 이곳에 나타난 것이었다.

하지만 김유라의 말에 대한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내가 왜?”

“어? 왜라니? 그냥 대충 5분만 내 공격을 피해다니면서 마력만 줄기차게 뿜어주면 네가 문라이트의 그 개자식들하고 무관하다는 걸 내가 증명해줄 수 있다니까?”

“그러니까 내가 왜 그래야 하냐고.”

“너….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건데?”

김유라도 이제야 김서준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눈치 챘다.

“다 됐고. 하려고 했던 거 지금 해봐.”

“야, 김서준!”

“어이쿠! 그 대단한 예거 넘버 일레븐께서 내 이름을 다 불러주시고. 이거 감격이라도 해 드려야 하나?”

김서준은 지금 김유라를 빗대어 예거 전체를 비꼬고 있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너?”

“나야말로 너에게, 아니 당신들에게 되묻고 싶군. 이게 뭐하자는 짓거리냐고. 긴 말 필요없으니까 시작이나 해라. 김.유.라.”

김서준은 두 주먹을 으드득 소리나게 움켜 쥐며 차갑게 말했다.

이에 김유라는 놀란 토끼 눈이 되어 권윤성을 바라봤다.

솔직히 김유라는 이번 일을 반대했었다.

단순히 마력의 원류가 무슨 색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마치 죄인 취급하며 예거의 전통까지 바꾸는 짓을 하는게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하지만 이채윤의 뜻이 워낙 강경했고, 그녀의 고집을 꺾지 못하는 권윤성이 김유라에게 긴밀히 부탁을 했기에 수락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서준은 이미 이 자리가 어떤 이유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김서준이 모른다면 모를까 이미 알고 있다면 솔직하게 말해 협조를 받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서준이 이렇게나 거칠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이제 어쩌냐는 질문을 담아 권윤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권윤성이 이채윤을 바라봤고, 이채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애초의 계획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단호한 의미였다.

이채윤의 내놓은 대답은 김유라도 알아봤다.

“후…. 이젠 나도 어쩔 수 없다.”

김유라도 김서준의 차가운 태도에 다소 화가 난 상태.

말로 해결이 안될 상황이기에 힘으로 일단 누르고 그 뒤에 차분하게 이해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김유라는 바로 신비를 발동시켰다.

푸하아아아악!

황금빛으로 변한 눈으로 김서준을 바라보는 김유라의 몸에서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줄기 줄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신비는 ‘권예’.

[권예]

-손과 발을 사용하는 모든 기술에 능통해진다.

-신체에 마력을 둘러 5분 동안 파괴력과 방어력의 두 배 증가 효과를 획득한다.

-상대의 경계를 약화시켜 마력의 원류를 파악할 수 있게된다.

-마력의 원류 파악에 필요한 마력 접촉 시간: 5분

-재사용 대기 시간: 15분

실로 놀라운 능력을 지닌 신비였다.

하지만 김유라는 지난 아카데미 토너먼트를 통해 김서준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이미 파악해 두었기에 적당히 하다간 자신이 당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작부터 신비를 발동시켜 확실하게 기선을 제압하려는 것이다.

꽈앙

김유라가 바닥을 찍는 순간, 그녀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눈깜짝할 사이에 10미터라는 거리를 지우고 그녀가 다시 나타난 곳은 김서준의 측면이었다.

후우웅

단숨에 날아든 주먹이 김서준이 반응하기도 전에 턱 아래로 파고들었다. 바로 그때,

터억

김서준이 눈동자만 옆으로 돌린채 왼손으로 김유라의 주먹을 잡아 버렸다.

깜짝 놀란 김유라는 바로 무릎으로 옆구리를 올려차려 했다. 하지만,

우득

김서준의 완력이 어찌나 강한지 김유라의 주먹을 잡아 비틀자 손목에 이어 팔까지 뒤틀리고 말았다.

이대로는 오른 팔 뼈가 통째로 조각날 판이라 공격을 멈추고 주먹이 비틀리는 방향에 따라 몸을 회전시키고는 발로 김서준을 힘껏 밀어찼다.

김서준은 그 발차기 마저 다른 손으로 막아냈다.

그래도 발차기로 밀어낸 힘을 이용해 뒤로 공중제비를 돌아 물러날 수 있었던 김유라.

그녀는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곧장 튀어나갔다.

기습 공격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실패했으니 폭풍처럼 공격을 몰아붙여서 숨쉴 틈 조차 없게 만들어야 했다.

김유라의 이 공격은 무려 3분 동안이나 쉬지 않고 몰아치는게 가능했다.

보통은 이 기술을 쓰면 5분이 지나기 마련이었고 그럼 상대가 어떤 마력의 원류를 지녔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김유라는 이번에도 그 기준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쾅!

김서준이 서있던 자리에서 기의 폭발이 일어나더니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바짝 긴장한 김유라는 좌우를 급히 확인했다가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자 몸을 돌려 뒤까지 살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김서준은 보이지 않았다.

‘위?’

김유라의 시선은 자연적으로 위를 향했고, 그 순간.

터엉

강력한 진각음이 김유라의 코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화끈한 충격파.

퍼어엉

김서준이 진각을 밟는 자세로 오른 주먹을 쭉 뻗어내고 있었다.

주먹은 이미 김유라의 복부를 파고든 상태.

김서준은 사라진게 아니었다.

너무도 빠른 속도로 정면으로 날아들었기에 움직임 자체를 보지 못했던 것.

“큭!”

김유라가 뒤로 튕겨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허리를 구부려 충격을 최소화 시켰다.

그런데, 김서준의 공격은 끝난게 아니었다.

진각정주의 충격에 김유라가 튕겨져 나갈 때, 한발 더 앞으로 진각을 밟으며 왼손을 쭉 뻗어냈다.

어느새 양 손으로 김유라의 팔과 어깨를 잡아챈 김서준.

당황한 김유라가 급히 몸을 비틀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 한 그때,

후앙

김유라는 세상이 확 반전되는 착각을 경험했다.

정면에 있던 풍경이 사라지고, 대신 뒤쪽의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김유라는 짧은 순간 몰아친 현기증에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김서준의 무릎이 김유라의 복부쪽으로 파고들었다.

간신히 공격을 감지한 김유라는 두 손으로 무릎을 받아냈다. 그런데 이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김서준이 무릎을 쫙 펴며 발로 가슴을 차올렸다.

빠각

강한 타격에 김유라가 비스듬한 방향으로 확 튕겨나갔다.

그나마 권예를 발동시키고 있었던 탓에 방어력이 상승했기에 타격에 튕겨지기만 했을 뿐, 충격은 받지 않았다.

하지만 김서준의 공격은 한 번 더 이어졌다.

후웅

섬전처럼 모습을 감춘 김서준이 다시 나타난 곳은 튕겨져 날아가는 김유라의 등 뒤였다.

뒤늦게 김서준의 움직임을 파악한 김유라가 자세를 바로 잡으며 반격을 하려는 그때,

뻐어어어어억-

김서준이 등과 어깨로 김유라의 측면을 거칠게 받아 버렸다.

“악!”

이번엔 김유라도 아무런 방비 없이 충격을 받고 말았다.

김서준은 바닥을 세 번이나 강하게 들이받으며 나뒹군 김유라를 가만히 바라봤다.

“후우…..”

그제야 긴 숨을 토해내는 김서준.

방금 그가 펼친 것은 팔극철산고에서도 세 번째로 강력한 초식이었다.

진각정주로 충격을 주고, 반위 기술로 자리를 바꾼 뒤, 거격타로 상대를 띄운 상태에서 섬광처럼 등 뒤로 돌아가 철산고를 날리는 기술.

바로 ‘붕격반위거철산’의 초식인 것이다.

김서준에겐 김유라를 쓰러뜨릴 수많은 기술이 있었지만, 일부러 팔극철산고를 사용했다.

그 이유는 김유라가 가장 자신있어 하며,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아하는 신비인 권예 때문이었다.

김서준은 초근접 전투기술인 권예를 상대로 팔극철산고를 펼쳐 완벽하게 이겨냄으로써 김유라에게 확실하고 강력한 충고를 던져 준 것이다.

충격을 받은 건 김유라 한 명 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던 예거의 넘버링 요원 모두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김유라의 마력은 예거 넘버링 요원 중 8위.

그녀의 넘버링이 일레븐인걸 감안한다면 상당히 높았다.

기프트의 마력커버 효과로 360 정도의 마력만 드러나고 있지만, 김유라의 마력 수치는 522나 된다.

그런 김유라가 김서준의 기이한 기술에 속절없이 당했다.

이는 넘버링 요원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이었고, 생도들에겐 짜릿한 전율을 선사했다.

“유라가 방심했군.”

가장 빨리 흥분을 가라앉힌 차준혁의 말이었다.

“유라가 방심을 했다고요? 자기보다 훨씬 약한 자를 상대할 때도 최선을 다할정도로 철저한 녀석이?”

따지듯 되묻는 청년은 20살에 예거 06기수로 들어와 단숨에 넘버 에잇을 꿰차버린 천재 헌터, 장호였다.

원래 넘버 에잇이었던 요원은 4년 전, 임무 중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기에 그 자리를 장호가 차지할 수 있었다.

예거 넘버링 요원들은 고유의 번호를 선호하기 때문에 한명이 빠졌다고 다음 넘버링이 위로 올라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튼, 장호는 김유라가 방심할 인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안다.

넘버링 요원들 중에서 김유라와 가장 나이차가 적으면서 가까운 인물이 바로 장호였기 때문.

“마력의 원류를 확인하려면 5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지. 유라는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 대충 상대한게 분명해.”

차준혁은 김서준이 실력으로 김유라를 쓰러뜨렸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하….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유라에게 대충이란 말은 있을 수가 없다니까요!”

“그만. 너희들은 생도들이 다 보고 있는 자리에서 우스운 꼴을 보여주고 싶은 거냐?”

권윤성이 넘버 원으로서의 위압감을 뿜어내며 한 소리 하자 차준혁과 장호는 바로 입을 닫았다.

그때, 정신을 잃은 줄 알았던 김유라가 비틀대며 일어섰다.

그리고 김서준을 바라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방금…. 방금 네가 쓴 기술. 이름이 있겠지?”

꽤나 큰 타격을 받았음에도 김유라는 이를 악물며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팔극철산고.”

“팔극…철산고? 무슨 무공초식도 아니고, 이름이 왜 그래? 아직 중2병에서 못 벗어난거냐? 큭큭. 우웨엑!”

김유라가 웃다가 말고 피를 한움큼 토해냈다.

그 모습에 장호가 자리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황급히 김유라를 부축했다.

김유라는 필요없다는 듯 장호를 밀어냈지만, 장호는 힘으로 눌러 김유라의 팔을 어깨에 둘렀다.

그 모습을 본 김서준이 한마디 했다.

“울혈을 토한 것 뿐입니다. 금방 괜찮아 질거고요.”

“김서준, 너….!”

장호가 뭐라고 하려다가 김유라가 옆구리를 때리는 통에 말이 끊겼다.

“진 내가 병신인데 왜 오빠가 나서서 그래?”

“저 자식이 손을 너무 과하게 썼으니까 그러지!”

“이보세요, 장호 오라버니. 내가 그래도 명색이 넘버 일레븐인데, 생도한테 손을 과하게 썼다고 따지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건….”

“됐으니까 그만해. 이건 내가 부족한 탓이야. 그리고… 채윤 언니. 내가 병신같아서 5분을 못 채웠어. 그래서 언니가 원하는 답은 얻지 못했고.”

김유라는 끝내 장호의 부축을 뿌리치며 이채윤에게 말했다.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이 사실을 말할 줄 몰랐던 이채윤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뭘 놀라고 그래? 어차피 다들 알아야 하잖아. 이걸 비밀스럽게 하려는게 더 이상한 법이야. 아무튼, 그래도 확실한 답을 원한다면 조금만 기다려. 방금 제대로 맞았더니 온몸이 다 욱씬 거리거든? 한 10분쯤 쉬면 회복할 거 같은데…. 어떻게 할까? 김서준 생도의 마력의 원류가 뭔지 끝까지 확인해 줘?”

김유라의 말에 생도들 모두가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홈커밍 데이의 전통이 바뀐 이유부터, 김유라가 김서준을 콕 찍어 상대로 삼은 이유까지.

모든 건 예거들이 김서준의 마력의 원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한 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생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할 때였다.

가만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던 김서준이 손목에 차고 있던 기프트를 풀더니 그걸 이채윤 앞으로 휙 던져 버렸다. 그리고 조금의 감정도 깃들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거 07기 생도 김서준. 지금 이 시간부로 예거 캠프에서 자진 퇴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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