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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준이 대화를 엿듣는게 가능했던 건, 바로 음성 카피 밴드 덕분이었다.
원래 이 음성 카피 밴드는 목에 부착해 지정한 사람의 음성을 똑같이 만들어 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밴드에는 다른 부가적인 기능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밴드를 벽에 붙이면 벽 너머의 공간에서 주고 받는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기능이었다.
김서준은 이 밴드를 몰래 대기실 벽에 붙여놨었고, 대기실을 빠져나올때 은밀하게 수거해 왔다.
그래서 김서준은 김유라가 수련을 하러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고.
“그야, 네가 수련 광이라는 걸 아니까 하는 말이지.”
“그런….가? 뭐, 아무튼. 방금 네가 한 질문에 대답부터 해 줄게. 오늘의 이 가면 무도회는 대만 오빠가 특별히 너희 생도들을 위해 준비한 거야. 이대로 홈커밍 데이가 엉망진창이 되버리면 추억거리가 하나 사라진다고 너무 안타까워 하시더라고.”
김유라는 박대만을 바라보다가 다시 김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대만 오빠가 직접 다른 넘버링 요원들 설득해서 파티를 열게 된 거지. 대만 오빠가 파티를 열겠다는데, 아낌 받는 동생으로서 참석을 안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이렇게 바쁜 몸을 이끌고 이곳에 온거다, 이 말씀.”
이제보니 박대만이 홈커밍 데이를 대신해 가면 무도회를 개최한 것이었다.
김유라의 설명을 들은 김서준은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저로 인해 모두가 기분 좋아야 할 날이 망쳐졌는데, 원망하지 않는 겁니까?”
김서준은 모두에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김서준이 여기서 미안하다고 말한다면 이채윤이 행한 일 또한 정당화 되는 것이기에.
“무슨 원망? 오히려 너한테 사과해야 할 쪽은 우리들이다. 홈커밍 데이는 무산됐지만, 가면 무도회로 조금이나마 너희 생도들의 기분이 풀린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박대만은 김서준을 시작으로 다른 생도들과 일일이 시선을 맞추며 자신의 진심을 내비쳤다. 그러자 김서준도 더는 우울하게 있을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추억들을 남길 수 있겠네요.”
“암. 그렇고 말고. 그러니 너도 얼른 가면부터 골라라.”
최철민이 민소라에게서 빼앗아 든 가면들을 다시 김서준에게 쑥 내밀었다.
그때, 김유라가 툭 끼어들었다.
“어이, 땡칠이들. 이제 다 모였으니까 한번 신나게 놀아봐야지? 부끄러워 하지 말고 얼른 따라 오라고!”
김유라는 두 살 언니인 민소라까지 친구 취급하며 이리나와 민소라의 손목을 잡고 파티장 쪽으로 뛰어가 버렸다.
남겨진 사람들이 멍하니 있을때 박해성도 한마디 했다.
“아무리 넘버링 요원이라고 해도 그렇지. 듣기 좋게 07기수로 부르면 될 걸, 왜 하필 땡칠이라고 부르는 건데?”
박해성이 기분 나쁘다는 투로 한마디 하자 최철민이 뒤통수를 한대 팍 후려쳤다.
“야, 인마. 그래도 우린 나은 편이야. 08기수는 똥파리고, 09기수는 공구리라 불릴 거라고. 걔네들에 비하면 땡칠이는 양반이지, 양반.”
장난끼 가득한 최철민의 말에 분위기가 확 반전되어 버렸다.
박대만도 웃었고, 김서준과 신태양까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잠시 후, 모두가 사람들 틈에 섞여 파티를 즐기기 시작했다.
넘버링 요원들은 다들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권윤성과 이채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파티에 참석하고 있었다.
게다가 거의 100명에 육박하는 예거의 지원 요원들까지 생도들과 뒤섞여 마음껏 파티를 즐기는 중이었다.
가면 무도회는 모두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춤 추고, 먹고, 노래 부르고, 가볍게 치고 박기도 하면서 예거 요원들의 파티는 끝날줄 모르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
늦은 밤.
숙소로 돌아온 김서준은 공간 주머니 속에 넣어 둔 중력 글러브부터 꺼내들었다.
중력 글러브와 공간 글러브의 합성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나 있었다.
합성을 끝낸 글러브의 형태는 평범해 보였다.
새까맣고 아주 얇은 가죽 재질의 반손가락 장갑.
손바닥에는 붉은색 별 모양이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으며, 손등에는 동그란 원이 새겨져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장갑을 집어들어 마력을 밀어넣자 합성의 결과가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김서준은 밀려드는 정보를 빠르게 정리해 봤다.
[아중력 글러브(A)]
-마력을 소모하여 접촉한 물체를 10%까지 압축시켜 고밀도, 고질량의 단단한 마력물질로 전환시킨다.
-반경 5미터 거리까지 중력장을 형성시킨다.
-터치를 이용해 물질을 아공간에 수납하고 손바닥을 통한 현실 구현이 자유롭게 가능하다.
-사용 후 대기 시간: -
-아공간 부피 제한: 10㎥
‘오, 생각보다 훨씬 좋은데?’
물질 압축능력에 중력장 능력, 거기다 아공간 능력까지 모조리 갖춘 장갑이었다.
물건 수납은 터치로 가능해 졌으며, 손바닥을 통해 쉽게 물건을 꺼낼 수 있게 되어 편의성도 대폭 증가했다.
‘부피 제한이 10세제곱미터? 엄청난데?’
이 정도면 웬만한 물건은 전부 아공간에 때려 박을 수 있었다.
차는 물론이고, 작은 보트 같은 것도 가능했다.
‘이 상태에서 각성이 또 가능할까?’
김서준은 이왕 시작한 거 끝장을 보자는 생각으로 유니온 코어를 아중력 글러브에 박아 넣었다. 순간,
드드드드드드
합성 때와 똑 같은 진동을 일으키더니, 짙푸른 스파크를 일으켰고, 단숨에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공간 주머니를 휘감았다.
푸른 스파크는 공간 주머니를 아중력 글러브와 20센티 정도 되는 곳까지 확 끌어당겼다. 그리고,
>>동종의 아티팩트와 합성이 가능합니다.
>>합성을 원한다면 두 아티팩트를 완전히 밀착시키세요.
또 다시 합성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합성이 또 된다고?’
김서준은 횡재했다는 표정으로 두 아티팩트를 멍하니 내려다 봤다.
금방 정신을 차린 김서준은 공간 주머니에 옮겨 담았던 아티팩트들을 얼른 밖으로 꺼내 놨다.
지난 번에는 알아서 물건들을 토해 냈지만, 이번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
터닝 마스크에 홍구안, 깃털 등등을 모두 침대 위에 던져 놓은 뒤 아중력 글러브와 공간 주머니를 찰싹 붙여버렸다. 그러자,
후우우우웅!
두 물질이 서로 혼합되며 눈부신 빛을 뿌려냈다.
[아공간 능력을 지닌 글러브와 주머니]
-합성 중….1%
이번 합성은 글러브 때보다 느렸다.
시간을 측정해 보니 대략 5분에 1%가 차오르는 수준.
지금 시간이 10시 16분이었으니 내일 아침 6시나 되야 합성이 끝난다.
‘차라리 잘 됐네.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새벽 2시나 3시에 합성이 끝나면 또 그 시간에 일어나야 하니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김서준은 합성 중인 ‘글러브 앤 주머니’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다른 아티팩트들은 모두 침대 한켠에 모아놨다.
이제 아공간 관련 아티팩트는 합성 중인 것 외에 99만원 주고 산 공간 확장용 배낭이 전부였다.
‘대충 정리가 끝난 거 같으니까 이제 좀 쉬자.’
아침 6시에 알람을 맞춰놓은 뒤, 침대에 그대로 누워버린 김서준.
그는 내일 있을 수료식을 잠시 떠올렸다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
삐삐삐삐-
탁!
김서준은 알람이 울리자 마자 종료를 눌러버리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긴 세월을 긴장감 속에서 살아온 김서준이었기에 작은 기척에도 민감했고, 언제든 기습에 반격할 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주변을 빠르게 한차례 살핀 뒤, 아무 이상이 없다는게 확인되자 짧게 숨을 내쉬었다.
김서준의 시선은 자연적으로 테이블 위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 있어야 할 ‘글러브 앤 주머니’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 은빛을 내는 건틀릿 하나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건틀릿은 굉장히 멋졌다.
과하게 커보이긴 했지만 묵직함과 날렵함을 모두 갖춘 백점짜리 건틀릿이었다.
건틀릿에는 작은 틈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굉장한 장인이 만들어 낸 것 같은 외형에 번쩍 번쩍 빛나는 광채가 어우러져 과연 어떤 능력을 지녔을까하는 깊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김서준은 건틀릿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손부터 팔뚝까지 건틀릿 안으로 쑥 밀어넣었다. 순간,
츠아악
바람이 뿜어지는 소리와 함께 건틀릿의 크기가 확 줄어들었다.
놀랍게도 건틀릿에선 더 이상 아무런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피부와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
손가락을 움직여 보니 조금의 불편함도 없이 자연스럽게 손가락 마디 마디가 자유롭게 움직여진다.
김서준은 이 은빛 건틀릿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마력을 흘려넣어 정보를 살펴보니 그 내용 또한 상상을 초월앴다.
[초시공 건틀릿(S)]
-마력을 소모하여 접촉한 물체를 0.1%까지 압축시켜 초고밀도, 초고질량의 마력물질로 전환시킨다.
-반경 10미터 거리까지 중력장을 형성시켜 100배까지 중력을 조절할 수 있다.
-어떤 물질이든 터치로 아공간 수납이 가능하며, 뇌파를 이용해 현실 구현이 가능하다.
-건틀릿으로 변형이 가능하며, 변형 시 부분 방어력이 두 배로 높아진다.
-유지 시간: 1분
-아공간 부피 제한: 20㎥
건트릿의 정보를 보기좋게 정리한 결과였다.
무려 S급.
게다가 아중력 글러브보다 압축률이 훨씬 더 높아졌다.
중력장 범위는 10미터로 늘었고, 이젠 중력의 100배까지 조절이 가능했다.
터치로 물건을 수납하는 건 그대로였지만, 현실 구현 방법이 뇌파로 가능해졌다.
즉, 생각만으로도 얼마든지 아공간에 있는 물건을 빼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 건틀릿에는 방어력 두 배라는 어마무시한 추가 효과가 붙어 있었다.
그 기준은 김서준이 지닌 방어력을 의미할 테니, 이 건틀릿은 김서준 보다 두 배나 더 단단하다는 의미였다.
그뿐인가!
아공간 부피가 10에서 20세제곱미터로 크게 확장되었다.
이젠 작은 집 한채는 가볍게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공간이 커진 것.
마음만 먹으면 아공간에 넣지 못할게 없다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평생 써도 아공간이 부족할 일은 없겠네.’
김서준이 너무도 거대해진 아공간 크기에 놀라고 있을 때였다.
건틀릿이 갑자기 은은하게 진동을 일으키더니 크기가 확 줄어들어 반손가락 장갑의 형태로 변해버렸다.
장갑은 칠흑처럼 검은 빛을 내고 있었다.
아중력 글러브 때보다도 훨씬 더 짙은 검정색이었다.
얇디 얇은 가죽 재질의 반손가락 장갑이 되어버린 건틀릿.
그걸 보자 김서준은 왜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를 바로 깨달았다.
‘건틀릿 유지 시간이 끝난 거로군.’
은빛 건틀릿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분.
즉, 전투 중에 건틀릿화 시켜서 두 배의 방어력을 획득할 수 있는 시간 또한 1분 뿐이라는 말이었다.
건틀릿에서 장갑의 형태로 바뀌었다고 해서 능력까지 변한 건 아니었다.
건틀릿으로서의 능력만 사라졌을 뿐, 초시공 건틀릿의 다른 능력은 그대로였다.
김서준은 테스트 삼아 옆에 있는 테이블 위에 장갑을 낀 손을 살짝 가져다 댔다. 그리고 마력을 살짝 끌어 올리자,
푸슉
약 1미터 크기의 테이블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아니, 사라진게 아니었다.
테이블은 천분의 1의 크기로 변해 바닥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1미리짜리 미니어쳐가 되어버린 테이블.
그 작은 테이블을 주워들려하자 꽤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크기만 작아졌지 무게는 그대로잖아?’
김서준은 꽤나 놀라고 있었다.
크기만 천분의 1로 변했을 뿐, 질량은 그대로라니.
초시공 건틀릿의 정보대로라면 밀도 또한 엄청나 졌을 것이다.
김서준은 아론다이트를 집어들어 1미리로 작아진 테이블을 살짝 내리 찍었다. 그런데,
쩌엉
생각지 못한 웅장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역시나 밀도가 엄청나졌어.’
고밀도, 고질량으로 압축한다는 건 이런 의미였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압축능력을 이용해 다양한 일을 할 수가 있었다.
길을 막는 장애물을 치우는 기본이었고 커다란 바위를 압축시켜 투척 무기로 쓴다면 그 무엇도 박살낼 수 있으리라.
김서준은 미니어쳐가 된 테이블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신기한듯 살펴봤다. 그때였다.
슈확
테이블이 갑자기 확 커지며 본래의 크기로 돌아왔다.
깜짝 놀란 김서준은 급히 테이블을 내려놨다.
“와, 씨. 놀래라.”
아무 기미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원상복귀를 해 버렸다.
김서준은 이 또한 ‘유지시간 1분’에 해당한다는 걸 바로 깨달았다.
‘건틀릿으로 변형할 수 있는 시간도 1분이고, 물질을 압축시킬 수 있는 시간도 1분이란 소리구나.’
초시공 건틀릿의 사용법을 대충 파악한 김서준은 씨익 웃음을 그렸다.
이 초시공 건틀릿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가 머릿속에 훤히 그려지고 있었다.
‘일단 씻고 아침부터 먹자고.’
김서준은 가뿐한 마음에 여기 저기 널브러져 있던 아티팩트들을 초시공 건틀릿의 아공간에 모조리 집어 넣었다. 그러다 동그란 유니온 코어를 발견했다.
그런데 코어의 색상이 전과는 달리 칙칙한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뭐지?’
이상함을 느낀 김서준은 코어를 쥐고 정보를 확인했다.
그리고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유니온 코어(S)]
-각성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동면에 들었습니다.
-마력 잔량: 4%
-동면 기간: [71:54:23]
앞으로 3일 동안 유니온 코어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