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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준은 일단 몬스터서점을 선택했다.
그리고 뒤이어 떠오른 맵 상의 위치를 확인했다.
‘정말 그 서점이네?’
김서준의 생각대로 몬스터서점은 제3 헌터 아카데미 앞에 위치한 그곳이 맞았다.
이곳이면 집과의 거리도 무척이나 가깝다.
‘아카데미 코앞에 예거 지부가 있을 줄은 정말 몰랐네.’
제1, 제2 아카데미도 아니고 왜 하필 제3 아카데미 앞에 지부를 설치해 둔 걸까?
김서준은 언젠가 이 궁금증도 풀기로 하고는 최종 확인 버튼을 눌렀다.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두꺼운 금속 원판이 묵직한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그리고 몇 초 후,
지이이잉!
원판 위의 빈 공간이 쭉 찢어지더니 폭 2미터, 높이 3미터에 달하는 포탈이 등장했다.
김서준은 그 앞으로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봤다.
장범수와 권윤성, 이채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서 김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진짜 갑니다.”
김서준이 손을 흔들어 보이자 그들도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김서준은 바로 포탈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
슈오오오옵!
김서준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의 등 뒤에 있던 포탈은 게눈 감추듯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여기가 몬스터서점이라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방금 전까지 이채윤과 함께 있었던 포탈실과 다를게 없었다.
이곳 저곳에서 불빛이 번쩍거리는 복잡한 기계장치들과 바닥의 커다란 금속 원판, 그리고 원판을 제어하는 패널까지 그대로였다.
김서준은 포탈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꽤 기다란 통로 끝에 작은 엘리베이터 하나가 보였다.
‘예거 지부라면서 사람이 하나도 안보이네?’
김서준은 이곳이 정말 몬스터서점이 맞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통로를 걸어갔다.
통로 끝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우측에 패널이 부착되어 있었다.
손바닥 모양의 패널 위에 손을 올려놓자,
지잉
푸른 빛이 손바닥을 스캔하더니 엘리베이터가 조용히 열렸다.
‘예거 시스템은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나 보구나. 내 정보가 이미 다 등록이 된 모양이야.’
여기저기 따로 등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으니 굉장히 편했다.
엘리베이터에는 층 버튼이 딱 두 개였다.
[B1]과 [PF].
B1은 지하1층이고, PF는 포탈층을 의미하리라.
김서준은 지하1층 버튼을 눌렀고, 엘리베이터는 꽤 길게 움직였다.
단 한층 차이인데 대략 20초가 지났음에도 아직 멈추질 않았다.
30초가 넘어서야 엘리베이터가 멈춰섰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보여진 광경에 김서준은 살짝 놀라고 말았다.
엘리베이터 바깥은 마치 나사(NASA)의 상황실을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부채꼴로 된 30평 정도의 커다란 실내.
정면의 큰 벽에는 27개의 큼직한 화면이 세 줄로 펼쳐져 있었다.
그 중앙의 의자에 앉아 있는 수수한 차림의 40대 사내.
그는 김서준이 엘리베이터를 벗어나자 의자를 뒤로 돌렸다.
“어서오게, 김서준 요원. 지금은 좀 바쁘니 잠시만 기다려 주겠나?”
“네? 아, 네. 편하신대로 하시죠.”
김서준은 사내가 누군지 잘 안다.
아카데미 앞에 위치한 몬스터서점의 사장인 박연중이었다.
제3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들이라면 대부분 이 박연중 사장님을 잘 알고 있었다.
이름까지 아는 학생들은 적지만, 김서준은 꽤 자주 들러 온갖 희귀 서적을 구매했기에 이름은 물론 가정사까지 잘 아는 사이였다.
박연중도 김서준을 모를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는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김서준을 모른체 했다.
박연중은 성격이 좋기로 유명했고, 주변 상인들 사이에서도 온순하고 조용하다는 평판을 받고 있었다.
그런 그가 예거 소속의 요원이었다니.
정말 예거라는 조직은 생각 이상으로 방대한 조직이었다.
박연중은 자신 앞에 놓인 패널을 조작하여 뭔가를 열심히 입력했다.
그가 입력한 내용은 정 중앙의 화면에 고스란히 보이고 있었다.
<제6호 지부 보고사항>
1)천간십이지의 활동에 별다른 변화 없음.
2)호룡부주의 위치는 여전히 파악 불가.
3)기타 특이사항 없음.
4)세부내용으로 사진 및 1주일간 감시정황 별첨.
입력을 마친 박연중이 뭔가를 누르자 내용이 훅 사라지더니 서점 정문을 비추는 화면으로 바뀌었다.
‘천간십이지의 활동 보고?’
김서준은 방금 박연중이 작성한 글을 통해 그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천간십이지는 대한민국에 발생한 모든 균열을 국가나 길드의 이득과 상관없이 모조리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온갖 범법 행위를 벌이는 범죄조직이었다.
몬스터를 사냥해 얻을 수 있는 마석과 몬스터 사채를 통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아티팩트들이 인류의 발전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해도, 천간십이지는 균열로 인해 인류가 멸망할 수 있음을 경고하며 무조건적인 폐쇄를 주장하고 있었다.
이런 단체나 조직은 세계 어느 국가에나 존재했다.
하지만 천간십이지는 그 조직들 중에서도 극우에 속하며, 지닌바 세력 또한 강력하여 국가에서도 쉽게 손을 대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박연중은 이곳에서 그런 천간십이지의 동태를 살피고 그 조직의 우두머리인 호룡부주를 뒤쫓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이 주변이 천간십이지의 주요 활동무대인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몬스터서점이라는 간판을 걸고 그곳에 이런 지부를 설치할 리가 없었다.
“휴. 끝났군. 매주마다 보고를 해야 하는데, 딱히 보고할게 없어서 말이야. 자네도 대충은 알지 않나? 천간십이지 놈들이 얼마나 영악하고, 비밀스러운지 말이야.”
박연중은 나름 비밀에 속하는 내용일텐데도 김서준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있었다.
“이런 거 저한테 막 말해도 되는 겁니까?”
“왜 안되겠나? 자네도 이젠 명실상부한 예거 요원이 아닌가?”
“아직 아카데미도 졸업 못했습니다만.”
“그야 나도 잘 알지. 요 윗층에서 자네를 본 것만 해도 수십번이 넘는데. 그런데, 참 많이 달라졌구만.”
“네?”
“예전에도 눈빛이 맑긴 했지만, 지금처럼은 아니었거든. 뭐랄까…. 사람은 같은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달까? 아무튼, 참 신기한 일이야.”
박연중의 말에 김서준은 뜨끔했다.
그의 말처럼 김서준이 이 서점에 자주 들렀던 시점은 무림계 세상에서 김서준이 이곳으로 튕겨지기 이전이었으니까.
무림계 세상에서 이곳으로 온 이후엔 서점에 딱 두 번 정도 들렀을 뿐이었다.
‘과연 예거 요원답게 눈썰미가 좋아.’
김서준은 어색하게 웃음을 그리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잘 보셨네요. 사실 그땐 예거가 될 생각이 없어서 길고 얇게 살려고 진면목을 숨기고 다녔거든요.”
얼토당토 않는 말이었지만 그 말이 오히려 제대로 먹혔다.
“푸하핫! 이게 무슨 힘순찐 컨셉인가? 뭐, 아무튼 좋네. 이제 같은 예거가 되었으니 앞으로 잘 부탁하네. 그런데, 자넨 어느 쪽으로 배치 될 예정이지? 내근 쪽인가, 아니면 현장 쪽인가?”
“아무래도 아직 학생이다보니 졸업 전까진 내근이 되겠죠. 앞으로도 자주 여길 이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겠군. 아무리 실력이 검증된 예거라도 졸업도 안한 학생을 현장에 배치하진 않으니까. 언제 한번 조용히 찾아오게. 집도 이 근처이니 6호 지부 요원들과 안면을 트고 지내는 것도 좋겠지.”
“여기 혼자 계신게 아니었어요?”
“그래도 명색이 지부인데 혼자는 너무하지. 나까지 총 셋일세. 나머지 둘은 외근 중이라…. 다음에 올 때는 아마 볼 수 있을 것이야.”
박연중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김서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또 찾아 뵐게요.”
“위층으로 올라가려면 저기, 저 계단을 이용하게. 허술해 보이긴 하지만 승인된 요원이 아니면 저 계단을 반도 내려오지 못하고 끔살 당할 거라네.”
“어우. 무시무시 하네요.”
“그걸 이제 알았나? 예거는 그 유명한 유령들 조차 씹어먹는 요원들로 이루어진 조직이라네. 그걸 절대 잊으면 안되지.”
“하하. 네. 명심하겠습니다.”
김서준은 박연중과 인사를 나누고 상황실을 벗어났다.
계단을 통해 서점 1층으로 올라가보니 김서준이 알고 있는 그 서점이 맞았다.
오래된 책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좁은 공간들.
그 공간을 조심 조심 움직여 가야 서점 정문으로 나갈 수가 있었다.
유리로 된 서점 문을 열자, 시원한 아침 공기가 폐부로 확 밀려들어왔다.
[07:15]
이제야 7시를 살짝 넘은 시간이었다.
‘아버진 벌써 출근하셨겠구나.’
지금 당장은 아버지가 집에 안계신 편이 나았다.
그의 아버지도 이젠 엄연한 C급 헌터로 김서준이 아카데미에서 주최하는 평범한 여름 캠프 프로그램에 참가한게 아니라는 걸 모를 리 없었다.
게다가 팔에는 희안하게 생긴 쇠사슬을 칭칭 감고 있었으니 뭔가 이상하다는 것쯤은 금방 알아보게 될 터.
저녁에 아버지가 귀가하기 전까지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 놔야 했다.
김서준은 일단 가까운 헌터 전문 매장을 찾아가 왼팔을 휘감고 있는 사슬낫을 가릴만한 물건을 찾았다.
그래도 아카데미 앞에 있는 전문 매장이라서 규모도 컸고, 전시된 물건들도 굉장히 다양했다.
다만 이곳에 있는 물건들은 90%가 마력 59이하의 하급 아티팩트일 뿐이었다.
김서준은 약 30분 동안 매장을 뒤지고 다닌 결과, 쓸만해 보이는 물건을 하나 발견했다.
[차단용 붕대]
이건 빛바랜 흰색의 붕대였는데 총 다섯 가지의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시각 차단, 청각 차단, 열 차단, 냉기 차단, 출혈 차단.
붕대를 감기만 하면 이 다섯 가지 기능이 동시에 적용되는 거라 얼핏보면 엄청난 아티팩트로 보인다.
하지만 김서준의 심안은 속일 수 없었다.
‘말이 차단이지 효율은 10%밖에 안되잖아? 게다가 마력도 51에 불과하고.’
그런데도 이 아티팩트의 가격은 무려 3천 2백만원이나 했다.
‘능력은 후진게 값은 오지게 비싸네.’
아마도 아티팩트에 대해 잘 모르는 아카데미 학생들이나 이제 막 라이선스를 딴 초임 헌터의 등을 쳐먹으려고 어정쩡한 효율을 지닌 물건을 비싸게 파는 모양이었다.
‘아쉬운데로 이거라도 사는 수밖에.’
김서준은 울며 겨자먹기로 ‘차단용 붕대’를 무려 3천만원을 주고 사야 했다.
그나마 아카데미 학생 할인이라며 2백만원 빼줬기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계산은 손목에 차고 있는 기프트로 했다.
기프트를 받을 때부터 이미 개인 계좌와 연동을 시켜 둔 상태라 어디서든 기프트로 결재가 가능했다.
지금 김서준의 통장엔 20억이 넘는 금액이 들어 있었다.
예거 캠프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18억 이상의 금액이 있었고, 정식으로 요원으로 임명되면서 계약금 조로 2억이 입금된 상태.
이 계약금은 연봉에서 차감되지 않는다고 했으니 앞으로 매월 5일이 되면 2억 6천이라는 거금을 월급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기프트로 통장 잔액을 확인한 김서준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그렸다.
“어머, 손님. 좋은 물건을 구매하셔서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그 붕대가 가이아닉스에서 생산된 물건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구성 하나만큼은 업계 1,2위를 다툴 정도로 뛰어나답니다.”
계산대 점원이 가이아닉스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바람에 김서준의 기분이 팍 나빠졌다.
가이아닉스는 봉사로봇인 GX 시리즈를 시작으로 국내 로봇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회사였다.
또한 김서준이 예상하기로는 내년 4월에 열릴 전술로봇 시연회에서 워머신의 프로토타입을 내놓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회사이기도 했다.
인류의 미래를 멸망으로 이끌지도 모를 워머신.
그게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다면, 이쪽 세상 또한 무림계 지구처럼 지옥으로 변할수도 있었다.
때문에 김서준은 이 가이아닉스라는 이름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가이아닉스 물건이 아니라서 산 건데요.”
“…네? 아, 그러시구나. 아무튼 잘 사용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점원은 괜히 립서비스 했다가 역풍을 맞아버리자 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바로 매장을 벗어난 김서준은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왼팔에 붕대를 휘감아 사슬낫을 가려버렸다.
그제야 다소 안심한 김서준은 아버지한테 어디까지 오픈하고, 어디부터 숨길지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
“김서준! 너, 이놈의 자식!”
쩌억-
집에 들어가자마 백여자의 등짝 스매쉬가 작렬했다.
그런데 손이 맵다못해 심하게 아프다.
“악! 엄마! 아들이 가르쳐준 소수백염공을 이럴 때 쓰면 어떡하냐고! 아파 죽겠네!”
“그럼 아프라고 때리지, 이쁘다고 때리겠니? 오랜만에 볼기짝이라도 맞아볼래? 엄마가 뭐라 그랬어, 응! 집 밖에 나가면 뭐든지 조심하라고 했니, 안했니? 그런데 손이 그게 뭐야! 도대체 얼마나 다쳤길래 붕대를 그리 칭칭 감고 있냐고!”
백연지가 화내는 이유는 바로 붕대 때문이었다.
그녀는 김서준이 하루 늦게 귀가한 이유가 부상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안 그래도 지난번 아카데미 토너먼트 때 병원에 입원한 경력이 있었던 터라 백연지의 반응은 더욱 뜨거웠다.
“그냥 살짝 긁힌 것 뿐이라니까? 이 붕대가 낡아보이긴 해도 아티팩트라서 가벼운 상처는 며칠이면 흔적도 없이 없애준다고. 캠프 주최측에서 이 비싼 걸 줬으니 다칠만 하지. 안 그래? 하하하!”
김서준은 백연지의 화를 풀어줄 생각으로 한 말이었지만, 오히려 그게 화를 돋우었다.
“뭐? 다칠만 해? 이 녀석이 아주 매를 버는 구나, 매를 벌어! 너 당장 옥상으로 따라와. 이 엄마가 오늘 자식 교육 한번 제대로 해야겠다.”
백연지는 정말 화가 난것처럼 씩씩거리며 김서준의 팔목을 꽉 움켜쥐었다.
그런데 그 힘이 보통이 아니다.
‘어우야. 우리 엄마 손아귀 힘이 왜 이렇게 세졌지?’
뭔가 이상함을 느낀 김서준은 아픈척 머리를 숙이며 몰래 심안을 발동시켰다.
즈앙-
마력의 파동이 주변을 훑고 지나가자 백연지의 머리 위로 마력 수치가 뿅 하고 튀어나왔다.
[12/노말]
‘엄마한테 마력이…. 있다고?’
그저 무공을 가르쳐 줬을 뿐인데 한달만에 만난 어머니한테 마력이 생겨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