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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준은 10분 간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결과 가까스로 백연지를 납득시킬 수 있었다.
그제서야 차려진 밥상.
김서준과 백연지는 오랜만에 한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김서준이 은근한 어조로 백연지에게 질문을 던졌다.
“손아귀 힘이 장난이 아니던데, 그 사이 무슨 지옥 훈련이라도 하셨어?”
“너도 느꼈지? 이젠 이 엄마가 너나 네 아빠를 힘으로 이길 수도 있을 걸? 호호호. “
백연지는 웃으면서 악력이 강해진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설명은 간단했다.
김서준이 말을 안들으면 혼내줄 각오로 한달 동안 이를 악물고 소수백염공을 수련했더니 맨손으로 벽돌도 부술 수 있을만큼 힘이 세졌다는 것.
하지만 그건 난데없이 마력이 생겨난 이유가 될 수 없었다.
“혹시 뭔가에 집중하거나 힘을 끌어올리면 눈이 노랗게 빛난다던가 마법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고?”
“딱히 그런적은 없어. 네 아빠도 똑 같은 질문을 하던데, 혹시 나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니?”
“아니, 그런건 아닌데….”
아무래도 아버지 또한 어머니가 뭔가 달라졌다는 걸 느낀 모양이었다.
김서준은 백연지가 차려준 따뜻한 밥을 우걱 우걱 퍼먹으면서 잠시 고민에 휩싸였다.
‘아버지는 혼원진기공을 가르쳐 드렸어도 마력이 좀 빠르게 축적되는 거 말고는 특이점이 없었는데, 어머니는 왜 다르지?’
아버지도, 어머니도 내공 심법을 알려드렸다고 해서 자신처럼 내공 수치가 따로 형성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 백연지 여사는 신비를 각성한 것도 아닌데 마력이 떡하니 생겨버렸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일반인이라도 신체를 단련하다보면 마력이 생기긴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엔 최대 4까지였고, 그 이상으로 마력이 늘어나려면 반드시 신비를 각성해야 했다.
‘각성도 없이 마력을 12까지 올리는게 가능한 일인가?’
어쩌면 지금까지 세상이 이해하고 있던 상식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일단 신비를 각성하게 되면 마력은 더 이상 육체의 강화에 힘을 낭비하지 않는다.
오직 마력을 축적만 함으로써 각성한 신비가 지닌 위력을 높이는데만 집중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만약, 신비를 각성하지 않고 마력이 늘어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마력이 육체적인 강화에만 집중되겠지?’
그럼 언젠가는 육체적인 힘만으로 각성자를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의 초인이 되고 말 것이다.
‘마치 외공고수처럼 말이야.’
김서준은 우락부락한 외공고수가 된 백연지 여사의 모습을 상상하고 말았다. 그리고 급히 머리를 저었다.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모습이 달라지려고.’
그래도 살짝 걱정이 든 김서준은 백연지에게 팔뚝을 보여달라고 했다.
아무 의심없이 옷을 어깨까지 걷어 올린 백연지.
김서준이 내공을 써서 팔에 힘을 줘보라고 하자 백연지는 주먹을 꽉 말아쥐며 소수백염공을 일으켰다. 순간,
꾸드드득
여리여리해 보이던 매끈한 피부 위로 엄청난 근육이 불끈거리며 튀어나왔다.
마치 바디빌더의 근육을 보는 듯 했다.
“어머? 이게 뭐야?”
백연지도 이런 건 처음 봤는지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와…. 엄마 대회 나가도 되겠다. 대체 뭔 운동을 했길래 이런데?”
“아우, 징그러. 여자 몸이 이게 뭐니? 이거 다시 되돌릴 수 업어, 아들? 엄마가 근육 덩어리가 된 걸 네 아빠가 알면 굉장히 싫어할텐데….”
“아빠가 문제가 아닌거 같은데? 게다가 소수백염공을 쓸 때만 이러는 거니까 걱정 안해도 될 거 같아.”
“정말? 나중엔 힘 안줘도 근육이 막 불룩 거리고 그러는 거 아닐까?”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걸?”
김서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만 한마디 덧붙였다.
‘아마도요….’
사실 김서준도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는 장담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몸이 근육 덩어리로 변한다고 해서 소수백염공을 익히지 말라고 막을 필요는 없어보였다.
‘어머니가 위험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안전해 질 수 있다면 이 정도 부작용은 아무 문제도 아니야.’
김서준은 어머니 백연지가 열심히 소수백염공을 수련해서 더욱 강해진 육체를 손에 넣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로부터 30분간 식사가 더 이어졌고, 김서준은 한달 동안 캠프에서 어떤 훈련을 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말도 안되는 이야기 보따리를 잔뜩 풀어야 했다.
물론 100% 거짓말은 아니었다.
예거 캠프에서 받은 훈련 내용을 여기 저기 각색해서 위험이 거의 없는 가벼운 훈련을 받은 것처럼 말해주었다.
백연지는 김서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옛날 이야기를 듣는 아니처럼 무척이나 재미있어 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김서준은 방으로 들어갔다.
간단히 짐부터 풀어 놓은 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점심 때가 되기 전까지 침대에 누워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는 속이기 힘들 것 같은데…. 예거의 지원 요원으로 선발됐다는 정도는 말해도 되지 않으려나?’
원래대로라면 예거는 자신이 예거 요원이라는 사실을 전적으로 숨겨야 한다.
특히 넘버링 요원은 가족에게 조차 신분을 밝힐 수 없게 되어 있기에 김서준은 사실을 밝히는 데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김서준은 기프트를 이용해 예거 요원이 지켜야 할 규범과 규칙을 차근 차근 재확인했다. 그리고 일반 지원 요원의 경우엔 부모에게만큼은 그 사실을 언급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김서준은 아버지 김주혁에게만 자신이 예거으 지원 요원이되었다고 밝히기로 했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무척이나 기분이 상쾌해 졌다.
‘그럼 이제 마음 편하게 마석이나 섭취해 볼까나?’
김서준은 지금 블루급 마석 한 개와 오렌지급 마석 세 개를 모조리 꺼내놨다.
그동안 오렌지급 마석은 흡수 시 마력 상승율이 미미한 탓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젠 오렌지 마석을 먹어서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마력을 조금 더 늘릴 것인지, 아니면 팔아서 현금화 할지를 정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오렌지급 마석부터.’
김서준은 무심코 왼손으로 오렌지급 마석 한 개를 손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 순간, 뜻하지 않은 현상이 김서준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우우우우우웅
붕대에 감아 둔 사슬낫이 갑자기 진동을 일으켰다.
‘얘는 또 왜 이러는데?’
이제 막 입에 마석을 털어 넣으려던 김서준은 멈칫 하고선 왼팔을 빤히 노려봤다.
그러자 붕대 아래에 감춰져 있는 사슬낫이 마치 주인을 보채는 애완동물처럼 불규칙하게 마구 떨어대기 시작했다.
우웅. 우우웅. 웅웅!
‘설마 마석에 반응하는 건가?’
김서준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왼팔을 감고 있던 붕대를 풀어버렸다.
빛바랜 흰색 붕대가 바닥에 떨어진 순간, 사슬낫이 통째로 진동을 일으키더니 손목 아래로 삐져나와 있는 단봉이 반으로 갈라지며 이빨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마치 뱀이라도 된 것처럼 입을 쩍 벌려서 마석을 먹으려고 난동을 부렸다.
김서준은 단봉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입을 벌려 마석을 먹으려 하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거 대체 뭐하는 놈이야?’
어이가 없다못해 정신이 날아갈 지경이다.
검은빛의 금속 물질이 살아있는 동물처럼 입을 쩍 벌리고 마석을 먹겠다고 마구 달려들 줄이야.
권윤성이 말한 것처럼 이 사슬낫은 흉급으로 분류될만 했다.
김서준은 어떻게 할까 가만히 고민하다가 사슬낫의 정보에 나와있던 문구를 떠올렸다.
‘주인과 함께 성장한다 이거지?’
처음엔 그 문구가 의미하는 바가 주인이 성장하면 사슬낫 또한 자동으로 성장한다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함께 성장한다는 뜻이 내가 이 녀석을 키워야 한다는 의미인건가?’
마석을 향해 발작하는 모습을 보니 그럴 가능성이 충분했다.
김서준은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바닥에 놓인 마석을 단봉 쪽으로 밀어주었다. 하지만 단봉은 괴물 같은 입으로 캬악 캬악 소리만 낼 뿐 마석을 삼키지는 못했다.
‘내가 직접 먹여줘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마석을 집어 단봉의 쭉 찢어진 입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순간,
촵
단봉이 마석을 낚아채더니 날름 삼켜버렸다.
마석 하나를 통재로 삼킨 단봉은 강아지가 된 것처럼 혀까지 내놓고 헥헥 거리며 김서준 쪽을 바라봤다.
눈은 없지만 단봉의 모습은 애완견과 다를게 하나도 없었다.
‘하나로는 부족하다 이거냐?’
김서준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단봉을 마주봤다.
그러자 단봉은 정말 강아지처럼 헥헥거리기 시작했다.
‘하…. 어이가 없네.’
사슬낫은 김서준의 상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존재였다.
‘그래, 어디 얼마나 처먹나 한번 보자.’
바로 두 번째 오렌지급 마석을 집어든 김서준은 혀인지 가죽인지 모를 단봉의 시꺼먼 혓바닥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촵!
이번에도 마석을 날름 삼켜버린 단봉.
녀석은 마석을 두 개나 먹고도 여전히 부족한지 헥헥 거리며 김서준을 바라봤다.
‘와, 씨. 2천만원이 넘는 마석을 두 개나 처먹고도 또 달라고?’
사슬낫은 정말 기가막힌 놈이었다.
하는 수 없이 세 번째 마석까지 단봉의 입앞에 가뎌다 바치자 단봉은 그것마저도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그런데 이번엔 반응이 좀 달랐다.
우우우우우웅
사슬낫 전체가 부르르 진동하더니 은은한 광채를 뿜어냈다.
변화를 직감한 김서준은 바로 심안을 발동시켰다.
지잉-
심안의 파동이 뿜어진 순간, 김서준의 머릿속으로 사슬낫의 정보가 명확하게 정리되어 떠올랐다.
[사슬낫(A+)]
-고대의 유물이다.
-'목표에' 사슬을 감아 능력의 ‘40%’를 봉인시킨다.
-항마력에 반응한다.
-굉장히 단단하고 날카롭다.
-스스로 주인을 선택하며 주인과 함께 성장한다.
‘오호라. 이것 봐라?’
사슬낫의 정보가 정말로 바뀌었다.
A급이 A+로 변했고, 단순히 사슬을 감는다는 문구 앞에 ‘목표에’라는 조건이 붙었다.
또한 30%였던 봉인 능력이 40%로 늘어났다.
김서준은 이제야 이 사슬낫이 어떤 식으로 성장하는 것인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한차례 성장을 마쳤기 때문일까?
단봉은 더 이상 헥헥 거리지 않고 손목과 사슬의 틈새에 쏙 들어가 가만히 있었다.
‘어디, 더 먹나 안먹나 보자.’
김서준은 내친김에 블루급 마석까지 집어 들고는 단봉 앞쪽으로 슥 내밀었다.
그러자 움직임을 멈췄던 단봉이 머리를 치켜들더니 다시 입을 쩍 벌렸다.
헥헥….
또 다시 마석을 먹겠다고 혀를 내미는 단봉.
김서준은 블루 마석을 먹일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이걸 자신이 먹는다면 마력과 내공 모두 최대 20씩 늘어난다. 반대로 이걸 사슬낫의 먹이로 주면 또 한번 성장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블루급 마석을 얻는게 쉬운건 아니니까.’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마력이나 내공은 지금 당장 급하게 높여야 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김서준에겐 마력과 내공을 성장시킬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블루급 마석을 확보할 기회는 흔치 않았다.
즉, 지금이 아니고서는 언제 또 사슬낫에게 블루급 마석을 먹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
김서준은 바로 블루급 마석을 단봉의 입에 가져다 댔다.
촤압-
그 즉시로 단봉은 마석을 삼켜버렸다.
그리고 또 한번 사슬낫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이번의 진동은 좀 전보다 길게 이어졌다.
곧이어 검은 빛의 광채가 뿜어졌고, 김서준은 다시한번 심안을 발동시켰다.
[사슬낫(S)]
-고대의 유물이다.
-목표에 사슬을 감아 능력의 ‘50%’를 봉인시킨다.
-항마력에 반응하며, ‘사슬로 결계를 형성하여 적을 고립시킨다.’
-굉장히 단단하고 날카롭다.
-스스로 주인을 선택하며 주인과 함께 성장한다.
사슬낫의 변화된 정보를 확인한 김서준은 주먹을 꽉 쥐고 속으로 아자를 외쳤다.
S급.
드디어 사슬낫이 A급 고대 유물에서 벗어나 S급의 오파츠로의 변신을 이뤄내고야 말았다.
이번엔 봉인 능력이 50%로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사슬로 결계를 형성하는 능력까지 생겼다.
안그래도 결계를 형성하는 큐브형 오파츠를 얻지 못해 아쉬움이 컸는데, 결국 이 사슬낫을 통해 결계 능력을 얻어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해제.’
촤르르르르륵
사슬낫이 드디어 김서준의 의지에 따라 팔에서 떨어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