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천재의 헌터 라이프-102화 (102/153)

102

잠시 후, 마력을 지니지 않은 평범한 시민 두 사람이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갔다.

이제 이 가게엔 김서준 일행을 포함해 총 17명의 인원이 남아 있었다.

점원 셋에 다른 손님 10명.

하지만 그들 모두가 각성자였다.

뭔가 분위기가 무거워진 느낌.

티가 나진 않지만 가게에 있는 다른 손님들 모두 김서준 일행 쪽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김서준은 박연중을 바라봤다.

이 정도 압박감이면 박연중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수준이기에 반응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다니….까? 근데 왜 이리 몸이 나른….하지?”

박연중의 눈이 탁 풀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머리를 박고 엎어졌다.

그 모습에 이영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언제 독을…!”

이영호는 마력을 확 끌어올리며 뭔가에 대항하려 했으나 그의 눈도 금세 풀리고 말았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는지 그대로 다리가 풀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김서준은 멀쩡했다.

그는 지금 일행 모두가 독에 중독되었음을 직감했고, 자신은 부동심 덕분에 멀쩡하다는 걸 깨달았다.

부동심은 어떤 식으로든 신체에 위협이 가해지면 자연적으로 발동이 되어 몸을 보호하기 때문에, 독이나 정신계 공격에 대항하는 힘이 굉장히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부동심을 자랑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일단, 어떻게 되는지 지켜볼까?’

김서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엎어졌다.

김서준까지 쓰러졌지만 주혜민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건 주혜민의 기프트에 담긴 능력 중 하나가 바로 ‘면역강화’였기 때문.

그러나 면역강화도 독을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에 비해 버티는 시간이 조금 길뿐, 결과는 같았다.

“너, 너희들….. 처음부터 우릴 노리고….있었….”

주혜민은 자신들 쪽으로 다가서는 훤칠한 키의 중년 사내를 바라보다가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기절 상태 확인하고, 모두 지하로 옮겨라.”

“알겠습니다.”

지시를 내린 사내는 우나라 소나라의 사장인 양상익이었다.

그는 완전히 넉다운이 된 김서준을 잠시 내려다 봤다.

‘어쩐지 자질이 보통이 아니다 싶더니, 역시 예거와 관계가 있었구나.’

양상익은 김서준을 세 번째 만나는 것이었다.

이미 수하의 보고로 예거 지부의 요원들 셋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그는, 미리 준비를 해 둔 상태였다.

그런데 그 예거 요원들 틈에 김서준이 끼어 있을 줄은 몰랐다.

대화 내용은 엿듣지 못했지만, 상황으로 보아 김서준이 예거 요원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 같았다.

‘무슨 이유로 여길 찾아왔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겠어.’

수하들이 예거 요원들을 들쳐 업자 양상익은 그들을 데리고 가게의 비밀 통로로 향했다.

***

어두운 공간.

김서준은 음습하고 퀘퀘한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공간에서 정신을 차렸다. 아니, 정신을 차린 것처럼 연기를 해 보였다.

“정신이 좀 드나?”

바로 옆에서 들리는 박연중의 음성.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봤지만 눈을 가리고 있는 안대 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침착하게. 아무 것도 볼 수 없겠지만, 당장은 큰 위협이 없어. 이 방에는 마력 차단 물질이 있어서 신비도 쓸 수 없을 걸세. 아티팩트도 마찬가지고.”

박연중은 혼란에 빠져있을 김서준이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이렇게 되고 말았네요.”

“흥. 그래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알고 있군.”

화가 잔뜩난 목소리의 주인은 이영호였다.

지금 네 사람은 정 사각형의 커다란 건물 기둥에 묶여 있었다.

철재 의자에 팔과 다리가 묶인 상태에서 몸통 부분이 두꺼운 밧줄로 여러겹 휘감겨 있어 몸을 거의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나마 자유로운 건 머리 뿐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네요. 분명 모든 음식과 식기에 위험물질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했고, 아무 문제 없었거든요.”

주혜민이 꺼낸 말에 박연중이 대답했다.

“나도 기프트로 주변 인물의 마력 수치를 전부 확인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어. 아무래도 우리가 올 줄 미리 알고 철저하게 준비를 해 놨던 것 같다.”

박연중과 주혜민 모두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의아한 모양이지만, 김서준은 모든 걸 파악하고 있었다.

김서준이 처음 지하철 역에서 지부의 요원들을 만났을 때, 그들에겐 이미 미행이 붙어 있었다.

그건 김서준이 착용하고 있는 기프트의 위기감지 능력 덕분이었다.

기프트는 계속해서 주변에 위험이 있다고 경고를 보내왔고, 김서준은 요원들 몰래 그 위험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곧 미행 차량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차량은 이들이 탄 차가 주차장에 멈춰 설 때 자연스럽게 다른 손님인 것처럼 주차했고, 약간의 시차를 두고 음식점까지 따라 들어왔다.

이들은 처음부터 이 음식점을 가려고 했던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행동해서 박연중 같은 베테랑 요원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김서준은 요원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 이유도 알고 있었다.

음식점 내부엔 고기향을 중화시킬 목적으로 전자식 디퓨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디퓨저에서 뿜어진 향이 특정 성분과 합쳐지게 되면서 정신을 잃게 된 것이다.

그 특정 성분은 요원들이 마신 물 속에 들어 있었다.

주혜민의 손톱 형태 아티팩트는 위험물질만 발견할 수 있지, 다른 물질과 합쳐져 정신을 잃게 만드는 부분적인 성분까지는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디퓨저 향과 물 속의 특정 성분이 몸 속에서 합쳐지면서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게 만드는 효과를 보였던 것.

김서준은 이 모든 걸 알았지만 함구했다.

이 요원들에겐 미안했지만 천간십이지의 간부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 정도 고생은 감수해야 했다.

‘범죄자 치고는 그래도 꽤나 신사적이란 말이지.’

김서준은 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 천간십이지의 각성자들이 자신을 비롯, 요원들을 대하는 태도를 모두 지켜봤다.

특히, 한달 전 자신이 우나라 소나라의 사장이라고 소개했던 양상인 이라는 사내는 수하들에게 누구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하라고 주의까지 주었다.

우나라 소나라에는 숨겨진 비밀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엔 엘리베이터가 존재했고 그걸 타고 지하 5층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어느 한 공간으로 들어왔고, 그곳 기둥에 지금처럼 묶이고 말았다.

요원들이 가지고 있던 아티팩트는 기프트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수거해 갔다.

기프트는 본인이 아니고서는 임의로 풀어낼 수가 없었기에 천간십이지의 인물들도 억지로 벗겨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김서준이 오른 손에 착용하고 있는 장갑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그 장갑도 김서준이 허락하지 않는 이상은 강제로 벗게내는게 불가능했지만, 이들은 그게 엄청난 아티팩트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김서준은 그제서야 초시공 건틀릿이 일반적인 스캔에는 아티팩트로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무튼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김서준과 요원들을 기둥에 묶어 놓은 채 적들은 자리를 비웠다.

요원들이 정신을 잃고 있었던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

김서준은 그들이 스스로 정신을 차리길 기다리면서 이곳의 구조와 얼마나 많은 각성자들이 있는지를 살펴보려 했다.

하지만 마력이 움직여 지질 않았다.

이 방에는 마력을 차단하는 아티팩트가 설치되어 있는게 분명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양의분심공을 운용하며 시간을 떼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김서준은 재미있는 실험을 하나 했다.

과연 마력이 없는 상태에서 신비를 발동시킬 수 있느냐에 대한 실험.

양의분심공이 없었다면 절대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을 실험을 20여분간 이어갔을 때, 김서준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원래 마력과 내공은 완전히 별개의 기운이다.

마력은 대자연의 기운을 피부를 통해 흡수한 뒤, 심장을 휘도는 서클을 만들어 냄으로써 마법과 같은 현상을 도출해 내는 것인 반면,

내공은 호흡을 통해 단전에 직접 기를 쌓아가는 방식이었다.

애초에 이쪽 세계엔 내공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내공으로 마력을 대체한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김서준은 자신의 힘만으로 그걸 해내고 말았다.

반드시 양의분심공을 운용하는 상태여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긴 했지만, 어쨌든 내공을 이용하여 신비를 발동시키데에는 성공했다.

다만, 신비를 발동시키는데 소모되는 내공의 양이 마력에 비해 5배는 높다는 문제가 있을 뿐.

김서준은 그래도 그게 어딘가 싶었다.

내공을 이용해 신비를 발동시킬 수 있게 된건, 정말 대단한 성과였다.

마력 소모가 극심한 신비를 사용하느라 마력 수치가 거의 0에 가깝게 떨어졌다 해도, 내공을 이용해 다시 신비를 사용해 상대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갈겨주는게 가능하다.

또는 지금처럼 마력이 완전히 잠겼을 경우에도 내공으로 신비를 사용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R-MPSP 슈트를 거절한게 신의 한수였네.’

만약 R-MPSP슈트를 받아서 입고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마력이 잠기는 일이 없었겠지만, 대신 내공으로 신비를 발동시키는 방법은 영원히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김서준은 훌륭한 탐구정신 덕분에 내공을 사용해 심안을 발동시킬 수가 있었다.

휘우우우우웅

다른 사람들은 감지할 수 없는 미지의 파장이 김서준을 중심으로 사방을 훑고 지나갔다.

그 결과 반경 20미터 내에 위치한 각성자의 존재를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문앞에 2명, 복도 끝에 2명. 그리고 방 네 개에 3명씩, 총 16명? 어우야…. 많기도 하다.’

눈으로 직접 보는게 아니라서 마력 수치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각성자가 몇 명이 되는지, 그들의 마력이 어떤 색을 지니고 있는지 정도는 확인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 시점에 예거 요원들이 하나 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던 것이고.

“젠장. 놈들이 아티팩트를 전부 가져갔네요.”

이영호는 반지 형태의 아티팩트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는 굉장히 분통해 했다.

“이제 어쩌죠? 이렇게 붙잡혀 버린데다가 마력까지 사용을 못하는 상황인데….”

“일단 상황을 보고 판단하자. 우릴 묶어만 놨다는 건 뭔가 알아내고 싶은 게 있다는 뜻이니까 곧 접촉을 해 올 거다. 우린 그때를 노리면 되고.”

박연중과 주혜민, 그리고 이영호까지 현 상황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놓고 조용히 논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논의에 김서준은 제외되어 있었다.

어차피 끼어들 생각이 없긴 했지만 대놓고 무시해 버리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하긴…. 나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됐으니 열받을만 하지. 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해야지 뭐….’

김서준이 혼자서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크르르릉

두꺼운 철제 문이 활짝 열리며 세 사람이 들어섰다.

그중 한명의 기운은 김서준도 익히아는 사람의 것이었다.

‘양상익 사장이군.’

이제 김서준은 사람이 자연적으로 풍겨내는 미세한 기운만으로도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눈은 가려져 있었지만 기운을 느끼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김서준.”

양상익이 김서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김서준은 깜짝 놀란 듯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저를 왜 찾습니까?”

말까지 더듬으며 한 말에 양상익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우리도 대충은 알고 있으니까 어설픈 연극은 관둬라.”

양상익은 김서준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게다가 김서준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뉘앙스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김서준도 더는 몸을 떨어대지 않았다.

“날 아는군요.”

“알다마다. 이미 두 차례나 마주쳤는데 모를 리가 있으려고.”

“그래서, 원하는게 뭡니까?”

“조용히 딴짓하지 않고 날 따라와 준다는 조건 하에서 널 풀어주겠다.”

“저만….입니까?”

“그래, 너만.”

양상익의 대답은 확고했다. 그러자 이영호가 끼어들었다.

“당신들. 우리가 누군지 아는 것 같은데. 지금 뭐 하자는 거지?”

그런데 양상익은 이영호의 질문을 아예 무시해 버렸다.

“김서준. 내 조건, 따를텐가?”

“….후. 그렇게 하죠.”

“좋아. 안대하고 결박을 풀어줘라.”

양상익이 명령을 내렸고, 함께온 사내 하나가 오직 김서준만 기둥에서 풀어주었다. 그때,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박연중이 한마디 했다.

“당신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학생을 데리고 가서 엉뚱한 짓을 하는 건 아니길 빌겠다. 만약, 그 학생에게 어떤 헤코지라도 가해진다면 내가, 아니 내가 속한 곳에서 너희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김서준을 걱정하는 박연중의 말에 양상익은 처음으로 반응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학생이라…. 후후. 당신들이야 말로 아무 것도 모르는군. 신변에 대한 걱정은 이 학생이 아니라 당신들이 해야 할 텐데?”

“뭐….라고? 그게 무슨….”

“가자.”

양상익은 박연중의 말을 자르고는 김서준을 데리고 방을 벗어났다.

양상익을 비롯한 두 사내와 김서준까지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자 방은 또 다시 침묵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 침묵을 깨뜨린 건 주혜민이었다.

“아무래도…. 저희가 낚인 것 같죠?”

“흐음…. 그럴지도 모르겠다. 애초부터 천간십이지의 목표는 우리가 아니라 김서준 학생이었던 것 같아.”

“역시나 지부장님도 저랑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네요. 김서준 학생이 저희를 미끼로 쓴 거겠죠? 천간십이지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미끼요.”

“그게 사실이라면 김서준 학생은 처음부터 그 음식점이 천간십이지의 거점이라는 걸 눈치 채고 있었다는 말이겠군.”

박연중과 주혜민은 김서준에 대한 평가를 처음부터 다시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신입 예거가 아니라, 어쩌면 모든 걸 알고 일부러 모르는 척 연기를 하고 있는 노련한 베테랑 요원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때, 가만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이영호가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두 사람 다 김서준이 나가기 전에 했던 말 못들었어? 정확히 10분 뒤에 탈출을 시작하라는 말.”

“뭐?”

“갑자기?”

박연중과 주혜민이 크게 놀라며 되묻자 이영호는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역시 나만 들은 건가? 뭘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나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고. 김서준, 그 녀석이 나가기 전에 교묘하게 밧줄을 끊어놓은 모양이야.”

이영호의 말에 다른 두 요원은 더욱 크게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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