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천재의 헌터 라이프-105화 (105/153)

105

이영호는 몬스터서점의 지하 본부로 향하는 비밀 계단으로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있었다.

박연중과 주혜민은 엘리베이터를 탔으니 침입자의 신경은 온통 그쪽으로 쏠려 있을 터.

비밀 계단을 통해 몰래 스며들어 양동작전을 벌인다면 침입자를 잡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영호의 기프트에 저장된 능력 중 하나는 ‘클로킹’이었다.

천간십이지의 각성자들에게 사라잡히면서도 기프트는 탈취당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살금 살금.

발소리 하나 들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스럽게 지하에 내려온 이영호는 상황실로 들어갈 수 있는 회전벽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리고 벽에 귀를 대고 안쪽의 상황을 빠르게 체크했다.

벽 너머로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고, 곧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상황실에 들어서는 소리가 이어졌다.

“사장님. 여기 너무 어둡다고 제가 몇 번을 말씀드려요. 수시로 좀도둑이 없나 체크하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이렇게 어두컴컴하게 해 놓으면 사장님이 도둑인줄 알겠어요. 어휴.”

주혜민이 침입자의 이목을 끌기 위해 박연중을 사장님이라 부르며 쓸데없는 소릴 지껄였다.

“하하, 그런가? 그래도 내가 그럴듯하게 잘 꾸며 놨지? 그냥 보면 무슨 영화에서 나오는 작전 상황실 같지 않아?”

“뭐, 그렇긴 하네요. 일단, 불부터 켤게요. 하나, 둘, 셋!”

주혜민이 숫자를 세며 불을 탁 켜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냐! 정체를 밝….”

“어?”

벽 너머에서 두 요원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이영호는 손으로 버튼을 눌러 벽을 회전시켰다.

벽이 빠르게 회전하며 틈새가 만들어지자 이영호는 곧바로 뛰쳐나가 상황실 안쪽을 살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 그림자 하나를 발견하고 곧장 달려들었다.

“감히 어떤 놈이 여길 멋대로 들어…. 어라?”

기프트의 또다른 능력인 마력증폭까지 써가며 공격을 날리려던 이영호는 의자에 앉은 인물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멍하니 멈춰서고 말았다.

“미행을 피하느라 늦으셨나 봐요?”

의자에 앉아 방긋 웃음을 짓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김서준이었으니까.

“김서준 학생! 언제 탈출해서 돌아온 건가?”

박연중이 신기해 하며 묻자 김서준은 의자에서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세 분이 난리를 쳐준 덕분에 감시가 소홀해져서 저도 탈출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어요. 미행은 없었으니까 걱정 마세요.”

“김서준, 너 솔직히 말해. 그 고기집이 놈들의 거점이 확실하다는 거 알고 간 거지? 우릴 미끼로 쓴거고?”

이영호가 마력을 풀며 따지듯이 묻자 김서준은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악의는 전혀 없었습니다. 천간십이지가 신교단 같은 범죄집단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직접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너무도 정중하게 사과를 하자 이영호도 크게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성격이 좀 모나서 그렇지 이영호 또한 나쁜 뜻이 있는 건 아니었다.

“모두 무사하니 너무 미안해 할 건 없다. 그보다, 천간십이지가 신교단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는 건 무슨 말이지?”

박연중은 지부장 답게 김서준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상황을 부드럽게 정리했다.

“그들은 적이 아닙니다. 저희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있어도 아무 죄없는 사람들을 해치거나 사회에 혼란을 야기하는 일은 하지 않죠. 그들과 직접 접촉해 보셨으니 이미 느끼셨을 거라고 봅니다.”

김서준의 말은 사실이었다.

박연중 등이 그곳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어떠한 신체적 고문도 행해지지 않았고, 그 어떤 협박도 없었다.

게다가 탈출할 때에도 잠시 전투가 벌어지긴 했지만 죽여서라도 탈출을 막으려는 의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었다.

탈출은 막되, 최대한 서로 다치는 일이 없게 하려는 보이지 않는 배려까지 느껴졌었다.

“그말이 맞다해도 그렇다고 그들이 지은 범죄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네. 저도 압니다. 빵 한조각을 훔쳐도 도둑은 도둑이니까요. 하지만, 우리 예거가 정말로 상대해야 할 적은 천간십이지가 아니고 신교단 같은 악질적인 빌런 집단입니다. 오히려 천간십이지를 이용해 놈들을 소탕할 방법을 모색하는게 맞습니다.”

“천간십이지를 이용한다? 놈들이 우리와 협력을 하려 할까?”

“협력을 할 수밖에 없게끔 상황을 만들면 됩니다.”

“그게 가능해?”

이제는 이영호도 김서준의 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네. 가능합니다. 제겐 그들과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을 알려드릴 테니 이번 기회에 잠시 손을 잡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겁니다.”

“호오. 벌써 그런 방법을 준비해 뒀어? 처음부터 아주 작정을 하고 이번 일에 뛰어들었구나, 너?”

주혜민은 김서준이 처음부터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자신들과 합류한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지만, 작정을 한 건 사실이었기에 김서준은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일단, 이건 상부에 보고를 한 뒤 따로 지침을 받아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애써 모은 아티팩트들을 다 뺏겼으니 손해가 막심하군.”

박연중은 그동안 모아온 아티팩트를 되찾지 못한 것에 굉장히 실망한 눈치였다. 그러자 주혜민이 위로의 말을 전했다.

“놈들하고 연락이 되면 아티팩트 돌려달라고 한번 말해보죠. 설마 돈 몇푼 때문에 우리껄 꿀꺽 하겠어요?”

“아예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뗄 수는 있지. 젠장. 그게 다 얼마를 주고 구매한건데!”

이영호가 잃어버린 아티팩트를 아까워하며 울상이 되어 있을 때, 김서준이 회의 탁자 위에 뭔가를 와르르 쏟아냈다.

그건 천간십이지의 거점을 빠져나오면서 챙겨온 18개의 아티팩트였다.

“빠져나오는 길에 눈에 띄길래 가져왔는데…. 혹시 요원님들 건가요?”

“엇?”

“와우!”

“맞아, 맞다고! 이거도, 저거도 다 내 아티팩트 맞아!”

세 사람은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아티팩트를 빠르게 수거해 갔다. 그런데,

‘뭐야, 5개가 남네?’

18개의 아티팩트 중에서 주인을 찾아간 건 13개 뿐.

무려 5개나 되는 아티팩트가 주인을 찾지 못하고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흐음. 김서준 학생. 너무 많이 가져온 거 같은데?”

“그러게. 오히려 우리가 천간십이지 물건을 훔쳐온게 되버렸는데?”

“훔치면 뭐, 어때? 어차피 놈들도 제대로 돈 주고 구매한 물건들은 아닐거라고.”

이영호는 여전히 천간십이지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이거 어쩌죠?”

김서준은 살짝 난감해 졌다.

죄다 한 장소에 모여 있길래 요원들 아티팩트인줄 알았는데 일부는 주인이 따로 있는 모양.

그렇다고 이걸 들고 다시 천간십이지의 거점을 찾아가는 건 웃긴 일이었다.

“뭘 고민해? 우리 네 명이니까 하나씩 마음에 드는 거 나눠갖고, 김서준이 우리 물건 가져오느라 수고했으니 하나 더 가지면 되는 거지.”

이영호는 간단히 결정을 내리고는 남은 5개의 아티팩트 중 하나를 잽싸게 집어갔다.

“그럼 저도 사양하지 않고 하나 가져가겠습니다!”

주혜민이 눈을 반짝이며 가장 예뻐 보이는 문짝 모양의 키링으로 손을 뻗어갔다. 그때,

덥석

김서준이 먼저 키링을 잡아챘다.

“이거 마음에 드네요. 전 이거랑 이거, 두 개 갖겠습니다.”

김서준은 주혜민을 향해 방긋 웃어보였다.

이런 일에는 김서준도 얼굴에 철판을 깔 수밖에 없었다.

괜히 마음씨 착한 후배 코스프레 하다가는 호구로 낙인 찍힐 수도 있었기에 챙길 건 챙겨야 했다.

“어? 음…. 어. 그, 그래. 서준이가 우리 아티팩트들 찾아와 줬는데 두 개는 가져야지. 그럼 난 이걸로 할게요.”

주혜민은 김서준이 낚아챈 키링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그나마 쓸모 있어 보이는 단검을 집어들었다.

이제 남은 건 박연중 뿐.

“다들 아티팩트에 아주 환장을 하시는구만. 나중에 천간십이지랑 손을 잡게 되면 어쩌려고? 이렇게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서야, 원.”

박연중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손은 어느새 탁자 위에 놓인 마지막 아티팩트를 슬그머니 집어들고 있었다.

그 상황이 어색한지 박연중이 사람들을 쭉 둘러보며 씨익 웃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피식 피식 웃기 시작하더니, 결국 큰 웃음으로 번지고 말았다.

“푸하하하!”

“하하하!”

잠시 동안 작전 상황실에 웃음꽃이 피었다.

어제 예거의 시스템을 해킹한 각성자는 찾아내지 못했지만, 천간십이지의 거점을 찾아내는데는 성공했고, 그들이 신교단 같은 악랄한 범죄집단이 아니라는 걸 직접 확인했으니 나름 성과는 있었다.

이제 이 내용을 상부에 보고하여 다음 지시를 따르면 되는 것이기에 요원들의 마음은 비교적 가벼웠던 것이다.

***

오후 4시 40분.

김서준은 생각보다 늦지 않은 시간에 집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백연지 여사는 오늘이 토요일 인데다가 아버지가 일찍 퇴근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벌써부터 저녁 준비에 돌입했다.

룰루랄라 콧소리까지 흥얼거리며 신나게 주방에서 칼질을 하는 어머니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김서준.

“엄마. 나 먼저 들어가서 좀 쉴게.”

“응, 그러렴. 이왕이면 땀냄새 쩌는 옷도 좀 갈아입고.”

“냄새 안나거든?”

“어머, 우리 아들. 이젠 코까지 고장났나 보네? 이를 어째? 냄새 완전 쩌니까 잔말말고 갈아입어. 알았지?”

백연지가 고개를 반쯤 돌리고 눈을 매섭게 뜨자 왠지모를 살기가 감도는 느낌이었다.

“어우, 그런 도끼 눈은 그만 좀 뜨시죠, 백여사님. 눈 찢어지겠네.”

“이 녀석이, 지금 엄마한테 하는 말 좀 봐라?”

“이 아들은 바빠서 이만.”

김서준은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는 후다닥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런 김서준의 등 뒤로 백연지가 푸흡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해맑으시네, 우리 백여사님.’

김서준은 방에 들어와 침대에 드러누우며 혼자 피식 웃었다.

그는 지금처럼 행복한 삶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무림계 세상에서는 하루 하루를 복수라는 단어에 매몰되어 숨막히는 삶을 살아가야 했었다.

행복이란 단어는 김서준에게 떠올릴 수 없는 신기루와 같았고, 오직 강해지기만을 위해 모든 걸 내던져야 했었다.

그나마 가족 같은 일곱 동료들이 있었기에 버텨낼 수 있었지, 그들마저 없었다면 김서준은 무감정한 살인기계가 되어 맹목적으로 적을 죽이며 살았을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자니 지금은 행복이 차고 넘쳐서 줄줄 흐를 지경.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욱 강해져야 해.’

김서준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침대 위에 앉아서 아공간에 넣어 두었던 두 가지 아티팩트를 꺼내놨다.

하나는 문 모양의 펜던트가 달린 키링이었고, 다른 하나는 작고 얇은 바늘이 꽂혀 있는 탁구공만한 실타래였다.

키링이야 이미 정보를 살펴봐서 어떤 아티팩트인지 알고 있었지만, 바늘과 실타래는 무슨 물건인지도 모른다.

주혜민이 챙기려 했던 키링을 먼저 낚아챈 것이 살짝 미안해서 나머지 한 개는 그냥 아무거나 챙겼기 때문.

김서준은 실타래를 집어 들고 가만히 정신을 집중시켰다.

[봉합의 바늘]

-망가진 아티팩트를 봉합하여 내구도를 높인다.

무척이나 간단한 설명이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아티팩트 수리 도구구나. 이것도 뭐, 나쁘진 않네.’

영원한 내구도를 지닌 아티팩트는 없다.

사용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티팩트의 내구도는 떨어지기 마련이었고, 내구도가 떨어지면 위력 역시 약해지기 마련.

그럴 때 이 봉합의 바늘을 사용하면 떨어진 내구도를 높일 수가 있는 것이다.

‘좋아. 이왕 내 소유가 되었으니 유니온 코어를 거치지 않을 수가 없지!’

김서준은 유니온 코어도 꺼내놨다.

‘먼저 이 바늘부터.’

왼손에 바늘이 꽂힌 실타래를 들고, 오른 손에는 코어를 들었다. 그리고 짧게 숨을 들이마신 김서준은 코어로 실타래를 힘껏 때렸다. 순간,

스윽

코어가 자연스럽게 박혀들었다.

정보를 살펴보니 각성율이 올라가는 속도가 꽤 빠르다.

약 2분 정도 흘렀을 때, 실타래에 반쯤 박혀든 코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툭. 투르르르….

밖으로 튀어나와 침대 위를 굴러갔다.

‘빠르네.’

김서준은 코어의 마력 잔량이 82%라는 걸 확인하고 바로 바늘의 정보를 확인해 봤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봉합의 바늘(A)]

-망가진 아티팩트를 봉합하여 내구도를 크게 높인다.

-서로 다른 아티팩트를 바늘로 봉합하여 능력을 합친다.

‘봉합해서 능력을 합쳐? 설마….?’

이게 김서준이 생각하는 그런 능력이라면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유니온 코어에 버금가는 강력한 아티팩트가 된 셈이었다.

‘이건 일단 킵. 키링부터 각성 시키고 다시 확인해 보자.’

김서준은 흥분을 잠시 가라앉히고 이번엔 키링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방금처럼 코어를 키링에 달린 문 모양의 펜던트 위로 힘껏 때려박았다.

이번에도 코어는 부드럽게 박혀들었다.

[헤븐스 도어]

-각성 중…. 3%

‘이것도 각성이 가능하구나!’

보면 볼수록 이 유니온 코어의 능력은 사기적이었다.

방금 전도 평범한 봉합용 아티팩트를 순식간에 A급의 유물로 각성시켰으니 이것만 있으면 앞으로 평범한 아티팩트 하나도 우습게 여기면 안될 일이었다.

물론 연속해서 사용하거나 마력 잔량이 5% 이하로 내려가면 3일 간 동면에 들게 되지만, 그건 문제될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김서준이 유니온 코어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파아아아앗

펜던트에 박혀 있던 유니온 코어가 밖으로 굴러떨어졌다.

‘어디, 이건 또 어떻게 각성이 되었을라나?’

김서준은 기대감을 잔뜩 품은 채 키링을 손에 쥐고 정신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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