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천재의 헌터 라이프-109화 (109/153)

109

네 사람은 한참동안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야기를 주도하는 사람은 주광식이었고, 거기에 신나게 호응해 주는 건 한세아였다.

1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돌로서 국민요정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고 있던 한세아다.

그런 대 스타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고 있으니 주광식은 기가 바짝 살아서 최선을 다해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채하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아, 그래요?

아, 그렇구나.

어머, 그랬다고요?

딱 이 정도의 리액션밖에 없었다.

김서준은 주광식의 이야기를 이곳에 오는 동안 차 안에서 이미 절반 이상을 들었기 때문에 그다지 집중해서 들을 이유가 없었다.

대신 주광식이 떠들어 대는 틈을 이용해 마력의 흐름을 보는 눈으로 이 독특한 저택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처음 왔을 땐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이 저택은 상당히 신기했다.

‘대체 뭔 짓을 해 놨길래, 벽이며 천장에서까지 마력이 흐를 수가 있지?’

마치 저택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아티팩트라도 되는 것처럼 벽이며 창문, 천장 등 모든 곳에서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신기해 하던 김서준은 좀 더 집중해서 관찰하기 시작했고, 곧 저택에 흐르는 마력이 어떤 형태의 것인지도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저택에 흐르는 마력엔 무려 다섯 종류의 힘이 담겨 있었다.

첫 번째는 무단 침입이 발생하면 경고음을 울리는 알람 능력이었고,

두 번째는 외부에서 저택 안으로 순간이동할 수 없게 방해하는 차단 능력이었다.

세 번째는 저택 안의 특정 인물을 지정하여 버프를 주는 능력이었으며,

네 번째는 외부에서 저택 내부를 도청할 수 없게 하는 도청 방지 능력이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저택 내에서 움직임이 있으면, 그곳이 어느 곳이든 자동으로 카메라가 작동해 촬영하는 능력이었다.

저택엔 수많은 카메라가 달려 있었지만, 움직임이 없으면 카메라도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움직임이 생기면 카메라가 벽 천장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빠르게 이동해가며 움직임을 찾아 촬영하는 것이다.

‘여긴 나라도 마음대로 침입 못하겠다.’

이건 농담이 아니었다.

이 정도 가드 시스템이면 사실상 난공불락의 요새나 다름없었다.

이토록 철저하게 저택의 안전을 추구하는 한씨 가문이, 한세아가 저주의 펜턴트를 목에 걸고 있는 걸 그대로 방치했다?

이 저택에 두 번째로 와서 보니 그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 일인지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 나도 모르는 내막이 있어.’

김서준은 오늘 한두호 회장이 자신을 보자고 한 이유가 그와 관계가 있는게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해 봤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채하가 늘 귀에 착용하고 있는 인이어에서 불빛이 깜빡거렸다.

누군가가 이채하와 연락을 취하고 있는 모양.

잠시 후, 이채하가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서준 학생? 회장님께서 부르시네요. 절 따라오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김서준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한세아가 베시시 웃더니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작게 말했다.

“파이팅!”

너무도 귀여운 모습에 김서준은 피식 웃으며 손으로 오케이 싸인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이채하를 따라 다시 복도로 나왔다.

이채하와 김서준은 서로 별다른 말없이 한참을 걷다가 계단을 오르고, 다시 반대 방향으로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어느 방문 앞에서 멈춰섰다.

“여기가 회장님 집무실이에요.”

이채하는 바로 문고리를 잡고 두드렸다.

“회장님. 김서준 학생을 데려왔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쪽에서 달칵 소리가 나더니 잠금장치가 풀리며 문이 살짝 열렸다.

“들어가 봐요. 전 아래층에서 기다리죠.”

이채하는 그 말만 남기고 몸을 돌려 걸어가 버렸다.

혼자 남은 김서준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집무실은 상당히 넓었다.

따스한 햇빛이 스며드는 커다란 창문 앞에는 큼직한 책상이 놓여져 있고, 사람 키만한 등받이가 있는 가죽 의자엔 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년인이 앉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50대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사내.

그가 바로 ‘성령의 한가’의 당대 가주이자, 한 그룹을 이끌고 있는 한 68세의 한두호 회장이었다.

매스컴을 통해 몇 차례 본 적이 있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훨씬 더 젊게 느껴진다.

게다가 가만히 앉아만 있음에도 남다른 포스가 느껴졌으며, 책상 위의 서류를 검토하는 시선에는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져 있었다.

그런 한두호의 곁에는 훤칠한 키에 깔끔한 남청색 정장을 걸친 30대 중반의 안경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김서준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앞쪽의 쇼파를 향해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이쪽에 앉으면 됩니다, 김서준 학생.”

“알겠습니다.”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푹신한 가죽 의자에 몸을 실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겠나? 급히 처리할 일이 생겨서 말이지.”

한두호가 시선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네. 편하게 일 보셔도 됩니다.”

“고맙군.”

한두호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결재서류에 못박혀 있었다.

김서준은 잠시 여유가 생기자 시계를 만지작 거리는 척하며 기프트의 마력측정 기능을 사용했다.

기프트에서 뿜어진 투명한 파장이 집무실 전체를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슬쩍 시선을 내려 기프트의 액정 화면을 확인한 김서준.

화면 속의 숫자를 확인한 순간, 김서준은 야구방망이로 뒤통수를 한대 맞은 것처럼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914]

[725]

이쪽 세계에서 정신을 차린 이후로 처음 마주한 엄청난 마력 수치였다.

예거 넘버링 요원들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가 김서준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괜히 세계십대가문이 아니었구나….’

김서준은 혼란스런 머릿속을 빠르게 재정비했다.

부동심을 일으켜 흔들리는 정신을 붙잡고 터질듯이 쿵쾅대는 심장 박동을 제어했다.

모든 건 단 몇초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행히 한두호도, 양복 사내도 김서준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한 듯 별 반응이 없었다.

김서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 일부러 집무실을 살피는 척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때, 김서준의 감각으로 묘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뭐지? 이 방안에 사람이 더 있는 것 같은데?’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나.

김서준은 자신이 느낀 미지의 존재를 찾아내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분명 있다!’

한두호의 집무실 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둘이나 있었다.

어떤 수법을 쓴 건지는 몰라도 극도로 단련된 감각을 지닌 김서준으로서도 그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마력의 흐름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했다.

보이지 않는 두 존재 중 하나는 한두호 회장의 편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과 적대적인 느낌이라는 것.

김서준은 조금 위험하더라도 심안을 사용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기다리기 지루한 듯 양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얼굴을 쓸어내린 김서준.

손바닥이 눈 위를 스쳐지나가는 그 짧은 순간, 빠르게 심안을 발동시켰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의 파장이 사방을 휩쓸고 지나갔을 때, 김서준은 두 곳에서 추가로 떠오른 마력수치를 보고 흠칫 놀라고 말았다.

첫 번째 존재의 마력 수치는 무려 857.

한두호 회장의 마력과 비교해도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 수치였다.

이 수치는 하얀 기운을 흘려내는 사람 형상의 위쪽에 두둥실 떠있었는데, 집무실 한쪽에 위치한 책장 앞에 서 있었다.

두 번째 존재는 출입문 옆쪽 벽에 우두커니 서 있는 듯 했는데, 그의 마력 수치도 512나 된다.

즉, 이 집무실 안에는 지금 마력 수치가 500을 넘기는 S급 각성자가 다섯 명이나 모여있는 것이다.

실로 어이가 없는 상황.

하지만 김서준은 이번에도 부동심을 발휘해 조금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한두호 회장은 왜 이곳에 자신을 불렀으며, 정체불명의 존재가 둘이나 이 장소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이유는 또 무얼까?

게다가 어떻게 한두호 회장을 비롯한 이 곳의 모두가 이처럼 엄청난 마력을 소유하고 있을 수 있는 걸까?

그 뿐만이 아니다.

모습을 감춘 자들 중 하나가 지닌 마력의 원류는 무려 흑마력이었다.

그는 바로 마력 수치 512를 지닌 인물이었다.

성령의 한가, 그것도 한두호 회장의 집무실 안에 있는 인물이 어떻게 흑마력을 지니고 있는 걸까?

모든게 의문 투성이었다.

그때, 서류 검토를 끝내고 싸인까지 마친 한두호가 펜을 탁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두 팔을 벌려 기지개를 쭉 켜며 김서준을 향해 처음으로 시선을 돌렸다.

“흐음. 여러모로 흥미가 생기는 아이로구나.”

한두호는 여유로운 자세로 팔짱을 끼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고작 131밖에 안되는 마력을 가지고 내 손녀 딸의 각성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니.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최 실장?”

한두호가 웃음기 짙은 얼굴로 옆에 선 안경 사내를 바라보자 최 실장이라고 불린 사내가 괜히 헛기침을 했다.

김서준이 한두호 모르게 기프트와 심안을 사용했듯이, 안경 사내 또한 모르는 사이에 김서준의 마력을 스캔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기프트의 마력커버 능력에 가려진 수치가 읽혔다.

기프트의 효과가 꽤 좋다는 걸 알게된 김서준은 편한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말씀처럼 별볼일 없는 마력을 지닌 제가 어찌 세아 양의 각성에 도움을 주었겠습니까? 세아 양의 자질이 원래 뛰어나기 때문에, 제가 없었어도 충분히 각성이 가능했을 겁니다.”

김서준의 말에는 날이 서 있었다.

한두호가 마력 수치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 기분이 상했음을 일부러 티내는 것이다.

“허헛. 몇 마디에 바로 발끈하는 걸 보니 대성하기는 글러먹은 녀석이로군.”

“절 까내릴 생각으로 이곳에 부르신 겁니까?”

“그건 아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네 녀석 덕분에 세아가 각성을 한 건 사실이니까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려는 것이지.”

한두호의 표정엔 여유가 흘러넘쳤다.

이미 김서준이 발끈할 거라는 걸 알고 일부러 그런 말을 꺼낸듯 했다.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세아가 각성한 덕분에 우리 가문의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 중심에 네가 있었으니 그만한 대우를 해주고 싶은 것 뿐이야.”

“절 대우해 주기 이전에, 세아 양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부터 파악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김서준은 한세아의 외삼촌이라는 작자가 저주의 펜던트를 유품인 것 처럼 속여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냐고 한두호에게 묻고 있었다.

“세아의 목에 걸려 있던 물건이 저주의 펜던트라고 했던가?”

“그걸 세아 양에게 준 사람이 누구인지도 아십니까?”

“알지. 알다마다. 그래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 중이란다. 그보다, 한 가지를 묻고 싶군. 넌, 세아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저주의 펜던트라는 걸 어찌 알았지?”

한두호의 반문에 김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했다.

한두호와의 대화가 계속 겉도는 느낌이었다.

마치 연극을 하는 것 같다고 할까?

핵심은 저만치 치워놓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오히려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서 진한 위화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설마…. 저 흑마력을 지닌 존재 때문인가?’

김서준이 보기에 한두호와 그 옆의 안경 사내, 그리고 책장 쪽에 모습을 숨기고 있는 자는 모두 한 편이었다.

모두 백마력을 지니고 있는데다가 자신을 향한 마력의 흐름도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문쪽에 있는 자는 달랐다.

그는 짙은 흑마력의 소유자였고, 이들 모두에게 적대적인 마력의 흐름을 보였다.

특히, 자신을 향해서는 더욱 큰 적대감이 전해지고 있었다.

김서준은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켰다.

그리고 한가지 가정을 세워봤다.

만약 성령의 한가를 알 수 없는 세력이 잠식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가정이 사실일 경우, 이 방에 있는 흑마력의 소유자는 한두호와 그의 측근들을 감시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한두호와 그의 측근들 마력이 훨씬 높음에도 그들에 비해 낮은 마력의 소유자 하나를 어찌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뭔가 약점이 잡혔다는 말이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약점이라는 것이 아래층에 있는 한세아일 가능성이 높다는게 김서준의 생각이었다.

‘세아의 외삼촌이 그 세력과 결탁하고 있었다고 치면 모든게 아귀가 딱 들어맞잖아?’

여기까지 생각하자 혼란스러웠던 머리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한두호가 한세아의 목에 저주의 펜던트가 걸려 있는 걸 알면서도 지금까지 모른척 하고 있었던 이유도 이제는 납득이 된다.

또한 한 그룹의 후계자인 한세아가 큰 걸림돌 없이 무난히 연예계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한두호가 그냥 내버려 뒀기에 가능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날 이곳에 불러들였다는 건, 내게서 뭔가 바라는게 있다는 뜻인데….’

김서준이 그런 생각으로 잠시 대답을 못하고 있을 때였다.

“대답하기 싫으면 대답할 필요 없다. 그건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지.”

한두호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그런데 표정과 다르게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는 태도에서 뭔가 초조한 느낌이 전해지고 있었다.

김서준은 지금 한두호가 바라는게 무언지 본능적으로 눈치 챌 수 있었다.

재빠르게 머리를 굴린 김서준은 자신이 지금 해야할 일이 무언지를 정확하게 찾아냈다.

“사실, 펜던트의 정체를 알아보는 건 저한테 전혀 어려울게 없습니다. 여기, 이것만 있으면 아티팩트에 담긴 힘이 악의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쉽게 알 수 있으니까요.”

김서준이 오른손을 품에 넣었다 빼면서 밴드 하나를 꺼냈다.

실제로는 아공간에서 꺼낸 것이지만 보는 눈이 많기 때문에 품에서 꺼낸 것처럼 연기를 한 것.

그 밴드를 본 한두호가 신기한듯 말을 이었다.

“그 작은 밴드에 그런 놀라운 능력이 있다 이거냐? 저주의 펜던트에 담긴 악의를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한두호는 김서준이 꺼내든 ‘음성 카피 밴드’에 큰 관심을 보였다.

당연히 이 밴드는 그런 놀라운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누군가의 음성을 카피해 똑같이 흉내낸다거나, 벽에 부착하여 건너편 공간에서 주고 받는 대화를 도청할 수 있는 능력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김서준은 황당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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