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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눈빛을 보이던 김서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몇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궁금하시다면 한번 직접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김서준은 음성 카피 밴드를 아무렇지 않게 한두호에게 건넸다.
그걸 받은 한두호는 바로 마력을 끌어올려 아티팩트의 정보를 살폈다. 순간, 그의 동공이 크게 확장했다.
“이건…. 허, 허허. 거참 대단한 물건이로구나. 네 말대로 이것만 있으면 어떤 아티팩트라도 정체를 숨길수가 없겠어.”
한두호가 미치기라도 한 걸까?
분명 음성 카피 밴드의 진짜 효능이 무언지 확인했을 텐데도 김서준의 거짓말에 버젓이 맞장구를 치고 있다.
“그렇죠? 이건 억만금을 준다해도 팔지 않을 겁니다.”
“정말이냐? 참으로 안타깝구나. 네가 팔 생각만 있으면 거금을 들여서라도 사들이려고 했는데. 쯧.”
“안판다니까요? 그러니 이제 그만 돌려 주시죠?”
김서준이 웃으며 손을 내밀자 한두호는 다시 밴드를 건네주었다.
“그럼 이제 원하는 보상이나 말해보거라.”
“아까 말씀드렸듯이, 보상은 원치 않습니다.”
“네가 원치 않아도 난 반드시 줄 거다. 우리 한씨 가문이 속좁은 밴댕이 가문이라는 소릴 듣고 싶지 않거든. 네 입으로 말하기 싫으면 내가 준비한 걸 보상으로 주도록 하지. 최 실장?”
한두호가 곁에 선 안경 사내, 최성진 비서실장에게 눈짓을 해 보이자 그가 품에서 작은 보석함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 보석함을 김서준에게 내밀었다.
얼결에 보석함을 받아든 김서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걸 다시 최성진 쪽으로 내밀었다.
“이게 무언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받을 이유는 없을 것 같….”
그때, 한두호가 말을 자르며 빠르게 말했다.
“별 거 아니다. 고작 인디고급 마석 두 개를 넣어 둔 것 뿐이니 가지고 가서 요긴하게 사용하길 바라마. 그리고…. 앞으로도 세아 녀석과 잘 지내길 부탁한다.”
한두호의 마지막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나이든 할아버지가 손녀 딸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 한가득 느껴지는 부탁의 말에 김서준은 보석함을 다시 챙길 수밖에 없었다.
한두호는 김서준을 향해 눈으로, 감정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언제든 한세아가 또 비슷한 위험에 처할 수가 있으니 적의 위협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네가 자기 대신 한세아를 지켜주길 바란다’라고 말이다.
김서준은 한두호의 속마음을 읽었다.
그래서 도움이 될만한 말을 해주기로 했다.
“세아가 집에서만 있으면 여러모로 답답해 할 겁니다. 친구들도 사귀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배울 겸 아카데미에 다니게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한씨 가문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모를 때야 한세아의 유명세 때문에라도 집 밖에 나오지 않는 걸 추천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한세아에겐 집 밖이 오히려 안전할 지도 모른다.
“아카데미라…. 나쁘지 않은 생각이구나. 하지만 세아 녀석이 낯선 아카데미에서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로군.”
한두호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최성진이 허리를 살짝 구부리며 조용히 조언했다.
“이채하 양에게 부탁하면 세아를 김서준 학생과 같은 아카데미, 같은 클래스로 넣어줄 수 있을 겁니다.”
“오, 그래? 김서준 학생이 함께 있어준다면야 나도 안심할수 있지. 바로 추진해 보게, 최 실장.”
“네, 알겠습니다. 며칠 후면 개강이니 그때에 맞춰 특례로 입학한다면 문제 없을 겁니다.”
“좋군. 아주 좋아.”
한두호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이었다.
김서준은 이제 자신이 할 일을 대충 한 것 같아 한두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제 할일은 끝난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오늘 너를 만나길 참 잘한 것 같구나. 앞으로도 언제든 원하면 이곳에 와도 된다. 내가 있건 없건, 세아와 잘 지내주면 난 그걸로 만족이니까 말이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난 신경쓰지 말고 편하게 놀다 가거라. 이왕이면 저녁까지 먹고.”
“하하. 뭐, 그건 상황 봐서요.”
기분좋게 인사를 나눈 김서준은 최성진 비서실장에게도 인사를 하고는 책장 쪽을 슬쩍 돌아보며 찰나적으로 윙크를 날렸다.
이는 일종의 의사 표시였다.
그곳에 누군가가 모습을 숨기고 있다는 걸 자신이 알고 있음을 알려줌으로써 문쪽에도 또다른 누군가가 숨어있다는 사실도 당연히 알고 있다는 걸 말해주려는 것이다.
한두호와 최성진은 그런 김서준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챘다.
“문쪽에 설치된 감전 장치는 꺼 두었으니 아무 걱정말고 문고리를 잡아도 된다.”
“아, 여기는 문에도 무슨 장치가 되어 있나 보네요? 아무튼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서준은 그 말을 끝으로 집무실 문을 열고 나갔다.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방문이 탁 소리를 내며 닫히자, 김서준은 복도를 걸어가며 거리를 재기 시작했다.
‘5미터, 10미터, 20미터, 43미터… 여기서 계단이 나온다라….’
조금 전, 이채하와 올라왔던 계단을 통해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간 김서준.
거기서부터 다시 거리를 측정하며 접견실까지 걸음을 재촉했다.
접견실 문앞에 도착했을 때의 거리는 58미터였다.
‘계단 쪽으로 15미터를 더 가야 집무실 바로 아래가 되겠군.’
접견실은 무척이나 넓다.
즉, 접견실의 한쪽 끝 부분이 위층의 한 회장 집무실과 겹친다는 뜻.
김서준은 뭔가를 생각하다가 문을 열고 접견실 안으로 들어섰다.
“어? 생각보다 빨리 왔네?”
안에 있던 주광식이 김서준을 보고는 살짝 의아해 했다.
그래도 한두호 회장의 부름을 받고 갔으니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눌 거라 생각했던 것.
“앞으로도 세아랑 잘 지내라면서 사례를 듬뿍 해주시던데?”
“에? 우리 할아버지가요? 설마…. 처음 본 사람한테는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한세아는 고개를 저으며 김서준의 말을 농담으로 치부했다.
“진짜라니까? 좀 전에 내가 집무실에 들어갔을 때 말이야. 어디지? 아, 이쯤 되겠구나.”
김서준은 일부러 접견실 반대쪽으로 성큼 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거리를 대충 가늠해가며 바닥을 발로 툭툭 치다가 위를 바라봤다.
“아마 여기 바로 위가 집무실일거야. 그렇지? 그런데…. 와. 여긴 뭐 이렇게 층고가 높아? 한 5미터는 되겠는데?”
김서준이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손으로 높이를 재는 척했다.
그러는 사이 손으로 밴드를 튕겨내 천장에 붙여버렸다는 건, 접견실 내의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야, 김서준. 너 지금 뭐하냐? 혼자 무슨 경극해?”
김서준의 기이한 행동을 보던 주광식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거 참, 말귀 못알아 듣네. 내가 집무실에 이렇게 들어갔더니, 한두호 회장님이 이쯤에서 이렇게 앉아가지고 호랑이 같은 눈으로 막….”
김서준은 지금 양의분심공을 운용하는 중이었다.
첫 번째 정심으로는 집무실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설명해주는 한편, 두 번째 정신으로 방금 천장에 부착한 밴드에서 흘러나오는 윗층의 대화를 엿듣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 자신의 예상이 거의 들어맞았다는 걸 아 수 있었다.
***
김서준이 나가고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스르륵.
문 옆의 빈 공간에서 기이한 슈트 차림의 누군가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에 쫙 달라붙는 타이트한 슈트였지만 어깨며 허리, 가슴 부위, 그리고 헬멧에까지 멋진 장식이 되어 있어서 굉장히 사이버틱한 형태였다.
지이잉
헬멧이 목 뒤로 사라지며 한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대략적인 나이는 30대 초반.
꽤나 덩치도 좋고, 얼굴도 사내답게 생겨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그런데, 사내는 한국인이 아닌 서양인이었다.
“회장 님 말이 사실이었군요.”
짧은 금발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사내는 한국어를 매우 훌륭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이제는 내 말에 믿음을 가질 때가 된 것도 같은데….”
“후후. 아시다시피 제 윗분들이 워낙 조심성이 많으셔서 말입니다.”
“아무튼. 직접 확인을 시켜줬으니 이만 물러가게, 롭.”
한두호가 롭이라고 부른 사내의 이름은 롭 볼드윈.
모종의 이유로 한두호와 그의 가족, 그리고 주변 인물들을 철저히 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사내였다.
롭은 팔짱을 낀 채로 집무실 여기저기를 오가며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아 양의 목에서 목걸이를 빼낸 게 한 회장 쪽 인물이 아니라는 건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의문이 떠오르는 군요.”
“자네가 의문을 가질만한게 뭐가 있지?”
“김서준이라는 학생 말입니다. 지난번 아카데미 토너먼트 때, 꽤나 훌륭한 성적을 보여줬더군요.”
“나름 재능이 있는 아이인 것 같더군.”
“아버지는 현무 길드의 행정 사무직에 있다가 최근에 다시 현장직으로 복귀했다고 하고, 김서준도 한달 동안 정부에서 진행한 헌터 캠프에 참가했다가 이제 막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놀랍게도 롭은 김서준에 대한 걸 꽤나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것만 봐도 롭이 속한 조직의 정보력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자네가 관심을 갖는 건가?”
“몇 개월 전의 김서준과 너무도 크게 달라졌으니까요. F급 마력을 지니고 있던 학생이 한순간 B급으로 껑충 뛰어오르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롭. 정말 재밌는 말을 하는군. 내 손녀 딸아이도 신비를 각성한지 한달만에 마력 수치가 300을 넘겼네. 그게 마석의 힘이라는 건 자네도 잘 알지 않나? 김서준도 그와 같은 케이스겠지.”
“당연히 알지요. 제가 궁금한게 바로 그겁니다. F급이 B급이 되려면 최소한 인디고급 마석을 두 개에서, 세 개는 섭취해야 하지요. 그런데 C급 헌터를 가장으로 두고 있는 평범한 가정에서 개당 30억이나 하는 인디고급 마석을 몇 개씩 구하는게 가능하냐 이겁니다.”
롭은 눈을 가늘게 뜨며 한두호를 빤히 응시했다.
그 눈빛엔 마치 당신이 김서준에게 마석을 지원해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담겨 있었다.
“자네도 봤다시피, 내가 김서준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도 않네. 그러니 쓸데없는 상상은 그만하고 가문에 대한 감시조치부터 당장 풀어주게.”
“뭐, 그렇게 발뺌을 하신다면야 어쩔 수 없지요. 한씨 가문의 감시조치는 풀어드리겠습니다만, 한세아 양에 대한 감시는 당분간 계속될 겁니다.”
“롭! 세아는 절대 건드리지 않기로 나와 분명히 약속하지 않았나? 지금 약속을 깨겠다는 건가?”
한두호가 크게 흥분하며 언성을 높였지만 롭은 계속 빙글거리는 웃음을 그리며 집무실을 왔다갔다 했다.
“한세아 양이 각성한 순간부터, 이 정도 압박은 있을 거라고 이미 예상하셨을텐데요? 게다가 우리 감시망을 벗어나게 하려고 아카데미에 보낼 생각까지 하다니…. 너무 눈에 뻔히 보이지 않습니까?”
“세아는 가문의 일에 절대 개입하지 않을 것이네. 그건 내가 몇 번이고 확인시켜 주지 않았는가? 그러니 세아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감시망은 거둬주게.”
“불가합니다. 김서준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정보가 모여지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죠. 그 전까지는 2단계 수준으로 감시망이 붙여질 것이니 그리 알고 계십시오.”
“이보게, 롭!”
한두호가 롭을 불렀지만, 그는 슈트를 가동해 헬멧을 뒤집어 썼다. 그리고 다시 클로킹 기능을 작동시켜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롭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놈은 저택을 떠났습니다.”
책장 쪽에서 모습을 감춘 채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테스트 결과는?”
“다행히도 롭은 제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래. 아주 다행이야. 우리가 개발한 슈트가 놈들의 것보다 우수하다는 게 이로써 증명이 됐구나.”
한두호는 어느새 자신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있는 사내, 강혁을 바라봤다.
그는 롭과는 달리 상당히 매끈한 슈트를 입고 있었고, 몸 어디에도 장식이 달려있지 않았다.
대신 등 뒤로 살짝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다각형 모양의 가방을 밀착하듯 매고 있었다.
“그런데, 회장님. 이대로 계속 놈들의 횡포를 그냥 지켜만 볼 생각이십니까?”
강혁은 굉장히 분한 표정으로 한두호를 올려다 봤다.
20대 중후반의 젊은 나이인 강혁.
그는 한두호 회장이 가장 아끼는 각성자였고, 언제든 한씨 가문을 위해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는 충직한 수하이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롭 볼트윈은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다.
아직까지 강혁은 롭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이전엔 한두호의 명령으로 정체를 감추고 있었고, 오늘 처음으로 롭과 가까운 곳에 몸을 숨긴 채 모든 걸 지켜봤던 것이다.
강혁은 롭이 한두호 회장을 우습게 여기고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 태도를 보면서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른다.
충분히 놈을, 그리고 놈들을 처단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도 이처럼 참고 견뎌야만 하는 상황이 너무도 답답했다.
“강혁. 말 조심 해라. 회장님께선 세아의 안전을 위해서 모든 모욕을 참고 계시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냐?”
강혁을 나무란 건 비서실장 최성진이었다.
최성진 역시 현 상황이 답답한 건 마찬가지이지만, 놈들이 한세아의 목숨으로 한두호 회장을 위협하고 있었기에 꾹 참고 있는 중이었다.
“세아는 제가 얼마든지 지킬 수 있습니다. 놈들이 어떤 개 같은 짓을 벌이더라도 세아의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할 자신이 있단 말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지금 당장 놈들의 본거지로 쳐들어가서 전부 죽여버리지 않고 뭘하는 거냐!”
“그건….”
최성진의 질타에 강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수십년간 가시밭 길을 걸어온 한두호 회장이 이 정도 위협에 쩔쩔맬 인물이 아니라는 걸 강혁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나다보니 흥분하고 만 것이었다.
“넌 회장님이 그깟 길드 하나 때문에 이처럼 숨을 죽이고 있는 거라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놈들의 뒤에 있는 더 큰 배후를 밝혀내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계시다는 걸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알면 놈들이 회장님의 비밀 연구실에 대해 알아내지 못하도록 더욱 보안에 신경써야 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성급했습니다.”
강혁은 고개를 더욱 숙이며 한두호와 최성진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그때 잠자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두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 실장, 그리고 강혁아. 난 말이다. 놈들의 배후를 밝혀내기 위해 12년 간이나 손녀 딸아이가 저주의 목걸이를 차고 있는 걸 방치해 왔다. 놈들이 언젠가는 세아를 미끼로 삼기 위해 다시 접근해 올거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기회를 본 것이지.”
한두호의 음성엔 착잡함이 가득했다.
12년 전,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아들과 며느리를 떠올리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리고 드디어 놈들이 내게 접촉을 해 왔다.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지.”
한두호의 시선은 창문 밖의 맑디 맑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몸을 홱 돌렸고, 축 늘어져 있던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난 안다. 놈들의 배후에 있는 자들이 12년 전, 내게서 아들 내외를 앗아간 바로 그놈들이라는 걸.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놈들을 쉽게 죽여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한두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