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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천재의 헌터 라이프 [5권] 111~116화
김서준은 한세아의 저택에 머무르는 내내 양의분심공을 사용해야 했다.
주광식은 무던할 지라도 한세아나 이채하는 눈치가 굉장히 빨라서 김서준이 조금만 딴청을 피워도 바로 알아챈다.
그래서 그들과의 대화에 충실한 한편, 한두호 회장의 집무실에서 오갔던 이야기들을 정리하기 위해 양의분심공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한두호 회장은 김서준의 예상대로 저주의 펜던트에 대해 진작에 알고 있었고, 그 배후를 캐기 위해 일부러 내버려 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한두호의 계획을 김서준이 망쳐버린 셈이었다.
예정에도 없이 한세아가 갑자기 신비를 각성해 버린 탓에 한씨 가문에 침투한 적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
그래서 한두호는 그 적들에게 한세아의 각성은 김서준이라는 돌발 변수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오늘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길래 세계십대가문의 5위에 오른 성령의 한가를 마음대로 주물럭 거릴 수 있지?’
지금이야 한두호 회장이 놈들의 꼬리를 잡기 위해 일부러 빈틈을 보여준 것이라고 하나, 12년 전 아들 부부가 목숨을 잃은 사건은 예상치 못한 사고였던 것이 분명했다.
한두호는 김서준이 밴드를 이용해 도청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집무실에서 일부러 중요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최성진 비서실장과 강혁이라는 인물은 김서준의 도청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눈치.
아이러니하게도 이 저택에 설치된 방어 시스템은 외부에서 내부를 도청하는 것만 막아줄 뿐, 내부에서 내부를 도청하는 것에는 너무 취약했다.
한씨 가문의 내부인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는 강한 자부심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는 부분이었다.
아무튼, 김서준은 그들의 대화에서 몇 가지 힌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한두호 회장을 위협하는 조직은 아직 한씨 가문을 완벽하게 장악한건 아니었다.
한두호 회장이 비밀리에 슈트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들은 모르고 있는게 분명했다. 또한 강혁이라는 강력한 각성자가 한두호 회장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는 걸로 보였다.
이것만 봐도 적들은 한두호 회장이 얼마나 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한두호 회장의 적에 대한 힌트도 있었다.
최성진은 강혁을 나무라는 과정에서 ‘그깟 길드 하나 때문에’라는 언급을 했고, 그건 한두호의 적이 길드의 형태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문제는 세상에 존재하는 길드가 워낙 많기 때문에, 과연 어느 길드인지가 관건이었다.
국내의 유명 길드일 수도 있고, 국외의 이름 없는 길드일 수도 있다.
흑마력을 지닌 각성자가 롭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 걸로 봐서는 외국계 길드일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았다.
‘그나저나 나까지 이 일에 휘말리게 생겼는데?’
롭이라는 인물은 김서준에 대해 이미 많은 걸 알고 있음에도 더욱 자세한 정보를 캐낼 것임을 예고했다.
예거의 보안이 대단히 우수하다고는 하지만, 놈들은 한씨 가문의 가주인 한두호를 협박할 정도로 대담하고 한두호의 아들 부부를 사고로 위장해 죽일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니고 있기에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예거의 생도로서 훈련을 마쳤다는 정도는 놈들도 알아낼 수 있겠지?’
최악의 경우엔 김서준이 익스퍼트 요원으로 선발되었다는 사실도 밝혀질 수 있었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놈들의 목표가 김서준으로 바뀔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했다.
‘내 정보에 대해 추가적인 보안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해야겠구나.’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놈들이 하는 짓으로 봐선, 자신을 목표로 삼게 되는 순간 가족까지 위험에 처해질 수도 있었다.
‘아오. 한 회장님은 왜 이런 일에 나까지 끌어들여가지고….’
김서준은 불만이 컸지만, 한세아를 생각하면 또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이제 어쩔 수 없었다.
발을 들인 이상 한두호 회장과 손을 잡고 이 극악무도한 놈들의 뿌리를 뽑아버리는 수밖에는.
“자, 이제 서준이 네 차례다. 세아의 체술 수준이 꽤 높으니까 아무리 너라도 조심해야 할 거야.”
주광식의 말에 두 개로 분리되어 있던 김서준의 정신이 하나로 합쳐졌다.
지금 김서준이 있는 곳은 지난 번, 한세아의 각성이 이루어졌던 수련실이었다.
김서준이 한두호 회장과의 만남을 끝낸 직후, 다 같이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와 번갈아 가며 대련을 하는 중이었다.
가장 먼저 한세아와 이채하가 가볍게 한판 붙었고, 그 다음으로 주광식이 한세아의 상대가 되어 주었다.
그런데 한세아는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음에도 두 사람 모두 쩔쩔 매는 모습을 보였다.
신비를 각성하기 전까지 꽤 오랜 세월을 신체 훈련에 매진해서인지 한세아의 실전 감각은 놀랍도록 잘 다듬어져 있었다.
이채하는 이미 수없이 한세아와 대련을 해 왔음에도 여전히 실전기술에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채하도 마력 400이 넘는 A급 각성자다.
하지만 그녀도 여느 각성자들처럼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보다, 마력을 늘리고 신비를 사용하는데 능숙해 지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해왔다.
그래서 신비를 각성하지 못한 채로 수년 간 체술을 익히며 신체를 단련해온 한세아를 쉽게 상대하지 못했다.
그건 주광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광식은 인파이터 스타일의 싸움꾼이었다.
맷집으로 버티며 상대의 빈틈을 파고들어 일격에 날려버리는 전투 스타일이었기에 정교한 한세아의 움직임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주광식은 힘캐에 가까웠기에 빠른 속도보다 강한 한방에 치중되어 있었고 한세아의 통통 튀는 빠른 몸놀림에 완전 농락당하고 말았다.
“내가 너처럼 곰같은줄 아냐?”
“어이구, 그러세요? 그럼 어디 잘 해봐. 세아가 각성하기 전하고 완전 달라졌다는 걸 너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거다.”
주광식은 김서준이 한세아의 주먹에 맞아 바닥에 널브러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김서준은 한세아와 마주섰다.
벌써 20분 넘게 몸을 움직였는데도 한세아는 몸에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실력이 느는 속도가 엄청 빠르네.”
“그동안 각성 좀 하려고 그렇게 노력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보상을 받네요.”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니야?”
“자신이 있으니까 그러죠. 헤헷.”
한세아는 혀까지 내밀어 보이며 히죽 웃었다.
천진난만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저 깜찍한 얼굴 뒤에 얼마나 치밀한 여우의 모습이 숨겨져 있는지 김서준은 너무도 잘 안다.
이전 세상에서도 한세아의 이 여우짓에 당한 남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목숨을 취하려고 달려드는 적들까지도 한세아의 연기에 속아넘어갔을까.
“그렇게 자신있으면, 마력까지 써서 붙어보는게 어때?”
김서준은 일부러 한세아를 자극했다.
그녀라면 당연히 이 제안을 수락할테고 손쉽게 김서준을 몰아붙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김서준은 그런 한세아를 완전히 뭉게줄 생각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한세아의 이 하늘 높은줄 모르는 건방짐을 꺽어 놓을 기회가 없었다.
한세아는 곧 아카데미에 다니게 될테고, 로즈핀치의 유명세로 인해 따로 함께 있을만한 여유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한씨 가문의 적들이 더욱 감시망을 넓히겠다고 했으니, 앞으로는 아무렇게나 실력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마력을 쓰자고요? 정말 괜찮겠어요? 나 쫌 강한데.”
“알아. 그러니까 걱정말고 마음껏 마력을 써봐. 어차피 넌 내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
김서준의 자극에 한세아가 발끈했다.
“정말이죠? 좋아요, 그럼. 만약 5분 동안 제 공격을 버텨내면 제가 진걸로 칠게요.”
“후회할텐데?”
“전혀요. 신비도 사용하지 않을 테니까 너무 겁먹진 마세요.”
“저번보다 말이 많아졌구나, 너?”
김서준은 한세아를 철저히 무시했다.
그럴수록 한세아는 오기가 솟아올랐다.
“지금 시작해요!”
“얼마든지.”
파악
한세아가 곧바로 김서준의 정면을 향해 달려들었다.
둘 다 무기를 쥐고 있지 않은 빈손이라서 공격을 하려면 일단 가까이 접근해야 했다.
한세아는 김서준의 3미터 앞까지 달려들다가 오른발로 바닥을 찍으며 동작을 멈췄고, 동시에 몸을 흔들거렸다. 순간,
쉬우욱
김서준의 시야에서 한세아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력을 쓰기 시작하니 한세아의 움직임이 배 이상 빨라졌다. 인간의 동체시력으로는 도저히 반응도 할 수 없을 정도.
사라졌던 한세아는 눈깜짝할 사이에 김서준의 왼쪽 아래쪽에 나타났다.
쪼그려 앉은 상태에서 근육을 한껏 응축시켰다가 용수철 처럼 튕겨 오르며 왼발로 김서준의 얼굴을 돌려찼다.
도저히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그런데, 꿈쩍도 안하고 있던 김서준이 왼팔로 발차기를 가볍게 막아내 버렸다. 한세아는 곧장 발을 회수하며 공중에서 반대쪽 발을 휘돌려 찼다. 하지만,
퍼억!
오른발이 반쯤 날아가기도 전에 김서준의 왼주먹이 한세아의 이마를 때렸다.
“앗!”
한세아는 놀라운 반응으로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뭐에요, 방금 그거?”
한세아는 이마를 쓰다듬으며 김서준을 노려봤다.
“뭐긴. 옆으로 정권지르기지.”
“아니, 어떻게 그딴 걸로 날 때릴 수 있냐고요!”
“네가 느리니까.”
“….느리다고요?”
한세아는 자존심이 상하는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는데, 뭐하냐?”
“쳇!”
한세아는 2할 밖에 사용하지 않던 마력을 5할로 확 끌어올렸다.
순간, 그녀의 몸에서 반투명한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주먹과 발에 푸르스름하게 맺혀졌다.
“오, 벌써 마력응집까지 익힌거야?”
“어디 한군데 부러져도 제 탓하기 없기에요?”
“할 수 있으면 해봐.”
김서준의 도발은 한세아에게 너무도 잘 먹혔다.
이미 한차례 이마를 얻어맞은 것 때문에 바짝 독이 올라 있었다.
콰앙
묵직한 울림과 함께 한세아가 날아들었다.
좀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소리가 닿기도 전에 한세아의 발은 이미 김서준의 얼굴을 후려차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격은 실패였다.
머리를 살짝 숙여서 뒤통수 위로 공격을 흘려버린 김서준은 한발을 크게 내디디며 어깨를 튕겼고, 한세아의 발은 어깨에 맞아 위쪽으로 확 들리고 말았다.
단번에 한세아의 자세를 흐트러버린 김서준은 팔꿈치를 휘두르다가 어느 한 곳에서 딱 멈춰세웠다.
김서준의 팔꿈치는 한세아의 콧잔등 바로 위에 멈춰서 있었다.
“치워요!”
화가 난 한세아가 팔꿈치를 밀어내며 뒤로 튕겨나왔다가 반동을 이용해 다시 달려들었다.
그리고 폭풍 같은 공격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후훙. 후후훙.
한세아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위력적이었고, 무섭도록 빨랐다.
한달 전만해도 어설픈 자세에 조금도 위협적이지 못한 공격밖에 하지 못했던 한세아가 지금은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역시 세아는 몸 쓰는 일에는 천부적인 자질이 있다니까?’
김서준은 속으로 깊이 감탄하는 중이었다.
이전 세계에서도 한세아의 체술은 발군이었다.
체구가 작고, 가녀리다고 우습게 봤다가 그녀의 손에 거꾸로 바닥에 매다꽂히고, 팔 다리가 부러져 나간 자가 얼마나 많았던가.
여기서도 한세아의 그런 재능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파바박. 파앙!
하지만 아무리 한세아라도 김서준에겐 어쩔 수가 없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내고 있으니 한세아는 더욱 더 약이 올랐다.
슬쩍 슬쩍 피하는 것 같은데도 도무지 김서준의 몸에 공격이 닿지를 않는다.
더욱 얄미운 건, 피하면서 손가락 두 개로 손등을 툭 치거나 엄지와 검지로 발목을 잡아 슥 잡아 당기는 행동으로 한세아의 자세를 완전히 흩어놓는다는 것이다.
결국 참다못한 한세아는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 아티팩트의 스킬까지 사용고 말았다.
휘우웅-
팔찌에서 가벼운 진동이 일더니, 한세아의 손에 빛이 뭉쳐들었다.
빛은 순식간에 구체를 만들어 냈고, 손이 쭉 뻗어나간 순간,
퍼엉!
강력한 탄환이 되어 김서준을 향해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김서준은 마력탄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전진하며 오른손을 활짝 펼쳐 마력탄을 잡아 버렸다.
콰앙! 콰르르르르륵
마력탄이 김서준의 손안에서 마구 요동쳤다. 그러던 어느 순간,
콰아앙!
강한 폭음과 함께 폭발해 버렸다.
“오, 오빠!”
오히려 놀란 건 한세아였다.
너무 약이 올라 자기도 모르게 아티팩트를 사용했는데, 그걸 김서준이 맨손으로 붙잡았으니 손이 떨어져 나간 건 아닐까 걱정된 것이다.
화르르르….
김서준이 쭉 뻗어낸 손 위로 희뿌연 연기가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한세아는 화들짝 놀라 곧바로 달려갔고, 김서준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꼭 감싸쥐었다.
“어떡해! 많이 다쳤어요? 언니, 채하 언니! 빨리 치료사 좀 불러줘요. 빨리!”
한세아가 방방뛰며 이채하를 찾는 그때, 김서준이 다른 손으로 한세아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5분 종료. 이걸로 내가 이긴 거지?”
김서준은 멍하니 자신을 올려다보는 한세아를 바라보며 방긋 웃어주었다.
“손은요?”
“손? 보다시피 멀쩡한데?”
한세아의 작은 손에 꽉 감싸져 있던 손을 슬쩍 빼낸 김서준.
그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아무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자 그제야 한세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아티팩트를….”
“괜찮아. 그만큼 전투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얘기니까. 다만 한가지 조심할게 있다.”
“….네?”
“절대 쉽게 흥분하지 마. 상대가 네 조상을 욕하든, 부모를 욕하든 절대 관심 갖지 말라고. 도발에 당하면 제 실력의 반도 내지 못한다.”
“아, 네….”
한세아는 곧바로 의기소침해 졌다.
김서준은 그런 한세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멋졌다.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더라.”
“저, 정말요?”
한세아는 김서준의 칭찬에 금세 활기찬 모습으로 되돌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