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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준은 한세아의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엄청난 진수성찬을 마음껏 즐긴 김서준은 한세아가 제공해준 차량을 타고 편안하게 귀가할 수 있었다.
집에는 미리 저녁을 먹고 들어간다고 말해 놨기에 부모님은 김서준을 기다리지 않고 외식을 하러 밖으러 나간 상태.
이쪽 세상에서 정신을 차린 이후로는 불꺼진 집에 처음으로 혼자 들어오는 거라 조금 낯선 느낌이 들었다.
‘예전엔 늘 이랬었는데….’
그때는 그나마 돌아올 집이라도 있는 것에 행복해 했었다.
김서준이 집을 가졌던 건 불과 3년 정도.
그 이외의 시간에는 늘 떠돌이처럼 생활해야 했다.
김서준은 수련을 위해, 그리고 천마군장 천강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어느 한 곳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휴…. 늦어도 오늘 밤 안에는 부모님한테 새로운 집과 새로운 차가 생긴다고 말씀을 드려야겠지?’
내일은 예거 본부에 가야하는 날이었고 권윤성을 만나 집계약서에 싸인만 하면 이제 김서준한테도 큰 집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처럼 윗집, 아래집 눈치볼 것도 없이 오직 자신의 가족들만 사는 3층짜리 단독주택이 말이다.
‘내일이면 내 팀원들도 정해지겠구나.’
팀이 정해지면 바로 예거 요원으로서 정식 활동을 시작해야 하지만, 김서준은 아직 학생이기 때문에 졸업 전까지 유예기간이 주어지게 된다.
‘아무래도 졸업을 서두르는 편이 낫겠다.’
아카데미에서 4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느니 조기졸업으로 서둘러 졸업장을 따고, 예거 요원으로서 정식 활동을 시작하는게 여러모로 나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 마석은 어떡하는게 좋을까?’
김서준은 책상에 앉아 한두호 회장에게 받은 보석함을 꺼내 들었다.
보석함 안에는 황홀한 빛을 뿜어내 두 개의 인디고급 마석이 예쁘게 담겨있었다.
‘하나는 내가 먹고, 다른 하나는 사슬낫 먹이로 줘볼까?’
문뜩 떠오른 생각이었다.
지난 번에 사슬낫은 블루급 마석을 꿀꺽한 이후로 S급 오파츠로 거듭날 수 있었다.
여기서 인디고급 마석을 하나 더 먹인다면?
과연 얼마나 더 대단한 오파츠가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해보자.’
김서준은 이왕 생각난 김에 바로 마석을 먹여보기로 결정했다.
곧바로 초시공 건틀릿의 아공간에 넣어둔 사슬낫을 책상 위로 구현시켰다. 순간,
촤르르르르륵
사슬낫은 물을 만난 물고기마냥 튀어오르더니 김서준의 왼손을 빠르게 휘감아 버렸다.
“이놈은 내 팔만 보면 미쳐 날뛰네. 팔에 꿀이라도 발라놨냐?”
하도 어이가 없어서 혼잣말까지 하는 김서준.
그는 티 하나 없이 완벽하게 검은 빛을 띠는 사슬낫을 바라보다가 인디고급 마석 하나를 단봉 가까이에 가져갔다. 그러자,
취익-
코브라가 머리를 처들 듯 단봉이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마석을 이리 저리 살피듯 흔들거리다가 단봉 끝 부분이 쭉 찢어지며 축축한 가죽 같은 것이 혀처럼 삐져나왔다.
헥헥헥….
단봉은 간식 달라는 강아지처럼 침까지 흘리며 헥헥 거렸다.
김서준은 그런 단봉의 입 앞으로 인디고급 마석을 내밀었다.
촤압!
단봉이 마석을 먹어치운 건 순식간이었다.
게눈 감추듯 마석을 씹어먹은 단봉은 황홀한 맛에 감격이라도 했는지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팔을 휘감고 있던 사슬까지 풀고 책상 위로 올라가 뱀처럼 똬리를 틀더니 단봉을 그 안으로 쑥 들이 밀었다.
우우우우우우웅
사슬낫 전체에서 낮은 진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대충 1분여를 기다렸는데도 진동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자 김서준은 사슬낫이 뭘 하든 그냥 내버려 두고, 일단 침대로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은 다음 하나 남은 인디고급 마석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단숨에 녹아버린 마석은 목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김서준은 곧바로 태양신공을 일으켜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단전에서 시작된 기의 흐름은 점차 몸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모든 혈맥을 거침없이 휘돌기 시작했다.
그 기운이 한바퀴 돌고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김서준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혈맥을 통해 기를 회전시켰다.
그렇게 몇 차례 반복하던 어느 순간이었다.
꽈앙!
김서준의 머릿속에서 폭탄이 터진듯한 큰 폭발이 일었다.
고통은 없었지만 머리가 뒤로 확 젖혀질 정도로 짜릿한 충격이 전해졌다.
“후아아아…..”
김서준은 깊고 긴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눈을 번쩍 떴다.
‘뭔가 뻥 뚫리는 느낌인데?’
갈증이 심한 상황에서 차가운 물 한컵을 들이킨 것처럼 시원한 느낌이 온몸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김서준은 바로 자신의 정보창을 확인해 봤다.
[김서준]
-마력: 151[755] / 내공: 124[620] / 제어: 450[450]
-신비: 역발산기개세(43%) / 태양신공(49%) / 염동장막(19%) / 수라극섬(17%) / 심안(16%) / 천번구(7%) / 비뢰신보(7%)
-스킬: 파륜환(A)
‘와우.’
역시나 마력과 내공이 엄청나게 상승해 있었다.
인디고급 마석을 흡수한 헌터가 높일 수 있는 마력 수치는 최소 21에서 최대 100까지.
이번에도 김서준의 상승폭은 최대치인 100을 꽉 채웠다.
그것도 마력과 내공 모두가.
그것만이 아니다.
신비의 숙련도까지 2%에서 45%까지 골고루 상승했다.
‘염동장막은 이제 곧 20%에 도달하겠는데?’
신비의 숙련도 20%가 되면 마력과 내공이 5%씩 상승하는 건 물론이요, 추가적인 능력이 생길 수도 있기에 기대를 안할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김서준은 이제 700이 넘는 마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마력 6의 F급 헌터에 불과했던 김서준이 이젠 대한민국을 통틀어도 100명이 채 안된다는 S급 상위의 마력을 손에 넣었으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지.’
김서준은 흥분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그리고 좀 전에 마석을 먹였던 사슬낫을 바라봤다.
‘뭐야, 저 놈?’
사슬낫은 진동을 끝마치고 단봉을 치켜세운 채 김서준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눈도 안달린 단봉이 김서준을 향해 갸우뚱거리고 있는 모습은 뭔가 기괴하기까지 했다.
‘겉모습은 여전히 달라진게 없어보이긴 한데….’
김서준은 바로 사슬낫 쪽으로 다가섰다. 순간,
촤르르르륵
1미터 내로 접근하자마자 사슬낫이 김서준의 왼손을 칭칭 휘감았다. 그리고는 쥐죽은 듯 미동도 없이 그저 가만히 있었다.
바로 마력을 끌어올려 심안을 발동시키자,
즈아아아앙-
마력의 파장이 사슬낫을 훑고 지나가며 변화된 정보를 김서준의 머릿속으로 보여주었다.
[사슬낫.개(SS)]
-각성한 고대의 유물이다.
-목표에 사슬을 감아 능력의 50%를 봉인시킨다.
-항마력에 반응하며, 사슬로 결계를 형성하여 적을 고립시킨다.
-사슬낫의 주인에게 관통력 30%, 마력 반탄력 30%, 절삭력 50%의 버프를 부여한다.
-사슬낫으로 아공간을 가른다.
-낫을 든 농부를 소환한다.(소모 마력 1,000)
정보를 확인한 김서준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속으로 ‘아자!’를 외쳤다.
사슬낫이 또 한차례 진화에 성공했다.
무려 세 가지 능력이 추가되었는데, 그 능력 하나하나가 엄청났다.
관통력, 반탄력, 절삭력을 %단위로 높여준다는 건 전투에 있어서 대단한 이점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슬낫으로 아공간을 가를 수가 있다니.
김서준은 이 능력을 보자마자 딱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균열 입구를 가른다거나, 다른 사람의 아공간 능력 같은 것도 갈라낼 수도 있는 건가?’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이건 오파츠 중에서도 최고 등급인 전설급 오파츠나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시험을 해봐야 알겠지만, 왠지 가능할 것 같은데?’
김서준은 왼팔을 휘감고 있는 사슬낫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살살 쓰다듬었다.
‘그런데 낫을 든 농부를 소환한다는 건 대체 뭘까?’
말 그대로라면 마력 1000을 소모해서 농부를 불러내는 소환술 같은데, 고작 농부를 소환해서 뭘 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힘을 숨긴 농부, 뭐 이런 건가?’
김서준은 혼자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소환에 필요한 마력은 무려 1000.
김서준의 마력이 700을 넘어선 상태이긴 해도, 아직 이 소환 능력을 사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슨 소환인지는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구나.’
당장은 이 소환 능력에 대해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김서준이 자기 방에서 나름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외식을 나가셨던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가만히 기회를 살피던 김서준은 부모님이 거실에서 휴식을 취할 때를 노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부모님께 새로 생길 40억 상당의 단독주택과 퓨리오스 브랜드의 HTF 방탄 SUV에 대한 걸 솔직하게 말했다.
처음엔 당연히 두 분 다 크게 놀라 하셨지만, 김서준은 이것이 정부 소속의 특수요원이 되면서 주어지는 혜택이라는 걸 강조했고, 아버지 김주혁을 먼저 납득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쉽게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러자 오히려 김주혁이 나서서 백연지를 이해시켜 주고자 했다.
한참만에 김서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 백연지는 금방 반색을 하며 어쩜 좋아를 연발했다.
그리고는 곧장 아파트 시세를 알아보더니 부동산에 연락해 집을 내놓는 빠른 일처리를 보여주었다.
김서준은 원래 SUV 차량을 아버지에게 드리고자 했다.
하지만 김주혁은 자신은 오랫동안 타고 다니던 승용차가 있으니 필요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어쩔 수 없이 SUV는 김서준이 타고 다니는 걸로 결정됐다.
다행히 김서준은 1년 전 즈음 면허증을 따 놓은 상태라서 운전을 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집과 차 문제에 대해 부모님을 이해시킨 김서준은 한 가지를 더 말씀드렸다.
정부 요원으로서 마지막 훈련을 위해 다시 훈련 캠프에 다녀와야 한다고 말하자, 백연지는 조심히 다녀오라는 말 한마디만 하고는 더 이상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40억 상당의 단독주택으로 이사할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부모님과의 일을 잘 해결한 김서준.
방으로 돌아온 그는 삼일 동안 예거 본부에 다녀올 짐을 싸기 시작했다.
***
다음날 아침.
김서준은 일찌감치 일어나 가방을 매고는 집을 나섰다.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바쁘다.
한 손에 두툼한 토스트를 들고 정신없이 뛰어가는 회사원도 보이고, 대학 보다 일주일 빠르게 개학한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무거운 가방을 안고 허겁지겁 달려가는 모습도 보인다.
김서준은 그런 사람들 틈에 섞여서 지하철에 몸을 실어 몬스터 서점으로 향했다.
20분 만에 서점에 도착한 김서준.
아직 8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서점 지하의 상황실 안에는 세 사람의 요원이 모두 출근해 있었다.
“여어! 좋은 아침!”
이영호가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태도로 김서준을 반겨주었다.
“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본부에 가는 거구나? 팀웍 훈련 하러 가는 거지? 그럼 오늘 근무지 배정도 끝나겠네? 서준 동생은 어디로 발령나려나? 우리 6호 지부면 참 좋겠는데.”
주혜민도 활짝 웃는 얼굴로 김서준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도 이왕이면 이곳으로 배정되면 좋겠습니다.”
“그말 진심이야? 그럼 희망 근무지로 우리 지부를 써 내. 근무지 배정 시에 조금이라도 감안하게 말이야.”
“혜민아. 우리 6호 지부는 신입 예거 배정 순위에 없다는 거 모르냐? 새로운 요원 받으려면 2년 후에나 가능할 거다.”
박연중이 한마디 걸고 넘어가자 주혜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휴…. 윗선에다가 예거 생도 받는 기간을 1년으로 줄이면 안되냐고 말 좀 해주면 안되나요? 이런 위험한 일을 하는데 2년에 한번, 그것도 고작 10명 내외로만 충원을 하니까 아주 미치겠다고요.”
“그건 나도 동의. 이번 07기수는 일반 요원으로 빠지는 숫자가 3명 뿐이라니 완전 미친거지.”
이번엔 이영호까지 나서서 주혜민의 편을 들었다.
“크흠. 그 소식은 나도 들었다. 이번 기수는 애초부터 생도 숫자가 적었다고 하던데….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 김서준 학생?”
박연중의 질문에 김서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저희 기수는 시작부터 인원이 워낙 적어서….”
김서준의 대답은 어젯밤 특수폰으로 전달된 예거 본부의 공지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이번 07기수의 신입 요원 숫자가 적은 것에 대해 의혹이 있을 수 있으니 관련된 질문을 받게되면 훈련 시작 때부터 인원이 적었다고 대답하라는 공지였다.
“아, 맞다. 지부장님. 천간십이지와 관련해서는 위에서 따로 지침이 내려 왔나요?”
김서준은 얼른 화제를 바꿔서 박연중에게 질문을 던졌다.
“며칠간 대기하라고 명령이 떨어지긴 했지. 아마도 자네가 넘긴 접촉 방법을 놓고 이런 저런 검증 작업을 거치는 모양이야. 어쨌든 예거와 천간십이지가 처음으로 공조를 해야하는 상황이다보니 신중할 수밖에 없을거다.”
“그렇군요. 가급적이면 공조가 잘 이루어져서 함께 신교단을 처리할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네요.”
“우리도 그러길 바라고 있다.”
김서준은 그 뒤로도 요원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고, 8시가 거의 다 되자 이동할 준비를 했다.
김서준이 상황실 뒤쪽에 위치한 포탈실로 다가서자 박연중이 잠금장치를 풀어주었다.
“그럼, 잘 다녀와라.”
박연중의 인사를 받은 김서준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포탈실 안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원형판 앞에 설치된 패널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동을 원하는 장소를 선택하세요.
[국내] / [국외]
포털의 사용 방법은 모두가 동일했다.
김서준은 국내를 선택했고 이동할 지역의 명칭으로 경기도를 입력했다. 그러자,
[가평 본부]/[수원 ABC 카센터]/[용인 소방서]/….
무려 11개의 선택지가 등장했다.
‘경기도에만 지부가 열 곳이 있구나.’
전국적으로 예거의 지부가 87군데가 있다고 했으니 규모가 정말 엄청나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짧게 감상을 마친 김서준은 바로 ‘가평 본부’를 선택했다.
곧바로 띵 하는 맑은 울림이 있었고,
키우우우우웅
원판이 무섭게 진동을 일으키다가,
부우욱!
원판 위의 공간이 찢어지며 포탈이 등장했다.
김서준은 잠시 고개를 돌려 포탈실 바깥의 요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포탈 속으로 성큼 성큼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