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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을 통과한 김서준이 다시 나타난 곳은 본부의 포탈실이었다.
포탈실을 나서자 처음보는 요원이 김서준을 맞이했다.
“딱 맞게 오셨군요. 저와 함께 가시죠.”
요원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바로 김서준을 데리고 밖으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곳은 B2층.
이 B2층은 천장의 높이가 무려 100미터가 넘는 거대한 곳이었고, 총 16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균열이 자리잡고 있는 위험한 장소이기도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앞에 캐디 카트처럼 생긴 작은 차량이 보였다.
“타시죠.”
요원은 김서준을 옆에 태우고 직접 미니카를 운전해 어딘가로 향했다.
B2층은 정말 엄청 넓었다.
훈련을 위해 몇 번 와본적은 있지만, 그때는 이동용 캡슐을 타고 이동했기 때문에 지금과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구역과 구역 사이의 경계에는 중무장한 군인들이 지키는 초소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런 초소를 무려 아홉 개나 거치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가 멈춰선 곳은 제7구역이었다.
7구역은 마치 그랜드캐년과 같은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층층이 쌓인 바위산 사이의 계곡 끝에 균열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약 40여 미터 상공에 떠 있는 균열.
그 바로 앞에는 간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고, 주변엔 약 2개 중대병력이 언제든 전투를 치를 준비를 한 채 삼엄하게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 중앙에 모두가 있었다.
07기 동기 7명과 권윤성, 이채윤을 포함한 10명의 넘버링 요원, 그리고 박문호와 낯익은 얼굴의 교관들까지.
상황을 보아하니 김서준이 가장 꼴지로 도착한 모양이었다.
“형님들 기다리는데, 막내가 젤 늦게 오다니. 그새 기합이 빠졌네, 빠졌어.”
박해성이 툴툴거리자 옆에 있던 안지운도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보다 윗줄인 익스퍼트 요원이라고 벌써 어깨에 힘 빡 들어갔구만, 뭐.”
“어머, 그런거였어? 동갑인 리나는 넘버링 요원이 됐어도 저렇게 예의가 바른데, 서준이 너는 왜 그러니? 밖에 나가서도 연락한번 없고 말이야.”
민소라까지 김서준을 구박하기 시작했다.
“다들 미안요. 그런데, 집합 시간은 8시 30분까지 잖아요. 아직 10분이나 남았는데?”
김서준이 지각한건 아니라며 변호에 나서자 다른 넘버링 요원들과 이야기 중이던 이채윤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김서준. 잠깐 나 좀 볼까?”
“지금요?”
“응. 물어볼 게 좀 있어서.”
이채윤의 표정을 보아하니 천간십이지에 관해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는 모양.
김서준은 바로 이채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이채윤은 김서준을 데리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연중 요원님한테 보고는 받았다. 그런데 좀 이상한게 있어서.”
“네. 말씀하세요.”
“너, 처음부터 천간십이지가 우리 예거와는 적대시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니?”
“어느 정도는요. 예거 시스템 상에 있는 천간십이지에 대한 정보를 다 뒤져봤는데, 묘한 공통점 같은게 보이더라고요.”
“공통점?”
이채윤의 눈에 호기심의 빛이 일렁였다.
넘버링 요원들의 두뇌라고 볼 수 있는 자신도 수년간 볼 수 없었던 걸 김서준은 단번에 알아챘다는 공통점이 무언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들이 예거와는 직접적인 접촉을 일부러 피하고 있더라고요.”
“무슨 근거로?”
“예거 요원들과 마주친 작전에서 열이면 열 모두 천간십이지가 먼저 발을 뺐습니다. 충분히 예거 요원들을 물리칠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김서준의 말에 이채윤이 눈살을 찌푸렸다.
“네 말은 천간십이지가 예거보다 강하다는 뜻이야?”
“아니요. 제 말은 그들 중에도 예거의 일반 요원들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각성자가 꽤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먼저 물러섰다는 건 우리와 싸우고 싶지 않다는 의미죠.”
“그럼 왜 그들이 계속 우리의 일에 훼방을 놓고, 시스템을 해킹하려고 난리를 친다고 생각하지?”
“우리와 목표가 겹치니까요. 같은 임무를 지닌 두 팀이 서로 공조를 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작전을 진행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사건건 부딪치겠지.”
“네. 바로 그겁니다.”
김서준의 깔끔한 설명에 이채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표정을 보였다.
사실, 이채윤도 김서준과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이채윤의 경우엔 천간십이지라는 조직 자체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설마 그럴리가 있겠냐며 그 생각을 검증하지 않았던 것이다.
“네 의견은 잘 들었다. 며칠 내로 그들과 접촉을 시도해 봐야겠구나.”
“훌륭한 결정입니다.”
“알았으니 네 자리로 돌아가 봐. 곧 팀 배정이 있을 거다. 그리고, 넌 내가 이번 팀웍 훈련에서 열외자로 뺄 테니까, 알아서 잘 끼어들고.”
이채윤은 김서준이 얼굴을 가리고 넘버 포로서 이번 훈련에 참석하라고 언질을 주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김서준은 다시 모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도중 김서준은 두 사람을 힐끔 쳐다봤다.
한명은 자신을 예거로 끌어들인 최경문이었는데, 그는 김서준과 시선이 마주치자 눈을 찡끗해 보이며 엄지를 첫 치켜세웠다.
김서준이 예거 캠프에서 최고 점수를 기록하면서 추천인의 체면을 완벽하게 살려준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였다.
김서준은 웃음으로 화답했고, 다른 한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는 오늘 처음 만나는 넘버링 요원으로, 넘버 포를 제외하고서는 최강의 무력을 소유했다고 알려진 넘버 쓰리 배창훈이었다.
배창훈은 무척이나 평범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키도 그리 크지 않았으며, 생김새도 길거리를 걷다보면 쉽게 마주칠 수 있는 흔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체형이 무척이나 단단해 보였다.
크지 않은 체격에 떡 벌어진 어깨와 두꺼운 허리, 거기다 허벅지 두께가 엄청났다.
‘마력격투가라고 하더니 몸이 장난이 아닌데?’
김서준의 시선을 느꼈는지 배창훈도 고개를 돌려 김서준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가볍게 슥 훑어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버렸다.
김서준은 그런 배창훈의 마력을 기프트로 확인해 봤다.
[463]
‘역시 넘버 쓰리라 이건가?’
기프트로 마력커버를 사용하고 있을텐데도 463이라는 수치가 나온다는 건, 배창훈의 실제 마력은 최소한 660을 넘는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900 이상일 수도 있고.’
만약 마력커버의 비율이 50%인데 463의 수치가 나온 거라면, 배창훈의 진짜 마력이 926이나 된다는 소리다.
‘정말 후덜덜 하네.’
김서준은 배창훈의 찐 마력수치가 926일 거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때, 권윤성이 모두의 앞으로 나서며 시선을 주목시켰다.
“다들 오늘 우리가 왜 이곳에 모였는지는 잘 알 테니 긴 설명은 하지 않겠다. 바로 신입 요원들의 팀을 배정할 테니 잘 듣고 숙지하기 바란다. 우선, 이리나 요원은 제1 헌터 아카데미로 편입하게 되었으니 김유라 요원과 함께 팀 배정에서 제외한다.”
가장 먼저 이리나가 호명되었고, 그녀는 졸업 때까지는 팀을 운영하지 않는 걸로 결정되었다.
그러자 이리나가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던졌다.
“제가 내년이라도 당장 조기졸업을 한다면 바로 팀을 운영할 수 있게 되는 건가요?”
“맞다. 아무리 넘버링 요원이라도 졸업도 안한 학생을 위험한 곳에 투입할 수는 없으니까.”
“잘 알겠습니다.”
이리나는 누가봐도 조기졸업을 노리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의욕에 찬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다음은 신태양 요원. 신 요원 역시 미국의 MPIT 학생이기 때문에 팀 운영은 하지 않는다. 이리나 요원처럼 조기졸업을 원한다면 그에 따르는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하지.”
“감사합니다.”
신태양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이 결정을 쉽게 받아들였다.
“양휘 요원은 이미 정식 헌터 라이선스를 취득한 상태이므로 바로 정식 요원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양휘 요원의 팀 명은 그레비티의 약자인 ‘GV’로 칭하기로 했다. 다. 소속 팀원은 이동훈, 박지유, 이 두 명이고 이번 훈련을 마치면 바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그들을 잘 이끌어 예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 주길 바란다.”
“저한테 배정되는 요원을 제가 고를 수는 없는 겁니까?”
“그건 불가능하다. 넘버링 요원이 자신의 팀을 사적인 친분으로 이끌게 되면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이니 이해하기 바란다.”
“알겠습니다.”
양휘는 신태양과 같은 20살의 나이였지만, 아카데미 대신 개인적인 교육 이수를 통해 이미 헌터 라이선스를 따 놓은 상태였다.
때문에 곧바로 정식 요원으로 활동이 가능했다.
“박해성 요원은 제19지부로 배정되었고, 안지운 요원은 제43지부, 민소라 요원은 제77지부다. 정확히 일주일 후부터 해당 근무지로 출근하면 된다. 기존의 길드 소속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은 참고하도록.”
세 명은 이미 특정 길에 소속되어 헌터로서 활동 중이었기에 바로 근무지까지 정해졌다.
넘버링 요원이 아니라서 지부에 배정이 되었고, 모든 예거 요원들이 그렇듯 두 가지 신분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어서, 최철민 요원의 근무지 배정을 하겠다. 최 요원은 별도의 팀을 구성하지 않고, 이채윤 요원의 팀에 합류하여 함께 움직이게 될 것이다.”
“이채윤 요원과 말입니까?”
최철민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로서는 하나의 팀을 직접 운영하는 것보다 다른 넘버링 요원과 함께 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게다가 그 함께의 대상이 이채윤이면 더욱 더 좋았다.
“현재 이채윤 요원에게 집중되어 있는 업무량을 최철민 요원이 분담해 줄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정 원치 않는다면 따로 팀을 꾸려주는 것도 가능하고.”
“아닙니다! 전 이대로가 좋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군.”
최철민이 너무 좋아하자 오히려 권윤성이 놀란 표정이었다.
보통은 넘버링 요원이 되면 별도의 팀을 꾸려 단독 작전권을 가져가길 원하기 때문에 최철민의 이런 반응은 상당히 의외였던 것.
이제 남은 건 김서준 한 명이었다.
“마지막은 김서준 요원이다. 김 요원은 학생이긴 하지만 익스퍼트 요원으로서 아직 작전을 지휘할 권한과 의무를 동시에 지니게 된다. 때문에 팀을 맡기긴 하겠지만 소속 팀원은 한 명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팀 명은 RF. 리플렉스의 약자다. 팀원의 이름은….”
권윤성이 말을 하다말고 갑자기 이채윤을 힐끔 돌아봤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이름은 이채하. 이번 주 내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으로 신입 요원의 배치를 마치겠다.”
권윤성의 말에 김서준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채하.
성령의 한가에서 한세아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이채하와 이름이 같았다.
‘설마 동명이인?’
이름만 같고 사람은 다른 걸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뭔가 묘한 촉이 느껴졌다.
권윤성이 말한 이채하가 한세아의 매니저인 그 이채하와 동일인물이 분명하다는 확실한 느낌.
김서준도 이채하가 예거의 요원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잠깐. 단순히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러고보니 넘버 투 이채윤과 이름이 한 끗 차이다.
권윤성이 이채하의 이름을 말하기 직전 이채윤을 돌아본 이유가 뭘까?
굳이 머리를 쓰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자매.
이채윤과 이채하는 자매인 것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두 사람의 연관성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니…. 내가 바보였네.’
그냥 우연히 비슷한 이름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보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
이채윤, 이채하.
얼굴은 전혀 닮지 않았지만 둘 다 어디서든 주목 받을 정도로 뛰어난 미모를 갖추고 있었으며, 각성자로서 대단한 실력을 지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내 일거수 일투족을 쭉 지켜보겠다, 이거로군.’
김서준의 팀원으로 이채하를 붙여 놨다는 건, 분명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그렇다고 뭔가 크게 불편하다거나 신경이 쓰이는 건 없었다.
어차피 한세아의 안전을 신경 쓰겠다고 한두호 회장과 약속한 바가 있으니 이채하와 가까이 지내는게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김서준은 익스퍼트 요원으로서 이미 맡고 있는 임무가 있는 관계로 금일 훈련에서 빠지게 되었으니 그렇게 알고 있도록.”
“김 요원은 제가 데려다 주고 올게요.”
이채윤이 김서준을 데려다 주겠다고 나섰고, 두 사람은 바로 미니 차량에 타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김서준과 만나자마자 다시 헤어지게 되자 동기생들이 상당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특히 이리나는 김서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자, 이제 훈련에 들어갈 시간이다. 총 다섯 개 팀으로 나누어 균열 레이드를 진행할 예정이니 이 표를 잘 보도록.”
권윤성이 홀로그램 화면을 띄워올리자 모두의 시선이 화면으로 집중되었다.
그곳엔 4명 씩 총 다섯 개의 팀이 이미 정해져 있었는데, 네 번째 팀에 의외의 이름이 하나 포함되어 있었다.
▶4번 팀◀
-넘버 원 권윤성
-넘버 식스 조미진
-넘버 포 백호
-민소라
넘버 포 백호.
신입 요원 뿐만이 아니라 기존의 넘버링 요원들도 그 이름을 발견하고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여지없이 질문이 날아들었다.
“넘버 포 백호라니?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이름이야?”
넘버링 요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지학선의 목소리였다.
“이번에 장범수 국장님께서 직접 섭외해 온 요원입니다. 그에 대한 건 저나 채윤이도 아는게 없고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른 넘버링도 아니고 넘버 포를 근본도 모르는 자에게 맡긴다는게 말이 되나?”
“그래서 오늘 그자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려는 겁니다.”
권윤성은 이 한마디 말로 지학선과 다른 요원들의 불만을 단번에 잠재워 버렸다.
“오늘 레이드는 단순한 팀웍 훈련이 아닌 거군요?”
넘버 에잇 장호가 뭔가를 알겠다는 듯 질문하자, 권윤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4번 팀을 제외한 나머지 팀 모두는 서로 연계해서 무슨 수를 써서든 4번 팀의 레이드를 방해하는게 목적이야. 4번 팀이 레이드에 성공하면 군말없이 넘버 포를 인정해야 하고, 실패하면 넘버 포의 자리를 다시 빼앗는다.”
“그건 마음에 드네요.”
“재미있겠군.”
권윤성의 말에 넘버링 요원들이 갑자기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