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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운은 시작일 뿐이었다.
백호는 이미 두 번째 사냥감인 최경문을 향해 섬전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하지만 최경문은 10년 경력의 베테랑 예거답게 반응이 빨랐다.
빠르게 거리를 벌리며 자신의 신비인 ‘전면강타’를 재빠르게 발동시켰다.
전면강타는 점의 공격과 면의 공격, 두 가지 중 하나를 본인의 입맛에 맞게 선택할 수 있었다.
주먹을 내지르면 강철도 꿰뚫을 수 있는 강한 권력이 탄환처럼 뿜어져 나가는데, 약 2회에 걸쳐 방향을 전환시킬 수도 있는 놀라운 능력이었다.
반면, 손바닥을 사용하게 되면 반경 1미터 크기의 커다란 반투명 방패가 나타나 사용자의 정면을 완전히 휩쓸고 가버린다.
이 손바닥 강타 수법은 공격은 물론 방어에도 주효했다.
최경문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백호를 향해 손바닥을 신속하게 뻗어냈다.
츄와아아악
손바닥이 공간을 밀고 나가는 소리가 무척이나 묵직했다.
바닥 위에서 1미터 가량 뜬 상태로 날아들고 있는 백호가 직경 2미터 크기의 투명 방패를 피하는 건 어려워보였다. 하지만,
푸화아악!
백호가 왼손을 뻗어내자 손에서 화염이 뿜어졌고, 그걸 추진력 삼아 직각으로 방향을 틀어버렸다.
깜작 놀란 최경문은 급히 손을 움직여 방패로 백호를 후려치려했다. 2미터 크기의 반투명한 방패가 백호의 측면을 거칠게 강타하는 순간,
푸확! 푸화아악!
백호의 손과 발에서 동시에 화염이 뿜어져 나왔고, 도저히 불가능한 각도로 방향을 틀어 최경문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어느새 최경문의 왼쪽 상단으로 접근한 백호.
허공에 붕 떠 있는 백호가 오른 발을 뒤로 쭉 뻗어내며 또 한번 화염을 뿜어냈다. 그런데, 이번 화염은 짧고 굵었다.
퍼엉!
강력한 폭음이 터져나온 순간, 강력한 추진력을 얻은 백호의 오른발이 번쩍했다. 그리고,
뻐억!
백호의 오른발은 어느새 최경문의 옆구리에 박혀 있었다.
“크윽!”
최경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500이나 되는 마력으로 충격을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백호의 발차기는 마력의 방어막을 가볍게 깨버렸다.
백호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푸화아아아악!
또 다시 오른발로 화염을 뿜어낸 백호가 허공에서 360도로 크게 회전했고, 회전력에 화염분사의 추진력까지 더해진 뒤돌려차기가 최경문의 오른쪽 뺨 위로 작렬했다.
꽈앙!
강력한 충격파가 터졌다.
최경문의 머리는 안전했다. 백호의 뒤돌려차기가 뺨에 닿기 직전, 간신히 팔뚝을 들어올려 타격을 막아낸 것이다.
직접적인 타격은 막아냈지만, 뼈속까지 파고드는 충격까진 막아낼 수 없었다.
너무도 강한 힘에 튕겨져 나간 최경문은 시체더미 속에 쑤셔 박히고 말았다.
그때가 되어서야 이채윤과 차준혁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이채윤은 눈깜짝할 사이에 두 명의 팀원이 당하자 가슴이 서늘해졌다.
철저히 계산된 함정.
그리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의 빠른 공격.
이 두 가지가 합쳐진 것만으로 이토록 무서운 결과가 만들어 질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충 상대했다가는 나까지 당하겠어!’
이채윤은 이를 악물었고 자신의 신비인 ‘스크류킥’을 발동시켰다.
스크류킥은 말 그대로 나선형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발차기였다.
이건 단순한 타격만 주는 게 아니라 강한 흡인력까지 일으키기 때문에 피하는게 거의 불가능했다.
이채윤은 백호를 향해 연속으로 세 번의 스크류킥을 날려보냈다.
때를 같이해 차준혁도 신비를 발동시켰다.
그의 신비는 ‘사이킥포스’.
신비가 발동되면 이동속도가 배로 빨라지고, 모든 파워가 증폭되며, 사물에 대한 관통력까지 증가한다. 게다가 근거리이긴 해도 2미터 내외에선 염력까지 사용할 수 있는 S급 신비였다.
차준혁은 신비를 발동시키자마자 자신의 애검을 꺼내 들고는 백호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세 방향으로 날아드는 회오리 공격과 퇴로를 차단하며 달려드는 차준혁.
백호는 여우가면을 쓴 채로 그 모든 걸 무심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모든 공격이 그의 몸에 닿기 직전.
“파륜환.”
백호가 작게 중얼거리자, 그의 왼쪽 눈에서 빛이 번쩍했다.
눈동자 주변에 삼색의 물방울 문양이 떠오르고, 문양이 회전하며 붉은 물방울이 상단에 위치한 순간,
스르르륵
백호의 모습이 일순 투명해 지더니 모든 공격을 투과해 버렸다.
백호를 투과한 회오리들은 오히려 차준혁을 공격하고 말았다.
“이런!”
피하기엔 이미 늦었음을 간파한 차준혁.
그는 쥐고있던 검으로 세 방향의 회오리를 벼락처럼 베어버렸다.
츄와아악!
차준혁이 휘두른 검에서는 밝은 빛이 마치 검기처럼 뿜어져 나왔고, 회오리를 쪼개버린 초승달 모양의 빛은 그 뒤로도 10여 미터를 날아가 몬스터 사체더미까지 갈라버렸다.
퍼버버버벅
차준혁의 검기에 잘려나간 사체들이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차준혁은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백호의 뒤를 쫓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퍼억
어느새 이채윤의 코앞까지 다가간 백호가 그녀의 뒷목을 가볍게 때려 기절시켰다.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차준혁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백호는 이채윤의 무시무시한 공격을 단 하나도 맞지 않고 몸 뒤로 통과시켜버렸다.
물리력이 전혀 통하지 않는 적.
이런 상대를 처음 맞이한 이채윤은 500이 넘는 마력을 지녔음에도 백호의 접근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채윤까지 당해버리자 차준혁은 오히려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백호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괜한 흥분은 치명적인 실수만 낳을 뿐이었다.
“이제부턴 나도 최선을 다하겠다.”
차준혁의 말에 백호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난 아직 최선이 아닙니다만.”
“거짓말 마라.”
차준혁은 더 이상 백호에게 존대를 쓰지 않았다.
“내가 최선을 다했으면 당신도 이미 바닥에 누웠을 겁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차준혁의 호통에 백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그러자 차준혁이 검을 더욱 꽉 거머쥐었다.
“넘버 포의 자리를 원하면 날 쓰러뜨려라.”
“배창훈 요원이 이 자리에 없는게 아쉽군요. 그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거만하군.”
“적어도 지금은…. 그래도 될 거 같군요.”
백호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그대로 땅을 박찼다.
쾅!
폭음이 터져나왔을 때, 백호는 이미 차준혁의 정면에 나타나 그를 향해 검을 내리긋고 있었다.
차준혁은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 백호는 빈 손이었다. 그런데 찰나의 순간에 어느새 검을 쥐고 있었다.
아공간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렇게나 빠르게 물건을 꺼내 드는 건 불가능했다.
아공간을 열고, 그 안에서 물건을 빼내는 행위 정도는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
하지만 백호는 그런 과정조차 없었다.
‘도대체 전체가 뭐야!’
차준혁은 이를 뿌드득 갈며 백호의 검을 향해 자신의 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카아앙!
검과 검이 부딪치고 강렬한 스파크가 튀어올랐다.
두 사람 모두 한치의 물러섬이 없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두 사람은 눈으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며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앙. 카가강! 타캉!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는데 허공에서 스파크만 번쩍거린다.
그 뿐만이 아니다.
검과 검이 부딪치며 일어난 충격파에 땅이 움푹움푹 파이고, 사체 더미가 퍽퍽 터져나갔다.
두 사람의 실력은 막상막하.
누구 하나 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상대를 몰아붙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파캉!
강한 충격음과 함께 차준혁이 튕겨져 나왔다.
“크으….”
차준혁은 숨을 몰아쉬며 왼쪽 어깨를 감싸쥐었다. 그곳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더 하겠습니까?”
백호의 말에 차준혁은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 더욱 강렬한 눈빛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솔직히 놀랍군. 내가 이렇게까지 구석에 몰릴 줄은 몰랐는데.”
“누군가 그러더군요. 쳐맞기 전까진 다들 계획이 있다고.”
“후후. 그것도 맞는 말이야. 그동안 내가 너무 안일하게 살아왔어. 아래에서 이렇게 치고 올라오고 있는데, 난 현재에 만족하며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으니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는 건, 아직 발전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겁니다.”
차준혁이 자신이 오만했음을 스스로 인정하자 백호의 대응도 살짝 달라졌다.
“발전할 여지가 아직 남아 있다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쪽한테 그 이야길 들으니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군.”
“나 또한 당신 같은 강자를 상대할 수 있어서 꽤나 기쁘군요.”
“그거…. 칭찬인가?”
“물론입니다.”
“그럼 좀 더 칭찬을 받기 위해 움직여 볼까?”
차준혁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의 몸에서는 좀 전보다 더욱 강렬한 기세가 타오르기 시작했고, 그 강한 기세에 주변 돌조각들까지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 이상 마력을 높이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만.”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끝을 봐야지. 팔 하나쯤 날려먹어도 원망원망 않을 테니 그쪽도 최선을 다해 줬으면 좋겠군.”
차준혁은 지금 진심이었다.
훈련으로 시작한 싸움이었지만, 더 이상은 훈련따위가 아니었다.
지금껏 차준혁은 윤현도나 배창훈 외에는 자신의 상대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백호를 처음 봤을 때에도 당연히 자신보다 약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직접 맞부딪쳐본 결과, 그 반대였다.
백호의 강함은 진짜였다.
어쩌면 배창훈보다도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수 없었다.
배창훈은 이상하게도 차준혁과는 절대 대련을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
“정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원하는대로 해 드리죠.”
백호가 대답하고, 그 또한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나 아직 멀쩡하다고!”
거인의 발에 짓눌려 간신히 버티고만 있던 안지운이 별안간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빠르게 백호 쪽으로 한바퀴 구른 안지운은 손을 끌어당기며 기프트의 버튼 하나를 꾹 눌렀다. 순간,
파치이이이잉-
기프트에서 터져나온 마력의 파장이 반경 10미터를 단숨에 휩쓸었다.
그건 MPSP였다.
안지운은 상황이 불리해지자 마력폐쇄파를 사용해 백호의 마력을 잠궈버린 것이다.
상당히 치사한 방법이었지만, MPSP를 사용하면 안된다는 규정 또한 없었으니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안지운이 발동시킨 MPSP는 정확히 백호와 권윤성까지만 영향을 미쳤다.
그 바람에 권윤성이 발동시킨 칠보격살의 거인도 사라져 버렸다.
백호가 끌어올리던 마력도 씻은듯이 사라져 버린 건 당연했다.
그걸 본 차준혁이 안지운을 무섭게 노려봤다.
모처럼 얻은 기회를 안지운이 날려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때, 백호가 안지운을 바라보며 쓸쓸하게 말했다.
“덕분에 정신을 차렸네요.”
백호는 자기도 모르게 차준혁과의 승부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러다 안지운이 MPSP를 사용해준 덕분에 마력이 잠겨지면서 애초의 목적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제 덕분….이라고요?”
“네. 당신 덕분에.”
퍽
백호가 가볍게 움직여 안지운의 뒷목을 검 손잡이로 내려쳤다.
“….!”
그 모습에 차준혁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분명 마력이 잠겼을 텐데, 지금 백호가 보인 움직임은 전혀 그래보이지가 않았으니까.
차준혁이 멈칫한 사이에도 백호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는 민소라의 유체화 신비에 묶여 꼼짝도 못하고 있던 최철민도 간단히 기절시켜 버렸다.
그저 가볍게 한발 내딛는 것 같았는데, 순식간에 10여미터를 이동해 최철민의 목을 손날로 가격한 것.
오히려 최철민을 옭아매고 있던 민소라가 놀라 유체화를 풀며 뒷걸음질 쳤을 정도로 백호의 움직임은 무시무시했다.
차준혁은 이제야 백호가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했다.
지금 자신들은 사이좋게 대화나 나누면서 최선이 어쩌고 저쩌고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차준혁은 4번 팀의 레이드 성공을 방해하는게 목적이었고, 백호는 무슨 수를 써서든 방해를 넘어서 레이드를 성공시켜야 한다.
안지운이 앞 뒤 가리지 않고 MPSP를 사용하는 것을 본 백호는 그제야 자신의 목적을 상기하게 된 것이리라.
즉, 백호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 차준혁과의 승부가 중요하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방해자들을 처리하고 레이드를 성공시키는게 훨씬 중요했다.
차준혁도 이제 자신이 해야할 일을 명백하게 깨달았다.
그는 말없이 검을 거머쥐었고 모두를 처리하고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는 백호를 바라봤다.
마력이 잠겼는데도 오히려 전보다 더 빨라지고 더 강해진 이유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오면 벤다!’
그 한 가지 일념만 마음속에 담고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셋. 둘….’
그 시점에 백호의 몸이 살짝 흔들리는가 싶더니, 돌연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하나!’
차준혁 또한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바로 그때,
카앙!
동굴 천장 쪽에서 화려한 불똥이 튀는가 싶더니 사방에서 번쩍 번쩍 스파크가 터져나왔다.
번쩍거림은 점점 빨라졌고, 이내 숨이 막힐 정도의 압박감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뻐어억!
묵직한 타격음이 터져나오며 모든 것이 정지했다.
검과 검을 맞댄 채로 서 있는 백호와 차준혁.
하지만 승부는 이미 끝나있었다.
백호의 왼손 주먹이 차준혁의 복부 깊숙하게 박혀있었던 것.
“쿨럭!”
차준혁이 허리를 굽히며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해냈다. 그리고 털썩 무릎을 꿇고 말았다.
백호는 그런 차준혁의 옆을 지나가며 손날로 뒷목을 툭 쳤고,
차준혁은 눈을 하얗게 까 뒤집은 채 그대로 고꾸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