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천재의 헌터 라이프-125화 (125/153)

125

다음날 아침.

김서준이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책상 위에 올려 둔 기프트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고 있던 김서준은 7시도 안된 이른 시간에 누가 전화질인가 싶어 기프트 액정 화면을 확인했다.

[J03NASN]

발신자 표시에 떠오른 글자였다.

이건 예거 전용 보안 코드로, 03기수의 뉴스 아나운서 직업을 가진 세컨드 넘버라는 의미였다.

‘이채윤 선배?’

연락책이 되자마자 바로 연락이라니.

권윤성이 연락책일 때보다 훨씬 귀찮아 질 것 같은 예감에 괜히 바꿔줬나 후회가 되는 느낌이었다.

“김서준입니다.”

김서준은 기프트 전용의 초소용 이어폰을 귀에 꽂고 통화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미안. 다른 건 아니고…. 아카데미 방학이 오늘까지 맞지?

“네, 맞는데요.”

-그럼 오늘은 좀 일찍 출근해 줄 수 있어? 급하게 상의를 좀 할 일이 있어서 그래.

안그래도 오늘은 아침 일찍 예거 본부에 가려고 했지만, 이채윤이 먼저 이렇게 말하니 왠지 가기가 싫어졌다.

“그냥 통화로 하시죠? 아니면, 오후에 출근할 때까지 기다려 주시던가.”

-어제 네가 요구한대로 ID 카드 만들어 놨는데, 그거 빨리 받고 싶지 않나봐?

이채윤은 확실히 여우다.

김서준이 마석 때문에 균열 자유출입증을 요구했다는 걸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그거 오늘부터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거 맞죠?”

-응, 맞아. 그러니까 빨리 출근해. 1시간 내로 가능하지? B5층 보안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서둘러 줘. 아름이도 바로 출근할거니까 사무실 먼저 들러서 같이 와. 알았지?

“어휴…. 뭐, 일단.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김서준은 옷부터 갈아입고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다.

출근 준비라고 해봐야 무척이나 간소했다.

아공간이 2㎥로 늘어난 배낭 하나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각종 생존장비를 챙겨 넣었고, 그 외의 중요한 물건들은 전부 초시공 건틀릿의 아공간에 넣어 뒀다.

간단히 준비를 마친 김서준은 어머니가 차려 준 밥을 5분만에 먹어치우고 바로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나서며 어머니를 바라보니 모레 이사할 준비를 하느라 무척이나 바빠보였다.

‘이사하면 가사도우미라도 써야겠다.’

이사할 단독주택은 규모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어머니 혼자 관리하기엔 너무 컸다.

‘엄마보고 직접 구하라고 하면 분명 싫다고 하실 테니 내가 직접 고용하는게 낫겠지?’

이왕이면 집 안에서 함께 숙식할 수 있는 도우미가 좋을 것 같았다.

김서준은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SUV에 올라탄 뒤 A.I한테 자율주행을 맡기고 자신은 검색으로 도우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가사도우미를 구할 방법은 엄청나게 많았다.

개인 구직으로 올린 사람들도 많고, 직업 소개소를 통해 취직하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내용을 쭉 살피던 김서준은 그래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가사서비스를 사용하는게 가장 안전하고 믿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서준은 정부가 인증한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 필요로 하는 가사도우미에 대한 정보를 기입하고 신청서를 작성했다.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기입한 뒤 신청서를 발송하자 8시간 내로 가장 적합한 대상을 추려서 정보를 보내주겠다는 회신이 떴다.

김서준이 그러는 동안 차는 벌써 아카데미 동문쪽 주차장에 도착해 있었다.

‘자율주행이라는거 겁나 좋은데?’

요즘은 자가 운전보다 자율주행이 더 보편화 된 상황이었고, 그 편이 훨씬 더 안전했다.

차를 자율주행에 맡기게 되면 과속, 신호위반, 주차위반 등이 전혀 발생하지 않아 사고 위험도 없었다.

게다가 술을 마시면 운전석에 앉을 수 없어서 음주운전 자체가 아예 사라져 버렸다.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단 말이지.’

김서준이 이전에 살아왔던 세상에서는 아직 이 정도까지 발전하지 않았었기에 그가 느끼는 격세지감의 감정은 훨씬 더 크고 깊었다.

차에서 내린 김서준이 시간을 확인해보니 7시 32분.

이채윤과 통화를 마친 이후로 40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첫 출근인데 늦을 수야 없으니까.’

김서준은 바로 몬스터서점으로 향했고, 서점 주인이자 6호 지부의 지부장인 박연중 요원하고만 간단히 인사를 하고 바로 포탈을 사용했다.

슈아아아아악

포탈을 타자마자 순식간에 주변 풍경이 빠르게 움직이며 김서준을 예거 본부로 이동시켰다.

곧장 B5층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로 향한 김서준은 그곳에서 정아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네! 좋은 아침이에요.”

정아름이 굉장히 밝은 얼굴로 김서준을 맞이해 주었다.

“그런데, 아름 씨는 출근 시간이 엄청 빠르네요?”

“아, 저요? 집이 예거 지부와 굉장히 가까워서요. 엎어지면 코가 닿을 정도? 게다가 아침 잠이 적어서 5시면 일어나거든요. 일어나서 간단히 운동하고 씻고 밥까지 먹어도 7시가 안되니까 바로 포탈 타고 본부 오면 7시 쯤엔 도착할 수 있죠.”

김서준의 질문 하나에 대답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김서준은 정아름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기에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그동안 얼마나 사람들한테 배척을 받아왔으면 이럴까?’

정아름은 자신을 스스럼없이 대해주는 김서준이 너무 고마운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녀가 지닌 심각한 패널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굉장히 꺼려 했었다.

그녀의 속사정을 아는 넘버링 요원들 조차도 그녀가 가까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눈에 띄게 불편해 했었고.

그런 상황에서 김서준이 한 팀으로 받아 주었으며, 이처럼 반갑게 대해주니 그 기쁨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였다.

“아름 씨는 아침형 인간이었군요? 전 야행성 인간인데.”

“네? 야행성 인간요? 그런 것도 있어요?”

가벼운 농담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정아름을 보니 무척이나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웃자고 한 소리입니다. 좀 썰렁했나요? 하하….”

김서준이 뒷머리를 긁으며 어색하게 웃자,

“풉!”

정아름이 웃음을 터트렸다.

“한바탕 웃었으니 이제 가볼까요? 이채윤 선배가 도끼눈 뜨는 건 웬만하면 보고 싶질 않아서….”

“네, 가요. 그런데, 서준 씨.”

“오빠라고 부르라니까요?”

“네? 아…. 그럼, 서준 오빠. 저도 부탁 하나 할게요.”

“얼마든지요.”

“제가 동생이니까 말 편하게 하세요. 그냥 이름으로 부르셔도 되고요.”

정아름이 조금 쭈뼛거리며 하는 말에 이번엔 김서준도 웃었다.

“그래. 알았어, 아름아.”

“네, 오빠!”

그렇게 마주보며 웃던 두 사람은 더 늦어지면 안될 것 같아 발걸음을 서둘렀다.

달랑 책상 두 개만 놓인 사무실 밖을 나서던 김서준은 정아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는 중이었다.

‘어우야. 까딱 했다간 또 어깨 건드릴 뻔 했네.’

방금 전, 김서준은 정아름의 표정변화가 너무 귀여워서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두드릴 뻔 했었다.

손이 거의 어깨에 닿을 때쯤 가까스로 정아름의 패널티를 기억해낸 김서준은 화들짝 놀라 손을 움츠렸던 것.

‘조심하자, 조심해.’

김서준은 정아름의 허리춤에서 달랑거리고 있는 1.2미터 짜리 곡도를 힐끔거리며 스스로에게 다시한번 주의를 주었다.

두 사람은 예거 본부의 B5층 복도를 나란히 걸었다.

사무실 라인에서 보안실까지는 대략 300미터 거리.

김서준은 대략적인 시간을 계산해 보고는 정아름에게 한가지 사실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저기, 아름아.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네, 뭐든지 물어봐요.”

정아름은 여전히 해맑은 얼굴로 대답했다.

“너 혹시, 위로 오빠나 언니 있어?”

김서준은 정아름에게 정욱이라는 오빠가 있는 건 아닌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김서준의 질문이 나오자마자 정아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눈동자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는데, 마치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를 두고 굉장히 고민하고 있는 듯 했다.

김서준은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정아름이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그렇게 몇 초가 흘렀을 때, 정아름은 생각을 정한듯 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사실…. 오빠가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없다고 말해야 하죠.”

희한한 대답이었지만 김서준은 뭔가를 눈치챌 수 있었다.

‘설마 이쪽 세상에서는 정욱이가 벌써 죽은 건가?’

그렇지 않고서는 있다가 없다는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정아름의 말은 전혀 의외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배 다른 오빠라고 해야 하죠. 어머니가 다르니까요. 저도 오빠를 본 적은 딱 한번 밖에 없어요. 오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외도로 낳은 자식이거든요.”

“아…. 그렇구나. 미안, 내가 괜한 질문을 했네.”

“아니요. 전 그것도 저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저한테 가족에 대해 물어본 건 채윤 언니 빼고는 오빠가 처음이에요.”

“하하, 그래? 이거 참 쑥쓰럽네.”

말은 쑥쓰럽다고 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정아름이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받지 못했다는 것이니 괜히 마음 한켠이 아려오는 느낌이었다.

“오빠 어머니가 1년 전쯤 돌아가셨고, 얼마 안 있다가 저희 집으로 들어왔어요. 그런데 오빤 그날로 집을 나가버렸죠. 아버지한테 아무 도움도 받고 싶지 않다면서요.”

“아름이 아버지가 오빠를 잘 챙겨주지 못했나 보구나.”

“20년 동안 단 한번도 오빠와 오빠 어머니를 찾아가지 않았다더라고요. 저 같아도 그런 상황이라면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지 않았을 거에요.”

“그럼 지금은 오빠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

“알아요. 하지만 만날 수 없어요.”

“아버지 때문에?”

“네. 아버지도 오빠의 행동에 화가 단단히 나셨는지, 저딴 아들 없는 걸로 치겠다며 인연을 끊으셨거든요. 저보고도 만약 오빠를 만나거나 따로 연락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셨고요.”

김서준은 이제야 대충 정아름의 집안 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림계 세상에서는 자신과 동료들을 위해 목숨을 잃어야 했던 정욱이, 이쪽 세상에서는 가정 불화를 겪고 있었다.

‘그래도 살아 있으니 됐어. 조만간 찾아가마, 정욱.’

김서준은 정욱을 다시 만날 방법을 찾게 된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정아름의 집안은 대한민국에서 꽤나 유명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의 아버지인 정훈은 대한민국 최강의 길드인 북두성 길드의 부길드장이었고, 무려 S급의 헌터였으며, 정씨가문이 지닌 재력 또한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까지 모두 지닌 집안.

그게 바로 정아름의 정씨가문이었다.

‘그러고보니 안지운, 그 녀석 아버지가 북두성 길드의 길드장이었지?’

07기 동기생인 안지운도 최강 길드의 길드장 아버지라는 빵빵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명세를 따져보면 정씨가문보다 한단계 아래였다.

북두성 길드 내에서는 길드장인 안지운의 아버지가 더 높은 지위에 있다. 하지만, 헌터로서의 능력과 재력까지 모두 감안하게 되면 정씨가문이 더 높았던 것.

‘아마도 안지운과는 이미 아는 사이겠지.’

두 집안의 자식들만 봐도 실력에서부터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안지운의 마력은 270언저리.

하지만 좀 전에 확인해 본 정아름의 마력은 225였다.

안지운의 마력은 마력커버를 사용하기 전의 수치이고, 정아름은 최소 30%에서 50%의 마력커버를 사용한 이후의 수치이니 그 차이는 결코 적은게 아니었다.

‘아름이는 조금만 더 다듬으면 금방 S급까지 가겠는데?’

김서준은 정아름의 재능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아보고 있었다.

“어? 여기다.”

정아름이 복도의 어느 문 앞에서 멈춰섰다.

[보안실]

어느새 두 사람은 보안실 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들어가자.”

김서준은 보안실 문을 노크한 다음 차폐 버튼을 눌러 문을 열었다.

정아름과 함께 안으로 들어선 김서준은 안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3명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마침 잘왔다, 김서준.”

가장 먼저 이채윤이 김서준을 반겨주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제가 늦은 건 아니죠?”

“늦기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와줘서 고마워.”

“다행이네요.”

김서준은 권윤성과도 눈을 마주치며 가볍게 인사를 나눴고 마지막으로 이리나와 인사했다.

“다시 보게되서 반가운데?”

“어, 그러게. 안그래도 월요일에 봤을 때는 제대로 인사도 못해서 좀 서운했었거든.”

“그땐 뭐, 다들 바빴으니까.”

김서준은 어색하게 웃었고, 이리나는 괜히 정아름의 눈치를 보며 살짝 웃는 척만 했다.

살짝 어색한 기운이 흐르자 이채윤이 얼른 끼어들었다.

“본론부터 말하겠다, 김서준. 지금 천간십이지가 굉장히 위험한 상태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자세한 설명은 내가 해주마.”

권윤성이 바통을 이어받아 이채윤이 말한 위험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이거였다.

얼마전 김서준이 천간십이지와의 연락수단을 알려준 덕분에 한동안 서로 정보를 주고 받으며 신교단을 일망타진할 계획을 수립 중이었다고 한다.

그 계획의 첫번째가 거짓 정보를 흘려 그곳으로 신교단의 중요 인물을 특정 장소로 유인해 납치하고, 그를 이용해 신교단의 메인 서버에 침입하는 것이었다.

일단 접속만 된다면 신교단이 지금껏 행해온 수많은 범죄와 불법적인 일들에 대한 증거를 모두 찾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계획이 시행되기도 전에 모든게 물거품이 되었다.

함정을 파기 위해 현장에 나가 있던 천간십이지 조직원들이 신교단의 선제공격을 받아 전멸하고 말았던 것.

그 일로 천간십이지와 예거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천간십이지는 예거 측에서 정보가 새어 일을 망쳤다며 연락을 끊어버렸고, 단독으로 신교단을 상대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게 바로 신교단이 노리는 상황이었다.

신교단은 예거와 천간십이지의 협력구도를 깨뜨렸고, 두 조직을 함께 상대해야 하는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예거도 이를 알기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사태와 관련된 사항을 철저하게 조사했으며, 그 과정에서 천간십이지의 깊숙한 곳까지 숨어든 신교단의 첩자 세 명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어이가 없게도 그 일을 해낸 인물이 다름아닌 이리나였다.

이리나는 가장 먼저 각성 캡슐에 들어갔었고, 캡슐에 들어간지 5시간도 되지 않아 두 번째 신비를 각성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곧바로 그 신비를 사용하여 천간십이지의 첩자를 색출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럼 리나가 각성한 두 번째 신비가….?”

“네 예상대로다. 이리나 요원은 전자감식이라는 아주 독특하고 특별한 신비를 각성했다.”

권윤성은 이리나가 전자감식의 신비를 각성한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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