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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조미령은 끔찍한 고통에 신음을 흘리며 옆으로 스르륵 무너져 내렸다.
고통과 함께 최면이 풀린 그녀는 김서준을 향해 손을 들어올리다가 결국 힘없이 팔을 떨구고 말았다.
조미령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붉은색 구두 여인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눈조차 감지 못하고 그대로 숨이 끊어진 조미령과 그런 그녀를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김서준을 번갈아 돌아보던 여인.
그녀는 갑자기 무릎을 털썩 꿇고는 김서준을 향해 애원하기 시작했다.
“살려줘. 제발 살려줘! 그럼 다 말하겠다. 내가 아는 모든 걸 다 말하겠다고!”
붉은 구두의 여인은 학생에 불과한 김서준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여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이 그녀에겐 너무도 공포스러웠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겠군. 그래서…. 당신은 누구의 의뢰를 받은 거지?”
“모, 모른다.”
“그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야.”
김서준이 눈살을 찌푸리자 여인이 재빨리 다른 대답을 꺼냈다.
“내, 내이름은 윤혜정. 나이는 스물 아홉이고 프리렌서로 용병 일을 시작한 건 1년도 채 안됐다. 주로 서울 근교에 거주하고 지금까지는 납치 및 협박, 또는 물건 강탈과 같은 일을 맡아왔다!”
“뭐하자는 거지? 난 당신의 신상명세 따위는 하나도 안 궁금해.”
“모, 모든 걸 말해줄 수는 있어! 하지만, 하지만! 의뢰인에 대한 정보는 알려줄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다고! 정말이야. 날 믿어줘!”
붉은 구두의 여인 윤혜정은 결코 죽고싶지 않았기에 묻지도 않은 자신의 정보를 스스로 다 불어버렸다.
돈을 받고 생면부지인 사람의 목숨을 취하러 온 자가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마자 이처럼 간사해지다니.
김서준은 무림계에서 마주했던 악인들과 다를 바가 없는 윤혜정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타인에겐 냉혹한 살인마였지만,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한없이 자애로운 놈들이었지.’
남을 죽이는데엔 일말의 자비심도 없으면서 그 죽음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는 그 누구보다도 비굴해졌던 놈들을 떠올리자 역겨운 감정이 피어올랐다.
김서준의 웃음에 살기가 담기기 시작했다는 걸 눈치 챈 윤혜정은 가슴이 싸늘해 지는 한기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더 할 말은?”
김서준의 차가운 음성.
마치 사형수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라는 말처럼 들렸다.
윤혜정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그리고 의뢰인을 만났던 오늘 아침의 상황을 기억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그자는 검은색…. 그래, 검은색 로브를 입고 있었어! 키는, 180이 조금 안됐던 것 같아. 모, 목소리로 봐선 나이가 30대 초반 정도였고, 서울 말투를 썼는데…. 아, 맞다! 한국어가 좀 서투른 것 같았다고. 한국어를 배운 외국인? 그런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더 할 말은?”
윤혜정이 꺼낸 말들은 김서준에겐 아무 의미없는 정보였다.
김서준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은 그때, 윤혜정이 덜덜 떨다가 뭔가를 떠올린 듯 크게 소리쳤다.
“하, 한가지…. 한가지가 더 있어! 놈의 팔…. 맞아 분명 놈의 팔목에 문신이 그려져 있는 걸 봤다고. 해골바가지였나? 아니, 말이였나? 그래, 말이 맞아! 그건 분명 뿔 달린 해골마였다고!”
드디어 정보다운 정보가 하나 나왔다.
‘뿔 달린 해골마?’
김서준은 그런 문양을 어디에선가 봤던 기억이 났다.
그 기억을 좇아 기프트로 자료를 검색하던 김서준은 뿔 달린 해골마가 십대 길드 중 한 곳에서 사용하는 마크라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길드의 이름은 코리아 다크디맨션.
일명 KDD(Korea Dark Dimension) 길드였다.
길드 서열 7위에 오른 KDD 길드는 본사를 미국 LA에 두고 있는 다크디맨션의 한국 지부였고, 길드 마스터가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이 길드엔 총 12개의 레이드 팀이 존재했으며 그중 한 개 팀의 트레이드 마크가 바로 스컬 유니콘이었다.
그다지 유명한 팀이 아니라서 이를 아는 사람은 얼마 없지만, 예거에선 이런 작은 정보까지 죄다 취합한 엄청난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김서준도 그 정보를 알 수 있었던 것.
“이런 문신이었나?”
김서준이 기프트 액정 화면에 스컬 유니콘의 마크를 띄워 윤혜정에게 보여주었다.
김서준이 자신의 말에 반응을 보인것에 약간 희망이 생긴 윤혜정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화면을 바라봤다.
“맞아. 그 문양하고 똑같았어!”
“그렇군.”
이건 꽤나 중요한 정보였다.
다크디맨션 한국지부, KDD.
도대체 왜 그곳에서 윤혜정 같은 용병을 고용하여 자신을 죽이려고 한 것일까?
아니, 죽이려고 한 것은 맞을까?
그런 거대 길드가 누군가를 작정하고 죽일 생각이라면 이렇게 허술하게 처리할 리가 없었다.
이건 마치….
‘날 시험하려는 거 같잖아?’
윤혜정이라는 용병 헌터를 미끼로 쓰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용병한테 비밀의뢰를 하면서 추적이 가능한 문신을 보여줬다? 그건 너무 초보적인 실수였다.
‘나보고 자신들을 찾아 오라는 초대장이로군.’
김서준은 KDD가 왜 이런 복잡한 방법으로 자신을 부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가지는 확실했다.
‘니들 사람 잘못건드렸어.’
김서준은 이쪽 세계에서는 최대한 조용하고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가급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고, 가족까지 위험에 빠뜨리려는 상대까지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김서준은 은원이 확실한 성격이었고, 특히 가족과 친구를 건드리는 자에겐 무슨 수를 써서든 복수한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몇이나 죽였지?”
김서준이 윤혜정에게 조용히 물었다. 깜작 놀란 윤혜정은 눈동자를 이리 저리 굴리다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아, 아직 한명도 죽인적 없어. 거짓말…. 아니야!”
윤혜정이 진짜라는 듯 눈에 눈물까지 그렁거리며 말하자 김서준은 옆에 죽어있는 조미령의 가슴에서 검조각을 스윽 뽑아냈다.
“한명도 죽인적이 없다?”
피에 묻은 검 조각을 손에 쥔 모습에 윤혜정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저, 저…..정말이야. 사실이라ㄱ….!”
푸욱
김서준이 손에 쥔 검조각을 윤혜정의 가슴팍에 박아 넣었다.
“커흑!”
가슴을 움켜쥐며 김서준을 노려보는 윤혜정.
그녀의 눈빛엔 어째서 자신을 죽이냐는 의혹이 가득 담겨있었다.
김서준은 그런 윤혜정에게 차갑게 한 마디를 해 주었다.
“입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몸에 베인 향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
김서준은 윤혜정이 이미 수없이 많은 인명을 해쳐다는 걸 간파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베인 비릿한 혈향.
이 정도로 짙고 강한 혈향이 몸에 베려면 최소 백 단위 이상은 사람을 죽여야 한다.
김서준은 무림계에서 이미 수백의 목숨을 취한 과거가 있었기에 누구보다 혈향에 익숙했다.
“이…. 이런 시발….”
윤혜정은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떨궜다.
김서준은 윤혜정의 시신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이 짓을 또 해야 하다니….’
김서준이 지금 보고 있는 건 윤혜정이 아니라 그녀의 심장에서 반짝이고 있는 인디고급의 마석 때문이었다.
아까 심안을 사용했을 때부터 윤혜정의 심장에서는 마석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자신을 죽이려 했었고, 이미 수많은 인명을 해치며 살아온 윤혜정이기에 고민없이 목숨을 취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심장을 헤집어 마석을 꺼내려니 마음이 좀 불편했다.
이형모, 이한수 형제의 시체에서 마석을 찾아낼 때에도 그랬지만, 또 다시 인간의 심장을 헤집으려니 영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도 해야겠지.’
김서준은 이것 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점점 자신을 노리는 적들이 늘어나고 있는데다가 워머신의 흔적까지 발견한 이상 이런 일을 놓고 미적거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촤악
김서준은 윤혜정의 심장을 갈랐고, 그 안에서 선명한 남색의 마석을 찾아낼 수 있었다.
마석은 선명한 인디고 칼라를 지니고 있었다.
‘과연 이 마석을 흡수하면 그때처럼 새로운 신비를 획득할 수 있을까?’
예전에 김서준은 투시안이라는 신비를 지닌 이한수를 죽이고 마석을 얻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마석을 흡수하여 ‘심안’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때의 경험을 비춰본다면, 인간이 지닌 마석을 다른 인간이 흡수하면 유사한 형태의 신비를 새로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온다.
김서준은 윤혜정이 사용하던 신비를 떠올렸다.
손가락으로 가리켜 어느 한 지점에 공간을 잡아먹는 구체를 형성하는 신비.
어찌보면 염동장막의 신비 버전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볼 수 있었다.
‘신비가 늘어나서 나쁠 건 없으니까.’
김서준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조미령, 유혜정의 시신을 아공간 속에 넣어 버렸다.
바닥에 흘러내린 핏물까지 샤워기로 깨끗이 씻어내버리니 두 사람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흔적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고태환. 당신만큼은 결코 가만히 두지 않겠어.’
김서준은 이를 뿌드득 갈고는 지하 수련장을 벗어났다.
1층 거실에 올라가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꽤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유령이라 불리는 헌터 감찰국 소속의 하위 요원들로, 유령의 작전때문에 발생한 생긴 민간의 피해를 최대한 빠르게 복구해 주는 일을 맡고 있었다.
덕분에 부서진 통유리와 집안 가구들은 순식간에 새것으로 교체될 수 있었다.
“범인들은 어떻게 됐지?”
김서준을 보자마자 최다미가 질문을 던졌다.
“도망쳤습니다.”
“뭐!”
최다미가 깜짝 놀라며 소리치자 김서준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빼는 실력은 아주 기가 막히더라고요.”
“정말 놓친거 확실해?”
최다미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설마 이 어린 학생이 두 범인을 죽여버리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너무 쉽게 범인을 놓쳐버린 것 같아 의심이 들었다.
“제가 뭐하러 거짓말을 해요.”
“뭐, 그렇긴 하다만…. 배후가 누군지는 알아냈고?”
“전혀요. 마력 제어를 풀어주면 말하겠다고 해서 그대로 해 줬더니 바로 달아나 버렸거든요.”
김서준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뒷머리를 긁으며 자신이 실수했다는 표정을 짓는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내가 처리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미안해 지네.”
최다미는 부상 회복을 위해 움직일 수가 없었고, 그로 인해 범인들을 놓치게 되었다며 오히려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제 어떡하실 거에요?”
“이미 국장님하고는 통화를 끝냈다. 한동안은 내가 너희 집에 머물면서 위험 요소가 더 없는지 살피기로 했어.”
“그럼 저희 집으로 출퇴근 하게 되는 건가요?”
“그렇지. 집도 근처라 어려울 건 없다.”
최다미의 말에 김서준은 뭔가를 잠시 생각하더니 돌연 눈을 빛냈다.
“그냥 저희 집에서 함께 살래요?”
갑작스런 말에 최다미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같이 살아? 갑자기 그게 무슨….”
“요원님이 퇴근하고 나면 어머니가 위험해 질 것 같아서요.”
“그건 너무 걱정 마. 내가 국장님한테 말씀드려서 너희 집 근처에 요원들 배치해 달라고 할 테니까.”
“그거 쉽지 않을 거에요.”
“응?”
최다미가 무슨 소리냐는 뜻으로 똑바로 쳐다보자 김서준이 옆에서 모든 이야기를 함께 듣고 있던 백연지에게 양해를 구했다.
“엄마. 저 이분이랑 잠깐 이야기좀 하고 올게요.”
“어, 그래. 알았다. 엄마는 걱정말고 알아서 하렴.”
백연지는 아직도 놀라움이 진정되지 않은 얼굴이었다.
김서준은 상처가 거의 회복된 최다미를 데리고 거실 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다미 요원님.”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분위기를 잡니?”
“요원님 나이 많으시죠? 한…. 30대 중후반?”
갑작스런 나이 타령에 최다미가 당황했는지 살짝 움찔했다.
“크흠. 학생이 눈썰미가 좋네. 다들 30대 초반으로 보던데…. 맞아. 올해 서른 아홉이다.”
김서준은 최다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흐름을 보고 그녀의 나이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냥 보기엔 30대 초중반이었지만 마력에 담긴 활력 수준을 보면 나이를 속일 수 없었다.
“유령에서 그 정도 나이면 팀장급, 아니면 책임자급 아닌가요? 그런데 아직까지 현장 요원으로 뛰시는 걸 보니….”
김서준은 말끝을 살짝 흐렸다.
그 말에 최다미는 씁쓸하게 웃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맞아. 이 나이먹고 현장 요원으로 뛰고 있다는 건, 내 능력이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야.”
“이번 임무도 억지로 떠맡겨진 거죠? 유령 같은 강력한 헌터 조직이 저 같은 학생 가족을 보호하겠다고 핵심적인 유령 요원을 파견하진 않았을 테니까요.”
너무도 적나라한 말에 최다미는 또 다시 움찔했다.
하지만 김서준의 말은 틀린게 하나도 없었다.
유령의 국장 이상철은 친한 친구인 장범수 국장의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장 쓸모가 없는 하위급 유령 요원을 파견한 것이었으니까.
최다미는 실력이나 마력수치로 봤을 때, 유령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가 여전히 유령의 요원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건, 그녀의 남편이 꽤나 유명한 유령 중 한명이었기 때문.
유령 13호 남진호.
최다미의 남편이면서 유령의 최강 요원 중 하나였던 그는 1년 전 임무 수행 중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그의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어 DNA를 분석해 그가 남진호라는 걸 간신히 알아낼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최다미는 유령에서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남진호의 후광으로 유령의 요원이 되었지만, 그녀의 능력은 유령 요원으로서의 커트라인에도 미치지 못했으니까.
나이도 많은데다가 자식까지 있어서 위험한 임무에는 투입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최소한의 복지 혜택을 받으며 억지로 유령에 붙어 삶을 이어가고 있던 최다미.
그런 그녀에게 모처럼 주어진 임무가 바로 김서준과 그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잘 아네. 난 핵심 요원하고는 거리가 상당히 멀거든. 하지만 난 이 임무를 절대 가볍게 보지 않는다. 내 목숨을 다해서 너와 네 가족을 지킬 거야. 그러니 믿어 보렴.”
“그래서 말씀드리는 거에요. 요원님이 없는 저녁 시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여기서 함께 살자는 거죠. 아예 저녁 시간은 저한테 고용되는 형태로 하는게 어때요? 따로 월급도 지급해 드릴게요.”
김서준은 좀 더 적극적으로 최다미를 끌어들이고자 했다.
최다미가 유령 요원이라는 건 신분이 확실하다는 의미였고, 그녀의 마력수치도 183에 달하고 있어서 결코 약한 것도 아니다.
아까도 목숨을 걸고 자신과 어머니를 구해주고자 했으니 이 정도면 백연지 여사를 가까이에서 지켜줄 자격은 충분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