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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심강림(A)]
-분심체를 10분동안 강림시킨다.
-본체가 각성한 신비 중 하나를 사용할 수 있다.
-분심체 마력: 350
김서준의 머릿속으로 스며든 분심강림 스킬의 정보였다.
‘마력 350짜리 분심체를 강림시킨다?’
언뜻 보기엔 헌터들이 각성할 때, 종종 획득한다는 강림술 계열의 신비와 비슷했다.
자신의 몸에 특수한 영혼을 강림시켜 평소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신비가 바로 강림술이었으니까.
하지만 분심강림 스킬의 정보에 나온 ‘분심체’라는 단어를 보면 단순히 자신의 몸에 다른 영혼을 강림시키는 형태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게 만약 내가 예상하는 그런 거면 대박인데?’
김서준은 혹시나 싶어 우기와 치호를 한쪽으로 비켜나게 한 다음 방 한쪽 구석에 서서 조심스레 스킬을 흡수했다.
쓰아아아아아아
마력을 일으키자 스킬석에 새겨진 특수 글자들이 손을 따라 빨려들어왔고, 심장 근처를 휘돌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글자가 사라진 스킬석은 퍽 소리를 내며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김서준은 바로 자신의 능력치 정보를 살폈고, 하단부에 ‘분심강림(A)’라는 스킬이 새로 생겨나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분심강림.”
네 글자가 또박또박 뱉어진 순간,
퍼엉
2미터 앞 빈 공간에 갈색 나무 재질의 구체가 짠 하고 나타났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구체가 아니다.
그건 여러 개의 나무토막으로 이루어진 인형이었다.
몸을 둥글게 말고 있던 인형은 갑자기 온몸을 활짝 펼치며 두 다리로 꼿꼿하게 섰다.
키는 김서준과 똑같았고 얼굴엔 파란 광채를 내는 눈과 피노키오를 닮은 길쭉한 코를 달고 있었다.
입이 없는 것으로 보아 말은 못할 것 같았다.
녀석은 온몸이 나무토막이었지만 양 손만 쇠구슬로 되어 있었다.
생김새가 ‘흑권’이라는 게임에 나오는 어느 캐릭터와 무척이나 흡사해 보였다.
‘대박!’
김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때, 김서준의 머릿속에 선택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분심체의 이름을 정해주세요.
‘이름도 정해줘야 하는 건가?’
잠시 고민하던 김서준은 그냥 쉽게 가기로 하고 바로 이름을 정했다.
“넌 이제부터 부우(Boo)다.”
나무토막(Block of Wood)의 영어식 문장에서 몇글자만 따온 이름이었다.
‘아름이 작명실력 가지고 뭐라할 게 아니었네….’
작명에 재능이 없는 건 정아름이나 자신이나 비슷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김서준은 훌륭한 이름을 지었다고 자기최면을 걸면서 심안으로 부우의 능력치를 확인해 봤다.
[350/노멀/수라극섬]
‘오? 이 녀석 수라극섬을 사용할 수 있는 거야?’
정보 상으로는 본체가 각성한 신비 중 하나를 사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아마도 등장과 동시에 랜덤하게 하나가 이미 정해진 모양이었다.
‘소환할 때마다 사용할 수 있는 신비가 달라지면 곤란한데….’
김서준은 그런 생각을 하며 부우의 이곳 저곳을 자세히 살폈다.
겉보기엔 나무재질이었지만 손으로 두드려보니 철판 이상으로 단단했다.
또한 관절부위가 전부 디테일하게 구현되어 있어서 움직임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였다. 다만,
‘손가락이 없으니 뭘 잡을 수가 없잖아?’
김서준이 쇠구슬처럼 생긴 부우의 뭉툭한 손을 살피는 그때였다.
스르륵
동그란 쇠구슬 손이 형태를 바꾸더니 손가락이 생겨났다. 그리고는 김서준을 향해 브이자를 그려보였다.
“오, 괜찮은데?”
이것으로 물건을 잡지 못할 일은 없어졌다.
“내 말도 알아들을 수 있는 거지?”
끄덕
부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서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네가 사용할 수 있는 신비는 랜덤이고?”
끄덕
“그건 참 아쉽네.”
김서준이 아쉬운 표정을 짓자 부우가 손으로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그 행동이 꼭 살아있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 헛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알았으니까 이왕 나온거 저 두 녀석이랑 놀아주다가 시간 되면 알아서 들어가라.”
부우의 소환 가능 시간은 10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끄덕
김서준의 말귀를 정확히 알아들은 부우는 구석에서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우기와 치호한테 성큼 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두 녀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우기와 치호 모두 부우의 팔을 타고 올라가더니 어깨와 머리 위에서 신나게 뛰어놀기 시작했다.
부우는 마치 나무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팔을 벌리고 캣타워처럼 우뚝 서서는 우기와 치호가 마음껏 놀수 있게 해 주었다.
‘착하네. 쓸데없이.’
주로 전투 시에 소환해 사용할 녀석이 너무 착해보여서 살짝 걱정이 된다.
그래도 전투 땐 달라지겠지라고 생각하며 김서준은 마지막 할 일을 하기로 했다.
다시 침대 위로 올라선 김서준.
그의 손엔 청홍색의 오드마석이 쥐어져 있었다.
[오드마석-청홍]
-청색과 홍색이 뒤섞인 오드 마석이다.
-인간이 흡수할 경우, 99%의 확률로 사망한다.
-마석을 심어 마력물질에 특별한 능력을 개화시킨다.
심안으로 살펴본 청홍의 오드마석의 정보는 솔직히 놀라웠다.
인간이 흡수할 수 없는 마석이며, 유니온 코어처럼 물질에 마석을 심어서 능력을 개화시킬 수 있다니.
당장이라도 적당한 아티팩트 하나를 골라서 오드마석을 심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유니온 코어처럼 계속 사용할 수 있는게 아니라 1회용이라 한번 사용하면 사라지고 만다.
그러니 사용에 있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김서준은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들을 꺼내놓고 다시한번 쭉 살펴봤다.
차단용 붕대, 운명의 주사위, 아이지라의 송곳니, 사슬낫, 헤븐스 도어, 봉합의 바늘, 회복의 잔, 음성 카피 밴드, 아론다이트, 클로킹 마스크, 초시공 건틀릿, 희망으로의 회귀.
총 12개나 되는 아티팩트들.
이중 오드마석으로 특별한 능력을 개화시킬 수 있을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를 곰곰히 따져보니 몇 가지를 추려낼 수 있었다.
오드마석을 심었을 때, 훌륭한 능력이 개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아티팩트는 다섯 가지 정도였다.
아이지라의 송곳니와 사슬낫, 헤븐스 도어, 아론다이트, 그리고 초시공 건틀릿이었다.
하지만 이중에서 아이지라의 송곳니는 기본 능력 자체가 상당히 구리기 때문에 굳이 오드마석을 소모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제외했고, 헤븐스 도어도 비슷한 맥락으로 제외해 버렸다.
남는 건 사슬낫, 아론다이트, 초시공 건틀릿 이 세가지 뿐.
셋 모두 현 상태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아티팩트이기 때문에 새로운 능력이 개화되면 더욱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될 것이 거의 확실시 됐다.
‘셋 중에 뭐로 할지는 좀 더 고민해 보자.’
김서준은 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모든 아티팩트들을 아공간에 쓸어 담은 후, 인디고급 마석과 블루급 마석 1개만 남겼다.
‘이건 지금 먹는게 나을까, 아니면 만일에 대비해 비축해 놓는 게 좋을까?’
이 두 개의 마석을 내공을 사용해 흡수하게 되면 마력과 내공 수치가 120씩 상승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마력수치가 천을 넘긴 상황이라 당장 마석을 흡수해 마력이나 내공을 높여야 할 정도로 급한 건 아니었다.
‘일단 예비로 가지고 있자.’
지금은 그게 맞는 선택이었다.
김서준에게 마석은 여러모로 쓸데가 많았다.
직접 흡수해서 능력치를 올린다거나, 우기와 치호에게 먹여서 더욱 강하게 성장시킬 수도 있으며, 특수한 아티팩트에 먹이처럼 주는 것도 가능했다.
게다가 생각지 못한 특수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블루급 이상은 비축해 두는 게 이득이었다.
‘하…. 오늘도 하루가 참 길구나.’
아침 일찍 출근해서 11시가 넘어가는 지금까지 거의 쉴틈이 없이 바빴다.
김서준은 아직도 우기와 치호를 데리고 즐겁게 놀아주고 있는 부우를 슬쩍 바라보고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리고 두 팔로 팔배개를 한 채로 천장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드디어 개강이구나….’
김서준은 아카데미에서 한세아를 계속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설레였다.
하지만 한세아의 가문을 암암리에 장악하고 있는 미지의 세력을 생각하자 걱정이 앞선다.
‘분명 세아를 감시하는 놈들이 있을테지.’
만약 놈들이 한세아에게 어떤 해코지라도 하려 든다면 김서준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생각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놈들의 뒤를 캐봐야 겠어.’
한두호 회장의 집무실에서 모습을 숨기고 있었던 롭을 떠올렸다.
‘롭이 속한 길드가 대체 어디일…. 어? 잠깐.’
김서준이 뭔가에 깜짝 놀란듯 눈을 크게 떴다.
‘롭이 외국계 길드 소속이라고 생각했으면서 왜 다크디맨션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지? 이런 바보 같은 놈을 봤나!’
롭이라는 인물과 용병에게 의뢰를 한 외국계 길드인 다크디맨션.
이 두 가지를 연결해 보니 굉장히 쉽게 답이 나온다.
‘롭…. 그 자가 다크디맨션 소속이라면 전부 앞뒤가 들어맞잖아?’
안그래도 롭은 한두호 회장에게 자신의 뒤를 캐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러니 윤혜정에게 의뢰를 한 장본인이 롭일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내일 예거에 출근하면 조사할게 많겠구나.’
김서준은 가이아닉스와 다크디맨션에 대해 최대한 자세한 정보를 찾아보기로 했다.
물론, 퇴근 후에는 고태환을 찾아가 오늘 발생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워줄 할 계획이었다.
‘일단은 자자.’
김서준은 그렇게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아침부터 아카데미가 시끌시끌했다.
그건 아카데미 동쪽 주차장에 세워진 한대의 SUV 차량 때문이었다.
주차장엔 엄청난 차가 한대 세워져 있었다.
차의 브랜드가 퓨리오스사라는 것도 놀랍지만, 그 차가 최신형으로 출시된 HTF(하이브리드 트랜스포매이션)인데다가 방탄기능과 완전 자율주행 기능까지 지닌 SUV였기에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그 차의 주인이 1학년의 김서준이라나는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에 이르게 만들었다.
아카데미에서 김서준의 이미지는 1학기 전반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김서준 본인만 스스로가 아싸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 아카데미 내에서는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핵인싸가 되어 있었다.
반의 가장 큰 골칫덩이이자 김서준을 괴롭히는데 가장 앞장 섰었던 고한석이 뽕쟁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나락으로 떨어진 이후, 김서준은 말 그대로 떠오르는 스타가 되었다.
그렇게 되는데에는 아카데미 토너먼트에서 준우승에 오르기까지 보여준 인상깊은 모습들이 크게 한몫 했다.
그래서 어딜가든 학생들의 관심을 받게된 상황인데,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엄청난 차를 타고 등장함으로써 더욱 큰 이슈몰이를 하고 있었다.
“어머, 어머. 도대체 방학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전보다 배는 더 잘생겨진 것 같아!”
“지금 생긴게 문제가 아니잖아? 저 녀석이 타고 온 차가 얼마짜린지 알고나 있냐?”
“대충 5억은 넘는 것 같던데.”
“딱 봐도 풀옵이야, 풀옵. 그럼 최소가 6억이라고!”
“집이 얼마나 잘 살길래?”
“아버지도 각성자라던데? 현무 길드 헌터라고 들었어.’
“얼굴도 잘생겨, 집도 잘 살아, 각성자로서 실력도 좋아. 대체 부족한게 뭐야, 저 녀석?”
“근데 잘생기긴 정말 잘생겼다.”
김서준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는 학생들은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김서준의 친구이자 핵폭탄급 아싸인 주광식이 등장하자 쑥덕거림은 빠르게 사라졌다.
“야, 김서준! 넌 새꺄, 차를 샀으면 형한테 말을 해야지!”
“내가 차 사는데 너한테 허락도 맡아야 하냐?”
“인마, 시승식! 그리고 무사고를 기원하는 고사도 좀 지내야 하고 말이야, 응! 그런 의미에서 점심 먹고 드라이브 콜?”
오늘은 2학기 개강일이라서 정식 수업은 없고 앞으로의 커리큘럼과 학교 행사 일정을 소개하고 학생 전원에게 레드마석을 지급하는 것으로 일과가 끝난다.
“나 앞으로 평일엔 너랑 못 놀아준다.”
“엉? 그건 또 뭔 강아지 풀뜯어 먹는 소리?”
“알바 잡았거든.”
“하, 이 자식 보게. 퓨리오스사의 HTF를 떡하니 구매하는 놈이 알바는 왜 하는데?”
“아까 그 차 중고로 나온 거 직원 할인 받아서 아버지가 싸게 구매하신 거야.”
“그게 중고라고? 내 눈엔 완전 새 차로 보이던데? 게다가 아무리 중고라도 1, 2억은 할 거 아니야? 아무튼, 무슨 알반데?”
주광식은 다른 것보다 김서준이 무슨 알바를 하는 것인지에 꽂혀 있었다.
“고대서적 정리.”
“….엥? 뭔 정리?”
김서준은 당황해 하는 주광식에게 자신이 몬스터서점에 알바생으로 취직했고, 그곳 지하에 있는 엄청 거대한 창고에 들어가서 수만권에 달하는 고서적을 종류별로 분류하는 일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최소한 하루 4시간은 소요되는 일이며,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해서 알바 시간 중에는 개인 폰도 볼 수 없으고 연락도 잘 안될거라는 걸 구구절절 알려주었다.
“와, 근데 그 서점 지하에 그렇게나 많은 고서적이 숨겨져 있었다고? 놀랄 노자네. 거기 남는 자리 없냐? 나도 이 참에 알바나 한번 해 보게.”
“없어. 딱 한자리 있는 거 나한테 준거라….”
“쓰읍. 알았다, 알았어. 첫 월급타면 한턱 쏘고.”
“왜 만날 나만 쏘냐? 넌 안 쏴?”
“뭔 소리셔? 이 형은 첫 만남에 이미 거하게 쏴잖아?”
“그건 우리 엄마한테 쏜 거지 나한테 쏜 게 아니지 않나?”
“허어, 이 불효자식 좀 보게? 널 낳아주신 어머니한테 한턱 쐈으면 자식으로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는 못할 망정!”
“어? 세아다.”
김서준이 갑자기 꺼낸 말에 주광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아? 어디, 어디?”
“아닌가?”
김서준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강의실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야, 이 스버럴 놈아!”
주광식이 그런 김서준을 뒤에서 덮치려 했지만, 교묘한 발놀림에 헛탕을 치고 말았다. 그 덕에 주광식은 혼자 강의실 안으로 뛰쳐 들어가 휘청거리는 쇼를 보여줬다.
이미 강의실 안에 들어가 있던 학생들은 주광식이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킥킥대며 웃기 시작했다.
잠시 후 모든 학생이 자리에 앉았을 때, 강의실 왼쪽 문이 열리더니 심재덕 교수가 조교수 두 명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들 만이 아니었다.
그 뒤를 따라 세 명의 여학생이 따라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이 들어서자 강의실 전체가 엄청난 후광으로 밝게 물들여졌다. 강의실은 순식간에 고요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 대부분을 가린 작은 여학생은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두 여학생의 미모가 실로 어마어마했다.
한명 한명이 거의 탈인간급 수준.
더욱 놀라운건 세명 모두 김서준이 잘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마스크를 한 여학생까지 포함해서.
‘쟤들이 왜 저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