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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준은 네비를 확인해 집까지 얼마나 걸릴지를 확인했다.
금요일이라 교통량이 많은지 평소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려서 30분 후에나 도착이 가능한 걸로 나왔다.
‘아티팩트 각성시킬 시간으로 딱이네.’
지난 밤, 김서준은 어떤 아티팩트를 각성시킬지 미리 생각을 해 두었다.
더 이상 유니온 코어로 각성시킬 수 없는 것과 아예 각성을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제외한다면 남는 건 딱 다섯 가지.
아이지라의 날카로운 송곳니와 운명의 주사위, 거기다 성마의 참격도(S)에 초시공 건틀릿(SS), 마지막으로 격발(B) 스킬이 새겨져 있는 스킬석까지였다.
‘우선 등급이 높은 것부터.’
등급이 높을수록 각성에 소모되는 코어의 마력이 크기 때문에 낮은 것부터 각성시켰다가는 또 다시 동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컸다.
김서준은 아공간에서 아론다이트를 먼저 꺼내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초시공 건틀릿(SS)부터 각성을 시도하는게 맞지만, 지금 초시공 건틀릿의 아공간 안에는 두 구의 시체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각성을 시도했다간 여기서 시체가 밖으로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때문에 초시공 건틀릿은 시체부터 처리한 다음에 각성시키기로 했다.
간만에 꺼내든 아론다이트는 여전히 듬직하게 멋진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김서준은 우선 심안을 사용해 아론다이트의 정보를 재확인 했다.
[성마의 참격도(S)]
-아론다이트에서 진화한 전설의 무기이다.
-몬스터를 상대할 경우, 살상력이 30% 상승한다.
-인간을 상대할 경우, 파괴력이 20% 상승한다.
-핵심 능력이 봉인되어 있다.
-히든피스: 마력 1천을 쏟아부으면 봉인이 풀린다.
-각성 종료
신비 심안의 숙련도가 20%에 오르면서 성마의 참격도가 지닌 히든피스도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마력을 쏟아부어 봉인을 푸는 조치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력 1천을 한번에 소모했다가 다시 풀로 채우려면 최소 24시간은 걸리기 때문.
그래서 이번 주말에 집에 있으면서 히든피스를 해결할 계획이었다.
‘각성 종료라고 표시가 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김서준은 유니온 코어를 아론다이트의 손잡이 쪽으로 힘껏 때려박았다.
터엉
코어를 쥔 손이 위로 확 튕겨졌다.
‘젠장.’
역시나 코어가 심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경고 문구까지 떴다.
>>봉인을 풀기 전까지는 각성이 불가능합니다.
‘어, 뭐야? 그럼 봉인을 풀면 추가로 각성이 가능하다는 거잖아?’
시험삼아 코어를 심어보길 잘했다.
김서준은 아론다이트의 2차 각성은 주말에 진행하기로 하고 다시 아공간에 집어 넣었다.
이번엔 스킬석 각성에 도전할 차례.
왼손에 격발(B)가 새겨진 스킬석을 쥐고 오른손에 쥔 코어를 힘껏 내리쳤다. 순간, 스으윽
튕겨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코어는 스킬석에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격발(B)]
-각성 중…. 4%
각성 속도는 생각보다 느렸다.
대충 계산해 보니 5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퇴근해서 집에 올 때나 끝나겠네.’
김서준은 조급해 하지 않고 각성중인 스킬석을 아공간 속에 집어 넣었다.
처음엔 아공간에 넣으면 각성이 중단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 있었지만, 시험해 본 결과 아공간에 넣어도 각성은 문제없이 진행되었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차는 어느새 집 주차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바로 가방을 둘러멘 김서준은 지하 주차장 밖으로 나와 집을 둘러봤다.
집 담벼락과 안쪽에선 보안시스템 회사 사람들이 열심히 뭔가를 설치하고 있었다.
지난 밤 김서준이 고민 고민해서 설계한 내용에 따라 침입자를 감시하면서 무단 침입에 대한 차단까지 가능한 기계와 무기들이 설치되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무슨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까지는 아니었고, 경고 사격이나 기절 정도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물론 설치되는 기계와 이를 제어하는 시스템은 최첨단으로 최소 B급 수준의 각성자까지는 차단이 가능했으며, A급 각성자는 침입을 방해할 정도는 되었다.
김서준은 침입이 가능한 방법 및 동선을 모두 체크하여 보안시스템 회사에 전달한 상태였다.
‘같은 일을 또 당할 수는 없으니까.’
이 시스템 설치로 거의 5억에 가까운 비용이 들었지만, 가족의 안전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에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김서준은 공사를 맡은 분들께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고는 가뿐한 마음으로 다시 아카데미로 향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배낭의 주머니에 넣어 둔 우기와 치호가 하루종일 조용했다.
잠이라도 자는 건지, 아니면 이제야 주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얌전히 있기로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방해가 없어 다행이었다.
***
김서준은 몬스터서점의 포탈을 타고 바로 예거 본사로 향했다.
원래는 오후 2시까지 출근하기로 했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 1시 30분에 자신의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안 왔나?’
사무실은 텅 비어있었다.
12평이나 되는 큰 사무실에 책상이 달랑 두 개만 놓여 있고, 나머진 쇼파로 채워져 있어서 굉장히 휑 한 느낌이었지만, 김서준은 이곳이 자신의 사무실이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애착이 가고 있었다.
‘일단 정보 검색부터 해 볼까?’
김서준은 책상에 앉았고, 컴퓨터를 사용해 예거 시스템에 접속했다.
김서준의 보안 등급은 장범수 국장과 동급이기 때문에 접근이 불가능한 정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김서준이 가장 먼저 검색한 건 ‘가이아닉스’ 로봇 개발 회사에 관한 내용이었다.
가이아닉스.
이 회사는 약 25년 전 윤필중이라는 천재 과학자가 설립한 연구소에 가까운 비영리조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의 가이아닉스는 최첨단 인공지능 기술을 깊게 파고들어 인간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 시키고, 인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인도주의적 회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설립 후 10년이 지났을 때, 회사는 경영란에 빠져 문을 닫을 위기에 빠지게 되었고 창립자인 윤필중은 회사의 존립을 위해 평소 평판이 좋았던 금융권 회사에 가이아닉스를 매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엔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가이아닉스를 매입한 금융권 회사가 알고보니 중국의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세워진 것이었고, 중국과의 협업을 절대 원하지 않던 윤필중을 다른 회사 이름으로 속인 상황이었다.
이를 뒤늦게 알게된 윤필중은 매각을 취소하려 하였으나 이미 서류적인 처리가 끝난 상황이었기에 되돌리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가이아닉스는 중국자본에 삼켜졌고, CEO 또한 화교 출신의 미국인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CEO의 이름은 레인버드.
2034년 현재까지도 가이아닉스를 이끄는 사람은 레인버드였다.
가이아닉스에서 개발한 봉사로봇 GX시리즈는 새로운 버전이 나올 때마다 매번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생체 의수와 의족을 개발하여 장애우들의 행복한 삶까지 챙겨주고 있어 굉장히 우호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 덕에 중국 자본으로 이루어진 회사임에도 한국에서 안전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물론 거기엔 윤필중이라는 천재 과학자가 최초 설립자라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했다.
현재는 소방관이나 911 구조대원들을 도울 수 있는 구조로봇도 개발 중이었고, 시민들의 건강을 유지시키기 위한 건강용 악세서리까지 판매를 시작해 큰 호응을 얻고 있었다.
이 가이아닉스의 본사는 경기도 분당에 위치해 있는 걸로 되어 있지만, 예거의 시스템 정보에선 진짜 본사는 상해에 있는 ‘GNX퓨처사’가 본사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윤필중 박사라….’
한때 천재 과학자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버린 비운의 인물.
예거의 시스템 정보에도 윤필중의 행적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가이아닉스의 지방 연구소에에 쳐박혀서 조용히 본인의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을 거라는 정도가 다였다.
‘결국 워머신을 만든건 중국 자본이라는 소리네.’
괜히 씁쓸했다.
무림계 세상에서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한 워머신을 가이아닉스가 만들었고, 그 가이아닉스를 뒤에서 조종한게 중국이라는 말이니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되면 연구소를 찾아가 봐야겠구나.’
가이아닉스가 운영하고 있는 연구소는 총 세 곳.
적어도 그중 한 곳에서는 워머신이 만들어지고 있을게 분명했다.
김서준은 가이아닉스에 대한 정보를 치우고 바로 다크디맨션 길드에 관한 정보를 살폈다.
이 다크디맨션 길드에 대해선 웬만큼 정보가 뿌려져 있어서 이미 김서준도 대충은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한국에 있는 다크디맨션은 KDD(코리아 다크디맨션)로 불리며, 실제 본부는 미국의 뉴욕에 위치하고 있다던가, 매년 뉴욕 본부에서 헌터들을 파견해 한국 지부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다는 등의 정보였다.
현 KDD의 길드 마스터는 ‘드록 실바’로 S급 마력에 A급 신비를 각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KDD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헌터는 이안이라는 인물이었는데, 실제로 이안은 한국계 미국인이었고 스텔론이라는 별도의 성까지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이 KDD는 대한민국 10대 길드 중 당당히 7위에 오른 길드였고, 평판도 그리 나쁘지 않아 아카데미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예거 시스템의 정보 상 다크디맨션은 2급 경계 대상에 속했다.
예거에서 다크디맨션의 배경에 히어로 브라이트 가문이 버티고 있다는 정황근거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예거는 세계 십대가문 모두를 철저히 감시 중에 있었고, 그중 몇몇 가문이 굉장히 의심스런 행보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상위 4대 가문의 뒤를 캐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리치 로스차일드 가문과 홀리 록펠러 가문, 그리고 히어로 브라이트 가문, 마지막으로 다크 티엔 가문까지.
이 네 개의 가문에 대한 정보는 1급으로 분류되어 있을 정도로 예거에서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때문에 아무리 김서준이 최고 보안등급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 네 가문에 대한 디테일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장범수 국장의 결재를 맡아야 했다.
‘국장님하고 완전히 똑 같은 보안등급이라더니 애매하게 한 단계 아래 등급을 줬네. 얄밉게.’
김서준은 모니터 화면에 떠오른 워닝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바로 정보 관람을 위한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그 신청서를 장범수 국장 앞으로 발송했다.
‘늦어도 월요일에는 결재가 떨어지겠지.’
김서준은 다크디맨션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살펴봤지만, ‘롭’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최소한 간부급 인물일텐데….’
다크디맨션의 한국지부와 뉴욕본사를 다 뒤져봐도 비슷한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다.
“끄응….”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 졌다.
한두호 회장을 협박하는 롭과 그가 속한 무리가 다크디맨션이 분명해 보이는데 예거의 정보만으로는 증거를 찾을 수가 없으니 답답한 심정이었다.
‘결국 내 발로 직접 뛰어야 한다는 소리네.’
지금 당장은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있으니 최소한 두 주 정도 시간을 두고 다크디맨션 한국 지부의 비밀을 깊숙히 캐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때쯤 되면 한세아나 자신을 감시하는 롭의 수하들도 긴장이 풀어질테니 뒤를 밟기가 한결 쉬워지리라.
김서준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세 사람이 들어왔다.
“뭐야, 김서준 요원. 생각보다 빨리 왔네?”
이채윤이 살짝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하자 앞장 서서 들어온 정아름이 입을 살짝 거리며 웃었다.
“거봐요. 서준 오빠는 약속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어머, 정아름 너 뭐니? 왜 이간질인데? 내가 언제 김서준이 약속 안지킨다고 했어? 그냥, 2시에 칼같이 맞춰서 올거 같다고 했지.”
“채윤 언니야말로 왜 말 바꿔요? 저한테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고요. 김서준이 2시 전에 출근하면 커피 쏜다! 이렇게요.”
정아름이 이채윤을 흉내내며 하는 말에 김서준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턱을 살짝 쳐들고 눈을 내리깔며 고압적인 자세로 말하는 폼이 이채윤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와, 정아름! 너 이렇게 언니를 배신하기냐! 내 편은 들어주지 못할망정, 고무신을 거꾸로 신으면 안되지!”
“에? 거기서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는 말이 왜 나와요? 그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라고요.”
“아, 그런가? 아무튼…. 실망이다, 정아름.”
“실망할 땐 하더라도 일단 내뱉은 말은 지켜야죠?”
정아름이 히죽 웃으며 손으로 뭔가를 마시는 시늉을 해 보이자 이채윤이 한숨을 푹 쉬었다.
“이번 달도 또 마이너스 나오게 생겼네. 에휴.”
이채윤은 그렇게 말하더니 축 쳐진 어깨를 하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아, 네. 여기 EX01 오피스인데요. 여기로 커피 좀 보내줘요. 일단 아아 두 잔하고, 에스프레소 한잔, 그리고….?”
이채윤이 김서준을 바라보며 눈짓으로 뭘 시킬거냐고 물었다.
“블랙이요. 대자로.”
“…. 블랙 대자, 아니 라지도 되죠? 아, 네네. 알겠습니다. 계산은 제 앞으로 부탁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이채윤은 예거 본부에 입점해 있는 K벅스에 커피를 주문한 것이다.
이 K벅스는 지상에 위치해 있으며 주문이 들어오면 자동 배송 시스템을 이용해 지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예거 본부 곳곳으로 배달하는게 가능했다.
원래는 그냥 예거 식당에서 직접 만들어 먹게 되어 있었지만, 이채윤이 커피 맛은 돈주고 사먹어야 제맛이라며 굳이 K벅스를 지상에 입점시킨 것이다.
“자, 내가 비싼 커피도 주문해 놨으니까 빠르게 브리핑부터 할게. 일단 다들 자리에 앉아 주시고.”
이채윤의 말에 모두 사무실 중앙의 쇼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우선 김서준 요원의 도움으로 천간십이지와 연락이 닿았다는 것부터 시작하지. 김서준 요원이 말해준대로, ‘가장 큰 적은 멀리 있지 않다.’는 문장을 예거의 이름으로 곳곳에 유포시켰더니 바로 연락이 오더라고.”
이채윤은 그렇게 천간십이지와의 접선에 대한 설명을 계속 이어나갔다.
어제 아침, 김서준은 천간십이지에도 이리나와 거의 유사한 신비를 지닌 각성자가 있다며, 이리나를 통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 유포하면 알아서 연락이 올 거라고 확신했다.
그 결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김서준이 알려준 문장에 비밀 연락처 코드를 숨겨서 인터넷에 뿌린 결과 문지혜라는 각성자에게서 바로 연락이 왔던 것.
이채윤은 바로 이리나를 그녀와 연결시켰고, 두 사람의 신비를 이용해 천간십이지의 천간부주와 비밀 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마침내 토요일 오후에 김포에 위치한 아라마리나 수상 계류장에서 천간십이지의 최고 간부와 접선하기로 했다.
이 만남에서 이채윤은 천간십이지와 세 가지를 약속했다.
첫째, 약속장소에는 김서준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며.
둘째, 이 만남을 기점으로 현 천간십이지에 침투해 있는 신교단의 첩자를 발본색원할 기회를 줄 것이고.
셋째, 이날 천간십이지의 물류창고를 습격할 예정인 신교단을 함께 처리해 주겠다는 약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