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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간은 몇시죠?”
김서준은 자신이 계획했던 그대로 일이 진행된 것에 만족하며 시간을 물었다.
“오후 3시. 이리나 요원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신교단이 김포터미널 물류단지를 습격하는 건 저녁 7시야. 그러니 늦어도 3시엔 천간 쪽을 만나서 사전 준비를 마쳐야해.”
“접선장소가 아라마리나 수상 계류장이면 물류단지랑 너무 가깝지 않나요?”
아라마리나 수상 계류장과 김포 물류단지는 1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신교단에게 천간십이지와의 접선을 들킬 가능성이 있었다.
“크게 문제가 되진 않을 거야. 수상 계류장 B라인에 정박해 있는 요트 안에서 만날 거니까 외부에 들킬 일은 없어.”
이채윤이 확신하는 걸로 봐서는 접선 장소에 대해 철저한 사전점검을 해 놓은 것으로 보였다.
“그럼 알겠습니다. 그런데 내일 작전에 투입되는 인원은 어떻게 됩니까?”
“권윤성 선배와 나, 이리나 요원이 메인이 되고 너랑 아름이가 서폿으로 움직이게 될 거다. 그 외에도 김포 근처에 있는 예거 지부 요원 다섯 명도 추가로 지원할 거니까 안심해.”
“어우야. 넘버링 셋에 익스퍼트 요원, 거기다 일반 요원 여섯 명이 투입되는 대규모 작전이네요.”
“맞아. 그만큼 이번 작전은 예거에서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거지.”
김서준은 예거 요원이 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시작부터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것에 살짝 의문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채윤 선배가 계속 날 이쪽 일에 엮는 것 같단 말이지.’
안될 것은 없지만 뭔가 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좋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김서준의 그런 눈치를 읽기라도 한 걸까?
이채윤은 괜히 시선을 회피하며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권 선배님. 오늘 김서준 요원한테 뭔가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이채윤은 공식적인 자리에선 아무리 친하더라도 선배나 요원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었다.
“음. 있긴 한데….”
권윤성이 이채윤과 정아름을 힐끔거리며 말꼬리를 늘였다. 이채윤은 권윤성이 뭘 원하는지 바로 눈치챘다.
게다가 때마침 사무실 구석에 설치된 자동 배송 장치에서 커피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아름아. 우린 잠시 커피 타임이나 즐길까?”
“네? 아…. 네, 그래요.”
정아름도 분위기를 보고 상황을 눈치챘다.
이채윤과 정아름은 배송 장치에서 커피를 꺼내 권윤성과 김서준에게 건네고는 자신들 커피를 들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권윤성은 사무실 안에 김서준과 단 둘이 남게되자 괜히 헛기침을 하며 어색함을 없애려 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금전적인 부탁만 아니면 충분히 들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김서준이 농담처럼 꺼낸 말에 권윤성이 기가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나도 나름대로 벌어놓은 돈이 워낙 많아서 그런 쪽으로 너한테 부탁할 일은 평생 없을 거다.”
“아, 그러시군요. 그거참 다행입니다.”
권윤성이 너무 진지하게 대답을 하자 김서준도 더는 장난을 이어가지 않았다.
“크흠. 내가 널 따로 보자고 한 이유는 다름 아닌 내 신비 때문이다.”
“선배님 신비요?”
김서준이 알고 있는 권윤성의 신비는 ‘칠보격살’이다.
넘버링이 되면서 각성 캡슐에 들어가 새로운 신비를 하나 더 얻었겠지만 그 신비가 무엇인지는 김서준도 몰랐다.
“너도 알다시피, 넘버링 요원들은 두 번째 신비를 각성할 기회를 갖게 되지. 나 또한 오래 전 각성 캡슐에 들어갔었고, 거기서 새로운 신비 하나를 각성하게 됐다.”
“부럽네요. 전 각성캡슐에서 아무 것도 건진게 없는데.”
김서준은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그 누구보다도 엄청난 이득을 얻어놓고 천연덕스럽게 얻은게 없다고 말했지만 권윤성은 속 사정을 모르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건 나도 참 아쉽더군. 그래서 네게 한번 더 기회를 주려고 이 자리를 마련한 거다.”
“기회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
김서준은 권윤성이 무슨 기회를 주겠다는 건지 가만히 생각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내가 두 번째로 각성한 신비. 그건 바로 ‘절차탁마’다.”
절차탁마(切磋琢磨).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보자면, ‘옥이나 뿔 따위를 갈고 닦아서 빛을 낸다.’는 뜻이었다.
김서준은 권윤성의 기회를 준다는 말과 절차탁마의 의미를 함께 버무려 생각해 봤고, 어렴풋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그 신비로 다른 사람의 능력을 끌어올릴 수가 있는 겁니까?”
김서준이 눈을 크게 뜨며 묻는 말에 권윤성이 환하게 웃었다.
“과연 07기 수석은 다르구나. 신비 이름만 듣고 단번에 알아맞추다니.”
“아니, 맞추고 자시고를 떠나서요.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요? 대체 어떤 신비길래 그런게 가능합니까?”
“간단히 설명을 해주자면….”
권윤성은 김서준에게 자신의 신비, 절차탁마의 능력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김서준은 신비의 효력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었다.
[절차탁마]
-마력을 소비하여 상대가 지닌 잠재력의 5% 격발시킨다.(마력, 신체능력 모두 포함) -재사용 대기 시간: 30일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절차탁마는 제자나 후계자를 키우는데 최적화된 신비였다.
권윤성은 자신이 이 신비를 이용해 이전 넘버포인 윤현도의 잠재력을 수차례 격발시켰고, 그 덕분에 윤현도의 모든 능력이 적지 않게 상승했음을 강조했다.
즉, 권윤성은 이 절차탁마를 김서준에게도 사용해서 윤현도 처럼 능력이 크게 높아지길 바라는 것이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아니고, 자기 마력을 소모하면서까지 이렇게 막 퍼주겠다고?’
뭔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권윤성의 성격 상 예거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잠재력의 5%라는 수치가 살짝 애매했다.
사람마다 내재하고 있는 잠재력이 큰 차이가 있을 건 당연하고, 잠재력이 낮은 경우엔 5% 정도로는 그다지 티가 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내 잠재력은 얼마나 되려나?’
김서준은 문뜩 자신의 잠재력이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선배님 말씀은 한달에 한번 쿨타임이 돌 때마다 저에게 이 절차탁마를 사용해 주고 싶다, 이거네요?”
“그렇지. 예거의 넘버 포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무력을 가져야 하니까.”
그 말은 즉, 지금의 김서준은 아직 넘버포로서 부족함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다지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어차피 지난번 훈련 때, 김서준이 백호의 신분으로 내보인 무력은 전력이 아니었기 때문.
“알겠습니다. 저한테 좋은 일인데 제가 거부할 이유가 없잖아요?”
“잘 생각했다. 내가 신비를 발동시키면 한 시간 정도 몸이 불편할 거다. 잠재력 격발을 위한 과정이니까 걱정할 건 없고.”
“알겠습니다. 바로 해보죠, 뭐.”
“좋아. 그럼 눈 감고 편한 자세로 앉아라. 머리에 살짝 충격이 있을 수 있으니 대비하고.”
김서준은 쇼파에 허리를 펴고 앉은 상태에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권윤성이 김서준의 이마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셋 세고 발동한다. 하나, 둘…. 셋!”
퍽!
가벼운 타격음과 함께 김서준의 머리가 뒤로 살짝 튕겨졌다.
큰 충격은 아니라서 별 문제는 없었지만 이마 정 중앙에 딱밤을 맞은 듯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김서준은 슬쩍 눈을 뜨고 앞을 바라봤다.
권윤성이 똑바로 선 자세로 눈을 감은 채 손을 뻗고 있었다.
‘절차탁마가 어떤 신비인지 직접 확인해 볼까?’
김서준은 심안의 정확한 능력을 확인할 기회가 지금밖에 없다는 생각에 다시 눈을 감은채로 심안을 발동시켰다.
지이이잉
김서준의 몸에서 투명한 마력의 파장이 확 뿜어져 권윤성의 몸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김서준은 황금빛 눈동자가 유지되는 2초를 기다렸다가 살며시 실눈을 뜨고 권윤성을 바라봤다.
[321(642)/스페셜/절차탁마]
예상대로 권윤성의 실제 마력수치와 신비까지 모두 보였다.
‘역시, 지금 사용 중인 신비가 표시되네.’
김서준은 눈앞에 떠오른 정보에서 절차탁마를 좀 더 뚫어져라 바라봤다. 순간, 김서준은 자신의 눈으로 무언가가 빨려드는 듯한 현상을 겪었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절차탁마에 대한 정보가 빠르게 스며들었다.
[절차탁마]
-마력을 소비하여 상대가 지닌 잠재력의 5% 격발시킨다.(마력, 신체능력 모두 포함) -한 명당 5회까지 사용할 수 있다.
-히든피스: 잠재력 격발에 성공할 시, 일깨워진 능력의 10%만큼 본인의 능력도 증가한다.
-재사용 대기 시간: 30일
권윤성이 말한 내용과 김서준이 직접 확인한 정보엔 큰 차이가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이 절차탁마를 사용할 수 있는 횟수가 한 사람당 5회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히든피스가 있다는 것이다.
김서준은 절차탁마에 숨겨진 정보를 확인하고는 권윤성이 왜 자신의 마력을 소모하면서까지 다른 사람의 잠재력을 일깨워주려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자기한테 아무 이득도 없는데 왜 해주겠어.’
권윤성한테 조금 실망은 했지만, 그렇다고 이해를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다소 말하기 힘든 히든피스 내용만 빼면 솔직하게 말해 준 편이었으니까.
‘딱 이 정도까지만 애교로 넘어가 드립니다, 권윤성 선배님.’
김서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과연 절차탁마가 자신의 능력에 어떤 변화를 줄지 내심 기대하기 시작했다.
***
“으으….”
김서준은 두꺼운 이불을 온몸에 뒤덮은 채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쇼파에 웅크리고 앉아 머리만 쏙 빼놓고 한손에 든 블랙 커피를 쪽쪽 빨아먹고 있는 모습이 왠지 처량해 보였다.
“윤성 오빠. 얘 이러는 거 정상이야?”
이채윤은 벌써 한시간이 넘게 벌벌 떨고 있는 김서준을 보며 권윤성에게 물었다.
그러자 권윤성이 난감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게 사람마다 보이는 반응이 달라서…. 김서준의 반응은 처음 보는 거긴 하지만 별 문제는 없을 거다.”
“근데 지금쯤이면 결과가 나올 때가 된 거 아니야?”
현 넘버링 요원들 중 권윤성에게 절차탁마라는 신비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이채윤이 유일했다.
“보통은 한 시간이면 끝나는데, 좀 이상하긴 하군.”
“이러다 잘못되는 건 아니겠지?”
“날 믿어. 절대 그럴 일 없다.”
권윤성의 확신에 찬 말에 이채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내일 있을 작전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죠? 대체 무슨 약을 먹였길래 아직도 이래요? 오빠 몸에서 나는 이 지독한 냄새는 또 뭐고요?”
정아름은 김서준이 예거에서 새로 개발된 마력 상승에 좋은 약을 먹은 거라고 이야기 들었지만, 김서준의 상태로 봐서는 그다지 좋은 약이 아닌 것 같았다.
“노폐물이 밖으로 배출되는 거니까 걱정할 거 없다.”
“다음부턴 다른 전문 테스터를 고용하세요. 서준 오빠 같은 고급 인력을 신약 테스트에 소모하는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정아름은 불안한 눈빛으로 계속 김서준을 살피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10여분이 더 흘렀을 때였다.
“….어라?”
오들오들 떨던 김서준이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담요와 이불이 벗겨지자 더욱 고약한 악취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웁! 야, 김서준! 너 괜찮아졌으면 얼른 씻고 옷도 갈아입어!”
이채윤이 코를 막으며 소리쳤고, 정아름은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면서도 어쩔 수없이 코를 막아야 했다.
“네? 아…. 그러네요. 냄새가 아주…. 살벌하네요.”
김서준은 사무실을 후다닥 뛰쳐 나갔고 자신의 ‘EX룸’으로 달려가 버렸다.
김서준이 나가자 정아름은 바로 환기장치를 가동시키고, 사무실 내에 비치된 디퓨저의 발향 강도를 최고로 높였다.
그러는 동안 이채윤이 권윤성을 바라보며 입을 벙긋거렸다.
‘성공했어?’
절차탁마가 제대로 적용됐냐는 질문이었지만 권윤성은 눈살을 찌푸린채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만 있을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권윤성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는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절차탁마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히든피스 효과로 당신의 마력 및 신체능력이 일부 상승합니다.
-마력 증가치: 5
-신체 능력 상승율: 0.5%
지금 권윤성이 보고 있는 메시지였다.
그런데 예상보다 마력 상승치가 너무 낮다.
지금까지 권윤성이 절차탁마를 이용해 많은 각성자들의 잠재력을 격발해온 결과 평균 100이상의 마력을 높여주었고, 그 자신은 10정도의 마력 상승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김서준의 잠재력을 격발시킨 결과로 고작 5밖에 마력이 늘지 않았다니.
신체 능력 상승율도 1%면 평균보다 크게 떨어지는 수치였다.
‘설마 김서준 잠재력이 1천 아래라는 건가?’
실제 마력 수치가 1천이라면 엄청난 수준이지만, 잠재력이 1천이라는 건 정말 재능이 없는 경우에 해당했다.
따라서 김서준의 잠재력이 1천이라면 이번 넘버포 선정은 크나큰 실수였다.
‘그럴 리가 없어. 김서준은 내가 본 각성자들 중 윤현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인재야.’
권윤성은 분명 뭔가 다른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불안한 마음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의 신비 절차탁마는 지금까지 잘못된 수치를 보여준 적이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쏴아아아아
김서준은 자신의 룸에 있는 샤워실에서 시원하게 물줄기를 맞으며 혼자 어이없이 웃고 있었다.
‘와, 씨….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냐.’
절차탁마로 잠재력 격발이 끝난 시점에 김서준은 황당한 메시지를 봐야 했다.
>>절차탁마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당신의 잠재력 수치가 과도하게 높은 관계로 격발율이 0.05%로 조정됩니다.
-마력/내공/제어 증가치: 50
-신체 능력 상승율: 5%
원래는 잠재력 격발율이 5%여야 하지만, 김서준은 0.05%밖에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