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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권윤성이 절차탁마 신비를 사용했는데 격발률이 고작 0.05%밖에 안된다니.
김서준은 사무실에서 1시간이 넘게 오들오들 떨어대며 고통을 견뎌낸게 헛수고였다는 생각에 잠시지만 화가 났었다.
하지만 메시지의 문구를 다시 살펴보고는 화를 가까스로 억누를 수 있었다.
‘잠재력 수치가 과도하게 높은 관계로…’라는 문구.
그 말은 김서준의 잠재력이 너무 높아서 5%를 적용하면 밸런스가 붕괴되기 때문에 시스템이 강제로 격발율을 낮췄다는 뜻이된다.
‘0.05%로 낮춰서 수치가 50이 나왔으면 내 잠재력이 대체 몇이라는 소리냐?’
대충 계산해봐도 무려 10만이라는 어마무시한 수치가 나온다.
‘잠재력이 10만? 이게 말이 되냐고.’
S급 각성자의 마력 수치가 1천 아래인데 무슨놈의 잠재력이 10만이나 될 수 있을까?
그래서 김서준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어쨌든 50이라도 수치가 올랐으니 다행으로 봐야 하나?’
-마력: 220[1101] / 내공: 199[996] / 제어: 550[550]
김서준은 자신의 능력치 정보창을 확인해 보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뭐…. 오늘도 좋은 교훈 하나 얻었네.’
자신의 인생에서 공짜를 바라는 건 태평양 바다에 빠뜨린 반지를 다시 되찾길 바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 그게 바로 오늘의 교훈이었다.
그래도 아예 얻은게 없진 않았다.
적어도 자신의 잠재력이 엄청나게 높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 죽어라 노력한다면 쭉쭉 성장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참을 툴툴대던 김서준은 역한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도록 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씻은 다음 준비해 온 새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는데, 그곳엔 언제그랬냐는 듯이 향긋한 향기만 가득했다.
“거기 그러고 서 있지 말고 얼른 와. 이제 작전 마무리 지어야지.”
이채윤의 말에 김서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고 약 1시간 후에야 이채윤이 세운 작전에 모두가 동의 했다.
***
김서준이 퇴근한 시간은 오후 5시 30분.
이채윤은 이왕 늦었으니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지만, 김서준은 집밥을 먹어야 한다며 끝까지 거절했다.
사실은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그걸 말해줄 수는 없었다.
김서준은 서둘러 포탈을 타고 몬스터서점으로 돌아온 뒤, 바로 지하철로 향했다. 그러다 문뜩 스킬석에 대한 걸 떠올리고는 급히 지하도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김서준은 좁은 화장실 칸 안으로 들어가 아공간에 넣어 둔 격발(B) 스킬석을 꺼내들었다.
예상대로 스킬석의 각성은 이미 끝나있었다.
각성을 끝낸 유니온 코어를 잘 떼어 아공간에 넣어둔 다음 심안을 사용해 스킬석의 정보를 확인해 봤더니.
[격발(S)]
-손가락을 튕겨 원하는 위치에 폭발을 일으킨다.
-단발/점사/연사로 폭발이 가능하다.
-폭발 위력: 700(단발)/300(점사)/100(연사) -폭발 가능 거리: 30미터
스킬에 깜짝 놀랄만한 변화가 있었다.
‘오?’
잠재력 격발에는 운이 없었지만, 스킬석 격발엔 엄청난 행운이 따른 모양.
B급이었던 스킬이 S급 스킬로 각성했다.
그것도 활용도까지 엄청 높은 스킬로.
정보만 봐도 이 격발 스킬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가 눈앞에 훤히 그려졌다.
‘일단 스킬부터 흡수하고.’
김서준이 스킬석을 쥐고 마력을 끌어올리자 곧 스킬석의 마력과 상호반응을 일으키며 스킬석에 새겨진 글자들을 빨아들였다.
가슴팍에 뭉쳐들었던 글자들은 금세 사라져 버렸다.
-스킬: 파륜환(A) / 마력끊기(S) / 분심강림(A) / 격발(S)
자신의 능력치 정보창에 ‘격발(S)’ 스킬이 추가되어 있는 걸 확인한 김서준은 속으로 ‘좋았어’를 외치며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을 튕기려다가 흠칫 놀라 행동을 멈췄다.
‘와, X될뻔 했네.’
손가락을 튕기기 직전에 간신히 멈춘 김서준은 십년 감수한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격발 스킬의 정보로 보아 이 스킬은 시동어가 아니라 손가락을 튕기는 행위로 발동되는 것이 틀림없었다.
즉, 방금 김서준이 한 행동으로 지하철 화장실이 통째로 날아갈 뻔 한한 것이.
‘여기서 격발이 발동됐으면….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김서준은 앞으로는 함부로 손가락을 튕기지 말자고 굳게 다짐했다.
곧바로 화장실을 나선 김서준.
그가 지하철을 타고 내린 곳은 연희동 북동쪽에 인접해있는 무악재역이었다.
무악재역에서 무악산 서남쪽을 가로지르면 바로 연희동 고급 주택가가 나타난다.
김서준이 이곳을 찾아가려는 이유는 그곳에 고태환의 집이 있기 때문이었다.
연희동의 고급 주택가로 가는 내내 김서준은 CCTV의 위치를 확인하며 가능한 사각지대로만 이동했다.
만약 사건이 터진 후, 경찰이나 헌경국(헌터 경찰국)에서 CCTV를 확인한다해도 그 안에서 김서준이 발견될 일은 없어야 했다.
‘여길 또 다시 오게될 줄은 몰랐는데?’
이전에 고한석을 처리할 때 한번 와봤던 곳이라 CCTV를 찾아 사각지대로 움직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직 6시 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라 오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김서준이 일을 벌이는데 문제될 것은 없었다.
김서준은 일부러 밤 시간을 택하지 않고 저녁 시간대를 택했다.
고태환이라면 오히려 밤 시간대에 더욱 철저한 경계를 할 터.
차라리 밤이 되기 직전의 시간대가 허를 찌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고태환도 지금쯤은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파악했겠지?’
김서준이 가사도우미를 구한다는 신청서를 띄우자마자 바로 알아챈 걸로 봐선, 이미 오래전부터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걸로 보였다.
당연히 조미령이 의뢰를 처리를 잘 했는지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을 테니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쯤은 진작에 파악했으리라.
‘적어도 후환이 두려워서 도망칠 인물은 아니야.’
그런 인물이었으면 자식인 고한석이 그렇게 되었을 때,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은 이미 접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끝내 일을 벌였으니 고태환은 자신의 능력과 권력에 대한 믿음이 아직까지도 굉장히 크다는 의미였다.
‘어디보자….’
김서준은 고태환의 집 앞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면서 적절한 위치를 탐색했다.
‘저기가 좋겠군.’
마침 적당한 자리를 찾은 김서준.
CCTV 사각지대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클로킹 마스크를 얼굴에 썼다.
스르륵
김서준은 자신의 존재를 감쪽같이 지운 뒤 가볍게 발돋움하여 고태환의 집 맞은 편 건물 옥상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바로 심안을 발동시켰다.
마력의 파장이 주변을 빠르게 훑고 지난간 순간, 김서준의 눈에 벽과 건물을 관통한 채로 많은 능력치 정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떠오른 수치들이 떠오른 장소는 모두 고태환의 집 안이었다.
[88/노말]
[91/노말]
[123/노말]
[156/노말]
…
..
[266/엘리트]
무려 14개나 되는 능력치 정보.
그중 가장 높은 수치는 266이었는데, 능력치가 떠있는 위치가 집의 거실 중앙인 것으로 보아 그 수치의 주인이 바로 고태환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자기 살겠다고 각성자를 13명이나 고용하다니….’
고태환의 집에는 본인을 제외하고 C급 각성자 7명, B급 각성자 5명, 그리고 A급 각성자도 1명이 머무르고 있었다.
이 정도 인원을 경호원으로 두려면 하루에도 수천만원 이상이 깨진다.
그동안 얼마나 해먹었으면 이렇게 돈을 펑펑 쓸 수 있을까?
김서준은 현무 길드의 부길드장인 고태환이 자신의 아버지와 다른 길드원들의 등골을 얼마나 빼먹었을지를 생각하자 또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뿌린대로 거두는 거다.’
고태환의 집을 무섭게 노려보던 김서준.
“분심강림.”
그가 작게 중얼거린 순간, 2미터 앞 쪽에 나무토막 인간, 부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경 5미터 내에서는 다른 존재에게도 클로킹 마스크의 효과를 적용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부우의 모습도 투명화된 상태였다.
이를 볼 수 있는 건, 오직 김서준 한명 뿐.
김서준은 심안을 다시한번 사용하여 부우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350/노멀/비뢰신보]
다행히 이번에 소환한 부우한테 적용된 신비는 ‘비뢰신보’였다.
“할 수 있지?”
김서준이 질문을 던졌고, 부우는 당연하다는 뜻으로 뭉툭한 손을 머리 옆에 붙였다 떼며 쿨한 제스처를 해보였다.
“무기는 알아서 골라봐.”
김서준은 며칠 전 균열에 들어갔을 때 수많은 몬스터들을 때려잡은 뒤, 놈들이 지니고 있던 무기들 중 그나마 쓸만한 것으로 세 개를 챙겨 놨었다.
그 무기들을 바닥에 깔아 놓자 부우가 다가와 스윽 훑어봤다.
바닥에 놓인 건 하나같이 둔기에 가까운 무식한 무기들이었다.
1.5미터나 되는 양손대검 하나와 장대도끼의 일종인 할버드, 그리고 가장 무식해 보이는 2미터 크기의 메이스까지.
부우는 별 고민도 없이 바로 메이스를 집어들었다.
‘비뢰신보와 메이스 조합이라…. 당하는 쪽 입장에선 정말 공포스럽겠는데?’
김서준은 부우의 훌륭한 선택에 칭찬을 내려주고 싶었다.
“이것도 걸쳐라.”
김서준은 계획한대로 미리 준비해온 로브를 꺼내 부우에게 입혔다.
지그부터 부우는 자신을 대신해 고태환의 집안에 침투할 예정이기에 처음엔 사람인 것 처럼 혼선을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경호인원이 많아 과연 부우 혼자서 처리가 가능할지가 살짝 걱정되었다.
‘사슬낫 옵션에 달린 농부 소환이라도 가능했으면 좋았을텐데.’
사슬낫이 ‘사슬낫.개(SS)’로 각성하게 되면서 농부 소환 옵션이 추가 되었지만, 소환에 필요한 내공이 1,000이나 되기 때문에 아직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
-낫을 든 농부를 소환한다.(소모 내공 1,000)
‘내공도 곧 1천이 넘을 테니 그때 한번 제대로 소환해 봐야지.’
김서준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부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좀 버겁긴 하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 해봐. 비뢰신보가 있으니 크게 위험할 일은 없을 거다.”
김서준이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한마디 하자 부우도 똑같이 김서준의 어깨에 뭉툭한 손을 턱 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 꼭 내 클론 같네.’
김서준은 부우가 자신의 클론처럼 행동을 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였다.
김서준이 메고 있던 배낭 주머니에서 우기와 치호가 호다닥 뛰쳐나오더니 부우의 팔을 타고 올라가 어깨 위에 척하니 자리를 잡았다.
“니들은 왜 또?”
김서준은 이 조그만 녀석들이 상황파악도 못하고 장난을 치자는 건줄 알고 인상을 썼다. 하지만 우기가 고개를 뻣뻣하게 든 채로 제 가슴을 퍽퍽 치며 이상한 자신감을 내보이자 그 이유를 깨닫고 피식 웃고 말았다.
“니들도 함께 보내달라고?”
끄덕.
“그 작은 몸뚱이로 뭘 할 수 있는데?”
김서준이 어처구니 없어하며 되묻자 우기는 짧은 팔로 김서준을 한번 가리켰다가 커다란 원을 그리고는 다시 제 가슴을 팡팡 때렸다.
“오호. 내가 허락만 하면 덩치를 키울 수 있다는 거냐, 지금?”
끄덕.
신기하게도 우기의 어설픈 바디랭귀지가 전부 이해되고 있었다.
“치호, 너도?”
치호는 우기보다 의사표현이 서툴렀지만 그래도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바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기와 치호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걸로 봐서는 부우와 함께 투입시켜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이 두녀석이 자신과 떨어질 수 있는 거리가 30미터에 불과하다는 점이 살짝 걸렸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김서준은 아공간에서 오렌지급 마석 두 개를 꺼냈다.
오늘 아침에 아카데미에서 뽑기로 받은 마석이 있어서 오렌지급 마석은 다시 두 개로 늘어나 있었다.
“일단, 이거부터 먹어봐.”
우기와 치호에게 마석을 하나씩 먹이자 두 녀석의 마력이 또 다시 상승했다.
[128/엘리트]
[123/엘리트]
더불어 자신과 떨어질 수 있는 거리도 50미터까지로 크게 증가했다.
‘50미터면 충분하겠네.’
김서준은 우기와 치호에게도 무기를 권했다.
지금이야 체구가 너무 작아서 들지도 못하는 상황이지만, 덩치를 키우게 되면 여기서 던져줘도 되는 문제였으니까.
우기는 바로 부우의 어깨에서 뛰어내리더니 바닥에 놓인 무기 중 커다란 할버드 앞에 섰다. 그리고 손잡이 부분을 툭툭 치며 시건방진 얼굴로 김서준을 올려다봤다.
“우기는 할버드고, 치호는?”
김서준이 묻자 치호는 끼이잉 소리를 내며 아무 것도 쥘 수 없는 자신의 복슬거리는 두 앞발을 내려다 봤다. 그리고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맞다. 치호는 훨씬 멋진 송곳니가 있으니 무기가 필요 없겠구나?”
김서준은 치호가 의기소침하지 않도록 슬쩍 말을 돌렸다.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치호는 크르릉 소리를 내며 금세 기운을 차렸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김서준은 부우와 우기, 치호에게 간단히 작전지시를 내렸고 건물 옥상 끝으로 이동해 고태환의 주택을 노려봤다.
“내 목적은 딱 한 놈이다. 그러니 불필요한 살생은 피해라.”
김서준이 주의를 주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준비하고.”
어느새 김서준의 옆에 붙어선 부우가 무릎을 구부리며 힘차게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녀석의 어깨 위에는 우기와 치호가 납작하게 달라붙은 상태.
“….가라!”
김서준의 명령이 떨어지자,
퍼엉
부우가 무릎을 튕기며 로켓처럼 치솟아 올랐고, 고태환의 집 정원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김서준과의 거리가 5미터 이상으로 벌어지자 부우에게 적용되던 클로킹이 풀렸다. 순간, 로브를 뒤집어 쓴 사람 형태의 부우가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목격한 고태환의 경호원들은 곧바로 사방으로 무전을 날렸다.
“기습이다!”
“고객을 지켜!”
“적이 더 있을 수 있으니 주변을 잘 살펴라!”
모두가 급박하게 소리를 지르는 그때,
꽈아아앙!
부우가 바닥에 착지하며 터져나온 굉음이 사방을 가득 메워버렸다.